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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용보기
과연 '나는 자유롭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우리는 참으로 [선택의 굴레]를 쓰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 '나에겐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택할 자유가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속박)를 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새로운 선택 이후에는 또 다른(더 나은) 가치를 위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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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자유롭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우리는 참으로 [선택의 굴레]를 쓰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 '나에겐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택할 자유가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속박)를 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새로운 선택 이후에는 또 다른(더 나은) 가치를 위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의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이 선택한 가치로의 이행 직전의 극히 짧은 순간일 뿐이며, 이는 마치 말이 안장을 교환하는 순간의 잠깐의 기분전환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속박의 상태를 피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속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지배할 가치체계를 찾게 된다. 왜냐하면 선택의 순간은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인하여 언제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새로이 택한 가치체계의 속박은 이러한 선택의 결과가 야기하는 고통(책임)을 대신 떠안기 때문이다. 가치체계란 즉 선택의 기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동안 선택의 굴레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선택의 연속인 인생의 굴레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도덕경을 인용하며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가치를 무시해야, 아니 동등하게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추(醜)를 미(美)와 같은 개념으로 악(惡)을 선(善)과 같은 개념으로 여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해 있으며 만물을 거부하지 않은 채, 현재 상태대로의 만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눈에는 어떠한 것도 가치가 없으며, 어떠한 것도 다른 것과 분리된, 별개의 모습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노자-도덕경> 사물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나는 이것을 ‘존재지우기’라 부르고 싶다. 흔히, 자유를 얻기 위해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게 자신이 부여했던 가치들을 거둔다는 뜻이다. 사랑, 우정, 이해관계, 그 밖의 모든 이름 지어진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는 사람도 아는 거리도 없고, 챙겨야 할 일도 간섭하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그가 누릴 자유로움이란! 그러나 이렇게 모든 가치를 무시한다고 해서 선택의 순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러한 무소유, 무상무심의 상태가 되면 모든 가치가 동등하므로 그에게 있어서 선택이란 마치 수만개의 동일한 빨간색 중에서 빨간색 하나를 고르는 것과 같아서 과연 무엇을 고를까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도(道)를 역사상 모든 가치체계를 부정했던 유일한 사상으로 그리고 무위(無爲)를 이의 실천방법으로 제시하였다. 과연 무위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옮기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달콤한 말인가. 실제로 자유가 가져다 주는 마음의 평안은 그 무책임함으로 인하여 아찔할 정도로 달콤하다. 하지만 무위란 단순히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은 아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구태여(혹은 애써)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다시 말해 목적성을 띤 인위적인 행동을 지양한다는 뜻이다. ‘자연에는 정적인 음(陰)이 있고 동적인 양(陽)이 있어 양을 좇으려면 그저 추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음을 지키고 있으면 자연히 양이 되돌아온다. 즉 수탉을 잡으려면 암탉곁에 있으면 되고, 물을 구하려면 계곡에 가면 된다. 사람도 이러한 법칙을 따라, 영광의 성질을 파악하고 굴욕의 시간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영광을 취할 수 있다.’<노자-도덕경> 무위는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무기력이나 게으름과는 구별된다. 이른바 의지가 깃들인 적극적인 의미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인 것이다. 또, 무위는 우리에게 흐르는 물과 같이 행동하라고 말한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물을 휘저어도 물은 언제나 거울처럼 잔잔하고 투명한 상태로 되돌아온다. 물은 아무것도 애써 하지 않은 채, 높은데서 낮은데로 자연스레 흐르는 휴식과도 같은 상태에서도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노자-도덕경> 참으로 이러한 무위의 극치에 이르게 되면 마치 바람결에 실려가는 낙엽처럼,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데로, 나를 움직이는 것이 바람인지(내가 객체인지) 내가 바람을 타는 것인지(내가 주체인지) 알지 못한 채, 혼연히 자연과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수양을 해야 하는가. 자유에 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얼마전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던 김용옥 선생의 ‘노자’강의도 이러한 욕망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역시 우리에게 해답을 속시원히 일러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진리를 맛본 자는 결코 그 곁을 떠날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이, 이 책이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맛보기로 보여주는 ‘자유’를 우리는 결코 거절할 수 없다. 바야흐로 또 다른 여행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자유는 가치를 무효화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를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유로 인해 우리의 정신은 철저한 무관심의 지배를 받게 되며 심리적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