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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자 폭설과 한파가 닥쳤다. 독거 어르신들은 집에 고립됐다. 내린 눈이 얼어붙은 도로 위로 차들이 위태롭게 움직인다. 트랙터가 동원된 제설작업에도 불구하고 눈은 치우기 무섭게 다시 쌓였다. 예년과는 달리 '습설'인 탓에 밤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스케이트장 같았다. 두꺼운 얼음판 위로 다시 눈이 쌓였다. 사회복지사로서 나의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고립된 어르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살피기 위해 노인복지센터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센터에 출근해 어르신들께 안부 확인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차량 진입이 가능한 곳은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주간보호센터로 모셨다. 제설이 전혀 되지 않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의 어르신 댁은 방문으로 대신했다. 따뜻한 식사와 약을 챙겨드리고 집 안팎을 살펴 눈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 점검했다. 폭설 한파 사흘째, 기어코 사고가 터졌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집 앞 골목에서 미끄러져 낙상하신 것이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 밤새 얼음판으로 변한 그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치셨다. 119 구급대로 병원에 이송했는데 워낙 부상이 심해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마음이 아프고 하늘도 원망스러웠다. 기후위기 시대의 절실한 요청 '돌봄' '기후'와 '돌봄'을 결합시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돌봄현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한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내 이웃을 보호하고,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예방과 회복을 위한 돌봄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 방식이어야 한다. 그래서다. '기후'와 '돌봄'을 연결하고 모두가 함께 돌봄으로써 기후 변화 시대를 헤쳐나가자는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 책 <기후 돌봄>(신지혜 우석영 외, 2024년)은 '돌봄'을 통한 기후 위기 극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역설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별로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돌봄은 인간 존재의 필요충분조건이자 사회적 역량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지만, 가정 내 여성의 의무로 강요되거나 사회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머물러왔다. <기후 돌봄>의 저자들은 기후 위기 시대의 도래가 '취약한 존재'라는 인간의 속성을 더 전면적으로 부각시켰다고 본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무너진 삶터를 복구하고 회복하는 데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본디 취약한 존재인 인간은 무소불위한 자연의 힘 앞에서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후와 돌봄을 연결하는 사고, 나아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전환과 행동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다. "기후재난은 그간 중요성이 은폐되어 왔던 커먼즈의 존재를, 아울러 개인/사회의 재생산에 항시적으로 요구되어 온 돌봄 활동을 돌연, 동시에 드러낸다. 지구의 안정된 기후라는 커먼즈가 훼손되는 사태가, 인간과 인체의 공통적 취약함이라는 사태를 시야에 드러내고 있고, 흔히 지역/로컬이라고 불리는 국소적 지리생태환경에 속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뭇 개인들의 새로운 돌봄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27쪽) 돌봄 세계관의 확장과 '공생하는' 인간 돌봄 세계관의 확립은 돌봄의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의 수정과 성찰을 요구한다. 과학자들은 지구 환경의 안정기였던 '홀로세'가 지나고 지구역사상 전례없는 불안정기인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경고한다. '인류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종 중에서 '인간'이라는 단일한 생물종으로부터 발생한 위기라는 특징을 가진다. 자본주의의 축적과 발달 과정은 자연 환경의 약탈과 훼손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피해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이 감당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성장과 번영의 대가로 인간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만 설명될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돌봄의 범위를 인간 돌봄을 넘어선 비인간 돌봄의 영역까지 확장함으로써 기후위기 시대 돌봄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개별 생물은 자기 밖의 다른 생물, 생물종,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생태계 조직들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면서만 존재한다. 이것은 곧 자기 아닌 다른 생물 요소, 생명 요소들의 돌봄 속에서만 개별 생물이 제 생존을 이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 역시 이러한 돌봄의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중략)... 요컨대,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할 때, 우리는 그 지구 구속적/융합적/의존적 정체성과 더불어 비인간 내착성, 비인간과의 공생성, 비인간 의존성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150쪽) 비슷한 맥락에서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역설하기도 했다. 호모 심비우스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 공생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의미한다. 인간-비인간 존재의 상호 돌봄 관점의 확립은 축적과 파괴의 방식을 폐기하고 탈성장, 탈소비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도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돌봄연대의 장소인 '지역'에 거는 희망 기후 위기의 양상으로 볼 때, "지금은 전환의 방향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전환의 속도를 끌어올릴지를 고민할 시기"라며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이 바로 지역"(223쪽)이다. <기후돌봄>의 저자들은 기후재난이 역설적으로 지역을 재건하는 기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위기의 물리적인 장소인 '지역'으로부터 대안이 나온다면 국가 주도의 대규모 기후 위기 완화 정책에도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책은 "재생에너지 전환과 돌봄 중심의 지역사회 재구조화라는 정책의 경우,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국 지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며 "주민들의 지역 정치 참여, 거버넌스 참여, 그를 통한 자원의 공공적 이용과 관리라는 해법은 기후돌봄공동체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101쪽)고 설명했다. |
![]() 기후 돌봄? 기후와 돌봄이 결합 가능한 단어인가? 갸우뚱~ 하였다. 알고 싶어졌다.. 기후 위기, 기후재난은 자주 들어본 말이었다. 하지만 기후 돌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의 조합이라 크게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공동 저자들의 이력도 재미있다. -------------- 신지혜 - 환경교육 ·생태 전환 연구자 한윤정 - 한신 대학교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우석영 -지구 철학 연구자 권범철 - 공통장(커먼즈)연구자 이재경 - 지역·행복·세대 연구자 조미성 - 모심과살림연구소 사무국장 연구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분야가 다양하다. 이런 이들이 <기후>라는 공통의 주제로 글을 썼다? 논문처럼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기는 했다. 하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기후 재난 상황, 나아가 빈번한 기후재난이 예상되는 직감의 의기 상황에서 요청되는 돌봄을 '기후 돌봄'이라는 용어로 표현해 보자고 우리는 제안한다. P17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를 입게 되고 보살핌과 도움을 받게 된다. 그 대상은 인간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기후 위기로 가장 먼저 소멸해가는 것은 동물들과 식물들이다. 인간이 아니다. 그러기에 인간/비인간의 존재들 모두 돌보아야 한다. ---------------- 그런데 왜 '기후 돌봄'이 필요할까? ---------------- 폭염으로 인한 온열 사망자는 대게 마트에서 하루 수만 보를 걸으며 카트를 나르던 청년이나 에어컨이 없는 좁은 방에서 외로움과 질병, 더위를 견뎌야 했던 노인이다. 폭염이라는 조용한 살인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덮친다. P78 심각한 재난은 항강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찾아온다. '돌봄'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 범위에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해체되어가고 있는 비인간 존재, 자연 생태계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지하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가 지상으로 나오면 이산화탄소의 방출로 기온은 10배 빠르게 온도가 변한다고 한다. 그 결과는 생물종 멸종, 인간과 동물의 공통된 감염병 그리고 재난에 쉽게 무너지는 구조가 된다. 이제는 자연 생태계와 함께 붕괴와 회복을 반복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 인류세와 테크노스피어 언젠가부터 <인류세>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언뜻 보면 무슨 세금인가 하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질학적 연대기를 말하는 단어이다. 그 이전을 홀로세(신생대 제4기 중 2번째 시기)라고 하며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인류세가 시작되는 시기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왜 자꾸 언급되는 것일까?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너무 불안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대기를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며 위태로운 지구 질서를 마주 볼 필요가 있다. <테크노스피어-기술권>라는 단어는 현재 지구의 4권역(광물권, 대기권, 수권, 생물권) 외에 또 하나의 권역으로 테크노스피어가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생겨났다. 테크노스피어는 인간의 손에ㅔ 만들어진 인공물질의 모든 것을 말한다 기술문명의 발달로 만들어지고 버려진 인공물질의 양은 얼마나 될까? ![]() 어렴풋이로만 알고 있던 기후 위기와 기후재난의 개념과 기후 돌봄의 필성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책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개념들이 눈앞으로 확 당겨져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그린피스의 북극곰 광고에 잠시라도 눈길이 머문 적이 있다면 읽어보길 추천해 본다. [산현글방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았으나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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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대규모 멸종과 함께 인류세의 대표 징후로 꼽힌다. 정부의 행동을 기다린다면 너무 늦고,개인들이 행동한다면 너무 미약할 것ㅈ이고, 우리가 공동체로서 행동한다면, 충분할지도 모르고 제때일지도 모른다. 단단한 철학과 굳은 의지로 구체적인 방법을 행동에 옮기며 현재의 지구를 미래의 지구를 구출해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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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인류세에 확장된 친족들의 피난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후재난 상황, 나아가 빈번한 기후재난이 예상되는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요청되는 돌봄을 ‘기후 돌봄’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신지혜, 한윤정 등 6명의 저자가 인간이 초래한 현재의 기후 변화가 인간에게 극한의 기후 현상 또는 기후 재난의 형식으로 찾아와 폭염과 가뭄, 산불과 태풍 등 곳곳의 거주지를 강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요즘 ‘돌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책은 ‘돌봄’이 ‘취약함’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에만 집착했던 우리들에게 돌봄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기대가 됩니다.
돌봄을 삶과 사회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존중한다는 뜻이고, 자립하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취약한 신체를 보현적 권리의 근거로 둔다는 뜻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우선 고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85
삶의 환경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초록색에서 회색으로 급격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두뇌의 많은 부분은 대평원을 달리던 수렵 채집민의 초록색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칼럼이 이 책을 보니 문득 생각납니다. 기후 재난 상황, 나아가 빈번한 기후재난이 예상되는 오늘날 위기 상황에서 요청되는 ‘기후 돌봄’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기후 돌봄’은 기후 위기로 인해 삶 또한 자기 실현이 어려워진 인간과 비 인간약자들, 기후 재난 상황에 처해 취약해진 인간, 비 인간들을 볼보는 일을 뜻한다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오늘의 한국어 세계에서 ‘기후’와 ‘돌봄’은 함께 생각되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
책에서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이런 내용입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발표한 새로운 EU기후변화 적응 전략을 통해 기후변화 적응 과업을 사회 시스템의 체계적 전환 과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적응 적략에 따르면 요구되는 적응 행동은 첫째,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에 힘입은 정확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 통체적이고 체계적인 것이어야 하며 셋째, 속도를 높이는 방식의 신속한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 적응 행동은 곧 기후 회복력 강화를 함의하며 기후 회복력 강화는 곧 기후 회복력을 각지역 단위에서 강화하는 행동의 주체들 지역 수성원과 지역의 미래를 자조의 정신으로 돌보는 행동을 뜻한다고 합니다.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은 인간의 총체적 위기, 총체적 재난으로서 총체적 수준의 인간 돌봄, 세계 돌봄을 요청한다. ---P.41
돌봄을 쉽게 생각하면 그동안 육아, 양육, 교육, 가사노동, 의료, 장애라는 것에 한정된 영역에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돌봄은 주로 가정에서 여성들이 담당해야 하는 몫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후 변화 대응에서 회복력과 돌봄의 의미를 알고 돌봄을 삶과 사회를 중심에 둔다는 것, 서울의 사례를 중심으로 기후 돌봄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등 다각도로 돌봄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모든 인간이 돌봄 받을 필요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 모든 개인이 돌봄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점도 시사해 줍니다. 개인 또는 공동체가 기후 돌봄을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사전 기술과 지식등을 습득해 피해를 최소화 하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거친 파도를 다 같이 넘어가는 법을 생각하게 하는 책 <기후돌봄>은 산현글방에서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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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정도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장마가 올해는 7월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계절과 절기는 자연의 알람을 하듯 찾아오고 떠나는 당연함으로 느껴지던 때는 이제 지나간 과거일지 모른다. 여름의 중간에 삼 복 더위를 걱정하기 앞서 여름의 더운 날씨를 미리 당겨서 경험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기후 문제에 더욱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기후에 돌봄이라는 비 인간인 기후와 돌봄이라는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양날의 문제를 하나로 해석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기후 돌봄'이다. 인간 외의 것은 생명이 있다고 해도 무 가치로 기계적 사고를 했던 시기에서 이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은 외부가 아닌 내부이고 내 안에 속하는 하나의 주체로 작용한다. 더 이상 타자화 할 수 없는 자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어쩜 강한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자에서 떨어져 나온 나약한 존재로 느껴진다. 돌봄은 인간이라는 사이에서 받는 자와 주는 자가 나뉘지 않는다. 서로 돌봄 남과 여 상하 관계를 탈피한 평등한 공동체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하지만 누구도 특정한 집단만 잘 잘못을 따지지 않고 확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욱 타인에게 미루는 일이 벌어진 건 아닐 지 생각해 본다. 6명의 저자의 각각의 생각을 풀어낸 글을 읽다 보면 걱정과 고민에 해결 점을 스스로 찾긴 어려워 진다. 하지만 고민과 걱정에서 빠져 나와 이제 늦었지만 행동하는 실천만이 살길임을 인지 한다. 이런 분에게 추천한다. -환경, 기후 위기, 돌봄 사회적 시각에 관심 있는 분에게 -지구를 살리는 길 가치 있는 행동을 고민하는 분에게 *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