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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年 ≪三千里≫에 發表된 金東仁의 短篇小說. 이 中 처음 두 篇인 '大同江'과 '무지개'는 原來 1930年 <東仁 스켓취>를 通해 連載했던 別個의 글로 여겨졌으나, 뒤에 內容을 덧붙여 한 이야기의 一部로 構想됐던 것임이 알려졌다. 그대는 길신의 지팡이를 끌고 旅行에 疲困한 다리를 平壤에 쉬어 본 일이 있는지? 그대로서 萬若 길신의 발을 平壤에 들여놓을 機會가 있으면 그대는 疲困한 몸을 暫時 旅舍에서 쉬고 지팡이를 끌고서 江邊의 큰길로써 牡丹峯에 올라 가보라. 한 걸음 두 걸음, 그대의 발이 舊市街의 中央에까지 이르면 그때에 문득 그대의 오른손 쪽에는 古色이 蒼然한 大同門이 나타나리다. 그리고 그 大同門 안에서는 서로 알고 모르는 許多한 사람이 가슴을 제껴 헤치고 부채로 땀을 날리며 世上의 온갖 군잡스럽고 시끄러운 問題를 잊은 듯이 閑暇히 앉아서 太古적 이야기를 歲月 가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을 發見하리라. 그것을 지나서 그냥 지팡이를 끌고 몇 걸음 더 가면 그대의 앞에는 문득 練光亭이 솟아오르리니 옛날부터 많은 詩人歌客들이 數없는 詩와 노래를 얻은 것이 이 亭子다. 그리고 그 練光亭 앞에는 이 세상의 온갖 계급 관념을 무시하듯이 점잖은 사람이며 상사람이며 늙은이며 젊은이가 서로 어깨를 겯고 앉아서 말없이 저편 아래로 흐르는 大同江 물만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그들의 눈을 따라서 그대가 눈을 옮겨서 그 사람들이 내려다보는 大同江을 굽어보면…… 그대들은 조그마한 漁船을 發見하겠지. 或은 기다린 水上船도 發見하겠지. 그러나 그 밖에는 長靑流의 大同江이 있을 따름이리라. 여기에 平壤人의 心境이 있다. 여기에서 平壤人의 情緖는 뛰놀고, 여기에서 平壤人의 空想은 飛躍하고, 여기에서 平壤人의 幻夢은 躍動하고, 여기에서 平壤人의 詩歌가 생겨나고 平壤人의 노래가 읊어지는 것이다. 그대가 萬若 이런 事情만 알 것 같으면 그 輕重 없이 長靑流의 大同江만 내려다보고 집안도 잊고 妻子도 잊고 앉아 있는 許多한 무리를 寬大한 마음으로 容恕하기는커녕 一種의 尊敬의 念까지 생기겠지.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그는 日帝 末에 內鮮 一體와 皇民化를 主張하고 日帝의 植民支配 統治 理念을 作品에 內面化한 親日 作家이다. 따라서 金東仁은 民族文學作家會議, 民族問題硏究所 等에서 發表한 親日 文人 42名의 名單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民族問題硏究所가 發刊한 ≪親日人名辭典≫에도 그의 이름이 包含되어 있다. 또한 ‘親日反民族行爲 眞相糾明委員會’에서 發表한 ‘文學 分野 親日反民族行爲者’ 31名의 名單에도 그의 이름이 收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