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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 역설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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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주제 사라마구의 82년도 작품이다. 본 작이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고 하는데, 내 소견으로는 포르투칼의 18세기가 배경인 탓에 역사적으로 무지하기에 내용과 행간 의미 파악이 힘들고, 그의 독특한 서사 수법 (문장 부호가 없고 장문의 사용)이 두드러진 탓에 읽기가 곤혹스럽고 한 탓에 가 더 뛰어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본 작품이 실망스럽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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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은 주제 사라마구의 82년도 작품이다. 본 작이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고 하는데, 내 소견으로는 포르투칼의 18세기가 배경인 탓에 역사적으로 무지하기에 내용과 행간 의미 파악이 힘들고, 그의 독특한 서사 수법 (문장 부호가 없고 장문의 사용)이 두드러진 탓에 읽기가 곤혹스럽고 한 탓에 <눈먼자들의 도시="">가 더 뛰어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본 작품이 실망스럽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소설은 18세기 포르투칼을 배경으로 포르투칼왕 주앙 5세가 마프라에 거대한 수도원을 짖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이 나타내고 있는 수도원의 건립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사라마구는 기존의 권력에 의한, 귀족에 의한, 가진 자에 의한, 종교에 의한, 역사의 편향성을 비웃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 같다. 수도원 건립이라는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사건은 역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빠사롤라의 제작이라는 사건 앞에서 우리의 세 주인공 (발따자르, 블리문다, 로렌수 신부)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기계적인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 반면 세 주인공에게 있어 빠사롤라를 만드는 일은 생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과정으로 화한다. 빠사롤라가 산자의 ''의지''를 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빠사롤라를 만들고 하늘을 난다. 이러한 면이 수도원 건립이 오로지 왕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영문이나 이유도 모른채 막대한 건립 공사에 이용당하는 신민들의 행동과 대비된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기존의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하층민 남녀이다. ''''발따자르 세뜨 쏘이스와 블리문다 쎄뜨 루이스'''', 작가는 이 두사람의 가난하지만 진실한 사랑과 주앙5세와 마리아나 왕비와의 관계를 대비시켜 기묘한 반응을 만들어낸다. 신성을 주여받은 왕의 우스꽝스러움에 비해 전직군인 발따자르의 갈고리를 단 왼손과 그의 사색은 오히려 근엄해보인다, 두 사람의 신분이나 외향은 정반대지만 두사람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인식 등에 있어서는 역전된 모습인 것이라고나 할까, 또 블리문다는 영혼을 보는 능력을 타고 났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은 하층민인 그녀의 신분과 지위에서는 지녀서는 안될 것이며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 종교 재판소에 알려진다면 마녀사냥 감에 지나지 않는 위험한 능력이다. 이러한 왕과 하층민의 대비는 발따자르와 블리문다의 이야기 이외에도 여러 인물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작품내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물론 대다수 신민들은 그 자신의 인식론적 한계, 즉 우매함을 보이지만 수도원 건립을 묘사하는 장면들에서는 묘사의 힘을 통해 왕과 종교의 권위에 대한 의문과 문제제기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왕과 하층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점의 이동 사이에서 작가는 중립적인 시선을 견지하려 한다. 왕과 신민 사이 또 종교와 이단 사이에서 균형적인 시선을 보임으로써 기존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왕권과 종교에 편중되었던 권력 중심의 불합리한 역사 서술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외에도 이 작품은 종교와 신에 대한 조롱을 수시로 나타낸다. 무신론자인 나로써는 통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작가가 나와 같은 바탕없는 무신론자는 아닌 것 같다. 사라마구는 신을 조롱하고 중세의 질서에 문제제기를 통하여 신의 의미를 되새겨보려 한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비판과 문제제기를 통해 신을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은 신과 종교에 대한 근원적 믿음과 성찰을 통한 것이다.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인간적으로 헤아려보려는 노력,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신의 가치가 상단되는 이유에 대해 신에게 정중히 묻고 신에 맹목적인 인간들에게도 똑바로 볼 것을 청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마도 신은 오른손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작품 속의 대화는 갈수록 보수화되는 현대의 세계정세를 신의 손길에 빗대어 조롱한다. 포르투칼도 남미 계열인지 확실히 잘 모르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마르께스나 보르헤스 등과 같은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의 특징은 20세기 문학의 엄청난 성과이다. 현실적 관점 즉 비판적 인식을 유지하는 한편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서사적 글쓰기는 브레히트의 소외효과와 리얼리즘적 접근에 덧붙여 소설적 상상력과 남미 문화적 전통이 총체적으로 합치되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서정으로 통하는 감성의 힘과 서사로 통하는 인식의 힘을 함께 아우르는 문학과 철학의 결과물로 거듭난 것이 아닌가 싶다.
b********t 2005.07.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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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비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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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국민작가이자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1998년 한림원은 사라마구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수상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인간애 및 풍자에 근거한 새로운 소설의 영역을 개척했다." 18세기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블리문다와 발따자르.. 블리문다는 태어날 때부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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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국민작가이자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1998년 한림원은 사라마구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수상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인간애 및 풍자에 근거한 새로운 소설의 영역을 개척했다." 18세기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블리문다와 발따자르.. 블리문다는 태어날 때부터 신비한 투시력을 가졌고 그의 동반자인 발따자르는 전쟁에서 왼팔을 잃었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인물들이다. 가난하고 무식하며 사회적으로도 약자인, 하지만 그래서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런 면에서는 매우 특별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블리문다의 어머니가 유태교인이라는 이유로 화형당하는 장면에서 운명적이며 절대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때 블리문다가 바르똘로메우 로렌수 신부에게 말했다. 저기 우리 엄마가 있어요. 그리고 자기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블리문다에게 대답했다. 발따자르 마떼우스요. 혹은 세뜨 쏘이스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그리고 발따자르는 이 여자야말로 그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훌륭한 신학자이자 발명가인 바르똘로메우 로렌수 신부와 함께 하늘을 나는 기계, 빠사롤라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하늘을 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지 못하는 그들은 단지 성실함과 신부에대한 믿음,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인내로 결국 하늘을 나는 기계 빠사롤라를 완성한다. 이 빠사롤라('큰 새'라는 의미)는 바로 자유를 상징한다. 절대왕정의 시대, 그리고 종교의 압박과 삶과 죽음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벗어남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블리문다와 발따자르는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영혼들이다.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인생들이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만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들, 곧 왕과 왕비, 종교지도자들, 귀족, 백성들이 얽매어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와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비둘기들은 달아나려고 애쓰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둘기 중 일부는 날아올라 사람들의 손과 외침소리로부터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그것들은 햇빛을 받아 금으로 만들어진 새처럼 반짝이며 지붕 너머로 사라졌다." 한가지 더... 하늘을 나는 기계 빠사롤라의 작동원리가 무엇일까.. 사실 몇줄짜리 좀 모호한 신부의 설명이 전부이지만, 분명 그 원리는 우리가 타는 비행기의 비행원리인 추진력, 양력, 항력 등은 아니다. 그 원리는 신기하게도 바로 인간의 의지이다. 거대한 빠사롤라를 하늘로 날아올리게 하는 힘은 바로 블리문다가 모은 2천개의 인간의 의지란 말이다. 자유를 위한 비상에는 나약하지만 바로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비록 빠사롤라의 실험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마침내 열한 명의 사람들에게 판결이 내려졌다. 화형식을 하는 기둥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희생자들의 얼굴은 좀처럼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화형을 당할 사람에게는 왼손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화형을 당할 사람에게는 왼손이 없었다. 그의 검은 수염 때문에 숯검정이 만든 기적 같은 변화 때문에 그는 무척이나 젊은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의 심장 근처에는 검은 구름이 모여 있었다. 블리문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리 와요. 어서. 발따자르 세뜨 쏘이스의 의지가 서서히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 의지는 천상의 별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발따자르의 의지는 지상의 것이었고, 블리문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이책에는 문장부호가 많이 생략되어 있으며, 문단의 구분만 있을 뿐 대화와 서술, 인용 등이 서로 구분되어있지 않고, 작가가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에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던진다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것일까..
b****0 2004.09.2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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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에 이어 또다시 만나는 수도원의 난해함
"에코에 이어 또다시 만나는 수도원의 난해함" 내용보기
서평쓰기에 앞선 불평 한가지. 번역의 조야함이란, 내 전공서적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술술 읽히는 데서 오는 소설만의 쾌적함도 없었고, 역자 4인이 찬미하는 감동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으며,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좋지
"에코에 이어 또다시 만나는 수도원의 난해함" 내용보기
서평쓰기에 앞선 불평 한가지. 번역의 조야함이란, 내 전공서적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술술 읽히는 데서 오는 소설만의 쾌적함도 없었고, 역자 4인이 찬미하는 감동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으며,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좋지 않은 번역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포르투갈어 판 번역도 아닌, 1998년 판 영국 하넬사의 [발따자르와 블리문다]를 번역한 영·한 번역판에다가 4명의 공동번역이라니, 정말 실망이다. 사실 이런 나의 분노도 실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권의 소설, 그것도 에코만큼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을 참을성있게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이 소설로 명성과 부를 얻기 시작했고, 영광스러운 리스본 문학상도 받았는데, 내겐 왜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 것일까. 아무래도 해답은, 에코가 했던 말대로 소설을 쉽게 읽으려 하는 나의 게으름 때문이겠지만, 소설은 소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뉴욕 타임즈는 이 소설을 두고 '한 편의 로망스이자 모험담이며, 18세기 포르투갈 왕가와 종교에 대한 반추인 동시에 권력의 사용에 대한 통렬하고 아이러닉한 비평'이라고 했지만 내 판단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은 '비판할 꺼리가 너무 많아 한 궤에 꿰이지 못했고, 풍자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은 너무 피상적이고 직접적이라 맛을 느끼지 못했으며, 로망스치고는 싱겁고, 모험담이라기엔 박진감이 모자라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다. 다만 한 가지 맘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인 발따자르와 블리문다가 아무런 힘도 없는, 그러나 사실은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인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캐릭터 자체가 가지는 힘이 소설에 박진감을 불어넣고, 이 참담한 시대에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 결론은 났다. 그의 소설 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1차 목적만이 독서의 목적이 아니라면, 나의 독서 폭을 더더욱 광범위하게 넓히리라.

[인상깊은구절]
왕은 비록 라틴어를 읽을 수 없지만, 교황의 이름 다음에 붙은 숫자가 자신의 이름 다음에 붙은 숫자와 똑같다는 사실에 대해 언제나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왕에게 있어서 겸손이란 미덕이 아니라 허약함의 증거인 법이다.
b*****o 2000.09.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