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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저자는 에라무스이다. 그는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평가 받는다. 에라스무스는 최고의 지성인 답게 당대에 많은 글을 쓰고 출판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의 글이 그의 시대만큼 많이 읽히지는 않는듯하다. 그남아 현대에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이 "우신예찬"이란 책 들수 있겠다.
이책은 풍자문학이다. 우신(어리석은 신)의 입을 빌려 에라스무가 세상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저자는 이책에서 어리석음을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 의미가 정확히 나누어져 있지 않고 그 용도와 쓰임이 뒤죽 박죽이다. 왜이렇게 일관되고 논리적이지 않게 글을 전개하냐고 에라스무스에게 묻는 다면 그는 우신(어리석은 신)에게 논리를 기대하것이 어리석음이라고 대답할것이다. 이책에서 어리석음 크게 세가지 용도로 쓰인다. 첫번째 진짜로 어러석음이다. 세상은 어리석음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우신의 자화자찬한다. 두번째 용도는 지혜로워 보이나 실은 어러석어 보이는 것이다. 주교, 교황, 학자, 군주, 변호사 등 소위 지성인, 엘리트들이 지혜로워 보이나 실로 어리석은 자들임을 풍자한다. 마지막 어리석음은 어리석어 보이나 실은 지례로운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주여 저는 어리석은 자이옵니다"라고 기도 할때 주님은 이런 사람을 지혜롭게 여기신다. 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실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신양성서 멸망하는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어 보인다고 했다. 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 어리석음이다.
당시 이 우신예찬은 실제로 사회에 큰 파장을 준듯하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 특정인을 비하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 여러차례 변명을 해야했고, 이책을 불어로 번역한 사람을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에라스무슨는 우신예찬을 쓴걸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이라는 보물을 남겨주어 감사하다. 이책을 읽는동안 그의 익살스런 글 솜씨로 인혜 실소가 터져나오기 다반사 였다. 또 우신의 입을 통한 풍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그러나 나 또한 우신의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삶도 때론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고 내가 지혜로운줄 알고 아는 행위가 실로 어리석을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리석음을 미워할수 없음은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들을 지혜롭게 하시며, 그 또한 어리석음을 입고 이땅에 친히 오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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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무어'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는 이 책은 '어리석은 여신'을 내세워 신랄한 풍자로 세태를 조롱한다. 유토피아를 재밌게 봤던 터라 우신예찬도 그러려니 했더니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워낙 박식한 어른이시라 그런지 깊은 내용과 어려운 문장들이 많았다. 그러나 풍자와 비판은 언제나 통쾌한 법.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비판해도 괜찮나 싶을 만큼 대놓고 저격을 한다. ''상당수 종교인들이 앞뒤가 전도되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각한 비방은 쉽게 참아 넘기면서 교황이나 군주에 대한 가벼운 농담에는 발끈하며,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과 관련되었을 때는 그보다 더 화를 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면죄부라는 거짓 물건을 받아 들고 스스로를 격하게 위무하는 이들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연옥에서 보내야 할 기간을 물시계로 정확하게 몇 세기, 몇 년, 몇 달, 몇 날, 몇 시간 단위까지 수학 공식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합니다.'' ''하지만 사실 교회의 가장 무섭고 지독한 적은,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잊히도록 침묵으로 방치하며, 장사치의 법률로 그리스도를 결박하며, 억지 해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역병 같은 삶으로 그리스도를 살해하는 불경한 교황들입니다.'' 이쯤되면 교황이 에라스무스를 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에라스무스가 살던 시대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시대였지만 그래도 교황의 권위가 서슬 퍼런 시대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까다니 대단한 학자이기에 가능했을까. 이 책은 1511년 프랑스 파리의 '쥘 드 구르몽' 출판사에서 최초로 출판되었다. 이 시대는 막연히 뿌옇고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에라스무스의 뜨겁고 날 선 글에선 펄펄 뛰는 열정이 느껴지고 이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구나 싶다. 700년 전의 글이 현재에도 울림이 큰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탐욕적이고 썩은 기득권은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에라스무스가 현재에 태어나 글을 쓴다면 뭐라 할까.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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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은 어리석음을 대표하는 여신이다. (*에라스무스는 어리석은 사람 중에서도 특히 여자가 더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그냥 신이 아니라 '여신'으로 지정한것 같다) 스스로를 우신으로 칭하고는 자신의 훌륭함을 피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당시대를 비판하여 인기가 좋았는데, 특히 신분사회에서는 절대적 존재인 군주, 귀족, 성직자를 조롱하는 부분이 꽤 직설적이어서 금서로 지정되었었다. 현 시대에도 극공감이다. - 우신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현명하지 못하여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것에 좋아하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수 있다고 한다. 냉정한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므로, 그런 허상에 빠질수 있게 해주는 내(우신) 덕분이다.
- 군주가 해야 할 의무를 모른채 태평하게 즐거움을 쫒아 행복해 하는것도 어리석음 덕분이며, 귀족들은 부끄러움을 모른채 아부에만 능한것도, 성직자 또한 고난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에게 넘기고 자신은 신나게 전쟁만 해댈수 있는것도 어리석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반면 지혜와 철학은 가난하고 찌질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갑분싸 능력까지도.
- 나의 은혜로운 어리석음 덕분에 어리석은 너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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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의 여신이 스스로를 자찬하는 내용이다. 왜 자신이 위대한지, 어찌하여 어리석음이 유용하고 인생사에 꼭 필요한 것인지,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얼마나 다양한데다 충성도가 높은지를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과정에서, 필부에서부터 수도사, 교황, 신학자, 군주에 이르기까지 당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 풍자는 유머가 넘치면서도 신랄하기 이를 데 없다. 에라스무스가 왜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인지 절감하였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 유머 감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시종일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1510년대 씌어진 글에서 어떠한 이질감을 느끼기는커녕 현시대의 부조리와 현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멋진 안경을 제공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유와 인용이 무수히 많은데다 풍자의 진의를 파악하려다고 노력하다보니 책 읽는 속도는 상당히 더뎠지만, 지겹지 않았고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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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은 어리석은 신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제목 그대로 멍청한 일이다. 멍청한 신을 찬양하는 인간이 제대로일리가 없으니 말이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을 찬양하는 자들을 비판한다. 우신을 예찬하는 자들은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가나 당시 위세등등했던 종교인들이었다. 저자는 철저히 성경을 빗대어 당시 풍토를 풍자하고 있다. 카톨릭교도였지만, 개신교와 구교의 연결다리 역할을 하고자 했던 그였기에 우신을 숭배하는 구교를 풍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
| 우신예찬의 여러판 본 중 김남우 역의 도서를 구매하였습니다. 우신예찬은 요샛 말로 모두까기 인형같은 책 인 것 같습니다. 온 갖 직업의 사람들에게 그 어리석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바보. 멍청이가 아름다운 호칭이고 행복한 존재라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 안에 우신예찬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철학서기에 어려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유쾌하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만족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