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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5-6년 전에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마 조금은 생소했으리라. 우리가 어떤 책을 만나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하는 것 같다.
대략 4-5년 전에 나는 신학적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몇몇 문제들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당시 우연하게 만나게 된 책이 페테르 에르베(Peter Erbe)가 쓴 "우리는 신이다(I am God)"이다. 그 후 뉴에이지 계열의 책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또 다른 정신적, 영적 여정을 걷고 있다.
“우리는 신이다”라는 책을 보면서 세상을 작동하는 감추어진(?) 진실들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과 설렘으로 여러 날을 불면으로 보낸 적이 있고 지금도 그 여정에 있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이 “비분리”와 “균형”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 두 용어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없이 지내왔다.
때가 되었을까? 이제야 “시간과 균형”이라는 책을 통하여 페테르 에르베가 강조한 “비분리”와 “균형”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페테르 에르베가 비분리를 통한 양극성의 균형을 이야기했다면 장순욱님은 작용과 반작용을 통한 균형을 이야기 한다. 두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 두 페러다임은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페테르 에르베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흥정하는(Bargain) 건 얻는(gain) 걸 막는(bar) 것이다. 이런 말이다. 물건을 살 때 몇 푼을 아끼겠다고 깎게 되면 깎은 만큼의 가치가 물건에서 빠져나간다. 그러니 그냥 깎지 말고 다 주고 사라. 그러면 물건은 지불한 만큼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시간과 균형>도 비슷하지만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 “가게 주인이 잘못 준 거스름돈을 슬쩍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간다.”
패테르 에르베는 양극성의 균형을 잡기 위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시간과 균형>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기제가 그렇게 작동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실생활에서 무수히 하고 있다.
저자인 장순욱은 “시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시간 속에 쌓였다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간”은 “우주공간” 혹은 “에너지 장”으로도 대체할 수 있으라고 본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그 어딘가에 축척되어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맞추어 돌아온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페러다임이 세상을 해석해 주는 완전한 틀거리는 아니다. 세상은 우리가 또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기제들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겸손한 태도이다. 그러한 자세로 세상을 볼 때 더 나은 해석적 틀거리가 나온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간과 균형”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써 낼 수 있는 책이 결코 아니다. 저자가 책의 서두와 후기에서 밝혔듯이 많은 정신적, 영적 여정을 거친 산물이다. 저자는 경제는 물론이거나 철학, 과학, 상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한 세계관과 우주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40대의 나이에 어쩜 이런 책을 써 낼 수 있었을까? 어떤 정신적, 영적 휘둘림(?)이 있었기에 이런 통찰력을 얻게 되었으며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되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기회가 되면 간증을 한번 들어봐야 겠다.ㅎㅎㅎ. 감히 말하고 싶다. 저자는 앞으로 관록과 경력이 쌓이면 분명 휼륭한 멘토나 마스터가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젊은 시절에 3일 금식기도를 한 적이 있다. 작정하고 시작한 그날부터 왜 그리 배가 고프고 힘이 들었던지...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마귀새끼가 나를 넘어지게 하려고 금식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이다.
그 후 나이가 들어 수도자인체 행세하며 기도생활에 몰두하려고 하면 왜 그리 잡다한 생각이 들고 세상의 재미와 오락이 그립던지...
이제는 이런 현상을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페러다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쿨(cool)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