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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선뜻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하고 관심있어 하는 분야라면 어떻게든 일어보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게 그저 얕은 지식과 얕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읽기 쉬운 <눈, 뇌, 문학>이었다. 개인적으로 얕은 흥미나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을 하루를 헌납하더라도 다 읽지 못하는 분량이었다. 며칠을 두고두고 읽으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시각은 일차적으로 지각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단순한 지각 기관을 넘어 인지의 기관이 되고 상상력의 기관이 되어 어느 순간 윤리적인 행위의 기관으로 상승한다. 눈과 뇌가 직결된다는 신경 과학적 사실은 과학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서양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교육이란 지식을 가지지 못한 영혼에게 지식을 집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플라톤이 말한 교육은 보는 능력을 생기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능력을 지니고 있어 바르게 방향이 잡히지 않아 보아야 할 것을 보지도 않는 이에게 바라보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어둠에서 빛은 곧 생명이다. 빛은 우리가 시각을 말할 때 살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믿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믿음, 욕망, 다른 많은 가능한 인지적 상태가 주체의 지각 내용이나 경험을 결정할 정도로까지 지각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보는 것은 자극 조건뿐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바탕에 깔린 정신 상태에도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시각은 상실할 수도 있다. 시각의 상실인 실명은 그리스 문화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이디푸스왕이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자신의 생모와 결혼하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눈을 뜨고서도 진실을 보지 못한 죄에 대한 벌로 자신의 눈을 파괴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각 장애인은 비시각 장애인보다 다른 지각이 훨씬 발달했다고 여겨진다. 사물을 바라보는 문제는 어떻게 세상을 사유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에 관한 사색과 직결된다. <눈, 뇌, 문학>을 통해 어떤 내용을 접할 수 있을지, 눈과 뇌, 문학으로 약 700페이지의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읽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문학에서 눈과 뇌에 관련된 내용이 이렇게나 많고 정보가 많은지 몰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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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뇌 문학>은 눈으로 시작해 '보는 것'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문학적 통찰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우해 볼 수 있다. 책 서두는 '눈으로 모든 것'을 담는다...이다. 앎이 깃드는 첫 단계가 몸의 언어를 통해서 체득이 되고 나면 위대한 계시로 바뀌는 점화의 순간이 온다. 위대한 계시란 이런 것이다. 보이는 것의 통로인 눈을 통해 사유를 시작하면 이는 뇌의 언어로 전환된다. 이 접점은 상상을 더하는데 보이는 것들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들 마저 정교하게 시각화 시키는 눈과 뇌의 교감이다. 바로 마음이다. <눈 뇌 문학>은 바로 이 마음에 이르는 시선을 통해 인간의 보이지 않는 서사를 조명하는 작품 분석 이야기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가 '뇌를 넘어서 본다'로 마무리한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 저무는 육체적 시간들을 따라 물욕을 키워가며 사는 일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신의 영역까지 욕망을 드리우며 파고들어간다. 이때 우리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눈', 마음의 심미안은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작가의 <눈 뇌 문학> 전체를 상쇄하는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순수와 미혹함 사이에서 수많은 눈들의 보이지 않는 죄악과 사투는 우리가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되풀이하게 한다. 그리고 이 반복적 물음 속에서 신을 향한 끊임없는 눈물의 회개와 구원을 갈망하는 도덕적 회심을 소원하게 한다. 우리의 눈들이 그렇다. 선과 악의 넘나듦 속에서 어떤 것들은 추하나 빛이 되고, 아름다우나 어둠이 되어 있는 끊임없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
타인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은 도스토옙스키의 타자를 바라봄에서 연민을 타고 온다. 그의 작품 속 시선을 따라 마음이 머무는 심연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차원의 숭고한 사랑을 완성하는 세계를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통하고 원하는 한 가지 감정은 사랑이다. 최고의 윤리고 선이자 아름다움..... 신들이 인간에게 베푸는 향연. 사랑은 인간다움을 뿌리내리고 인지하는 모든 감각을 살아있게 만든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세계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이 바라봄. 눈을 통해 세상에 닿았다가 인간들 사이에 녹아든 타인의 의식을 의식하고 다시 문학으로 승화되어 궁극적으로 신을 부르는 속죄의 구속적 사랑... 참회의 눈물이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신들로... 이 모든 윤회적 연결고리를 저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바라봄으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신의 눈>을 <다 보기>라는 양적 개념으로 환산하는 것은 근대적 발상이라고 (193.) 저자는 말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놓친 것을 다시 잡기 위해. 사랑을 마주보기 위해. 삶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해. 고결한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보고 어떤 선택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톨스토이가 묻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가장 단순하게 직관적으로 솔직하게 묻고 답하면 된다. 그 물음이 그대로 답이 될 것이다. |
![]()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흰옷을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도록 지시한 후,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을 경기장 한가운데를 걸어가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단다. 왜 그들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을까? 크리스토퍼 채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수행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통해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선택적이고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우리가 특정 차를 구입하려고 알아보는 순간부터 그 차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인간은 보이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본다는 거다. 그것도 보이지 않으면 더 잘 보려고 집요하게 노력까지 한다. 도대체 본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보이는 것'그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본다는 우리의 뇌와 시각의 비밀! 이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책이 바로 석영중 교수의 '눈 뇌 문학'이다. 무엇보다 문학, 미학, 과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쉽고 흥미롭게 인간의 시각 '본다는 것'에 대해 풀어놓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오는 인문학 책으로, '봄'의 의미를 즐겁게 탐색해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인문학 책 <눈 뇌 문학>은 크게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인간의 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담은 '생물학적 시각'부터 문학 작품을 통해 본 시각의 다양한 의미, 미술사와 문학사를 통해 창조와 감상, 신을 보려는 인간의 노력과 의미 등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통해 본다는 것, 시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서문 시작부터 내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진진했던 '눈 뇌 문학'! 흥미로웠던 내용 중 유독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눈의 탄생과 문학을 통해 만난 '시각'의 다양한 의미였다. 눈은 언제부터 생겼던 걸까? 눈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각 기관이 등장한 때는 5억 43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이는 생명체가 등장한 연도가 45억 년에서 38억 년 전이라 추정되니, 무려 40억 년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생존했다는 얘기다. 눈은 지질학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불리는 시기에 탄생했고, 앞을 보기 시작하면서 포식자가 출현했다고 한다. 즉, 앞을 볼 수 없었을 땐 적과 친구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으니 포식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동물은 초식 동물이었을 거라고! 다른 의미로 보면, 눈이 생기면서 포식자가 출연했으니 다른 동물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눈의 발달이 필수가 되었고, 다른 포식자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보는 행위의 주인공이 삼엽충이라니! 이건 이것대로 또 흥미롭지 않은가?! 문학을 통해 '본다'는 것 윌리엄 아이리시 작 고전 추리 소설 ‘황산의 여인’,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오디세이아’ 등 여러 문학 작품 속 장면을 통해 들여다본 시각의 비밀도 재밌다. 특히 문학을 통해 본 내용들 중에서 내가 읽었던 책이 등장할 때면 오래전 알고 있던 벗을 만난 것 마냥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서 더 집중해서 읽었던 거 같고, 모르는 책이 나올 땐 또 석영중 교수님이 흥미롭게 풀어놓아 찾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정말 책이 책을 부르는 순간! 본다는 것이 믿음까지 이어지던 이야기! 모든 몸의 기관이 중요하겠지만 유독 인간의 시적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 눈으로, 노래나 영화, 명화 등 여러 분야에서 영감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불여일견, 눈뜬장님 등 온갖 격언이나 속담에도 등장하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뇌로 본다로 시작해 뇌를 넘어서 본다가 종착점인 '눈 뇌 문학' 책!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본다'는 행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 인문학 책으로, <눈 뇌 문학>을 통해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 ps. 마지막 에필로그 블랙홀 사진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하게 계속 되뇌이게 만들면서 그 존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2019년 4월 10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 사진이 세계 곳곳에 동시에 공개된 날. 빛의 고리에 둘러싸인 어둠의 핵을 바라보며 수십억 사람들이 열광했던 날. 그러나 블랙홀 안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던 날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의 알림! '살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를 보거나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 머물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p.644 + 출판사 지원도서이나, 직접 읽고 남기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
![]() 그러다가 <인간은 눈이 아닌 뇌로 본다>라는 신경 과학계의 정설과 마주쳤다. P7 안구건조증과 비문증으로 시작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690여 페이지의 책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질문에 미술, 문학, 과학 등이 총망라되었다. 깨어있는 상태에는 늘 무엇을 보고 있지만 그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의미를 이해하려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은 <뇌로 본다>에서 출발해서 <인간은 뇌를 넘어서 본다>라는 종착지로 가는 과정에 대한 석영중 교수의 설명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예시로 든 많은 문학작품 중 이미 읽은 것들도 있고 읽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이미 읽어본 작품들은 읽을 때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하던 시각으로 재해석되어 재독을 하고 싶게 하였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 여러 내용 중 관심을 끌고 흥미로웠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었다.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은 패스를 하고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수비를 하는 3 대 3 농구 경기를 한다. 그리고 참가들에게 흰색 옷을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고 지시한다. 잠시 후 경기장 한가운데로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지나간다. 경기 후 선수가 아닌 다른 무엇을 보았는가를 질문했다. 결과는 절반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것을 시각 심리학에서는 <무주의 맹시 inattentive blindness>라고 한다.(P136-137참조)? 사람의 시선이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집중력이 분산되면 특정 위치의 자극을 의식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분명 참가자들 곁을 지나갔으나 다른 곳이 집중하고 있어서 보지 못한 것이다. 눈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뇌로 전달되어 작용한다며 불가능한 것이다. 시각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도 집중을 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보고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나아가 영국 작가 길버트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투명 인간」으로 이어진다. 기본 줄거리는 눈이 펑펑 오는 날 한 건물 안에서 살인사건이 난다. 네 명의 목격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증언한다. 과연 사실일까? <무주의 맹시>로 인해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결과는 들어가고 나온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네 명의 목격자를 그 사람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눈과 관련되어 <본다>라는 시각으로 시작하여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백치,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앞에서 언급한 누구나 알만한 작품들 이외에도 폭발하는 책, 토성의 고리 등 들어본 적도 없는 도서와 미술, 철학, 영화 등 다양한 분야가 나온다. 얼마 전 겪었던 팬데믹과 감시카메라. VR, 4D 등등 종합백과사전 한 권을 본 것 같다. 신학 또한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다. 고전부터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과 견해에 대해 궁금하다면 추천해 본다. 이 한 권으로 책과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유의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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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방대한 양의 책을 보았을때 좀 두려웠다. 더군다나 제목이 [눈 뇌 문학] 이라니... 생물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 더 나아가 문학적 지식까지 고루 갖춰야 비로소 이해될 것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하나 하나 읽어가다보니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깊이있게 통찰하지 못했던 것들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철학 서적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본다는 것의 의미를 폭 넓게 독자에게 말해주고 있다. 작가에게 어느날 찾아온 안구건조증과 비문증이 본다는 것의 서막을 열었으며 러시아 문학을 바탕으로 그것은 더한 깊이로 통찰이 되었던 것이다. 시각을 상실한다는 경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지만 보는 일이 결코 시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로 본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눈이라는 살덩이를 넘어서서 인간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란 바로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담론은 일반화하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본다는 대상이 무척 다양화되었으며 기호화를 통해 보고 인지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볼 수 없는 것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감각과 인지가 시각이라면 본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마저 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시각의 위대함이라고 말이다. 정말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뇌로 본다는 것은 어떤 말일까? 더 나아가면 우리는 뇌를 넘어서 보는 것이다. 시각이 부재해도 뇌만 존재해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자체의 의미 설정을 달리한다. 저자는 눈의 탄생부터 윤리에 대한 문제, 환상, 창조하는 눈, 신과 마주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리에 도착에 이르기까기 각 챕터별로 일목요원하게 그 주제를 놓치지않고 한 곳을 향해 써 나갔다. 책의 내용 중 동물들도 프라이버시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감각은 각성이라는 것. 깊이 안다는 것은 종교적 행위라는 것. 진심으로 본다는 것은 각성을 의미하며 그것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 등은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깨달음이었다. 두 눈을 갖고도 잘 못 보는 현실, 진실이 존재해도 외면하는 것. 정말 우리는 잘 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시력은 있어도 장님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 현실은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다시금 오래 곁에 두고 곱씹어보고픈 책을 만난 것같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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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석영중 교수님의 <눈 뇌 문학 > 작품이 출간되었다. 그녀는 심한 안구 건조증과 비문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눈과 뇌를 탐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비문증을 앓았던 나는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급급한 나의 모습과 대조된다. 그녀는 단순한 지각 기관인 눈을 상상력의 기관으로 삶고 철학과 신학을 걸쳐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에 천착해 나간다. 저자는 인문학과 연결 짓기 위해서 포식과 경쟁에서 출발한 인간의 눈이 그와는 반대되는 연민과 공존과 성찰의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갔는가? 이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위대한 눈>은 시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과 시각 사상가들이 논하던 < 세 가지> 시각을 다룬다. <눈의 윤리>은 인간 눈과 CCTV와 같은 기계의 눈의 차별점과, 또한 정교하고 지능화 되어가는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하여 다루며 <실재와 환상>은 고전 문학이 예고한 가상 현실의 윤리를 집중해서 살펴본다. 뇌전증을 앓고 있던 도스토옙스키는 뇌전증의 환자의 시선과 그 시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정하며 냉정하면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서사를 구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연민을 가지기 마련인데, 진짜 이게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 시각이 상실된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실명>은 눈먼 사람들, 혹은 시각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저자의 살을 붙인다. <창조하고 감상하는 눈>은 타인이 창조한 예술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특별한 눈을 지닌 인간이 착시 덕분에 지각되는 현상과 착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근법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던 파트는 <신의 바라봄, 신을 바라봄>이었다. 인간이 신을 보기 위해서는 신이 보는 방식을 본받아야 하고, 신의 보는 눈과 나의 보는 눈이 일치해야 한다는 테오시스 신화를 소개하며, 사랑만이 이 같음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도스토옙스키의 단편소설 <우스운 인간의 꿈을 >통해 발견하고, 마무리된다.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출몰하기에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니지만 문학 연구자가 생물학, 물리학, 유전공학, 지각 심리학 등 여러 학문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눈 뇌 문학의 세계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신선하였다. 도스토옙스키 문학을 좋아하지만 <눈 뇌 문학 >작품을 통해 더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고, 살아생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살면서 인생의 문제 해결 혹은 혜안을 얻고자 할 때 앎의 깊이를 잘 터득하기 위해서는 예술 작품을 단순히 미적 쾌감에 그치지 않고, 윤리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저자처럼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 #눈뇌문학#석영중 #열린책들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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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인문학을 연구한 인문학자가 바라본 문학의 세계는 어떠할까요? 궁금증을 바로 유발하게 하는 순간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문학을 흠뻑 담갔던 생애를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리기위해 이책을 편찬한듯 합니다. 책의 두께만큼 문학에 가득한 애정과 진심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듯합니다. 또한 어려운 문학을 더 쉽게 해석할 수 있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해석하는 교미는 진심으로 흥미를 돋우게 하여, 언급하는 책마다 더 찾아보고 싶게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책은 크게 6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학을 재밌게 해석합니다. 첫번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 바라본 문학을 소개합니다. 또한 포식과 경쟁에서 출발한 인간의 눈이 어떻게 연민과 공존의 성찰의 방향을 나아가는지 생생하게 설명합니다. 두번째는 윤리적인 관정에서 문학이란 어떠한지 다양한 서사를 그립니다. 유독 인간만이 시선을 통해 소통하기에 심리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요소가 함유되어 더욱 흥미롭습니다. 또한 인간의 탐욕이나 호기심의 갈등등 다양한 문학들의 주인공의 전개 방식이 재밌게 묘사됩니다. 세번째는 현실과 가상 현실등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문학들을 소개합니다. 모든 환시 중 복잡한 가상 현실은 문학과 의학과 첨단 테크놀로지가 수렴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고 저자는 바라봅니다. 다양한 현상학의 시각에서 고전문학이 가상 현실의 윤리에 어떻게 해석해볼지 기대됩니다. 네번째는 보이지 않은 실명에 관한 문학을 그려봅니다. 저자는 시각의 상실은 너무나 방대하기에 이책에 모두 담기는 어렵다고 할 정도로 그리스 문학과 신학의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질 예정입니다. 다섯번째는 이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볼수 있는 미적감각으로 바라본 문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방대하게 풀어나갑니다. 예술적이고 다양한 시각적 환각의 원근법과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신과 마주한 인간으로서의 문학이란 어떠한지 보여줍니다. 본래 인간이 스스로의 정신 육체를 초월하여 바라보는 대상이 신이라 부를 정도로 여러 작가들의 신의 바라봄이 서로 다양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책을 통해서 더 이상 어렵고 낯설기만한 문학의 어려운 부분의 해석을 속시원하고 명쾌하게 풀어나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 인간에 일생에 문학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역사로 흘러왔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P9 인간은 <뇌로 본다>는 사실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종착점은 인간은 <뇌를 넘어서 본다>이다.
P95 인간에게 본다는 것은 실질적인 지각행위를 의미하는 동시에 감각과 긴밀하게 얽힌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보기, 모종의 <깨달음>, 통찰, 심리적이고 영적인 의미에서의 <개안>을 의미한다.
P413 신비 신학이 모든 원인의 원인이자 모든 존재 위의 존재인 신을 체험하기 위해 인간의 지력과 감성과 언어를 부정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찬란한 어둠의 은유를 사용하듯이, 브베덴스키는 언어와 사유와 문학적 관례가 제거된 암흑과도 같은 텍스트를 창조한다.
P512 눈과 귀, 보는 것과 듣는 것, 망막과 손끝의 감촉들이 모두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서로 뒤엉켜 바라보는 눈의 놀라운 창조력을 증명해 주는 그의 시에는 독특한, 거의 난공불락의 성채와도 같은 거대함이 있다.
“이 책은 리딩투데이(@bookcafe_readingtoday)에서 지원받았습니다. 훌륭한 책을 리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눈뇌문학 #석영중 #열린책들 #문학연구 #문학적성찰 #인류지성사 #문학바로보기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
![]() 눈 뇌 문학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문학적 성찰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과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등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 책은 『성경』부터 플라톤, 도스토옙스키, 제발트까지 중세 이콘 회화부터 20세기 아방가르드 문학까지 시각을 키워드로 펼쳐 보이는 인류 지성사의 다채로운 풍경들이라고 합니다. 눈과 뇌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아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문학을 중심에 두고 시각의 무수한 의미를 탐구하며 시각을 키워드로 문학의 세계를 파고들면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를 석영중 인문학자가 평생토록 집대성한 시각과 인지의 책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문학적 성찰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이 책 눈 뇌 문학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지성사에 새겨진 시각에 관한 논의를 심도있게 다양한 텍스트를 시각이라는 키워드로 읽어 냅니다. 성경에서부터,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만델시탐, 디킨스, 헉슬리, 자버, 제발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러시아 문학을 오래 연구해 온 저자의 작품으로 인간은 뇌로 본다는 사실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사회는 디스플레이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시각적인 것이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각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인간은 어떻게 시각적 자극을 인지하며 활용하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빛 에너지가 눈을 통해 망막에 도달하면서 뇌 속에서는 복잡한 신호를 처리해서 사람이 시각을 통해 얻는 정보로 변환되는 것을 솔직히 잊고 살았습니다. 시각을 통해 대상의 관찰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과 보이는 것을 잘 관찰하고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문학적인 성찰을 공부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
인간은 보이는 것을 보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인간에게 본다는 것은 실질적인 지각(시각) 행위를 의미하는 동시에 감각과 긴밀하게 얽힌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보기, 모종의 〈깨달음〉, 통찰, 심리적이고 영적인 의미에서의 〈개안〉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감각 중 시각만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물질적 영역과 비물질적 영역을,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을 촘촘하게 엮어 짜는 감각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P.95
눈 기관은 약 5억 4300만 년 전 삼엽충에게 생겨난 이래 개체 간 생존 경쟁을 벌이는 환경에서 더 잘 볼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문학과 신경 과학의 접점을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해온 저자는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 질문을 하면서 이 책은 문학, 미학, 자연 과학, 신경 과학 등 다방면으로 유추해 가면서 읽어 내려 갑니다.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3막 4장에서 부정한 어머니를 질타하는 대목에서 햄릿이 말하는 눈뜬장님은 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보는 주체, 보는 행위, 보는 대상의 삼자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 시각은 대단히 독특하고 거의 독보적인 경험이자 세계에 대한 인간 지식의 근원이 된다는 말 기억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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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뇌 문학 석영중 (지음) 열린책들 (펴냄) "안구건조증을 앓으며 '본다, 보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글쓰기였노라" 저자인 석영중은 책의 서두에 밝히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겪는 안구건조증이지만 이렇게 앎에 대한 욕구로 번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역시 석영중 교수구나'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고대 동굴 벽화 등에서는 눈으로 본 것 뿐만 아니라 상상으로 그려낸 머릿속의 모습마저도 표현해 내었다. 몸의 눈, 정신의 눈, 마음의 눈. 본다는 것은 흔히들 몸의 눈이 보는 것만을 생각하게 되지만 책에서는 몸의 눈이 보는 것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는 것을 일깨웠다. 우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한데도 말이다. 이에 더 나아가 본다는 행위는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비윤리적으로 타락할 수도 있는 윤리적 감각이며 시선만으로 타인을 향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뿐인가? 인간이 검색하는 주체인 동시에 데이터로써 검색당하는 현실 세계와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 시대를 겪어내며 당면하게 받아들였던 타인의 시선과 감시들을 문학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석영중 교수의 관점은 책장을 넘기며 챕터를 새로 열 때마다 감탄일 수밖에 없었다. 시각의 윤리에 대해 얘기하며 거론된 여러 디스토피아 문학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와는 달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먀틴의 <우리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둘러보면 온통 비관적인 뉴스와 현실에 작은 희망이라도 품어보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248p. (생략)이 불가능한 것을 지각하는 현상을 환각이라 부르는데, 인지 신경 과학에서는 두뇌가 망막에 등록되지 않는 시각적 특성까지도 그 지각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이를 설명한다. 환각, 환상은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뇌로는 보는 현상이다. 뇌전증 등의 질병을 앓는 이들이 보게 되는 환상이 그러하다.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뇌전증을 문학으로 어떻게 표현해 내고 승화시켰는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한편 이 모든 현상들을 문학에서 찾고 거론하며 하나로 아우르는 석영중 교수의 설명이 빛난다. 완전한 몰입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는 가상 현실 또한 여러 감각을 자극하여 만드는 환상이다. 생명체의 눈은 물체를 지각하는 감각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빛은 언어와 몸짓보다 더 많은 의미를 주기도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 시각을 잃은 인류의 폭력과 혼란, 인류애 등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눈은 단순한 시각 기관에 그치지 않는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간과해왔던 것 같다. <눈 뇌 문학>을 통해 눈과 시야, 그 너머의 것들을 보는 것 등 과학적 지식을 딱딱한 정보 제공을 넘어 문학으로 풀어내는 탁월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였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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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투데이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다음과 같은 핵심질문으로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눈 뇌 문학’이란 책이 단지 뇌나 문학이란 연계없이 ‘눈’이란 제목만으로 되었거나, 내용이 문학적 요소로만 전개되는 책이었다면!
지난 2024년 9월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라 얼른 메모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재 시인 이상이 1934년 발표했던 난해한 시, ‘오감도 시제 4호’를 GIST 학부생들이 물리학을 접목하여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 놀라운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오감도는 ‘세상을 진단하는 도구로서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를 투시, 진단하는 것이 시인의 책무이다’라는 메시지까지 도출하는 성과를 창출하였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전혀 다른 분야인 시와 물리학을 연계시켰다는 놀라운 눈, 발상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혁신(Innovation)입니다.
이 혁신은 ‘눈 뇌 문학’이란 책의 본질적 가치에 내재된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즉 2가지의 작가의 혁신적인 눈(발상과 통찰)을 분석해 본다면 첫째 인문학적 ‘깊이의 혁신(눈 뇌 문학, 3가지 부문의 유기적 연계와 통합)’ 둘째 타 학문과의 통섭을 통한 ‘넓이의 혁신’이라 생각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아니, 초학제니 융합이니 하는 수식어는 아예 붙이지 않는 게 더 낫겠다”(p 10)라는 학자로서 겸양의 덕을 보여주고 있지만 학문적 통섭(統攝, Consilience) 차원의 문학적 기반을 토대로 미학, 자연과학 특히 신경과학 등을 깊이있게 연구 및 연계시키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시각과 인지, 예술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탁월한 지성으로 방대한 질적, 양적 통찰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같은 것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 다른 분야의 것들을 연계시킬 수 있는 통찰등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런 것들이 경영이나 혁신/변화관리같은 종류의 책이 아니라 인문학에서 탄생했다는 것에 대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는 인문학자(교수)라기보다는 인문과학자(인문과학의 개념은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정의함) 혹은 문학혁신가(문학의 혁신적 파괴자)로서의 조명되고 높게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책의 현재가치도 중요하지만 응용적 미래가치(Applied future value)에 대한 무한 확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학문적 사일로(silo)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혁신방법론을 통해, 인문학 위기의 솔루션으로써 미래 인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모두들 알고 있는 것처럼 인문계열 학과의 통폐합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학의 시장(Market)화에 따라 경쟁사회에 뒤처지는 인문학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예를들어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 재직 중 인문계열 신입생을 채용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경상계열이나 이과분야의 학과 졸업생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상황(시장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래지향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한다면 특히 인문학과의 경우 스스로를 사일로에 가두어 근시안적인 한우물 파기가 아니라 과감한 혁신으로 다른 분야와의 연계, 융합을 통한 미래 인문학의 길로 나가야 할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의 미래가치는 혁신적 융합을 통한 인문과학적 방향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더나아가 거부할수 없는 AI 시대에 인문학의 미래와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이 책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책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작가의 경험을 통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본다는 인간의 눈에서 출발하여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보이지않는 눈의 가장 숭고한 신을 향한(신을 시선을 흉내/모방하려는)눈으로의 성찰의 긴 여정이라면 내용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까요? 인간의 눈을 평면이 아닌, 아주 동태적이고 적극적인 깊이있는 다차원적인 세계에서 해석하여 눈의 기능적 구조적(해부학적) 철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인간의 한계이자 눈의 한계를 넘어서 욕망/욕구를 극복하려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로의 연계의 확장을 통해 영적인 측면에서의 신의 눈까지, 결국 인간의 윤리적인 눈의 영역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인간에 대한 공부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인문학자로서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보며 어떻게 살것인가”로 귀결됩니다. 인생에서의 이 질문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무게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는 독자를 넘어선 인류에게 던지는 큰 울림있는 삶의 본질적인 화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인간다운 눈으로 타인과 세계와 삶에 대한 사랑, 인류애(愛)의 영원하고 소중한 진리가 담겨져 있다고 파악됩니다.
엄청납니다! 책의 페이지만 682쪽, 참고문헌은 거의 26page에 다다릅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방대합니다. 그러나 책의 중간 중간 삽입된 색감이 있는 그림의 함축적 의미, 여백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과 시각적인 효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좋은 쉼터였습니다. ![]()
전문가의 평생 집대성한 성찰의 결과입니다. 내용의 깊이와 풍부함은 있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문해력을 가진 성인이자 사회과학도로서 인문학 교수님의 통섭적 방법의 혁신적 스타일을 읽기에는 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읽는 내내 체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인간의 눈(본다는 것과 이 한계를 넘어선 보이지 않는것에 대한 깊이있는 통섭적 사유)에 대한 깊이있는 혁신적 성찰을 통해 성장해보고 싶은 독자들의 도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한 첫 만남이었지만 저자에게 인문과학자, 문학혁신가로서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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