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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 국제정치학, 지역경제학 등에서 흔히 언급되는 담론 중 '중심-주변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중심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성장은 주변 지역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내용이다.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종식된 지금도 세계 체제를 설명하는 데 유효하고, 때로는 국가 내에서도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 http://2012books.lardbucket.org/books/regional-geography-of-the-world-globalization-people-and-places/section_04/97b4f605da839750cf95555d7e297bc5.jpg 이 책은 이러한 중심-주변 모델을 핵발전이라는 소재로 접근한다. 중심 지역인 수도권, 도시, 인구밀집, 발전지역의 전기 소비를 위해서, 주변 지역에 핵발전 경관이 형성되어 위험 부담과 생활권 침해 등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는 이를 '위험경관(riskscape)'라고 하는데, 이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공간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근대 사회의 발전은 위험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데, 이 위험을 특정 지역에 부담을 껴안도록 하는 국가 주도의 '공간전략'이 나타난 지역에서 위험경관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총체적 발전과 근대화를 위해서 위험경관을 강요받은 지역은 다음과 같다. 고리, 월성, 울진, 영광, 그리고 밀양까지... 책에서는 이러한 위험경관 지역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직접 찾아가서 주민 인터뷰 및 각종 자료를 통해서 "위험한 동거"를 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파헤친다. 우선 위험경관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여러 주변지역 중에서도 위험경관이 선택되고 형성되는 것은 국가 주도의 '공간전략'이다. 국가에서 이러한 공간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발전주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동원한다.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전력생산을 위해서는 어느 지역은 핵발전소가 건설되어 희생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내용이다. 게다가 당시 권위주의 정부에 반대하면 안되는 분위기, 환경의식이 희박하던 시대적 상황, 농촌 사회의 특수성 등의 조건에서 국가의 핵발전소 입지 공간전략은 그리 반발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핵발전소 입지를 교모하게 두 지자체의 경계지역에 입지하여 이슈를 분산시키는 공간전략도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중등학교 지리교과서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입지는 지반이 단단하고 냉각수를 공급하기 용이한 곳"이라는 가치중립을 가장한 서술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공통적인 건 (핵발전소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거다. 국책사업이라는 거, 하지 않으면 당시만 해도 국가 공권력이 강한 입장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다른 하나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직접 설득작업을 하니까 심정적으로 안 들어줄 수가 없는 구조가 있었다.(후략) (p.86, 울진) 정치적 정서적으로 그렇다고 봅니다. 4개 지역 공통점이 울진은 강원도 경북 경계, 경주는 울산하고 경주 경계, 고리는 울산하고 부산 경계. 상대적으로 교육열이나 생각 가진 게 없는 지역을 선택한 거죠. 문제나 이슈화가 최소화되는 지역으로...(후략) (p.92, 울진) ![]()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 해안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핵발전소 풍경 출처 : 네이버 거리뷰 하지만 사람들이 핵발전소를 직접 경험하면서 겪는 피해, 그리고 미국 스리마일,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이 알려지게 되자, 핵발전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당장 발전소 건설 부지에 집과 농토를 가진 사람들이 삶터를 뺏기고 이주당하는 것은 물론, 방사능으로 인해 가축 질병 유발, 고압 전선으로 인한 피해, 발전기 냉각 과정에서의 온배수로 인한 어업 피해, 개발제한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이 있다. 심지어 발전소 건설로 인해서 인근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원전 추가 건설로 인해서 30년만에 또 이주를 해야 하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 국가(또는 한수원)에서는 보상금 지원이라는 '당근'을 제공하여 유화책을 펼친다. 사실 외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주민들이 보상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눈빛이 있기도 하다. 또는 발전소 건설로 인해서 경제효과가 커서, 주민들이 혜택이 클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효과는 인부 유입으로 인한 임대업이 일시적으로 성행하는 정도이고, 장기적으로 주민들에게 이득이 가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한다. 보상금도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축제나 가시적인 행사에나 쓰일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발전소와 조금 떨어진 같은 지자체에서 보상금을 받으려고 '원전 반대' 운동을 펼치는 정치적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위험한 거 알고 그럼 그만큼 혜택을 받겠지 생각들 하는데, 안 그러니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지원금이 얼마 들어갔다고 백날 말하지 말고 지원금이 들어갔으면 그 동네 소득이 2배가 되었난가 한번 자산조사를 해 보라 이겁니다. 안 그렇거든요. 1,2호기 지을 때 3천명 일했으면 3호기 지을 때 2천명 되고, 그 담엔 또 1천명으로 줄고.(p.130, 영광) ![]() 765kV의 고압선로 송전탑으로 포위, 그리고 대책요구 현수막이 걸린 울진군 북면 신화리 풍경 출처 : 네이버 거리뷰 그리고 한번 위험경관이 조성된 지역의 매커니즘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적 전략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의지이기도 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핵발전의 위험이 어느정도 알려진 상황에서 국가 차원에서 핵발전을 새로운 입지로 선정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미 핵발전 경관이 형성된 지역에서는 보상금의 유혹, 지역의 일시적 발전에 대한 망령, 혹은 '이렇게 된 김에 될데로 되라' 식의 발상이 팽배해져 스스로 위험경관을 유치하려 하기도 한다. 근래에 신설된 핵발전소는 모두 기존 핵발전소 바로 옆에 '신OO원전'의 이름으로 만들어져 위험경관의 재생산을 보여준다. 또한 월성 핵발전소가 있는 경주에서 방폐장을 적극 유치하려고 나서는 등의 모습도 보인다. 이는 위험경관이 국가 스케일에서의 하향적 공간전략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및 지방화 시대에서 핵발전 공간이 확산되는 과정은 국가 스케일 - 지역 스케일의 상호작용이라는 매커니즘으로의 변화였던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된 거죠. 조금이나마 의식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참 비참합니다. 사람이 돈이 있다가 없어지면 돈에 대한 걸 맹목적으로 쫓아가게 되잖아요. 이 지역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거에요. 그러니 한수원은 계속 돈을 가지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거에요. 건설업자들은 여기에 계속 원전이 들어와야 경기가 살아난다 이런 식으로 하고...(p.102, 울진) 하도 답답하니까요. 얼마 안 남은 인생 돈 몇푼이라도 생활에 도움 되게. 원전 정말 나쁘지만 원전 들어온 데에 다른 산업이 들어올 수도 없고, 그러니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생활에 도움 되는 거라도 해주든가. 우리 지역에서 돔에서 2km까지 그러니까 원전 보이는 데는 외부에서 사람이 안 들어와요. 논 축사를 평당 16만원에 샀는데 지금은 13만원에 내놔도 안팔려요. 안보이는 데는 32만원 넘습니다. 울산 개발되면서 더 올랐아요. (그런데 방폐장이 들어서면) 다들 천지개벽하고 지상낙원 되는 줄 알았죠. 기대를 많이들 했죠. 우리도 잘 살수 있나 보다 이런 생각 하고는 기대를 한 거죠. 그리고 관이 부재자 투표까지 해서 개입하니까 투표율도 굉장히 높았고.(p.73, 월성) ![]() 핵발전의 공간배치는 인구밀집지인 수도권과 원거리를 두고 있고, 이는 핵발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고압송전선의 건설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p.186) 이 책에 담긴 내용 자체가 탈핵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지난 반 세기 간 우리나라의 근대화, 핵발전 건설 과정에서 희생되어 온 지역과 주민들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희생된 이들을 구제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탈핵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염원해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보다 '핵발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핵발전이라는 용어는 주로 탈핵 진영에서 쓰는데, 일반적 용어인 원자력 발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반대한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은폐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이란 핵분열을 통해서 발전을 하는 것이므로 발전방식 그대로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고, 핵분열을 통해 전기 생산은 물론 핵무기, 방사능 오염 등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까지 알려주는 '솔직한' 용어인 것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편안하게 전기를 사용하면서 근대적 삶을 영위하는 것은, 주변지역의 누군가의 위험경관 속 삶이라는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하겠다. 그리고 위험경관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하며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아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