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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프랑스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앙드레 풀랭 작가의 글과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작품을 활동을 하고 있는 소피 카슨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그림책 표지에 함께 있는데요. 도대체 무엇을 못 본 척 한 것이지, 더 큰 글씨로 못 들은 척, 더더 큰 글씨로 모르는 척 한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림책 면지를 펼치면 평온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씨를 뿌리고, 초록색 채소를 수확하는 모습이 광활해 보이는 밭과 그 뒤에 아름다운 산이 배경처럼 보입니다. 자연 속에서 아늑한 느낌을 주는 면지를 지나면 표제지에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한 존재가 보입니다. 첫 페이지에서는 경고문을 읽게 되는데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지도 몰라."라고 하는데요. 더 궁금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할어버지가 살고 있는 고즈넉한 호숫가 마을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별 일 없이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에게 누군가 모조리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화난 표정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그림으로 넘어갑니다. 붉은 여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그들은 붉은 여우가 너무 빨갛다고 좋아하지 않아서 거슬린다는 이유로 잡아갑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못 본 척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나름의 이유도 있었습니다. 붉은 여우가 매캐한 냄새가 났고, 할아버지는 그 냄새를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함께 읽은 아들이 인종 차별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저는 제가 무너가 못 본 척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럴 때는 어떤 것이 내게 중요했을까? 나의 안전이나 미움 받기 싫음이 먼저 떠올랐는데요. 아들과 함께 숨죽이면서 다음 이야기를 읽어 나갔습니다. 면지에 보였던 평화로운 늑대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 모습이었는데요. 늑대들은 마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고 그들은 늑대들의 땅을 빼앗아 갔습니다. 할아버지의 표정도 점점 변해가는데요. 두려움과 불안함과 죄책감이 뒤섞여 가는 모습으로의 변화는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달 되었습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인종 차별, 식민주의, 종교 박해, 동성애 혐오, 약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르틴 니묄러라는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의 시를 바탕으로 했다고 알려 주는데요. 그림책을 다 읽고 <그들이 처음 왔을때...> 시를 읽으면 마음이 더 먹먹해 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서 토론을 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지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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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토론 주제가 되는 그림책의 내용입니다. 이 그림책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면 재미없다고 하는 뉴스를 관심 깊게 볼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겠네요.
사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사는 것이 편합니다. 현명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이렇게 편하게 사는 생활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종 차별, 식민주의, 종교 박해, 동성애 혐오, 약탈. 당장 내 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서 무관심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서야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도 나의 절실한 문제에 무관심합니다. 주위의 아무런 도움이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요.
그럼 우린 이런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보았다고, 들었다고, 안다고 나서야 한다고 그냥 나서면 될까요. 그냥 불쑥 나서기만 하는 것보다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서는 것은 나의 의견을 상대가 받아들여 달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시원하게 하며 상대를 조롱하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까요. 나 혼자서만 정의롭다고 생각하면 변화가 일어날까요.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나의 바람과 우리의 바람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까요. 아래와 같은 단계로 하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시민의 각성, 소통과 협력, 담론 형성, 강한 바람을 일으킨다, 정치인에게 영향을 미침, 새로운 법안 통과, 사회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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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앙드레 폴랭 글/ 라미파옮김/ 한울림어린이 암묵적 용인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괜히 불편한 일 만들지 말아야지.” “또 저 얘기야? 지겨워. 알아서들 하겠지.” 세상을 살아가며 반쯤 눈 감는 일이 빈번하게 생긴다. 바빠서, 보기 싫어서, 듣기 싫어서, 너무 복잡해서, 나랑 큰 관계가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여러 일들을 묵인하고 넘긴다. 앙드레 폴랭의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세상을 향한 침묵의 대가, 무관심의 위험하고 끔찍한 최후를 다룬다. 아주 중요하고 무거운 이슈를 짧고 강렬한 비유를 통해 임팩트있게 전해준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 요약본 같기도 하고, ebs 지식채널 한 편 같기도 하다. 초등, 중등, 고등 학교급에 관계없이 두루 볼만하고, 학생들을 뛰어넘어 성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작게는 학교폭력과 같이 학생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무관심을 다룰 수 있고, 광의의 의미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둔감함과 외면까지 짚어볼 수 있으며 현재의 이야기뿐 아니라 과거(이를테면, 일제 치하)의 이야기까지 책을 통해 확장해갈 수 있는 외연이 아주 넓고 깊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구절 두 개를 적으며 오늘 내가 눈감았던 뉴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부당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 덧, 할아버지 초상화의 표정 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암묵적동의의잔인함#언제가돌아오게될화살#앙드레폴랭 #라미파#한울림어린이#못본척못들은척모르는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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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데스몬드 투투,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다." 장 폴 사르트르. 어떤 때는 나 역시 그들이 싫고 귀찮아서, 내가 그들과 친하지 않았고, 그들이 없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 우리는 그들이 받는 억압이나 탄압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찬성하진 않지만, 굳이 내가 함께 부당함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어쩌면 그들이 당하는 부당한 처우가 전혀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얘기를 흔히 '불편러'들의 수 만 가지 불평불만 중 하나일 뿐이니 귀담아 들을 필요조차 못 느끼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어떤 이들이 당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막아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혹시 그 칼끝이 나를 향할까봐, 내가 손해를 볼까봐, 나도 그들처럼 당할지도 모르니 그냥 가만히 있자...하고 생각하기에. 한 두 명이 휘두르는 총칼에 수많은 사람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장면을 볼 때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 줌도 안되는 저들을 덮치면 이길 수 있을텐데, 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을까?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저 총과 칼이 나를 위협할지 모르고, 그 총칼에 내가 다칠지도 모르니 그저 가만히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고 있을 때 침묵한다면 힘을 가진 이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자신들과 자신들이 아닌 무리로 갈라치고, 자신들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것은 겁에 질리거나, 연루되기 싫은 침묵하는 다수에 의해 용인되고, 합당한 일이 되는 것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노동조합원들을, 유대인들을, 가톨릭신자를, 집시를, 성소수자들을 잡아갔을 때마다 침묵으로 동조했기에, 나 역시 나를 위해 나서줄 이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70년이 더 지난 지금, 여기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대중교통을 누구나 똑같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교통약자들의 시위를 출근길을 방해하는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했고, 급식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강도를 줄여달라는 파업을 아이들이 먹을 밥을 볼모로 삼는 무도한 사람들로 매도하면서 갈라치고 있는 사회다. 나치는 없지만,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한다면 결국 우리가 언젠가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설 때 우리 역시 파렴치하고 무도하고 무지한 사람들로 몰리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해서는 안된다. 저 사람들의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아야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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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려... 3주 넘게 걸려 배송받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은 (다른 서평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좀 그랬다....ㅠㅠ 하지만 막상 책을 받고 읽어보니 그 동안의 기다림은 싹 잊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림책에서 좋아하는 일러스트를 꼽으라면, 밝은 색감과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일러스트를 선호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으로 시작해서 좋았다. 물론 제목과 이어지듯 책의 첫장엔 무시무시한 경고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아마도 작가의 이런 메세지가 밝고 따뜻한 느낌의 일러스트와 대비되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들은 늑대, 사막여우, 빨간여우, 개와 같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실상은 우리들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우리는 안다. 작가는 약탈, 식민주의 차별과 혐오, 박해 등과 같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혹은 현재진행형인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도 책의 말미에 함께 실려있어 침묵하는 방관자가 바로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다시 한번 전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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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호숫가 마을에서 붉은 여우, 늑대, 코요테, 사막 여우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던 할아버지는 '그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붉은 여우부터 시작해서 마을 동물들을 차례차례 잡아가는 동안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는 편을 택했다. 할아버지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또는 겁이 났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마을 동물들 모두 잡혀가고 난 뒤 '그들'이 할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할아버지를 잡으러 왔을 때, 이미 할아버지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다. 이 책은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종교 박해 등 억압과 불의, 폭력을 일삼는 ‘그들’과 차례차례 피해를 당하는 호숫가 마을 동물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할아버지 '개'의 이야기를 통해 침묵하는 방관자가 곧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나치 시절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마르틴 니묄러가 쓴 시〈그들이 처음 왔을 때…〉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니묄러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방관한 자신을 반성하며 쓴 시이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우리나라,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의 모습에도 투영된다. 우리도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며, 혹은 방관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책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옳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내어 당당히 말하는 것이 희망의 출발점이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서로서로 손을 굳게 잡으면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우리 서로 굳게 잡은 손, 그게 바로 희망이야.”라는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작은 등불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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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처음 왔을 때... 라는 마르틴 니묄러의 시로 시작해 본다. 언젠가 이 시를 보았을 때 마지막 구절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준과 차별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의 기준이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와 사람의 기준이 선하다고 할 수 있는 범위는? 법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이 그 자체의 정당성을 위해 '최소한'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요즈음, 기준이라는 것이 배척이나 구분을 위해 존재한다면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라도 정당성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기준이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옳고 그름은 있지만(양 극단의 위치가 아닌) 무수한 인간세계의 사건들 속에 우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조금 더 그러한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준에 의한 차별, 구분짓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기 보다 구분지어지는 것에 관한 부당함이다.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로 인한 불편함은 개인적인 감정이면서도 학습된 사회적 모습을 가지고 있고, 참기 어려운 부당한 요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 역시 양 극단을 제외하고는 구분된 것의 모호성이 혼재하는 사회의 모습이 보편적이라고 생각된다. 기준과 차별에 대한 타의성에 대비하여 능동적 주체로 '내가 할 수 있는!'것에 대해 들여다 보게 되었다. 엄청난 부자 개 할아버지는 능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은 일이 어떻게 죄를 지은, 악을 행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은 적극적으로 행한 해악과는 다르게 악을 조용히 번지게 한다. 선의 부재로 인한 악의 용인이 그것이다. 악한 쪽으로 기울어져서 악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동화책에 뭐 이런 장황한 얘기일까 싶지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고 누군가는 얘기해야 할 내용을 동물들을 예로 들어 잘 설명해 주었다. 끔찍한 세계사의 여러 장면이 떠 오르기도 하지만 담담한 문체가 생각을 이끈다. 할아버지 방의 커튼이 점점 닫아지면 시야가 좁아질 때 느껴지는 절망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남아지며 할아버지의 무덤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뒷장의 서로 맞잡은 손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처음 붉은 여우가 잡혀갈 때 다 같이 손을 잡았더라면... 그런 희망이 지금은 자라 있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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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묵직한 그림체와 제목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개는 무언가 쓰면서 곁눈질로 살짝 열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있다. 그곳에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누군가가 보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지도 몰라.' 라는 경고처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부끄러움까지 밀려온다. 그런 이유는 나도 '몬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하고 살기 때문이겠지. 평화로운 마을해서 평화롭게 살던 주민들은 어느 날 '그들'이 모든 걸 바꾸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붉은 여우는 털 색깔이 눈에 띄어서, 코요테는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에, 사막여우는 동성혼을 인정해서 등 등의 이유로 하나씩 무리를 잡아간다. 그럴때마다 주인공은 몬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일관하며 자신의 재산과 행복을 지켜나갔지. 하지만 끝은 .. 마지막 남은 '개'도 끌려가고.. 아무도 도와줄 이는 없었다는 것. 작가는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용기를 내어 당당히 맞서는 우리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몬 본 척 못들은 척 모르는 척, 나만의 행복을 찾고 있다. 갖가지 핑계로 말이다. 옳은 일에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 교실안에서부터 그런 경험을 길러내야 한다. 소외받고 고통받는 집단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용기있는 교사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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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침묵하는 방관자'로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따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특히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사회나 상황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불의에 대하여 침묵한 삶을 산다면 앞서 말한 시의 마지막 연처럼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편견, 차별,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관용, 평등, 연대, 우정, 공감의 의미와 가치를 아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다소 어둡고 어려운 이야기일까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은 용기와 희망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이 메시지가 전해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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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은 억압과 불의, 폭력을 일삼는 ‘그들’과 차례차례 피해를 당하는 호숫가 마을 동물들, 그리고 이를 못 본 체하는 할아버지 개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주며 방관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할아버지가 불의에 침묵하는 이유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할아버지 자신이라는 아이러니를 강조하지요. 침묵하는 방관자가 곧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집니다. 마을에 쳐들어온 그들은 붉은여우부터 시작해서 늑대, 코요테 들을 차례차례 잡아갔습니다.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털 색깔이 너무 눈에 띄어서, 기름진 땅을 빼앗으려고, 그들이 믿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겨서…. 그리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을 택했습니다. 할아버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했죠. 내심 신경이 쓰였지만, 괜히 나섰다가 그들의 눈 밖에 날까 봐 겁이 났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사막여우마저 잡아가고 난 뒤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할아버지의 재산을 넘본 그들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왔을 때, 이미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불러온 무관심과 침묵이 세상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담고 있어요. 글의 화자로 등장하는 강아지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진실을 마주할 독자를 향해 우려 섞인 말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죠. 그의 할아버지가 하지 않았던 일들로 벌어진 비극을 말이에요. 4~6학년 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말이 있죠.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요즘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주변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귀기울이는 관심이 정말 필요할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학생과 학부모,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