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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관한 전략을 위하여 양극화는 어떤 문제에 관한 우리-그들의 사고방식, 즉 다른 인식과 견해에 차이가 있어 생기 긴장과 갈등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우파와 좌파 그리고 중도가 존재하는데, 이 책의 관심은 “중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다루며 최종적으로는 양극화에 관한 충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지점은 단순히 좌, 우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으로 인해 사회가 통합되고 문명적으로 공존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2006년부터 대화, 갈등, 양극화 관련 작업을 시작, 북아일랜드, 레바논, 네팔, 콩고, 세르비아 등에서 일어난 갈등, 양극화 상황 등을 경험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결과다. 책 구성은 3부 7장이며, 1부는 양극화의 작동방식, 새로운 접근 방식 기본 법칙 3가지와 5가지 역할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갈등에 관한 올바른 이해(갈등의 7단계와 해결 4단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양극화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여준다. 3부는 지은이의 연구 결과로써 양극화에 관한 전략적 해결책에 쓰는 구체적인 도구들을 소개한다. 특히 중도에서 버티기 전략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사회적 결속과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며 판도를 바꾸는 4요소, 목표, 주제, 위치, 어조를 바꾸라고 한다. 중재적인 발언과 행동 등을 싣고 있다. 양극화의 복잡성 양극화는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봐서는 안 되며, 차별, 불평등, 폭력의 원인이라고 예단하거나 낙인, 딱지를 붙여서도 안 된다(현상적 혹은 표면적 양극화라 하자). 양극화는 이보다 더 심각(입체적이고 깊이 있는)하기에 모든 면을 보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양극화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됐을까, 이른바 진영 혹은 편을 가르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주동자가 들고나오는 이슈, 목표, 어조 등에 따라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다. 구분하기 어려운 갈등과 양극화 “우리-그들” 사고방식 사회에서 우리-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은 크고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양극화는 다르다. 물론 갈등은 지은이의 구분에 따르면 양극화의 동생쯤 되기에 비슷하지만, 결은 다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긴다. 그래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으로 양극화에 맞서지만, 이것들은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이슬람 대 비이슬람’의 양극화, 미국에서 백인 경찰 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역 사회 대립, 부유한 기업가와 가난한 노동자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느 한쪽 집단에 가깝다고 느끼며 선택하거나 그와 반대로 그냥 외부에 머무르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갈등 관리가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양극화는 상황이 다르다.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누구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누구에게 접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양극화 관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다에쉬 테러리스트(뉴스에서 IS라고 하는 이들과 구분을 위해 지은이가 명명)들이 유럽을 공격할 때마다, 이슬람교도는 그런 사람들과 연을 끊으라는 요청을 받는다. IS 대신에 다에쉬라는 IS의 아랍어 전체 명칭의 앞 글자만 딴 단어로 부르는 이유는 IS라는 용어가 기발한 방식으로 양극화에 영향을 주어서다. 이 용어를 사용하면 아랍 모두를 한 집단으로 묶어버리기에 누가 테러리스트인 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도 대 비이슬람교도의 양극화를 부추겼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호한 상태가 돼버린다. 이 책은 이런 특징을 현장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숙지한 전문가답게 갈등과 양극화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양극화로 갈 수 있고, 양극화가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형제로 부르고 있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양극화는 서로가 반대되는 극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우리-그들’이라는 개념과 대립 구도의 사고방식, 이를 부추기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연료’, 합리성보다는 ‘직감의 역학’이 작동하는 것이 양극화의 표징이라 볼 수 있겠다. 양극화 논쟁에서는 아무리 합리적 혹은 합당한 반박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를 기본 3 법칙으로, 그리고 여기에 각각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라는 5가지 역할이 있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 이들의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며,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다. 갈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갈등은 부정적인가, 아니면 긍정적인가,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갈등이다.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갈등이 생기면 이를 다루는 기술을 훈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평화가 깨졌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갈등을 마주하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것을 원하기에 그렇다. 이 유사성이 갈등의 근원이라면 상대와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갈등은 양극화 촉진하고 양극화는 갈등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갈등과 양극화의 상호작용이다. 이 역시 7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양극화의 새로운 접근 방식 여기서 필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중재든 대화든 그리고 대화라는 매체를 쓰려면 타당한 지식과 실용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양극화에 대응하려면 4가지 기준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즉, 판을 뒤엎는 것이다. 목표와 주제, 위치와 어조를 바꾸라는 것인데, 주동자가 주목하는 것은 중간그룹이다. 크기가 줄어들면 양극화 현상이 증가한다. 양극화는 중간에 있는 사람을 흑백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반대로 양극화를 줄이는 것 또한 중간층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결속은 중간층 바로 중간지대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주제는 정체성이다. 어조를 변경하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데, 핵심은 누구를 가르쳐 들지 말라는 것이다. 중재적 발언과 행동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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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를 읽고서···.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현대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극단적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다룬 책이다.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컨설턴트로, 분쟁 지역과 다양한 사회적 갈등 현장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양극화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유럽 전역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며 쌓은 실전 경험과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양극화 문제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사회의 갈등을 이해하고 극단적 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며, 개인과 사회 모두가 갈등 속에서 중용을 찾는 데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양극화 현상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모색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양극화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며, 이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법칙을 제시한다. 저자는 양극화가 사회에서 사고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사회를 분열시키는지를 설명한다. 양극화를 촉발하는 연료가 되는 감정과 직감이 강조되며, 사람들이 갈등 상황에서 맡는 다섯 가지 역할(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을 소개한다. 이 다섯 가지 역할은 각 개인이 어떤 위치에서 갈등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그 역할이 양극화를 어떻게 심화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는 양극화가 개인의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 사회적 구조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2부에서는 갈등과 양극화의 발전 단계를 다룬다. 저자는 양극화가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해 점차 더 심화되고 확산되는 7단계를 설명한다. 인간 본성이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적대시하며, 갈등이 심화될수록 복잡한 현실을 무시한 채 단순화된 사고로 상황을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현실과 점점 더 멀어지는 양극화된 사고의 주요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3부에서는 양극화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갈등을 해결하고 판도를 바꾸기 위한 네 가지 중요한 요소로 목표, 주제, 위치, 어조를 제시하며, 이를 바꾸는 것이 갈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널리즘이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다. 미디어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양극화시키고 갈등을 부추기는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저널리즘이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편향성에 대해 성찰하게 하며, 다른 관점을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필요성을 일깨운다.
<“미디어가 양극화에 큰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 없이도 양극화의 역학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미디어는 원인이 아니라 촉매제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210쪽>
이 책은 독자에게 여러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갈등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개인의 심리를 이해하게 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더 존중하고, 극단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둘째, 저자는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개인적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 해결에도 중요한 원칙이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분쟁 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북아일랜드, 레바논, 콩고 등 분쟁 지역에서의 연구 경험을 통해 저자는 갈등의 본질을 분석하고, 그 갈등이 어떻게 확대되고 해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론적인 논의를 넘어, 실제로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양극화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극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중용과 소통을 지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일반 독자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겠다. 특히 정치인, 사회 활동가, 언론인, NGO 종사자 등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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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갈등 이론 중에 '사회정체성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집단과 대비하여 그 집단 밖에 있는 사람과 뚜렷이 구분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한 선호도와 우월성 등을 지키려고 하며, 이로 이해 집단 밖에 있는 사람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는 내용이 그 골자다. 이 책 앞 부분에서 설명하는 기본 사고 구조로서의 정체성 인식은 앞서의 '사회정체성 이론'과 큰 틀에서 비슷한 취지라고 이해된다. 저자는 이 책을 양극화가 왜 발생하는 지 이론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핵심은 과연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부분일텐데, 저자가 제시하는 4가지 '판도를 바꾸는 핵심요소'가 흥미롭다. 바로 목표 변경 / 주제 변경 / 위치 변경/ 어조 변경이 그 4가지이다. 목표를 변경하라는 뜻은, 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양극단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간층에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중간지대를 목표로 하여 그 중간층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주제를 변경하라는 뜻은, 서로의 적대적 정체성만 강화시켜줄 뿐인 주제에서 빨리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두 집단이 서로에 대한 성실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치를 변경하라는 뜻은, 어떤 판단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중간지대의 위치에서 그 중간지대의 대변인격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조를 변경하라는 뜻은, 타인을 훈계하듯 대하는 말투 또는 상대방에게 정당성을 요구하는 듯한 말투를 경계하고, 대신 상대방의 정당성을 존중하면서 진정 관심이 있다는 어조로 비판적이지 않게 질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간지대를 목표로 삼고, 서로의 공존을 고민하는 주제를 택하여, 중간지대의 시각에 서서, 양쪽 극단의 사람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질문을 한다는 것.....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렵겠지만 이것말고 또 달리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다. |
![]() 인간의 사회생활은 '함께'의 사회 연대를 말하면서 때론 서로를 향해 총과 칼을 들이대는 극단에 서기도 한다. 왜 그러한 극단에 빠지게 되는걸까?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진다는 의미를 두고 우리는 양극화 현상이라 말한다. 극단은 양극화의 다른말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양극화를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양극화가 가져오는 불편함은 사람들간의 불편의 심화를 부추킨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양극화로 인해 사회 계층의 변화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중간계층의 분화로 양극단의 쏠림 현상과도 같은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인 문제로 양극화에 대한 의미있는 사유를 담은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는 '함께'를 표방하는 인간에게 '우리 vs 그들'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보편적 틀로 나뉘고 이러한 방식이 그들의 역사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의 일부이며 현실에서의 가장 큰 대립이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양극화의 의미, 보편적 양극화의 역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탈양극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책으로 파악할 수 있다. 양극화는 어느 한 편으로의 기울어짐을 말한다. 저자는 그러한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가며 중립적 관점, 시선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양극화는 문제를 일으키는 갈등관리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안내하며 기본적 법칙으로의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어 곱씹어 볼 수록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러한 정체성의 연료로의 영역으로 양극화를 꼽고 있으며 영감을 위한 재료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이 타인과의 함께 사는 새상애서의 부조화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게 되고 이런 새로운 갈등의 부재는 좋은 결과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일갈한다. 그렇다 누구나의 정체성과 연결된 갈등의 내부적인 문제가 양극화라면 인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유의 대상 모두에게 우리는 갈등과 양극화라는 비합리적인 문제를 껴안게 된다. 저자는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라는 정체성을 통해 나, 우리의 현실과의 접목을 통해 양극화의 개별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과연 나,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심리적 근원으로의 정체성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양극화에 미치는 나,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사회적 존재로의 삶을 살면서 누가 갈등의 불을 지핀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바로 나, 우리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나, 우리가 양극화에 몰입하게 되고 사회의 불편한 현상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게 되는 나, 우리의 정체성 프레임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온전한 '함께'를 위한 사회가 아닌 '우리 vs 그들' 이라는 양극화가 아닌 모두가 우리라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될 도서로 기억 될것 같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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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 갈등, 이념적 양극화, 극단주의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놓고서도 매우 정치적인 편향성을 띈 갈등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증언문학의 역작인《소년이 온다》(2014)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는데, 극우적 역사관을 지닌 일부 트롤팜이 노벨상 수상 작가의 역사 인식을 문제시하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 케케묵은 색깔 논쟁을 선동질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갈등'과 '양극화'를 구분한다.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기고, 갈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가령 '갈등 관리'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한다. 안 된다. 말다툼이나 법정 소송 같은 갈등 상황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명확히 나뉜다. 하지만 양극화 상황은 그런 문제소지자를 콕 집어내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양극화의 책임자와 핵심 주체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데, 이게 이른바 '양극화 관리'의 걸림돌이다. 양극화 현상은 그 자체로 역학과 원리가 있다. 양극화의 핵심은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보편적인 양극화 역학은 좌, 우, 중도 세 가지 다른 인식이나 입장을 형성해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긴장이 형성되며, 그 사이에는 중도라는 중립적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극화 상황의 해소법은 중재 언어나 중재 행동을 통한 '중도를 지키는 법'이다. 여기엔 '버티기'와 같은 전략도 포함된다. 양극화는 항상 정체성이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은 양극화의 주요 원료다. 결국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직감과 신념은 대립을 강화하고 입장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역할 그룹은 다섯이다. 바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다. 주동자는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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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립이나 양극화 극단적인 대치 상황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도서를 읽으면서 그 양극화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강한 이끌림과 공감을 얻었어요. 사회화, 그리고 개인간의 경쟁에서 대립과 양극화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인거 같아요. 선거에서만 들었던 중립성에 대한 언급도 많이 되었고 누구나 중립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양극단에서 중립성의 입장을 끌어당김으로서 다시 또 다른 극단화를 추구한다는 구절이 인상깊고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극단화를 추구하는 동조자, 선동자 등 주변의 여건과 양극단을 부추기는 세력들에 대한 언급들 그리고 철학적인 내용들도 가득 담겨있는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좋은 도서입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종교, 영토, 그리고 사상에 대한 반대와 서로간의 날선 공방들. 그리고 그 중간에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극단의 방관입장들 정치, 외교, 국방, 사회, 교육 등등 어디서나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극단의 현상들. 그 양극단의 조율과 함께 화합할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한 유의미한 저자의 분석과 판단도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지명과 유명 인사 그리고, 10년간 저자가 분석한 사례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나와 그들이 같은지? 다른지? 를 판단의 기준이 아닌, 양극화 작동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수 있는 지침이 된 도서였어요.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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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극단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 vs 그들'의 구도가 강화되며, 중간지대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확산 속도는 빨라졌지만, 동시에 확증 편향, 그리고 에코 체임버 현상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만듭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 세력의 부상,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의 확대, 사회적으로는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의 심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바르트 브란트스마 著, 안은주 譯, 한스미디어, 원제 : Polarisatie - inzicht in de dynamiek van wij-zij denken)”는 의미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책은 양극화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양극화 해겷을 위한 명징한 참고서’를 만들기 위함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양극화를 '우리 vs 그들'이라는 사고방식에 기반한 현상으로 정의합니다. 단순한 의견 차이와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다른 집단을 적대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양극화 과정은 우리 vs 그들 사고 형성 -> 대립 강화 -> 입장 고착화 -> 갈등 확산 -> 극단화 등을 거치는데 이러한 구조화는 양극화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다섯 가지 역할 그룹(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희생자, 중재자)을 구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양극화 상황에서 각 개인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또한 양극화가 지속적인 '연료'를 필요로 하며, 논리보다는 감정에 의한 호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갈등 상황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간 지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자는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주동자'들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대신,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방관자' 그룹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통찰을 줄 것입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단순히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갈등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미디어와 정치가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지만, 그만큼 대립적인 의견도 쉽게 퍼지고 확대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자의 해결책은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이론적 분석과 함께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양극화 해소를 위한 4가지 전략적 접근(목표 변경, 주제 변경, 위치 변경, 어조 변경 등)은 독자들이 실제 갈등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양극화라는 복잡한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분석은 철저하고 신중하며,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실용적이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책의 내용이 주로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는 유럽이나 미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인 양극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함과 동시에 실용적인 해결책을 고민해볼 수 있는 독서 경험을 독자에게 줍니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현 시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중도와 균형의 메시지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왜극단에서는가 #바르트브란트스마 #안은주 #한스미디어 #책과콩나무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
![]() ![]()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어느 지역과 사회를 막론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양 당사자의 갈등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날 선 분쟁으로 인해 세계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갈등의 원인과 대립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간파한 바로 한 사람의 전문가인 '바르트 브란트스마'라는 작가의 책입니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실용 철학자이자 갈등 분석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권위자로 알려져 있고 챗GPT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보증하고 있었습니다. 갈등은 사실 전쟁을 야기하고 있는 외국에서의 분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분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입니다. 도대체 누가 갈등에 불을 지피는지,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어떤 요인으로 인해 발전하고 결국 우리가 크나큰 손실에 봉착하게 되는지를 사회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갈등으로 인해 사회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나는 시대이다보니 읽어보기에는 필독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라는 책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은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도 결코 치밀한 양극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갈등이 각 단계를 따라 발전되고 소강되는 역학관계를 그래프로 한 눈에 알 수 있게 보여줌으로써 분쟁에 관한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어떤 직업군보다도 정치인들이 악용하고 있는 이러한 갈등 유발 전략을 파헤치고 더 온건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틀을 도모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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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경제문제로써만이 아닌 인간관계와 심리관계가 가진 역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돕는 책이다. 양극화가 존재하기 위해서 크게 5가지 역할을 상정했다. 이는 이론적 접근과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론 갈등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양극화 전략을 채택하는데도 가시적인 도움을 준다고 판단된 도구다. 5가지 각각의 역할엔 모두 장단점이 있다 기회와 함정 등 각 역할의 작동방식마다 장단점이 대가처럼 따른다. 역할에 옳고 그름은 없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한번쯤 그 모든 역할을 다 해보았다고 생각될 만큼 고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대변하니까. 그렇기에 그냥 역할의 작동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각 역할을 선택할 때 조금더 타인까지 배려하며 고심할 수 있게 도우려는 것 뿐이라 밝히는 저자. 무심결에 선택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선택이 되리라 희망하면서. 1. 주동자 양 극단의 가장 끝부분에 존재. 해당하는 극단적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띤다. 극단적인 양 극의 리더역할이 주동자다. 유의하면 좋은 건, 그 반대쪽 극(polar)엔 반드시 똑같은 일은 하는 반대사고의 주동자가 존재하기 때문. 양극은 생각은 아주 확고하며, 대부분 도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음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코 99%도 아닌 100% 자신이 옳다고 생각으로 선동함으로써. 이런 확신이 같은 극쪽엔 에너지를 공급한다. 주동자는 토론이나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가능한 새로운 이슈를 양산해 자신의 정당성을 지속하고 제시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반대쪽은 정반대로 공통점이 없다는 것만 부각시켜 어느 쪽에 설지만이 선택사항인 비교대상일 뿐. 주동자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 리더 역할을 잃게 되므로 상대를 고려하는 주동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주동자가 행동을 바꾸는 것은 체면을 잃는다는 것과 다름 없기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단점은 이런 주동자는 항상 눈에 띤다는 것. 그로인해 때론 본인의 희생이 요구될 수 있다. 주동자의 심리는 매우 독특하기에 도덕적 독선은 동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자신과 타인의 에너지가 되지만, 양극단 안에서 벌어지는 자체 역학의 변덕은 주동자의 앞날마저 알 수 없게 만들수 있다. 자기들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희생을 요구하니 애매한 상태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는 요소다. 2.동조자 양 끝단의 주동자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긴장구역을 만든다. 주동자가 흑백논리를 펴고 긴장구역에서 선택하게 만들 때 동조자로써 활약이 생긴다. 동조자는 완전한 찬성이 아닌 일단 양 극단 중 한 영역을 선택한채 활동을 지속한다. 극단적이지 않고 주동자와 차이가 있음을 스스로 표출한다. 주동자가 요구하면 일부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나 주동자와 동조자는 역할 분리가 돼 있다. 장점은, 양쪽 진영에서 최고의 것만 취할 수 있고 양극화의 바깥쪽에 존재하면서 지지자에도 속할 수 있다 완전히 극단적이지 않아 언제나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 이건 동조자 스스로가 후하게 스스로를 평가한 것이고, 이들은 순진하지 않으며, 위기가 임박하면 행동에 나서 한쪽에 뼈를 묻는 선택을 한다. 단점은, 결국 자신의 색깔이 드러남으로써 어디를 지지하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상대 진영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정해진 후 주저함과 망설임은 배신행위로 보일 수 있기에 마치 주동자의 태도와 위치처럼 일방통행에 동의하지만 주동자가 너무 멀리 갔다고 판단시엔 거리를 두며 자신의 독립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잃지 않으려 한다. 동조자의 분위기와 열기는 주동자가 가장 잘 판단한다.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흑백사고를 이해하고 친구와 적을 구별해야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에서, 동조자란 이런 생물학적 반사작용에 굴복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위험이 다가오면 안전하기를 바라는게 인지상정이라 홀로 서기 보다는 무리에 둘러쌓이길 선호하게 되는 면도 생긴다. 논거로 정당화 하기 바쁘고 상대의 부정적인 정보만 채택한다. 또다른 동조자의 특징엔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걸 동의하는 그런 사람을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결국, 주동자와 동조자는 생산적인 토론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으론 중간지점에 도달해야 모두의 관점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대화 가능성이 있고 그래야 모두 공감할만한 질문과 딜레마가 형성 될텐데, 이들의 사고방식은 본인들을 위해 2분법적이여야 하므로 합리적인 토론이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음 나올 방관자의 필요성이 생긴다. 3.방관자 양 극으로 치우친 주동자와 동조자 사이에서 거리를 두면 그 중간지대가 생기고, 여기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회색지대가 있다. 간단하게 이를 무관심이라 표현한다. 어떤 극쪽의 주동자의 말에도 감명받지도 않고 귀담아 듣지도 않고 게임 자체에도 관심이 없다. 혹은 반대로, 너무 강한 참여의식 때문에 명확한 선택을 주저하는 게 방관자로 나타날 수 있다. 방관자들을 움직이는 건 뉘앙스지 방관하게 만드는 무관심이 아니다. 즉, 중간에 있는 이들은 선택적이고 의도적으로 중간에 머문 이들다. 차이와 참여로써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중립성으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부류. 주동자들은 이들을 목표로 삼지만 반드시 원하진 않는다. 왜냐면 자신과 다르게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라 동화되지 않는 눈엣가시이기도 하니까. 방관자 자체는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냥 단순히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방관자란 무리로 묶이게 된다. 흑백논리의 장점은 가시성인데 이게 정체성과 확신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다. 이런 가시성은 사람들에게 동기가 되어주고 궁극적으론 의사소통의 촉발선도 된다. 결국 어느 한쪽의 흑백논리에 선의를 갖고 접근하느냐가 방관자의 존재적 딜레마. 4.중재자 앞의 3가지 역할은 긴장지대에 속하지만, 중재자는 양극화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류로써 관찰하고 결함을 찾아낸다. 결함을 이유로 개입하고 대화를 주선하고자 노력한다. 합리적이라면, 항상 정반대끼리는 견해와 비전을 교환하는게 가능해야 하고 서로의 분명한 차이점과 유사성도 이해하듯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재자의 무기는 '반대 담론'이란 치유법이자 도구로, 반대의견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게 만들어 주동자와 동조자가 중재적 입장을 취하도록 노력하고 유도해서 만들려 한다. 주동자가 반대담론의 발언권을 인정한다면 그건 중재자들이 자극이 되줄 원인제공도 할 수 있어서이지 그들의 순수함에 동화됨이 아니다. 대화의 기회는 주동자에게만 있는데 중재자가 오해하는 건, 협곡 중간에 붕 뜬 상태의 다리를 짓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공중에서 중간쯤 시작된 붕뜬 중재는 마무리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즉, 성공할 희망이 없는 임무와 같다. 중재자의 활약은 결국 주동자의 단독발언만 확장시키기도 한다. 중재자와 비슷한 역할엔 언론이 있는데 미디어는 양극화의 기폭제 역할도 한다. 왜냐면 눈에 보이는 가시성 라인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토론이 아닌 논쟁만을 보여줄 뿐임에도 말이다. 즉, 연료공급 역할을 하지 않는 본질적인 중재자 역할도 필요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존재다. 5.희생양 양극화가 과도해지고 심각해질때 생겨나는데 양극화의 역학이란 동조자가 많아지면 중간자는 감소하는 식. 기세가 강해진 동조자는 새로운 주동자가 되어 기존 주동자가 통제력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은 일종의 내전이다. 이럴땐 중간지대는 접근 금지구역이 된다. 중간지대 허용범위를 기준으로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는데, 그 허용도가 '0'이 될 때 희생양이 생긴다. 즉, 반대측에 관용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말. 희생양이 양극단에 존재하지 못하는 건 거긴 오직 적의 존재만 있지 희생양이란 용어는 없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있을 중간지대엔 중재자가 존재하므로 중재자들이 희생양 후보에 딱 맞는다. 올라간 긴장도에 첫 희생자는 결국 중재자가 되고 이런 시기의 중간지대는 위험지대다. 변덕과 조바심 때문에 주로 공격해도 주로 방어만 한다고 여겨지는 공적인 위치의 중재자들이 희생양이 된다. 죄책감과 분노를 해소하는 비운의 안전장치로 활용되는 셈. 희생양이 되어가는 중재자는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닿기 바라지만, 양극화 된 분위기 안에서의 의견전달은 오로지 주동자와 동조자가 원하는 말만 해야 존재한다. 양극화 때 중재자의 의견은 주동자 쪽에서 들을 땐 마치 비판하거나 반박하는 적의 전령처럼 보이기에 희생양의 운명은 생존이 희박해진다. 결국 이런 5가지 요소로 그려볼 수 있는 양극화 각 진영의 구도와 대립은 해법을 위해 갈등의 구조를 가져와 풀어보고 있다. 갈등과 양극화는 수면에 떠있는 빙하로 표현된다. 떠서 눈에 보이는 건 갈등, 수면 아래의 빙하는 양극화. 갈등의 성장 및 쇠퇴 사이클은 양극화에 적용가능한 이론으로 보며 갈등은 다음과 같이 크고 줄어든다. 준비→강화→악화→유지→재연결→인정→화해 산 정상을 타고 내려오는 그림으로 상상할 때 유지가 꼭대기 정상이 될 것이다. 평화상태의 반대가 갈등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저자. 만일 그렇다면 갈등은 대하기 싫은 부정적 의미만 있을 뿐이기에 생각의 전환이 꼭 필요한 대상이 갈등이라고 전한다. 양극화를 막기 위해선 타이밍이 전부일 수 있고,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젠다를 바꾸는 식으로 목표, 주제, 위치, 어조 이 4개 항목의 변화로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느낌은 변화보다는 상쇄의 느낌에 가까웠다. 혼자선 쉽게 해 볼 수 없는 이론을 접해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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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국가 문제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로서 경·검,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 및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역학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테스트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하여 전문가들에게 양극화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미디어 시대에 증가하는 양극화에 대한 깊이와 품질에 답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장에서는 양극화의 세 가지 기본 법칙부터 논한다. 그 내용은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상대의 정체성을 만들어 구분하는 사고 구조에서 시작된다. 나쁜 점은 오늘의 주제이며 좋은 점은 사고의 구성하는 개념과 프레임을 살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현재 사회의 문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필요하며 이때의 연료는 의도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 원칙 중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런 현상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직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양극화가 증가함에 따라 합리성은 감소한다는 것. 심지어 명확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나와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음모론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말하는 자신은 스스로의 발언에 대하여 무조건 논리적인 진실만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작동 방식에는 다섯 가지 역할이 있는데 순서대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정치나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본 개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동자는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동조자는 주동자의 견해를 완벽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는 지지자의 진영에 들어간다. 방관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간자이며 중재자는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중간 지대에서 찾으며 중간 지대의 허용 범위에 따라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웃긴 것은 이 희생자의 역할에 가장 알맞은 후보군이 중재자라는 것이다. 주동자는 자신의 편을 만들 때 동조자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방관자나 중재자를 타깃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내 편을 더 내 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세력을 넓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3부에 가면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방식이 나와 있다. 흔히 말하는 서로를 알기 위한 대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제시하는 방법이기에 꽤 몰입도가 높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좋은 의미로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지만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상대에게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양극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같은 것에 대하여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전문적이지 않은 용어와 많은 예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잠시 접목하면 TV에서 방영하는 정치인의 토론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상대를 이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조자이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 편에 서지 않은 국민과 중간 지대에 있는 방관자들을 좀 더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는 행위.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면서 미디어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덜 휩쓸리지 않을까 한다.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기존의 관련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도서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을 정립하고 판단력을 키워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으며 철저히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하여 사회의 파도에 맹목적으로 휩쓸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속에 빠질 수 있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과 저학력, 도시와 농촌 등등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일단 시작되는 갈라치기 현상. 이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대책이 없어 위기감만 느끼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이런 위기를 잘 넘겨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는왜극단에서는가 #바르트브란트스마 #양극화분석 #한스미디어 #안은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