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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현기증'이 나는 이 소설은, 인간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본성을 얘기한다. 진실을 증명하기 위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고, 공감할 수 없는 진실이 현실에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데에 분노하게 된다. 소설은 한 챕터가 시작하기 전에 조나탕 투비에의 산악일지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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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진정 연결 고리는 없는 것일까? 극한 환경에서 조우한 연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얼마 동안 어떤 이유로 견뎌낼 수 있을까? 한때 노련한 산악인이었던 조나탕 투비에는 백혈병으로 입원한 아내 프랑수아즈 곁을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조형된 감옥의 암흑으로 둘러싸인, 깊은 동굴이다. 팔목엔 거친 금속 테의 족쇄가 날카롭게 휘감겨 있고 누군가가 그를 약물로 마취시켰다. 그의 가족과도 같은 체코슬로바키아 울프독 '포카라'에게까지 약물을 주입해 함께 옮겨놓았다. 그리고 똑같은 옷을 입은 또다른 두 남자, 철가면을 머리에 쓴 '미셸 마르퀴'와 손목과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스무 살의 '파리드 후마드'를 발견한다. 컴퓨터로 작성된 편지에는, 철가면 속에는 폭발 장전물이 있고 서로에게서 50미터 이상 멀어질 경우 폭발 장치가 작동한다고 써 있다.
가해자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 곁에는 테니스장 두 개 넓이의 타원형 구렁 속의 거대한 텐트, 여섯 자리 비밀번호 자물쇠가 채워진 견고한 철제 금고, 두 켤레의 장갑, 그리고 두개골이 폭파되어 흔적없이 날아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체 한 구가 놓여 있다. 또한, 각자 관련이 있음직한 세 장의 확대 사진이 있다. 조나탕의 딸 클레르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 승합차의 트렁크 내부를 찍은 사진, 미셸의 손에는 다정한 남녀가 보석 상점을 나서는 모습이다.
세 명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정말 진실일까? 돼지 도축업을 하는 미셸, 프랑스 북부의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아랍인 파리드, 그리고 산악인 조나탕. 그들의 등 뒤에는 각자 글씨가 쓰여 있다. 미셸에게는, '누가 도둑일 것인가?' 조나탕에게는,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 파리드에게는,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 그들은 서로를 소개하고 탐색하면서 그곳에 있는 이유를 추론하기도 하고, 허기와 추위 속에서 으르렁거리고, 우호적인 인정을 나누기도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구렁 속에서 손목 또는 발목이 족쇄에 결박되어 있고, 철가면을 쓰고 있으며, 서로가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면 기폭장치가 작동하고, 철제 금고에서는 열쇠 대신 도끼가 튀어나오는 등 이러한 장치가 영화 <쏘우>를 연상케 했다. 마치 삶 자체를 감사하게 사용하지 않는 인간들을 처단하려는 듯이. 그러나 소설 『현기증』은 '쏘우'를 비껴갔다. 이들 셋이 동굴 속 밀실에 갇히기까지, 19년 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조나탕이 지켜주지 못했던 막스 베크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막스로 인해 조나탕의 평화는 송두리째 흔들렸다. 최선을 다해 목숨을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이럴 때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나친 독점욕이 부른 복수극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바람둥이 주제에 아내도, 주변의 여자도 모두 소유하려 드는 막돼먹은 인간이 벌이는 복수극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반전이 숨어있는 이 소설같은 경우엔, 스포일러가 될 소지때문에 더이상의 발설은 그만 두겠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치밀한 장치를 배치한 무시무시한 괴물같은 사람이 꾸민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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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동분서주하고 복잡한 수사를 풀어나가데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 스릴러와는 영 다른 느낌이었다. 빙하 구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세 명만 등장하는데, 세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지켜보다보면서 진짜 감금된 것처럼 숨이 막혔다. 어떤 리뷰에서도 답답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 답답함이야 말로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 얼굴에 답답하게 덮여 있는 가짜 피부를 벗겨내는 용기를 부추기는 소설이 아닐까. 용기를 내기까지 어딘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용기를 낸 후에 얻게 될 자유를 위해 치르게 될 비용이 아닐까. 불편하면서도 숨을 죄는 한편, 마지막에 가서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어쨌든 약혼녀이면서도 아내와 동등한 지위로 그 남자와 살았기 때문에 그런 해석도 가능한 것 같은데, 요즘 외국에서의 결혼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의 의미는 많이 다른 걸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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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예상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단도직입적인 시작입니다. 이렇다할 전개도 없이 다짜고짜 지하 동굴안에 끌려와 갇히게 되는 사람들. 여느때처럼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거나 했었을 터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수없는 컴컴한 동굴안. 게다가 저마다 쇠사슬에 묶여있거나 철가면을 뒤집어 쓰거나 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모인 것이 세명의 남자와 한마리의 개입니다. 각자의 등뒤에는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 퀴즈와도 같은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철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은 다른 두 남자와 50미터 이상 떨어지면 가면이 폭발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시작부터 본격적으로 물음표를 몇개씩 달고 출발합니다. 이 도입부가 굉장히 강렬하고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쓸데없는 예열과정은 집어치우고 무작정 수수께끼부터 던지고 시작하는 셈이니까요.
이 상황은 곧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두뇌싸움, 눈치싸움으로 변해갑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딘지도 모를 이상한 공간에 유배되어 있는 상황.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제공한 약간의 도구와 생필품만이 전부인 공간에서 세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의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자생적으로 공포를 만들어 냅니다. 수수께끼의 진상은 둘째치고 인간의 본능이 어디까지 바닥을 드러내는지, 이들이 광기로 가라앉는 모습 그 자체가 스릴러가 됩니다.
인간은 환경에 좌우된다. 인간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동물이다랄까요. 극한의 상황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그 처절한 본능을 정면에서 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한사람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하던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때 광기에 사로잡혀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충격적입니다. 사람의 인격이 바뀌는 것만큼 극적인 반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악취미라면 악취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괴로운 이야기가 즐겁습니다. 물론 이런 긴박감과 공포감이 주는 스릴을 사랑하는 것이지 현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소설은 '스콧 스미스'의 <폐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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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이란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 영화 등은 종종 있었다. 숲 속 외딴 집, 건물 등 어디에 있던 밀실이란 공간이 가진 무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 또 다른 밀실이 등장한다. 프랑스의 밀리언셀러 작가인 프랑크 틸리에의 '현기증'의 밀실공간은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 두 남자는 손과 발에 족쇄가 채어져 있고 한 남자의 얼굴에는 철가면이 쓰여 있다.
평온하게 잠든 다음날 아무 이유도 모른 체 어두운 동굴에서 눈을 뜬 조나탕...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떠올리며 무서운 불안감에 휩싸인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개 포카라가 함께 있다. 동굴 탐색을 통해 비슷한 또래의 철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와 자신처럼 족쇄가 달려 있는 스무 살의 아랍 청년을 만나게 된다. 세 사람은 누군가의 의해 어두운 지하동굴에 옮겨진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이다.
거짓말쟁이, 도둑, 살인자가 누구인지 가리키는 글과 그들이 처한 상항에 대한 경고문... 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극한 상항에서 서서히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인간이란 게 우습다. 이런저런 희망을 포기해도 굶주림에 대한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난폭하게 변화하는 조나탕의 개 포카라.. 개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으려는 사람이 생기고 결국 개, 사람 둘 다는 살기 위해 필사적이다.
탈출할 방법을 찾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세 사람이 얽힌 관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포카라가 개가 아닌 늑대에 더 가까워진 사연부터 시작해서 아랍청년, 철가면의 남자, 그리고 조나탕까지... 밀폐된 공간이 가진 힘에 의해 그들이 쏟아내는 진실은 오히려 더 무섭고 두렵다.
스토리의 속도감이 좋은 쫄깃한 맛이 느껴지는 스릴러 소설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존재하기 보다는 서로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이 마음속에 묻어두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는 죄의식이 가져오는 엄청난 비극에 허탈감 마저 든다.
책도 책이지만 영화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비슷한 밀폐 공간을 다룬 영화가 있지만 스토리가 가진 힘이 좋기에 영상으로 만나면 한여름의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서늘함이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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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프랑스 스릴러다!' 란 띠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던 이 책..
표지그림을 보고는 매직아이와 히치콕의 영화가 함께 떠올랐던 작품..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 말할만하다.. 어두운 지하동굴에서 깨어난 세사람.. 그들은 서로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족쇄가, 한 남자에겐 철가면이 씌워진 채로 생존을 위한 사투를 시작하게된다.. 빨간선을 넘어갈수없는 자와 그들로부터 멀리 벗어날수없는 자.. 영화로 만들어졌을때 제작비를 아껴줄듯한 배경을 보면서 굳이 화려하게 포장하지않아도 충분히 멋진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필력을 느꼈다.. 이들을 괴롭히는 많은 의문들.. 누가? 왜? 어떻게? 그들을 이 곳에 가둔것인지? 그리고, 과연 살아나갈수있을까? 라는 의구심.. 식재료는 없으나 접시와 포크가 제공된 상징적인 모습.. 자신을 푸줏간주인이라 소개한 미셸과 등반가출신 조나탕, 그리고 불량한 분위기의 청년 파리드.. 생존과 인간의 존엄사이에서 갈등하게될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일찍 이해돼버린데서 오는 두려움.. 마지막장을 넘길때까지 풀리지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로 장면장면을 충격적으로 보고 읽게된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보았었다. 당시에도 야만적이라고밖에 느껴지지않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하고 충격을 느꼈었다. 이번 작품에선 예상하던 일이 벌어졌음에도 마음이 아팠고,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는것이 맞는건지? 아님, 의지를 굽히지않고 스러져갈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을때 이것이 훗날 스스로를 용서할수없는 자로 낙인찍지않을까? 란 두려움.. 어떤게 최선인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의 몫일거란 생각을 했다. 한정된 시간,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렇게나 공포스러울수 있단걸 절실히 깨닫게해주는 책.. 인간은 결국 동물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기회가 도니 책.. 프랑크 틸리에..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게된다. 이 책이 주는 강렬함을 오롯이 느끼기를 바라기에 더 많은 이야기는 생략한다.. 직접 보고 느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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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뜹니다. 그의 이름은 조나탕.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생각나는 사람이라곤 아내 프랑수아즈 뿐입니다. 두려운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보지만 손목에 사슬이 걸려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자신이 키우던 개 포카라를 발견하지만 아무리 살려달라고, 거기 누구 없냐고 소리쳐보아도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죠. 하지만 곧 머리에 철가면을 쓴 한 남자를 발견합니다. 그의 이름은 미셸. 거대한 체구에 철가면을 쓴 그의 형상은 어둠 속에서 더욱 기이한 기운을 발산하고, 그들은 곧 세 번째 남자를 발견합니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파리드. 그들의 상의 등 뒤에는 각각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라는 문구가 꿰매져 있습니다. 그리고 갖춰진 물품들. 곧. 그들의 생존경쟁이 시작됩니다. 세 남자가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며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이 어떤 관계이며 무슨 이유로 그 곳에 갇히게 된 것인지에 포커스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전개됩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하나의 무대 위에서 세 명의 남자가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요. 낯선 곳에서 깨어난 세 남자는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곧 살기 위한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갖춰진 물품들은 한정되어 있고, 뼛속까지 전달되는 추위는 그들을 좀먹어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약육강식의 세계. 산악인으로서 거의 평생을 살았던 조나탕은 추위를 견디는 노하우를 그들에게 전달하려하지만, 세 남자는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여기에 갇혀있어야 하는 이유와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며 갈등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익숙해지죠. 필요할 때만 불을 피우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얼음을 긁어내 물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내려 합니다. 낯선 곳에서의 제한된 여건은 결국 세 남자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것 같았다가 새로운 단서가 나타나면 물어뜯을 듯이 싸우기도 하고, 금방 또 힘을 합하죠.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어떻게 전환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할까요. 결국 작품의 주제는 저 세 문구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안에 함축되어 있고, 누가 범인인지는 끝부분에 가서야 밝혀질 것이므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다만 아쉬운 점은 내용 전개상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랄까요. 1,2,3 단계가 있는데 2단계를 건너뛰고 1단계에서 3단계로 갑자기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 가끔 ‘엥?’하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과거의 선택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냈다는 것. 때로는 그 선택이 자신을 공포로 몰아넣을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인지. 하지만 이 작품은 굳이 그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려 했다기보다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세 남자의 심리에 치중한 제법 괜찮은 심리스릴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과연 누가 도둑이고, 누가 거짓말쟁이이고, 누가 살인자가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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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호러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단골소재가 바로 '밀실'이 아닌가한다. 땅굴, 큐브, 무덤, 지하, 폐허, 빙하, 우주선 등 어둡고 습하거나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 한정된 생존 식량, 그리고 한정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자연재해로 인해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몇몇의 인간 혹은 현대 문명과 떨어진 자연 속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어떤 목적으로 납치 감금당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끼며 한정된 장소와 식량으로 생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 그 곳이 지하든, 폐허든 얼어붙을 듯 차가운 빙하속이든 지구 저 멀리 조난당한 우주선 안이든 폐쇄된 공간과 한정된 식량이 주는 공포와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언제나 공포와 스릴을 안겨주는 최상의 조건임은 틀림없다. 거기다 알 수 없는 생명체나 그 곳에 있게 된 비밀이 있다면 그 극적인 공포와 스릴은 최고치를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깨어보니 빛도 없는 꽉 막힌 빙하 안. 그 빙하 안에 텐트가 쳐져있다. 내 손은 사슬에 묶여있고 밖에서 어떤 일을 하던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남자 둘이 하나는 머리에 쇠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나는 다리에 쇠사슬이 묶인 채 무시무시한 공간에 함께 '놓여 있다'. 그리고 1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나의 개도 함께. 그들은 왜 잡혀왔는지도 모르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해있다. 나는 늘 궁금했던 것이 아무리 극한의 상황이라고 한들 사람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적대감과 폭력과 잔인함이 그토록 강력하게 표출 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어떤 사람은 -특히 남자-순식간에 이 상황과 사람들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고, 누구는 전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고, 누구는 심각하게 정신이 무너져 내려 서로에게 짐이 되는지. 물론 그럴 것이다. 재난이나 조난과 어떤 목적 하에 납치되어 왔다면 또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 이 소설은 분명 이렇게 납치된 데에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이들을 납치한 자는 친절하게 몇 가지의 단서가 적힌 종이를 서로의 등에 붙여놓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의 식량과 불을 밝혀줄 랜턴이나 가스들을 가져다 놓았다. 비밀번호를 풀어야 열리는 금속 금고와 딱 1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총알 하나가 든 권총 거기다 서로가 멀리 떨어지면 남자가 쓴 철 가면은 폭파한다는 단서까지. 게다가 그들 옆에는 죽은 남자의 시체까지 놓여있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살기위해 발버둥 친다. 그들이 먼저 한 일은 최대한 오랜 시간 생존을 위해 물품을 점검하고 주위를 탐색하며 나갈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범인이 그들을 이곳에 가둔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대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안에 범인과 관련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먹을 것을 숨기기도 하고 누구나 예상하듯 식구나 마찬가지인 개를 식량으로 삼을 생각을 한다. 여러 날이 흐르자 한 줌 빛도 없고 축축하고 너무도 추운 곳에 지내는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찾아와 서서히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그리고 결과는? 그들은 그들이 잡혀온 비밀을 밝히고 그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설정한 상황이나 결말 등 작은 부분에서 예상한 데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작은 단서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참을 탁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반전!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결말은 이 소설 제목이 왜《현기증》인지 비로소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뭔가 후련하지 않은 이 찝찝함. 아마도 저자는 이런 걸 바란 것일 게다. 만일 결과가 다른 식으로 진행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 소설의 제목이 《현기증》이 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제한된 상황과 장치들 속에 등장인물들을 밀어 넣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심리와 감정, 관계의 변화. 글쎄, 사건과 해결 위주의 전개가 빠르고 충격이 이어지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조금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음산한 분위기 호러와 스릴러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묘미, 치밀한 심리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여름에 읽기에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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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잠들었었는데, 눈을 떠보니 컴컴한 동굴속에 갖혀져 있다.
사슬로 묶여져 있는 몸은 움직일수 있는 반경 이외를 벗어날수 없다.
이정도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느정도 소설의 구성에 대해 감을 잡을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구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쏘우"라는 영화이다.
시체 한구 그리고, 묶여있는 두명의 남자, 폐쇄된 지하실, 그리고 8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영화 "쏘우"가 개봉되면서 큰 반양을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도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장소는 지하실이 아닌 얼음이 있는 지하 동굴.
갇힌 사람은 주인공 조나탕과 아랍청년 파리드와 덩치 미셀, 그리고 늑대개 포카라가 갖혀있다.
조나탕은 손목에, 파리드는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며, 미셀은 철가면 마스트로 얼굴이 가려져 있다.
그들의 등에는 "누가 도둑인가?" "누가 거짓말을 하는걸까?" "누가 살인자일까?"라는 글씨가 붙어있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의 사진과 협박글이 전달되었다.
갱도같은 통로를 발견한 그들은 유일하게 손발이 자유로운 미셀을 보내게 되고, 그곳에서 시체 한구와 일부 양식을 구한다.
이렇게 그들의 낮도 밤도 없는 감금은 시작된다.
이런류의 소설이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이다.
그들이 왜 이곳에 갇히게 되었느냐가 이런 이야기의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물론 읽어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다지 놀랍다는 느낌은 많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조나탕이 열쇠를 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드는 것이어서 그런지 왜가 밝혀졌지만 그다지 큰 감동은 없었다.
그저 사람이 서로를 의심하고 욕심부리는 무간지옥같은 행태가 더 왜 보다 놀라웠다.
언제 나갈지 모르고, 이 추운 암흑의 곳에서 죽어나갈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떠오르는 공포가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작품의 클라이 막스는 초기 그들은 낯선 동굴속에서 눈을 떴을때였다는 생각이다.
그 외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기보다는 그저 막바지로 돌진하는 기차같은 느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쏘우"이후에 다시한번 '만약 갇힌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거의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면 스스로의 공포로 자멸하게 되는 모습이 참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소설은 "쏘우"라는 유명한 작품을 뛰어넘을 정도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 이런류의 이야기에서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에는 좋은 소재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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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E 라는 책을 통해 프랑크 틸리에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기존에 많이 접했던 미스테리 스릴러와는 완전 다른 느낌의 소설이였는데,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그 공포가 가시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도서관 책장에서 "프랑크 틸리에" 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걸 알았기에, 집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어 들었다. 역시나 이 책 또한 신드롬E 처럼, 사람의 마음, 저 기저에 있는 공포를 한 껏 끌어올린다. 조나탕은 집에서 따뜻한 침대에 잠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사슬의 끝이 단단히 박혀있는 족쇄가 오른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상태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지하 동굴에 갖혔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나탕과 마찬가지로 한쪽 손목에 족쇄가 채워진 파리드, 그리고 몸은 자유로우나 얼굴과 머리 전체에 철가면이 씌여진 미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발견한 쪽지에는 미셸의 철가면에는 폭탄이 들어 있으며, 미셸과 조나탕, 파리드가 50m 이상 떨어지면 터진다는 경고와 함께, 어느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라고 적혀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데다가 빙하까지 존재하는 깜깜하고 추운 동굴에 감금된 세 명의 남자. 그리고 조나탕의 반려견 포카라까지. 누가 그들을 이 끔찍한 암흑의 공간에 감금한 것일까. 그들을 감금한 자가 그들과 함께 놓아둔 금고에는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알몸 상태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죽은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곳에서의 추위와 배고픔은 그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가고,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함은 점점 더 그들을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하게 한다. 휴...... 얼마전 읽었던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책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이 갑자기 안 보이게 되고, 수용소에 갖힌 생활이 시작되면서, 식욕, 성욕, 배변의 욕구만을 쫒는 상황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펼쳐졌었다. 이 책 또한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성을 가감없이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감금 내용이 끔찍함에도 도대체 왜 감금되었고,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에 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게 또 '프랑크 틸리에'라는 작가의 매력인 것 같다.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으니.. 소설의 결말 또한 어찌보면 참으로 끔찍하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조나탕이 19년 전 산악 동료였던 막스 베크에게 저지른 일 때문이라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게 되는데,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사람의 복수심이 어디까지 끔찍해 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하.. 다음에는 좀 가벼운 책을 읽어야겠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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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곳에 갇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모든 것이 조나탕 당신과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을 난 깨닫게 됐어요. 사내가 나를, 바로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은 넘겨볼 일이 아니죠. 그는 당신 집을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는 당신과 나를 알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요.”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악몽 속 풍경. 자신의 침실에서 잠들었던 조나탕이 눈을 뜨자 그곳은 칠흑같이 어두운 구렁 속이고 손목마저 묶여 있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물쇠가 채워진 철가면을 얼굴 전체에 두른 미셸, 발목에 족쇄를 찬 아랍청년 파리드도 그곳에서 깨어난다. 무엇보다 세 사람은 서로를 모른다.
메모에는 철가면의 남자가 나머지 두 남자에게서 50미터 이상 멀어질 경우, 철가면에서 폭탄이 터진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 한 구, 시신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일면식도 없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난데없이 갇힌 상황에서 공포, 잔혹성, 분노를 표출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들은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세 사람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탈출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사회적 금기는 흐릿해진다. 허기와 병, 지독한 추위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조건’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과거를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가 하고.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 동굴 속, 발에는 20m 남짓한 사슬이 달린 족쇄가 채워져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지하 동굴에 옮겨진 세 남자는 서로를 처음 마주한다. 각자의 등에는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라고 쓰인 천 조각이 붙어 있다. 또 “당신들은 영영 발견되지 않을 거야. 모두 죽게 될 거야”라고 적힌 출처 없는 편지 한 장이 이들 앞에 남겨졌다.
자물쇠로 잠긴 철가면, 이동거리에 따라 폭발하는 장전물, 누군가 준비해둔 최소한의 식량, 갑자기 나타난 시체 등 잇따라 등장하는 서사 장치를 보면서 이 소설을 정교하게 설계된 밀실 스릴러_ 영화 <쏘우>를 연상하게 한다. 극한의 허기와 추위, 불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위협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고백하기를 요구한다.
과거로부터 도피해오던 세 남자의 공통점이란 어쩌면 ‘상실감’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삶의 어느 부분을 상실한 채 살아왔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적이 있는 전직 등산가 조니탕 투비에는 17년간 함께 산 아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소리 내 전하기조차 두려워한다. 푸른 눈의 아랍계 스무살 청년 파리드 후마드는 각종 범죄를 저지르다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보호시설에서 살아왔다.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은 돼지 도살업자 미셸 마르퀴는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혼자 먹을 식량을 몰래 빼돌린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국 ‘죽느냐 혹은 진실이냐’뿐이다. 8일간의 동굴 생활을 거쳐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삶이 다시 찾아왔지만 “비로소 지옥이 시작”됐다. 사슬에 묶여 동굴에 갇히는 것 같은 “엄청난 난관은 아주 작은 것들을 감출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소설의 끝에서 진실은 다시 모호해진다. 지금껏 내가 읽은 것은 뭐지? 이것은 조나탕의 꿈이었는가 아니면 아내를 잃은 막스의 처절한 복수극 그 자체였는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허상인지 실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을 유도하고, 독자 역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이 그래서 의뭉스럽다.
<현기증>이 인간의 허위와 비극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와 허기 속에서 장갑 한 짝, 오렌지 한 조각을 양보하면서 인물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또 에필로그까지 총 49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에는 매 장 첫머리마다 한 인물의 수십 가지 면모와 인간에 대한 경구를 담은 메모가 등장한다.
하여, 제목이 현기증인걸까.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을 놓지 못했는데 진정으로 ‘현기증’을 겪는 것은 책장을 덮고 난 뒤부터일 테다. 우리 또한 스스로를 기만하며 잊고 사는 게 아닌지 막연하고 희미한 두려움을 남긴다. 소설 속 잔혹한 연출자가 마련한 지하 동굴 대신, 자신이 감추거나 지우고 싶어하는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 각자는 어떤 무대장치를 갖춰야 할까.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썼다고 고백했다.
극악한 공포는 아니지만 독자를 현기증나게, 미궁을 탈출하지 못하게 자극을 주는 그의 책을 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알게 된 걸 감사하며, 나중에 그의 다른 책들도 한 권씩 찾아 읽는 즐거움을 맛봐야겠다. 그리고 이번 주말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꼭 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