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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자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가 될 수 업다!
"때리는 자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가 될 수 업다!" 내용보기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날 문득 옛사랑의 주인공을 만나 이루지 못했던 옛사랑의 추억을 메울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외도를 미화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자신의 행동을 상대자인 배우자에게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자신의 이런 행동을 상대자에게 이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기혼자들의 대다수는 - 극소수일지
"때리는 자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가 될 수 업다!" 내용보기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날 문득 옛사랑의 주인공을 만나 이루지 못했던 옛사랑의 추억을 메울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외도를 미화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자신의 행동을 상대자인 배우자에게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자신의 이런 행동을 상대자에게 이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기혼자들의 대다수는 - 극소수일지도 모르지만 - 결혼이라는 굴레아닌 굴레적 삶 속에서 문득문득 부딪치는 배우자로부터 받게되는 식상한 신비감으로 인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화려한 외도를 꿈꾸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와 같은 비이성적 행동의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 행동 양식이었다. 작품은 그 모든 것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으로 기혼남들에게는 같은 남자로서의 부러움 보다는 한심함에 기혼녀들에게는 남편이라는 남자들에게 실망감만을 던져주었을 것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들고 있다. 다시말해 너무도 아주 너무도 남성 우월적 위치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편협된 독단의 사고, 즉 아내는 남편의 소유라는 생각과 지극히 존중되어야 하는 여성의 자존심은 관계없고 자신만의 감성이 중요하다는 여성을 무참히 짓밟는 작품이었다. 작품과 같은 남자들의 화려한 외도(?)가 진행되는 동안 받게 될 배우자의 상처는 누가 누구에 의해 치유되야 하는가, 작가의 말처럼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하는 문제이전에 왜 때리는 문제가 생겼는지를 또 왜 맞는 문제가 생겼는지를 우리는 정확히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맞는 문제'에 대한 고찰이 '때리는 자'의 정당성을 전제적 조건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좋은 감정과 시각으로 이해하려해도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와 가정이 있는 남자가 '때리는 자'로 하루 아침에 그렇게 변할수 있는가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양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어쩌지 못해 손에서 그냥 녹아내리게 하는 형국, 즉 어느쪽도 버리기는 아깝고 다먹기에는 배부른 상태로 쥐고 있는,자신만의 욕심으로 이를 방관만하고 있는 모습이 '때리는 자'의 독선 그 자체가 아닌가. 결혼이란 분명, 가치관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른 두 남녀가 함깨 만들어 가는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보이는 질서와 예의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또 상호간의 존경심, 이 모든 긍정적인 단어가 적용 되어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비록 공동체의 출발이 잘못되어 그 공동체가 깨지는 순간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함이 구성원의 기본적 책무라 생각된다. 특히, 이 공동체가 지구상 마지막 낙원이라는 '가정'일 경우는 위의 모든 사항이 더욱 중요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작품 속의 남자는 자신의 본분도 자신의 위치도 망각한 아주 전 근대적 남성우월적 위치에 선 냉혈한 그 자체였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을 아내에게, 여자로서 가장 숭고하게 지켜주어야 할 자존심마저도 그는 철저히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짓밟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외치고 있다,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옛사랑을 위해 떠난다고'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부인에게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마디의 항의다운 항의도, 싸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정녕 이 여인이 자기의 남편과 사랑을 매개로하여 만난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여러 장면 나온다. 겉으로는 여자로서 치정에 얽힌 치졸함의 극치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망설이고 있으나 이는 치졸함과 고상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권리 찾기의 문제이다. 결국 이 부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보이지 않는 부부간의 벽과 금이 있었던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었으며, 여자는 남자의 외도를 통해 부부간에 드리워진 벽의 실재를 구체화, 현실화시키려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떻게 자신의 위치가 걸린 문제에 치졸함을 내세워 수수방관으로 일관할 수 있는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작품 속의 부부가 실존한다면 - 작가의 남편을 모델로 썼다고는 하나 - 나보다 아래인 것으로 보이는데 한마디 충고를 해 주고 싶다. '아내(남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아내(남편)가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를 생각하고, 아내(남편)의 모습에 촌스러움이 묻어져 나오면 아내(남편)가 가장 화려한 복장으로 가꾸고 데이트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그래도 아내(남편)가 못마땅하면 잠자는 아내(남편)의 얼굴에 늘어난 주름살과 귀밑터리의 흰머리의 숫자를 헤아려보라' 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나는 하루에 세번 아내를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혼할 때 나의 아내에게 청혼한 말은 '돈많이 벌어다 주겠다'거나 '행복하게 해주겠다' 가 아니었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 우리 부부가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순간이 닥쳐 왔을 때 나는 당신의 입으로부터 한마디의 말을 듣고자 살아 가겠다. 그것은 당신과 결혼해서 행복했어요' 라고 그리고 우린 결혼했다. 결혼 전 나는 무교(無敎)였다. 그러던 어느날 교인들을 죽으면 천당에 간다는데 믿지 않는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불현듯 천당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는데 천당에 가지 못한다는 불안감 보다는 교인인 마누라가 천당에 가고 나는 알 수 없는 곳에 혼자 떨어져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나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죽어서도 같이 있고 싶어서 말이다. 나도 교회에 나가다 보니 어느새 환자 비슷하게 되었다. 천당에 안가도 좋다 나는 단지 이승에서도 마누라와 안 떨어지게 된 것이 더 좋아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 그렇다고 마누라가 절세의 미인이나 음식을 잘한다던가 매력이 풀풀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복더위에 나더러 어이하라고 손수건을 달라니 그냥가란다. 준비된 것이 없다면서 그래 놓고도 40이 넘은 내게 뽀뽀를 안해 준다고 난리다. 변명의 작가나 병상에 있을 화려한 사랑을 꿈꾸었던 남편이 기회가 되어 나의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아주, 극히 단편적인 생활의 한편에서 부부간의 행동에서 뭔가를 이 글에서 발견했으면 좋겠다. 서 은묘 당신은 제외고.....
n****e 2000.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간도 흐르고 사랑도 흐른다.
"시간도 흐르고 사랑도 흐른다." 내용보기
1편을 다 읽고야, 이 소설이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선지 2편을 읽으면서, 1인칭 화자의 마음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주인공의 감정이 스며들어.. 남편의 뻔뻔스러움에 같이 분노하면서..그녀의 방황에 안타까워했다. 미안해하면서도 몇번 결심을 하면서도 .. 결국 주위를 맴도는 은묘란 여자에 대해 성토하며.. 세 사람의 관계에 뛰어드는 타인들의 주제넘음이 보기싫
"시간도 흐르고 사랑도 흐른다." 내용보기
1편을 다 읽고야, 이 소설이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선지 2편을 읽으면서, 1인칭 화자의 마음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주인공의 감정이 스며들어.. 남편의 뻔뻔스러움에 같이 분노하면서..그녀의 방황에 안타까워했다. 미안해하면서도 몇번 결심을 하면서도 .. 결국 주위를 맴도는 은묘란 여자에 대해 성토하며.. 세 사람의 관계에 뛰어드는 타인들의 주제넘음이 보기싫었고. 은근히 그들의 비정상적인 구도를 넘보며 잣대질을 하는 친척들의 모습도 경멸스러웠다 . 자신의 얘기를 쓰면서.. 이리도 냉정할 수 있다니.. 놀랍다. 만들어 낸 얘기라도 충분히 신파조로 흘러갈 수 있는데.. 정길연의 글은 시종일관 찹찹하다. 시니컬한 어조로 자신의 모순을 얘기하고..남자의 말도 안되는 본능을 얘기한다. 그런데.. 큰 소리로 울고 불고 하소연하는 것보다 훨씬 아프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연애소설이라고 잡았던 책이 사람과 사람.. 연애와 결혼.. 여자와 남자.. 부부와 아이.. 참 많은 것을 생각케해준다.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걸로 윤태희의 자존심은 지켜진 걸까? 양손의 떡을 다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미안하면서도.. 그 미안함을 능가하는 열정으로 첫사랑에게로 달려가는 남자.. 차현강은 과연 매우 특별하게 비도덕적인 걸까?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 입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건 아닐까? 어쨋든 명쾌한 해결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니까. 차현강이 은묘와의 사이를 접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제 자리로 돌아왔다고 해도.. 과연 생겨버린 그 틈을 메울 수 있었을까? 남편의 입장에서 쓴 < 변명에 대한 변명 > 이란 책도 있다해서 또 한번 깜짝 놀라며..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남편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무시해버리고도 싶다. 아무래도 그 쪽 얘기는 되찾은 여자와의 아프지만, 감미로운 사랑을 노래할테니까.... 그래도 같은 상황에서 서로 느끼는 것이 극단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걸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