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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페이지도 넘는 DSM- Ⅴ를 처음부터 본다는 건 심난할 즈음, 좋은 책을 만났다. <정신의학적 진단의 핵심>이다. 이 책은 DSM-Ⅳ판과 DSM-Ⅴ판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주고, 추가되거나 삭제된 진단에 대한 저자의 임상적 소견을 밝히고 있다. 또한 주요한 정신장애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편하고, 각 장애 별로 가장 핵심적인 선별 질문을 넣었기 때문에 임상적 면담에 대한 교과서를 보는 듯했다. 한마디로 속이 시원했다. 
DSM은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약자로,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진단 기준이다. 사실 DSM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미국의 표준진단 체계이나, 그 영향은 전 세계에 미치기 때문에 정신의학 분야의 바이블과도 같다. 4판과 비교해보니 세부 진단기준은 달라진 것이 없으나, 1) 장애의 이름이 바뀐 것이 있고, (예: 정신분열증 → 조현병) 2) 새로 생긴 장애가 있으며, (예: 저장강박 등) 3) 삭제된 장애도 있고, (예: 변태성욕장애) 4) 하위 분류가 달라졌다. (예: 신체이형, 발모광은 강박장애로) 
책은 참 군더더기 없고 깔끔했다. 쓰고자 하는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련된 임상가의 대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내용 전반에 걸쳐, 과잉 진단을 하거나 유행을 따르는 진단은 하지 말기를 반복하여 강조했다. 예를 들면 DSM-4에 의해 자폐장애는 20배, ADHD는 3배, 양극성장애는 40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나도 ADHD가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인해 과잉 진단되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 책에도 동일하게 적혀 있었다.
저자는 '실제로 정신장애가 늘어나는게 아니라, 질환의 정의와 진단 기준의 적용에 따라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DSM-5이 말하는 새로운 질환을 통해 과잉 진단과 과도한 약물 사용이 촉진될 수 있는데, 따라서 임상가는 무조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에 의한 신중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임상가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저자가 이번 개정판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환자 중심의 태도 때문이다. "환자는 쉬운 존재가 아니다. 당신이 그를 만나는 날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날일 가능성이 많다." "많은 순진한 치료자들은 억누르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병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치료사들은 긁어 부스러움을 만들어 오히려 병을 만들어내 키울 수 있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 책을 보니 DSM 4판과 비교해서 5판에서는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할지 가이드라인이 잡혔다. 전공생이나 수련생들도 DSM-5를 보기 전에 훑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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