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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그림'이 ‘기린’ 그림인 이유 -‘기린 그림’의 수수께끼 -내용 소개 -아는 만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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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어떻게 해서 기린의 그림이 되는 것일까?”<미학이 재현을 논하다>는 쉬워 보이지만 당혹스러울 만큼 어려운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소에 미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한 나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혼란스러워 지기만 했다. 이 책은 미학 입문서나 대중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연쇄적인 질문들에 꽤나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해줄 것 같아 읽게 됐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쓰였는데, 제 1부에서는 굿먼, 피콕, 하이먼 등 다양한 미학자가 전개시킨 회화적 재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제 2부에서는 회화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과 사진과 같은 다른 예술에서의 재현의 문제를 논한다. 제 3부와 4부에서는 재현의 주제를 다른 미학적 주제와 연결시켜 논의를 확장한다. 사진, 디지털 이미지와 비디오 게임에서 재현의 문제를 다룬 부분은 나의 창작 활동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아 특히 흥미로웠다. 약 3년간 건축학도로 살아온 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나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건물의 형태, 분위기 또 사람들이 그 공간을 이용하는 장면 등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이미지, 디지털 3d 모델, 축소된 스케일의 물리적 모형들을 무수히 만들었다. 이런 작품들은 실존의 무엇인가를 재현하고 있진 않지만 이것들이 단순 과제 이상의 가치가 있기를 바랐고 예술,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건축은 예술이다 라는 주장은 예전부터 받아들여져 왔지만, 실제로 건축을 하기 전까지 그려진 수많은 도면들과 스케치들 그리고 만들어진 모형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창작물들은 과연 어떤 것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오히려 실존의 건축이 그 창작물의 재현 아닐까.
책에서 마노비치는 디지털 이미지란 연속적 데이터를 ‘수적 재현’으로 전환한 것으로서 물리적 현실이 아닌 물리적 현실의 어떤 특징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디지털 이미지가 재현하는 대상은 물리적 현실이 아니라 그 물리적 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성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창작한 디지털 작품들이 재현한 것은 상상속에 존재하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건물을 서있게 하는 세계를 구축하고 지배하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력의 법칙은 지구에 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참여자와 창작자 사이에 공통된 이해의 맥락을 제공해준다. 즉 나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이러한 재현을 통해 보다 사실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아니 무엇인가를 창작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라면 한번쯤은 드시 자신의 작품이 과연 무엇을 재현하고 있는지, 왜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지, 혹은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창작의 열차를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다. 이때 이 책은 나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다른 학자들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게 해주며 창작의 열차를 다시 달리게 할 연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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