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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최근 나의 독서 기준이 된 것은 책의 저자가 상정한 독자에 내가 포함되는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왠지 '살아 있는 자'로서 호명된 것만 같았다. 어둡고 무거운 감정이 마음 한 켠에 응어리졌다. 스스로를 '살아 있는 자'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면에는 '죽은 자'들의 죽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떠올린 것은 세월호 사건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난 역사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이다.
가라 앉는 배 안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있기를, 살아 남기를 바라고 절규했을 그들은 결국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살아 있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단지 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는 단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누가 배를 가라앉게 했는가.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것은 자본의 탐욕과 국가 권력의 횡포, 그리고 결국 그들을 용인한 우리 자신의 무지와 방관에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병폐의 구조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며 나의 인식 수준과 행동력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바로 그것을 직시하게 해 준다. 일상 생활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세계의 숨겨진 구조적 매커니즘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모순,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공포와 탐욕을 내면화 해 가는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한 언어와 명확한 개념 언어로 얘기해준다.
그리고 결국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 있는 한, 숨 쉬고 있는 한 희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90의 나이를 앞둔 노학자의 형형한 눈빛에서 희망, 이라는 관념의 물질적 현현을 본다.
살아 있는 한 희망하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만들어내서라도 희망하고 세상을 바꿔라. 그것만이 죽은 자들에 대한 살아 남은 자들의 유일한 의무이고 살아 있는 자로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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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덕망과 학식을 갖춘 노사회학자가 들려주는 이 시대의 살아있는 자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시리즈2편이다. 그들은 노학자의 영국자택으로 찾아가 세 차례의 인터뷰와 수십 통의 이메일을 통해 이 책을 탄생시켰다.
'공동선 총서를 기획하며'라는 제목의 서문 일부 옮겨본다.
혁명은 공동선을 향한 투쟁이다. 차별과 배제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서로의 손을 맞잡는 공동선을 향한 투쟁. 이 간절함은 암울한 세계의 끝자락에서 어느 순간 점화되어 자유와 해방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세계시민의 오랜 기원과 맞닿아 있다.
'공동선 총서'는 불가능한 꿈에 과감히 도전한다. 이 세계에 살려낼 것이다. 불가능한 꿈의 시도야말로 인문학의 본질이자 가능한 미래의 징후가 아니겠는가.
기획의도에서 밝혔듯 이책은 공동선을 열망하는 폴란드 출신의 노사회학자 바우만선생님을 찾아가 질문과 답변을 통해 그의 고견을 듣고, 희망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실마리를 쫒는다. 그는 오늘날, '좋은 사회'의 모델에 대한 모색이 공적의제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좋은 사회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신뢰할 만한 주체가 없다는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여기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대부분의 권력이 국민국가에서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 정치는 여전히 국가 영토 주권내의 제한된 지역적 경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스마트기기의 발달과 개인정보 유출등으로 사적인 공간이 침해를 받고 있다고만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공적 영역의 후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투쟁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박탈된 공적 토론의 장이라는 것이다. '아고라'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기만족적 위로라는 처방을 받는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고통과 절망을 공동의 문제로 다루게 하며, 나아가 공동선 및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을 함께 그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 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는다. 즉 아고라는 그 자체로 자율적인 개인과 사회가 나서서 공동선에 대한 담론에 다시금 불을 지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평등하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은 성공을 보장해주는 지식을 선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당하게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청년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불안정하고 위험한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한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피난처를 마련하는 개인적 노력에 몰두할 것인가' 중에서 말이다. 그는 이를 신자유주의 경제가 양산한 '중산층의 프레카리아트로의 전락'이라고 표현한다. 것이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란? 불안정한(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로
'행복'에 관해 언급한 그의 견해도 흥미롭다. 답했다고 한다. 즉, 행복이란 역경이나 불안 등 어려운 도전을 극복할 때에 주어지는 것이며, 순간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이라는 것이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는 '좋은사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그렇기에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이 우리 삶에서 가능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평생을 연구하며 터득한 시대를 관조하는 부드럽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그는 앞으로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할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해 본다.
201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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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세 번째 책, 혁명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삶에 의지를 버리지 않는 것일 뿐.
바우만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는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행동방식이 가치를
얻게 되는 고체 근대의 시대를 거쳐 액체 근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변화 혹은 유연성이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 과거의 것은 축적되지
않고 소멸해 버리는 시대, 낡은 것은 곧장 쓰레기가 되는 사회이다. 이러한 액체 시대에 '유연함'이란 삶의 기술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모순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늘 창의적이어야 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우리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친구 삼아 새로운 모든 것에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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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4번째 책,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처음에는 바우만이 정식으로 낸 책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인디고의 지그문트 바우만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엮은 책인것을 알았다. 인디고의 질문에 대한 바우만의 대답이 2-3페이지(혹은 그 이상) 정도 되는 형식이고, 개인적으로 그동안의 바우만의 책들에서 계속되어 오는 글로벌 이슈- 정치와 권력의 분리의 문제, 소비주의적 양식이 인간의 내면과 도덕성에까지 깊게 파고드는 문제, 그것이 침참하여 인간의 내면에 깊은 절망과 혼돈을 주는 현상, 우리사회가(아니,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인간성의 상실 등의 사회학적 이슈들- 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틀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는 온갖 문제들이 산재해 있고, 특히 인간성 마저 상실해가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바우만은 특히, 문학이 인간적 감수성과 올바른 가치관을 섬세하게 교정해주고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문학이 가지는 사회학적,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저항하는 작은 공동체는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고, 그러한 작은 공동체가 맡을 역할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희망을 잃기 쉽고, 희망을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쉬운 요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소비사회에 잠식되지말고, 물질보다 더 중요한 영혼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찾아 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