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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사계절)』의 저자 주경철은 『드라큘라』의 “동방으로 가면 갈수록 기차가 시간을 안 지키는 것 같다.”라는 문장을 통해, “19세기 서구 문명의 총아인 기차마저도 ‘동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성의 빛이 밝게 빛나는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이처럼 어둡고 음산한 마력이 지배하는 곳으로 그려진다.”(같은 책, 197쪽)라고 적고 있다.
일독하려던 책(『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저/사계절)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참고 도서 목록을 훑어보던 중 또 옆길로 새고 말았다. 본서 서문에도 있듯 『드라큘라』는 그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도서 중 하나다. 더군다나 원작자인 브램 스토커(1847-1912)에 대해선 그 이름과 대충의 줄거리를 빼면 아는 게 전무한데도 말이다. 영국 사회의 공포와 불안이라는 메타포를 담고 있다는 그 정도. 불과 이삼일 전에도 봤던 여러 버전의 『드라큘라』와 2008년 작 『바토리(유라이 야코 비스코 감독/안나 프릴(바토리 역))』처럼 그를 각색한 영화까지 주구장창 찾아보면서도 정작 원작을 읽으려던 계획은 이제야 실현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런데 웬걸, 한번 시동이 걸리니 조급증이 생겨 바로 e북을 구매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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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연달아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어떤 말馬이고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잔뜩 긴장한 채 공포감에 휩싸여 몸을 떨며 앞다리를 쳐들어대는 녀석들. 그런데 말도 땀을 흘리던가? 리얼한 상황 묘사로 고조되는 긴장감에 스릴 백배이던 차에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했던 말처럼 음산하기 그지없는 그곳, 백작의 성 앞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이후 전개가 무척 궁금해지는 이 속도감이라니. 식은땀을 흘리며 한바탕 악몽에서 허우적거리다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동유럽의 트란실바니아에 거주하던 드라큘라는 활동 무대를 넓히기 위해 영국을 떠올리고 법률 자문을 구할 겸 자신의 변호사 대행인 조너선 하커를 만난다.
아! 이 찐한 복선의 연속. 드라큘라가 던지는 말에 족족 대답하고 있는 나. 부티 나는 물건들 틈에 꼭 있어야 할 것들(거울, 하인들 등)이 없는 데 의아심을 품는 하커에게 연신 ‘드라큘라 집이니까.’라고 알려주고 싶고, 금지 구역만 제외하고 성 안 어디든 다 봐도 된다는 말의 모순을 기가 막히게 포장하는 드라큘라의 입담에 반하고. 이런 마당에 시인 듯 시조인 듯 운율을 주어 읽게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두 인물의 심리 묘사와 배경 묘사가 거의 절창絶唱이다. 원작자의 필력에 이세욱 번역이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나 할까. 진작 원작부터 읽었어야 했음을 깨닫고 후회하는 중.
(두 인물의 대화 중 간간이 언급하는 역사를 읽다 보니 19세기 동유럽 사회를 복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먹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면도 거울에 모습이 비치지 않는 것, 과민 반응을 보이며 거울을 깨트려 버린 일, 도마뱀처럼 벽을 기어 다니는 일 등 모든 것이 의문투성인 드라큘라. 시일이 지날수록 감옥에 갇힌 듯 하커의 공포심과 의혹은 커져만 간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드라큘라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성 안의 방들을 두루 살핀다. 그러던 중 세 명의 여자들을 만난 다음날 입언저리에 피를 묻힌 채 관에 누워 잠든 백작을 발견하곤 마침내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이제 탈출만이 살 길임을 간파한 하커. 하지만 그전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 그는 백작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자신이 써 보냈던 세 통의 편지를 읽은 수신인들의 오해가 걱정스럽다. 자신이 실종됐거나 죽은 줄 알 수도 있으리라. 좌절, 그의 일기는 사랑하는 연인 미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나는 약혼자인 하커를 돕고 그에게 어울리는 배우자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데 그중 속기법도 하나다. 그런 그녀가 편지를 가장 많이 주고받은 사람이 바로 친구 루시다. 가장 최근 친구 루시에게 보낸 편지엔 트란실바니아에서 일주일쯤 뒤 귀국할 거라는 하커의 짧은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도 추가한다. 이에 루시의 답신이 이어지는데, 그녀는 하루에 세 사람(존 수어드, 퀸시 모리스, ?)에게 청혼 받았던 일에 대해 설레발을 떨며 은근 자랑을 늘어놓는다. 직업과 재력을 운운하며 1등 신랑감이 어쩌고저쩌고하는데, 문득 근대 영국 사회의 결혼 문화를 소설화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이 떠올랐다. 구태의연한 남존여비 사상에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서도 왠지 세 명의 멋진 남자를 모두 소유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루시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이후 식욕을 잃고 세상만사가 부질없어 보이는 존 수어드 박사. 정신병원 의사인 그는 일에 매달리기로 작정하고 특이한 정신 이상을 보이는 환자(렌필드) 치료에 집중한다. 퀸시 모리스는 친구이자 행운의 사나이(루시의 정혼자), 아서 홈우드에게 조만간존 수어드까지 셋이서 만나자는 서신을 보낸다.
풍자의 주역인 듯, 노인의 비유나 말투가 감칠맛난다. 드디어 휘트비에서 루시를 만난 미나 머레이의 일기. 그녀들은 워털루 전투가 벌어지던 무렵, 선원이었다던 노인(쉐일스)에게 휘트비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풍문)을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노인은 그런 것들은 모두 다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으며 철도 승객을 끌어들이려는 자들과 목사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일갈한다. 의구심을 품고 묘비의 내용을 쭉 읽어보는 루시에게 노인은 자신이 단정한 말들을 재확인시켜주려는 듯 묘비 내용과 다른 진실을 들려주고, 그날 저녁, 미나는 루시의 남편이 될 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인 조너선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수어드 박사는 파리, 거미에 이어 참새를 모으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렌필드를 계속 관찰한다. 이때 렌필드는 음식으로 유혹한 금파리와 참새를 먹기도 하는데, 수어드의 재촉으로 파리 수를 줄이기 위해 거미를, 거미를 줄이기 위해 참새를, 또 참새를 줄이기 위해 고양이를 불러들이는, 일종의 먹이사슬을 이용한다. 수어드는 이를 육식성 편집광이라고 결론짓는데, 이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한편 일주일 뒤에 온다던 약혼자는 감감무소식에 혼인을 앞둔 루시까지 몽유병을 앓고 있어 미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홈우드가 돌아오면 루시의 병세도 나을 거라는 희망 아래 그녀는 조너선의 상사인 호킨스에게 약혼자의 연락을 물어보는데, 그 역시 드라큘라 성에서 받은 한 줄짜리 서신(곧 집으로 떠나갈 거라는)이 다라고 말하고... 하지만 그마저 연락이 끊겨 버리자 점점 초조해지는 미나의 걱정을 더하는 쉐일스 노인. 그는 자신이 죽을 날에 임박했음을 알린다.
멀리 엄청난 해풍을 맞고 있는 선박 한 채가 불안하게 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러시아 선박의 선장과 항해사를 비롯해 선원들까지 모두 기이한 모습으로 사망한 기사가 뜬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길한 사망 사건의 연속. 뭔가에 잔뜩 놀란 모습으로 사망한 쉐일스 노인과 루시 어머니 그리고 네 남자의 수혈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망하고 만 루시까지. 신문엔 연일 괴이한 일들이 기사화되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 미나와 결혼한 하커는 어느 날 런던 거리에서 한층 젊어진 드라큘라 백작을 보게 된다.
유서가 된 루시의 편지들을 읽은 반 헬싱 박사는 그녀와 주고받았던 미나의 편지를 읽고 미나 남편(하커)의 병증이 루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고 미나 부부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런던에서 벌어졌던 기이한 사건들의 실체를 파악한 그는 수어드 박사와 그 일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고...
정말이지 숨 가쁘게, 단숨에 읽었다. 모든 등장인물과 대사 하나하나에 긴박감 넘치는 복선이 가득하다. 마치 모든 일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 소설 초반, 드라큘라 백작의 말처럼. 진작 읽었어야 할 수작(이것이 고전의 힘)임을 다시 한번 절감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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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독서 후 환기할 목적으로 책의 주석을 발췌한 것임을 참고해 주세요 -
* 코닥 : 1888년에 처음으로 나온 간단하고 비교적 값이 싼 카메라 * 축음기 :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녹음 장치. 금강석이나 사파이어로 된 바늘을 사용해서 밀납 원통에 홈을 파도록 되어 있다. * 마르미온 : 월터 스코트의 장편 담시(1808). 이 이야기 속의 콘스턴스 드 비벌리라는 수녀는 서원을 어기고 연인을 따른 죄로 휘트비 대수도원의 지하 감옥에 갇힌다. * 버드-샌더슨 : 1828-1905. 심장의 전하를 최초로 측정한 영국의 의사 * 신여성 : 1880년대 이후 특히 성적인 문제에서 자기들의 독립성을 주장했던 여성들에게 적용된 용어 * 잭 셰퍼드 : 1702-1724. 영국의 범죄자. 여러 차례에 걸친 탈옥으로 유명 * 로터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걱정을 잊게 해 준다는 나무 * 레테 강 :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강. 이 강물은 죽은이의 마음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 버린다고 한다. * 펠멜 가제트 : 1865년에 창간된 런던 신문. 1880년대에 선정적인 기사로 명성을 얻음 * 피는 생명이다! 피는 생명이다! : 구약 성서 「신명기」 12장 23절 참조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피만은 먹지 못한다. 피는 곧 생명이라, 생명은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웨스트민스터 가제트 : 1893년에 런던에서 창간된 신문 * 햄스테드 히스의 슈터스 언덕 : 브램 스토커의 지리적 착오. 슈터스 언덕은 햄스테드가 아니라 그리니치와 블랙히스 사이의 템스 강 남쪽에 있다. 디킨즈는 『두 도시 이야기』의 첫 장에서 이 슈터스 언덕의 위치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 샤르코 : 1825-1893. 프랑스의 신경학자. 최면과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로 프로이트의 초기 연구에 영향을 줌
* 므두셀라 : 구약성서 「창세기」 5장 27절 * 올드파르 : 1484년에 태어나 1635년에 죽었다 해서 전설적인 인물이 된 영국의 농부. 고환이 대단히 컸다고 하는데, 혹자는 그 점을 장수의 이유로 들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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