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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 세상을 움직이는 건 자본주의도 권력도 아닌 공정성이다. 세상은 공정해야 올바른 사회라 볼 수 있다. 세상이 공정치 못하면 각종 비리들이 판치게 되고 매우 오염된 사회로 전락해 국민들이 살기 매우 힘들어지고 국가 막장 테크를 탈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일수록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반대로 후진국들일수록 공정한 사회 따위 개나 줘 버리며 지배층들이 피지배층들을 마구 수탈하고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 벤 펜턴 영국의 언론인이다. 30년간 8천여 편의 기사를 썼다.40개국을 오가면서 전쟁, 재난, 승리, 폭동, 9.11, 올림픽, 월드컵 등에 관한 사건사고를 취재 했다. 2007년부터 공정성에 관심을 가진 그는 협력을 하는 사람들과 협력을 깨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페어플레이 개념에 매료 되었다. 경쟁과 협력 측면에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생각 했을 때 인간의 타고난 의사결정 과정인 공정성이야말로 궁극적인 해답일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 하였다.
공정성에 대하여 우리 인간의 사회는 협력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형성되고 번영한다. 협력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신뢰는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공정성은 우리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토대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구성원들 사이에 이익의 공정한 교환을 위한 규칙이 공유되는 기반위에 얻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익에는 개별가치인 안심, 만족, 성취 등이 있고, 공동 가치인 친절, 우정, 사랑 등이 있다. 이러한 이익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은 통제, 자유의 제한, 양보, 이해, 수용, 희생 등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에서는 공정성이 어디에서 나오고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 하였다. 2부에서는 스포츠, 비즈니스와 경제, 소셜 미디어, 전쟁에 이르기 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공정성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마지막 42조특별파트에서 공정하기 위한 의지와 능력을 잃으면 우리 모두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본다. 공정성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인류 역사의 모든기간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 하므로써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음을 터득 하였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희생해 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안전, 편의, 번영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지나친 개인의 희생은 공동의 이익 증가에 상응할 만큼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다. 결국은 국가나 국가 안의 정당, 기업, 가족 등 인간의 모임간에는 협력과 경쟁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지속적으로 존속 발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균형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공정성의 기틀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공정성은 왜 중요한가 오늘날 우리 인간 개개인은 조직의 불공평한 힘앞에 철저히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공정성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또는 사회 계약에 대한 인당 기여의 불균형에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 공정성은 신뢰의 전제조건이고 신뢰는 거래의 전제조건이며 거래는 문명의 전제조건이다.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를 통한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기에 공정성은 모든 사회와 국가의 가치기반이 되어야 한다. 공정성이란 이해 충돌을 해결하려는 정신적 본능이자 행동 규칙으로서 사회 생활과 사회계층에서 생겨난다. 공정성의 뒤에는 두가지 주요한 선택적 힘인 상호 이익을 위한 호혜성과 사회적 화합을 위한 타협이 있다. 두가지 모두 실익을 극대화 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의 사회학자 쑨은 공정성을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경쟁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난 본능'이라고도 표현 하였다. 역사속의 공정성 기록된 인류역사서의 대부분은 공정성의 부재로 비롯된 불화(경쟁, 투쟁)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수천년에 걸친 국가나 사회조직의 발달은 서로 협력해온 공정성의 결과라 보아야 한다. 역사는 정치나 철학에 대한 동료평가다.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15만년전이고 인지혁명시기로 알려진 시기는 7만년 전이다.언어능력이 촉발된데서 기인하게 된 것이다. 이시기의 진보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억압하면서 강제된 협력행동과 이타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수렵과 채취경제하에 있는 동안 공정성은 평등과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조직의 사이즈가 커지면서 계급이 생겨났고 노예라는 사회계층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부터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자리를 잃고 수백년이 지나 국가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많은 수의 개인들은 소수의 지배계층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해야 했다. 이러한 불공정의 시대는 근대종교혁명 및 시민혁명에 의한 신의 대리제나 전제주의가 소멸하거나 약화되면서 공정성의 의미는 공평한 기회라는 의미로 나타나게 되었다. 모든 신앙의 윤리에 관한 교리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되었다. 종교의 교리적, 정치적인 표현에서 공정성은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찾아볼 수 없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고 타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양극화로 치닫게 된 것이다.
현 세계는 공정한가 저자는 공정성의 현 주소를 일상의 여러분야를 두루 연구하여 공정성의 현주소를 파악하려 하였다. 공정성이 가장 결핍될 행위 중 하나인 스포츠,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인 비즈니스와 경제, 공정을 기본으로 생겨났다고 하는 법과 과세, 디지털혁명에 따라 누구든 명확한 의사표현이 확대 된 미디어세상, 부정부패의 온실로 여겨질 정치와 행정, 마지막으로 인간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공정성을 살펴보았다. 결론은 대부분이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경쟁에 치우쳐 공존공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의 승리가 자만심을 갖게하고 약자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소수의 기득층의 권리확대에 치우쳐 끊임 없이 반목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본성은 공정을 추구하고 있고 그러한 노력들이 하나의 운동으로 탄생하고 있고 미래를 조금은 밝게 예고하고 있어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미투운동이나 흑인에게도 권리 존중하라는 운동 등을 그 예로 들었다.
하지만 갈길이 요원하기도 하다. 러시아의 푸틴과 일부 기득층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지나친 욕심이 혹세무민을 기반으로 자국의 오래된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길고도긴 종교분쟁의 역사를 소환하면서 가자지구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질서와 공정을 주장하던 미국이나 중국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호시탐탐 약탈과 착취를 위한 기회를 노리고 서로를 견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창궐 시 백신의 공급은 부자나라는 차고 넘쳤고 가난한 나라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것이 공정성의 현주소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간의 본성은 공정을 갈구하기에 서서히 시간을 두고 공정이 승리할거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공정과 어긋난 대표 사례로 박근혜가 있다. 박근혜의 경우 여러과정에서 능력이 입증된 공무원이나 교수, 정치인 등의 의견을 무시하고 본인 감정에 따라 자식 교육도 개판으로 시키는 최순실의 말만 듣거나 무능한 문고리3인방이나 친지들을 실세로 삼아 국정농단을 제대로 벌이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인해 추악한 진실이 전부 까발려지자 박근혜 본인을 포함 최순실 등이 감옥으로 끌려가게 되고, 최순실은 지금 현재까지도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아직도 몇몇 극우보수 인사들이 독재정권의 수뇌 박정희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면서 악행을 무시한 채 대를 이어 충성을 외치는 자태는 정치세력의 비호를 받는 일부 언론의 편파적 조작 아래 철저하게 계획된 우민정책의 결과라고 생각 된다. 확증편향에 빠진 채 화합을 미루고 경쟁 위주의 이러한 후진사고는 대한민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 악습일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갈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드는 공멸의 아집일 뿐이다. 외교 분야나 공기업과 대기업의 경우 비대칭적 정보의 우위를 활용한 재물 축재형 비리는 물론 자기사람의 요직 채용 비리가 끊기지 않고 터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사기업은 기본적으로 오너 일가 가족들과 친척들을 매우 잘 챙겨주고 나머지 일면식도 없는 일반 사원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종종 양심선언에 의한 대형 폭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무능한 오너 일가 가족들과 친척들이 회사 입사한 지 고작 2~3년 만에 임원 승진하고, 회사의 경영성과를 독식하면서 몸바쳐 일한 직원들의 복지에는 눈도 주지 않는 현실이 노사분규라는 투쟁으로 점철되어가는 현실 또한 불공정의 소치이다. 공정을 잃은 사회는 이미 존재의 기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침몰해갈 뿐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득층이 지나친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공정의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정당한 댓가를 취할만한지 뒤돌아보는 계기를 가져보고 한발씩 공정을 향한 걸음을 딛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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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이 불공정성의 반대는 아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간단치 않다. 인류 역사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이다. 이 균형은 국가들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정당 간, 기업 간, 그 밖에 가족을 포함해 지능 있는 인간의 우연한 모임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유전적 재능인 공정성 감각이 요구된다. 협력과 경쟁의 균형은 선조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뤄져 왔는데 이전 세대와 문명이 얻은 교훈은 온전히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유지하려 움직이는 것이다. 이 균형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이 공정성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공정성이 내재해 있어, 공정하지 않으면 원시적인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영리 단체의 예를 보자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종업원, 주주, 고객의 이해관계를 균형적으로 도모할 때 각 집단에 가장 큰 이익을 돌려줄 확률이 높다. 정지 또한 같다. 민주주의는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에 책임과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도 균형을 보여주는데, 정치인에게 공정성은 유행이다. 필요할 때 공동의 옷장에서 고르는 옷처럼 말이다. 공정성은 한때 쟁점이 됐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미국에서 일어난 경찰의 조지 플리드 사망사건)라는 운동의 중심에 있었는데, 인간은 경쟁과 협력이란 관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지은이는 인간의 타고난 의사 결정 과정인 공정성이야말로 궁극적인 해답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공정성의 가장 중요한 정의 중 하나 누구든 “제한”을 받아야 하는 원칙의 유지
사회 계약의 양 당사자 중 ‘통치를 하거나 행동규칙을 정하는 사람들도 통치를 받거나 행동규칙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정성으로 인한 제한을 받아야 한다.’라는 원칙이 깨졌다. 공정한 사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협상 지위를 위임받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통치를 하고, 합법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며, 진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공개하길 바란다.'라는 토대가 흔들렸다. 공정성은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이루려 했던 사회 유형의 중심축이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를 견제(법의 지배)하고 성인에게 참정권을 주어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했다(선거). 그리고 국가의 의무로서 환자나 노인들이 평생 비용 부담에 이바지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공정한 교환(연금)과 의료, 등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이른바 민주주의다.
공정한 것이 정당한 것, 평등한 것, 선한 것, 중립을 지키는 것과 다른 이유, 아니 그 이상인 이유 5
공정 의미의 다양성은 첫째, 공정과 평등의 구분, 평등과 같지 않다. 한 개인이 이익을 얻을 때 다른 개인은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개인 혹은 집단이 개인 또는 집단 간 복지의 교환에 동의할 만큼 서로 충분히 믿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상태다. 여기서 강요된 평등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평등을 추구하는 듯이 보일 때조차 실제로는 공정한 결과를 추구한다. 이것이 공정성을 평등과 구별 짓는 것이며 공정성은 평등과 같지 않다. 그 이상이다.
둘째, 공정성과 정당성과의 구별, 공동체 내에서 일부 사람들의 혜택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의 허용 정도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로 정당하다는 개념 또한 판단하는 사람과 판단되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을 포함하고 공정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롤스<공정으로서의 정의>법은 헌법에 부합하더라도 불공정할 수 있다는 말처럼)
셋째, 평평한 운동장 상태와 구분 짓는 공정성, 공동체 내에서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노력에 따라 똑같은 성공 가능성을 가지거나 또는 그 가능성을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는 상태, 평평한 운동장 개념이 한쪽을 유리하게 하지 않는 운동장만 공정하다고 암시하는 점에서 실제 공정성과는 다른데,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일 때도 평평하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회 중간에 양 팀의 진영을 바꿔버리면 된다. 글쎄다. 아무튼, 공정성은 유리하거나, 불리한 점을 제거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에.
넷째, 중립성을 지키는 것과 구별 짓는 것, 공정성은 중립을 지키는 것과 같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합의점을 찾으려는 사람이 모든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반영할 입장을 계산하기 위해 불필요한 편견을 버리고 권리, 자유와 같이 인간의 번영과 관련된 삶의 원칙에 집중하는 상태. 조금 어렵다. 이야기의 핵심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그 집단의 구성원인지 아닌지나 나이, 성별, 성적 취향, 인종, 종교, 국적 등의 구별 요소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섯째, 공정성은 옳고 그름의 절대적 정의가 공정성에 의해 보류되거나 인정되지 않는 상태다. 화합, 합의, 번영을 우선시하는 동의로 대체된다. 공정성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것과 구별 짓는 것이다. 공정성은 선과 같지 않고 그 이상이다.
이 다섯 가지 상태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상황에서 적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공통적인 한 가지 요소, 절차적 접근법이 절대적인 접근법을 대체했다. 즉, 균형, 한도 내에서 행동할 자유, 공공복리의 우선순위 매기기, 동의 우선하기, 기존의 전제 조건에 순응하기가, 강요된 평등이나 법의 지배, 옳고 그름이라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 신념을 대체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공정하다는 것은 다섯 가지 외에도 다른 정의들이 존재한다. 이는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뭔간가 공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들, 고용주와 노동자, 부모와 자녀, 인종과 인종, 성별 등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기능하는 공정.
지은이 벤 펜턴, 30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15년전부터 공정성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연구자들 못지 않게 그만의 시선으로 존 롤스의 이론과 프린시스 후쿠야마의 논점 등을 꽤 날카롭게 지적한다. 공정성의 원칙, 역사에서의 공정성은 꽤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며, 다양한 관점에서 공정성을 톺아보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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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으로 유명했고 예전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는 책으로 유명했던 마이클 샌들교수의 정의론은 대학교 때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책입니다.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공정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정은 무엇이고 우리가 당연히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물음에 반대의견을 과감히 이야기하는 책이었습니다.
최근 필리핀에서는 선거가 꽤 신기하게 돌아가는 생각이 드는 것이 두테르테를 시작으로 지금은 필리핀의 독재자였던 사람의 아들인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 두가지의 공통점은 누군가가 SNS에서 선동을 했고 그 선동에 무지성으로 흘러든 사람들이 유권자가 되어서 선거권을 행사한 결과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다룬 책이 있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정치인에게 공정성은 유행이다." 라는 말에서 그 유행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와 그리고 그 유행을 이용한 결과를 미국정치에 빗대어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린 대부분 공정이라고 하면 서구국가를 먼저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권위와 상하계층을 공식적으로 교육했고 정당성을 부여했던 유교권에서는 상하계층문화가 강력한 국가이념으로 자리잡게되었고 민중에겐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것을 우린 "충"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서구문화는 혁명과 자유가 존재했고 그 속에 공정이라는 가치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꼭 그렇진 않았습니다. 특히 영국은 더욱 그런 공정과는 반대되는 국가라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터키에서는 국가원수를 만들어냈던 전쟁이었으며 무스타파 케말이라는 영웅을 만들어냈던 전투였지만 영국에서는 해군성 장관 처칠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했고 4대 패전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을 덧댄 서평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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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책을 읽는 와중에 ‘예고입시 논란’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미술 실기 평가에서 ‘화지 방향을 가로로 하라’는 제시문을 무시하고 세로로 그린 입시생들이 다수 합격한 것으로 드러나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조건에 대한 감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그런 규칙을 세운 이유가 무엇이며, 실기 주제는 세로로 그려야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주제였다는 사족도 달렸다. 책의 서론에 나왔던 ‘공정성은 신뢰의 전제 조건’임을 상기시킨다. 입시생들이 제시문에 상응해서 가로로 그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가로로 그리지 않았다면 당연히 불합격 처리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3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한 영국의 언론인인 저자도 수많은 사건사고를 취재하면서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공정’이 있음을 간파했다. 경제와 정치,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어느 때보다 공정성을 부여하고 공정함이 기준점이 된 시대가 된 것은 빈부와 계급의 격차가 전세대보다 더 큰 폭으로 벌어졌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공정이 곧 페어플레이이라는 단어와 동일했을 때조차 지금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만큼 요원하지 않다는 사실은 예고입시처럼 간단하다면 간단한 사안에서도 드러난다. 해당 예고의 채점기준에 대해 제재를 가할 권한이 있는 곳이 없다는 점 또한 저자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공정한 사회에서 우리는 권한을 위임할 필요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권한을 버릴 필요는 없다.” 공정성을 대표하는 스포츠경기에서 심판은 많은 권한을 가지지만 그 권한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된 규칙과 같다. 변수가 많은 경기의 결과에 왈가왈부할 소지가 훨씬 적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수가 공정성에 기초해 만든 규칙에 동의한 ‘미묘한 위임’을 했기 때문에. 책은 공정의 개념과 소용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열거하고 있지만 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공정성은 타고난 것이며 인간의 DNA에 있다는 말이다. 모든 불평등, 불공정, 불의에 대응할 수 있고, 그래서 한편으로 그 차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임을 알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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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이 말은 문재인 1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지금도 세상은 오히려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난리들이다.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고 상식대로 하면 순진한 사람이고 손해를 보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공정이란 무엇인가/벤 펜턴지음, 박정은 옮김)"을 읽었다.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우리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인 질문의 해답"이라는 말이 묘하게 당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정하다(to be fair)"는 의미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불행하게도 그냥 쉽게 "뭐, 그런가 아니야?"하고 넘어 가다가 이렇게 철학적이고 과학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유머가 들어간 저자의 "공정"에 대한 해석과 발자취를 듣는 것은 새로운 의미(정의)의 세계에 들어온 듯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결국 깨닫게 된 사실은 공정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보다 "실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약속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는 것 처럼 공정은 권력으로 쉽사리 정리정돈될 수 있는 그 무엇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은 영어로 "The ultimate guide to fairness in the 21st century"라고 적혀 있는데 이 말의 영감은 바로 바로 더글러스 애덤스의 저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하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cy)"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서문에 그 책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이 뜬금없이 나온 이유는 바로 42라는 숫자때문인데 42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해답"으로 나온다. "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42라는 숫자의 은유를 통하여 찾고자 하는 듯 하기도 하다. 저자는 또한 영국 크리켓 경기의 규칙 42조가 페어플레이에 관한 규정이었다고 소개를 하면서 42와 공정의 우연한듯 철학적인 연관성을 뛰우고 이 책을 시작한다.
공정의 정의부터 시작하여 분야별로 공정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공정성의 원칙, 신경학/심리학에서의 공정성연구, 역사에서의 공정성, 영어권국가와 공정성, 스포츠(그리고 전쟁), 비지니스/경제, 법과 과세, 의사소통과/기술, 정치와 정부, 인간관계에서의 공정성 등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를 한다. 고정이란 의미를 아주 깊이있게 그리고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고 잠시나마 사색에 젖게한다. 저자는 공정의 정의를 협력과 경젱사이의 "균형"을 이루기위한 과정에서 우리가 공정의 개념이 작용하게 되는데 유전적 재능이라고 한다. 또한, 공정은 "과정"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과정은 공정"처럼 말이다. 저자는 또한 "공정"의 반의어는 "불공정"이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각각의 경우 뇌의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인데 잘은 모르겠으나 이처럼 뇌의 반응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은 불공정의 감지와 공정의 판단이 서로 다른 계산임으로 시사한다고 한다.
내용이 때로는 어렵고 한 참 생각을 하다가 넘어가고했지만 분야별로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 읽어보면 우리 안에 유전적으로 내재된 "공정"의 의미와 실천방안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각각의 논제에 대하여 논할 정도의 지식과 지적인 훈련이 부족하여 이 정도로 하고...마지막에는 다시 페어플레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그는 페어플레이 정신의 귀감이고 그의 등번호가 42번이다! 저자는 여기서 또 다시한번 재키 로빈슨이라는 흑인 최초의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와 그의 등번호 42번으로 상징되는 페어플레이가 (공정에대한) 궁극적인 질문의 해답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 조금더 공정에 가까워질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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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고 고민해 왔습니다. 많은 현인들이 이 질문애 대해 다양한 답을 제시했으나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이 나오는 그날, 아마도 소모적이며 비생산적인 모든 분쟁들 중 상당수는 중단되고 개인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공정"의 이슈는 인간의 문명과 사회가 중시했었고 지금도 그 해결에 많은 공을 들이는 오랜 난제라고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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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 책은 정치가 바뀔수록 10년이 지나도 공정을 내세워 떠벌리는 일들이 무슨 엿장사 노랫가락처럼 너무나 쉽게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들려둔다. 저자는 3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한 영국의 언론인으로 경쟁과 협력 측면에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생각했을 때, 인간의 타고난 의사 결정 과정인 공정성을 이 책에서 말해준다.
한국 경제 위기의 유일한 해법은 무엇인지 정치인들과 정부는 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불공정을 느끼는 일반인들도 이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독한다면 더 나은 공정성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공정은 정치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문화 스포츠 사업 등.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기적인 공정과 힘있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정부의 직무유기 인간들의 피폐한 정신들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해치고 있다.
페어플레이는 온데 간데 없이 내가 산다면 남은 죽고 못살아도 된다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지옥에 사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 정부의 책임이자 정치인들의 책임이자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인간들의 거짓연기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 공정성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공정성의 해답이 무엇인지 습득하는 귀중한 독서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만든 법들이 오히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해치고 정의롭지 못한것들을 합법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고 무엇이 불공정이고 무엇이 공정인지 헷갈리는 모습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공정한 세상에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공정을 외치지만 사실 정확히 공정에 대한 설명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정에 대한 피해들은 모두 서민들이 당하는 현실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조건 공정에 대한 손을 들어주지 않고 모두가 공정이라는 그 지점에 다다를 수 있는 페어플레이에 대한 부각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떼쓴다고 되는 것이 아닌 공정에 대한 기준을 바로 잡아주고 오히려 이것을 통해 공정이란 무엇이고 공정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의 토대를 만들어주는데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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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공정한 경기를 원한다." "결과와 과정 모두 공정해야 한다." 공정, 공정, 공정... 하지만 정작 '공정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쓰는 걸까? 혹은 막연히 드는 '불쾌한 감정'을 불공정이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막연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쳐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공정'이란 무엇일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써 보고 싶었습니다.
'공정'이 사라진 시대 오늘날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서로를 비난하는 데 수많은 시간을 쓰는가? 왜 우리는 불공정을 그토록 강하게 느끼는가?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적인 관계부터 사적인 관계까지 읽기만 해도 공정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가장 확실하고도 궁극적인 해답
『공정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거대한 인간 마을의 지혜로부터 이득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신 군중 심리를 제공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은 파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상호 적대감을 가지고 흥분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라는 부채질 기능 덕분에 상호 적대감이 마치 관중이 지켜보는 스포츠처럼 되어 버렸다. 깨끗하고 좋은 물이 흐를 때는 더러운 찌꺼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쉽게 격해지는 분위기를 이용해 목적을 이룬다. 지금 인터넷은 엄청난 소동들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공정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 page 37 ~ 38
SNS가 다양해지고 전파 속도가 빨라진 요즘. 여기에 '공정성'이 엮이고, 일부 불순한 의도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인과 기업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또 스포츠 영웅과 악당,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 가장 경멸하는 유튜버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들은 우리의 먼 조상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소수의 사람들 (친밀하고 사적인 접촉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말, 행동, 창작물을 우리가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보도하고 요약해야 한다. 중개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이 그들의 유권자, 고객, 팬에게 하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그들이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지, 진짜 의도와 행동을 공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을까? - page 281 ~ 282
그렇기에 '공정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해야 함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1부에서는 공정성이 어디에서 나왔고,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지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였고 2부에서는 스포츠, 전쟁,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 세금,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공정성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은 공정하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거나 대처할 수 없는 단어이자 개념인 '공정한(fair)' '공정성(fairness)'. 공정은 오로지 공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다는 것의 의미는 상호 간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그리고 같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다른 집단에 그들이 틀렸다고(또는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공정성을 고취하는 방법은 불공정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달라지게 하는 행동은 언쟁 대신 이념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page 345
공정성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행위인 이타주의, 관대함, 친절함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우리가 타고난 감각인 '공정성'을 이용하여 무엇이 공정하고 공정하지 않은지, 더 나은 사회를 찾기 위한 균형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 보며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읽고 나서 혼돈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딱 떨어진 정의를 원했기에... 하지만 단순히 정의로 학습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을. 옳기만을 위한 것보단 공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을. 우선 나의 공정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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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혹은 공정성이란 개념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상은 스포츠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페어플레이에 관해 언급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공정성에 대한 개념을 많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이야 당연히 운동 경기에서 '규칙'은 경기 참여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대, 다시 말해 참여자 각자가 자기만의 규칙으로 같은 경기에서 임했던 적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어떻게 경기가 진행될 수 있었을까?
아무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스포츠 종목들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기 위해서 규칙이 자리잡는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나 법, 사람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 정치, 인간관계 등에서도 공정성이 정상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정착시키는 과정을 겪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내용은 바로 인류 문명의 발전에서 협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에 관해서다. 하지만 이 협력이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큰 논의가 없었거나, 적어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벤 펜턴의 책은 바로 이 점에서 독자들에게 더 큰 생각의 진전을 도와준다.
인류 문명이 오늘날처럼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에 정신적, 물질적 가치 교환의 활성화가 핵심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 간의 신뢰와 협력이 필요했고, 이 신뢰와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의 근간에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다.
이 책이 전하는 또 하나의 주요 명제는 ‘경쟁과 협력의 균형’이다. 인류가 생존을 위한 경쟁에만 치중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협력에만 몰두했다면 문명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다른 종보다 더 큰 번영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경쟁과 협력의 균형의 실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생존과 번영의 핵심에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있었고, 이것이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무형의 자산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현대사회에서 이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퇴색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를 갈등과 분열, 분쟁으로 물들이고 점점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여기에 가장 큰 부채질을 하고 있는 요인으로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그에 반비례하는 경쟁의식의 증폭을 들고 있다. 쉽게 말해 정보통신의 발달이 사람들을 협력과 상생보다 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공정 또는 공정성의 감각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 또는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이 순진한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해 저자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이나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 압박을 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 역시 공정성의 감각으로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 네이버 「북유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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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는 능력은 경쟁하는 능력만큼이나 생존에 중요하다. 우리는 지속되고, 번영하고,번식하기 위해 혈연관계를 훨씬 넘어서는 사람들과 서로 의지한다. 우리 조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공감하는지가 개인으로서 얼마나 성공할지를 결정한다. 그 복잡한 협력 관계 중 하나가 가까운 이웃이 환경에 대해 걱정할 때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31-) 종교는 고대인들 못지않게 그리스 문화 구조의 일부였지만, 별도의 엘리트 계층 성직자나 '신이 임명한' 왕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통의 남녀들이 스스로 짠 구조였다. 종교의 역할은 중심적이지만 지배적이지는 않았다. 관습이었고 법규의 일부였지만 , 주인의 말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하인과 같은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30인 폭군의 통치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동료 아테네인들에게 처형되었다.그에게 제기된 혐의 중 하나는 아테네가 인정한 신들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134-) 윈스턴 처칠 은 개인적 이유를 넘어 은행가, 비즈니스, 파산 위기를 싫어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금융에서는 기분 좋은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믿을 만한 모든 것은 불쾌하다.'이 말은 간단한 말 같지만 지극지긋한 경멸에서 나온 표현이다. 금융의 기초는 거래와 위험을 완화하는 신뢰다. 개념으로서의 거래와 신뢰의 기초를 아는 것 또한 평판이다. (-238-) '언론의 불공정성은 직접적인 거짓말과 사기로 표현되는 일이 거의 없다.훨씬 더 흔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뉴스 보도의 관행에 의한 것이다. 뉴스 기자와 편집자의 노선이 무엇이든 뉴스를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기대하는 운영 방식 때문이다. 그런 방식이 복잡성을 잃게 하고 그래서 불공정으로 이어진다. 뉴스는 강제로 견본에 맞춰져야 하고,이는 뉘앙스에 맞지 않으며 따라서 공정성에 맞지 않는다. (-291-) 공정함(fair), 공정성(fairness), 정당한(just), 정의 (justice), 자유(Liberty) 가 있다. 이 다섯가지 가치는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로 손꼽는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공정이 있었다. 공정이라는 단어, 개념은 영국에서 파생된 개념이 아니라고 이 책에 적혀 있다. 뉴질랜드 원시인 부족이 만든 공정이라는 개념를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이 가져다 쓴 개념으로서, 윈스턴 처칠 수상은 공정을 전쟁에 이용하였고, 영국을 공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인간이 모여 있을 때,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 공정이 만들어진다. 수렵 채집 에 의존하는 삶에서는 공정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단위 농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신뢰가 필요하고, 공정이라는 단어를 요구하게 된다. 문명은 신뢰와 협력, 공정으로 만들어진 큰 국가 개녑으로서, 공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과 동일시한다.아느 사람이 함께 일을 할 대, 존재하지 않았던 공정이라느 개념이 서로 모른은 사람이 서로 협력관ㅇ계를 형성하면서, 공정이라는 룰 위에서 일을 하게 된다. 공정의 반대말은 불공정이 아닌 반칙이다. 스포츠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정함을 최우선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규칙을 만들고,그 규칙의 범위 안에서, 공정한 게임을 요구한다. 야구에서 빈볼을 던지는 이유도, 심판이 야구 규칙에 따라 시행하였지만, 공정하지 않은 순간이 항상 생기기 때문이며, 상대는 공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빈볼을 던져서 ,경골르 주며, 함께 하는 선수들간에 , 사기를 증진하며, 협력을 도모한다. 공정이라는 것은 평등과 다른 의미였으며, 함께 이하는 이들이 공평하게 분배하거나 나누기 위해서 존재한다.어떤 상황이나 어떤 조건에 대해서, 공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누군가가 구성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공정을 지킬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공정이라는 가치가 우리 삶의 생존을 위한 목적성을 띄고 잇지만,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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