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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막장이라고 치부되는 출생의 비밀이 중심소재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던 가정에 과거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죠. 주인공인 료타를 보면 말 그대로 잘나가는 남자입니다. 좋은 직장, 예쁜 아내, 좋은 차, 좋은 집, 예쁜 아들, 회사에서는 인정까지 받아 탄탄대로를 달리죠. 본인이 아쉬워하는 점이 있다면 예쁜 아들이 자신 같은 승부욕이 없다는 점정도? 허나 그렇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대사 없이 인물들의 감정에 여백으로 그들의 마음에 혼란을 보여줍니다. 제 취향이겠지만 전 영화에서 이런 부분들이 나올 때 참 좋습니다. 인물들과 같이 던져지는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또 영화 속에서 보면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잘사는 집은 한없이 행복하고 못사는 집은 한없이 불행하다는 싸구려대비 대신 자신의 친아들이 자란 그 가난한 집에서도 그들 나름의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인공집의 행복과 대비해서 보여줍니다. 전 이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저절로 미소 짓게 되더군요.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아마 주인공 료타의 개인적가치관은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인 것 같아 보입니다. 성공뿐이 모르고 살아서 그럴까요? 그래서 그 가치관을 아들들에게도 요구하는 듯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료타는 자신이 생각한 아이 둘을 모두 다 키우겠다는 계획이 실패하자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는 아들들에게 집을 바꾸어서, 엄마아빠를 바꾸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죠. 료타 본인 조차도 이유를 자기 입으로 내뱉기 괴로워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어릴 적 자신이 싫어했던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아있죠. 참 이기적인 인물입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극중에서 료타의 마음이 변할 때 아들들이 행한 행동들이 계기로써 많이 작용하는데 그 장면이 정말 가슴 찡합니다. 료타가 게이타로부터 아버지날 선물로 카네이션을 받는데 받을때는 게이타가 유다이(게이타의 친부)것을 같이 만들어온 것에 한없이 서운해 하다가 정작 본인 스스로 소중히 간직하지 않아 부러져버린 카네이션을 소파 밑에서 발견하는 씬, 료타가 회사에서 일어난 문제로 요직에서 물러나 친아들인 류세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며 류세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류세이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난 아빠소리를 들었을 때의 표정, 료타가 류세이와 아내와 같이 집에서 캠핑을 하며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내고 같이 잠이 들 때 류세이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자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한 뒤 눈을 가리고 울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류세이로부터 게이타는 어떨까를 생각하게 되는 모습, 료타가 게이타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려했던 사진기에서 게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게이타가 나를 정말 사랑했구나 그리고 나도 게이타를 정말 사랑했구나를 절실히 깨달을 때의 모습은 정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 뒤 게이타를 찾아가 아이에게 잘못을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는 료타의 아버지다운 모습 또한 멋진 씬입니다. 정말 영화 제목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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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일흔을 훌쩍 넘기신 어머님이 오래전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내 개인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머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함께 뒹굴고 아이의 작은 성취에 뛸듯이 기뻐하고 실수에 속상하며 아이의 아픔이 나의 상처보다 더 큰 고통으로 온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많은 이의 찬사와 영화제 수상 소식,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기대를 걸며 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았다. 영화는 산부인과의 실수로 남의 자식을 키우다가 7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되는 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지만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차분한 전개로 억지스럽지 않다. 성공 지상주의자이며 엘리트로 살아온 주인공이 이러한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의 심정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영화는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 간다. 그의 심경을 왜곡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없다. 강한 성취동기를 갖고 있는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이 결국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였다는 사실과 자신의 친자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현실을 주인공은 감당하기 힘들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자신의 환경이 아이들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주인공은 믿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은 DNA와도 관계 없고 명문 사립학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밝은 미래로 포장된 아빠의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일차원적인 스킨십이다. 그러나 영화는 우려와 달리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일견 답답해 보이고 치졸해 보이는 주인공 아들의 친부도 확고한 자신만의 양육 방식을 갖고 있다. 결국 감독은 화해와 타협이라는 조금은 뻔한 결말을 선택하지만 내가 영화속의 주인공이라도 친자는 아니지만 7년을 키워온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아들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을 듯 하다. 7세밖에 안되지만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되고 이별을 직감하는 주인공의 아들의 슬픈 눈빛에 지금도 가슴이 짠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인간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으며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깊게 생각하게 하는 울림있는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