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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중인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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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맨이라니.   이름부터 대놓고 미라클맨이라니.   이게 무슨 닉네임도 아니고 원래 이름이 이 따위라니 3류스럽지 않아요?   게다가 표지에 저리도 당당하게 드러낸 히어로의 자태는 [DC(혹은 마블) 유니버스 올해의 크로스오버 이벤트] 같은 데서 히어로들이랑 악당들이랑 수십명씩 떼거지로 한 판 붙는 두 페이지짜리 큼지막한 그림 한 쪽 구석에서 악당한테 피터지게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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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맨이라니.

 

이름부터 대놓고 미라클맨이라니.

 

이게 무슨 닉네임도 아니고 원래 이름이 이 따위라니 3류스럽지 않아요?

 

게다가 표지에 저리도 당당하게 드러낸 히어로의 자태는 [DC(혹은 마블) 유니버스 올해의 크로스오버 이벤트] 같은 데서 히어로들이랑 악당들이랑 수십명씩 떼거지로 한 판 붙는 두 페이지짜리 큼지막한 그림 한 쪽 구석에서 악당한테 피터지게 쳐맞고 있는 그런 듣보 캐릭에나 어울릴 디자인이고요.

 

                 얘야, 요새 학교에 너 괴롭히거나 그러는 애 없지? 참고로 뒤엣 녀석 렉스 루써 아님.(심지어 대머리도 아님) 

 

 

그러니 인터넷에 올라온 책소개글에 알란 무어 닐 게이먼 이 두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이 책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책소개를 다 읽고 나니 한창 미국만화에 빠져들던 무렵 언젠가 어딘가에서 거장 알란 무어가 스토리를 쓰다가 저작권 문제로 중단한 미완성 작품이 있다는, 그래서 무수히 많은 전세계 코믹스 팬들 중에 본 사람이 극히 적다는 심히 유니콘스러운 아이템이 있다는 전설을 읽은 기억이 나더군요.

아니 무슨 이제 하다하다 만화책을 가지고 도시전설을 만들어! 어이없어 하고는 그냥 지나쳤더랬습니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저랑 마주칠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까요.

지금까지는.

 

그러다보니 이 작품출간소식을 접하고도 오오오! 전설의 작품이 나오다니! 하며 감격하기보단 아하~이게 그 때 그거였어? 전설 치곤 생긴 게....별로....에.......뭐...그랬다구요.

심지어 이후에도 바로 책을 주문하는 대신 근데 내가 그 글을 어디서 봤더라 하며 인터넷을 뒤지느라 거진 한나절을 보냈어요.

(지금도 틈만 나면 찾고 있음. 생각 날 것도 같은데..아이 감질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엑스마키나 3, 4권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던 터라, 기다리는 동안 읽을 거리가 있어야 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주문을 넣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걱정도 했어요. 80년대 코믹스의 지나치게 신파스런 장황스러움은 저하고는 워낙 안맞더라고요.

 

게다가 알란 무어가 브이 포 벤데타와 동시기에 쓴 작품이란 것도 좀 그랬습니다. 브이는 분명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재미로 가볍게 볼 작품은 아니니까요.

와치맨이나 프롬 헬 같은 건 뭐 뒷골 브레이커고.

하오니 제발 알란 무어시여, 와치맨과 프롬 헬의 당신이 아니라 LXG와 탑텐의 당신으로 저에게 오소서.

 

그리고 책이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쳐맞고 다닐 것 같은 주인공의 인상과, 뒤에서 썩소를 날리는 렉스 루써의 면상이 참 맘에 걸립니다만 어쨌거나 하드커버 양장은 참 맘에 들게 잘 나왔네요.

아는 게 거의 없는 작품인데도 전설을 확인한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심장이 바운스x2. 마치 샌드맨 처음 접했을 때 같던데요.

이야! 작품 수준도 샌드맨 같다면 정말 대단할 텐데.

 

P.s. 미라클맨이 30년 넘는 세월 동안 도시전설이 되어 갔던 데에는 조금 복잡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이 되니까 이 작품을 보실 분들은 필히 검색 한 번 해보시길. (출판사 소개글 같은 간단한 글 말고 블로거들이 쓴 자세한 글) 그리고 히어로 만화 역사의 시대 구분(골든에이지- 실버에이지-모던에이지)에 대해서도 내용을 알고 계셔야 재미가 배가됩니다.

 

 

 

프롤로그

 

 

프롤로그에선 50년대 미라클맨의 에피소드를 다루는데, 이게 진짜 미라클맨 원작의 에피소드를 삽입한 건지 아니면 50년대 코믹스의 스토리와 그림체를 흉내낸 건지는 모르겠어요.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대의 스타일을 차용한다는 데서 [슈퍼맨:시크릿아이덴티티]의 결말부에 주인공 인생을 몇 컷으로 압축해 보여주던 몽타쥬 시퀀스가 생각 나 반갑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스토리는 미래의 악당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최첨단 미래의 무기를 가지고 과거를 침략하지만 우리의 천하무적 미라클맨 패밀리가 등장해 이 들을 무찌른다는 골든에이지 슈퍼히어로물의 전형적인 내용입니다.

가볍고 단순하고 유치하게 진행되던 프롤로그는 마지막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인용하면서 무거운 분위기로 반전합니다.

불길한 암시를 주면서.

 

 

 

..그리고 본편은 에필로그랄 수 있는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총 10장인데,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파트 : 신의 귀환

 

 

프롤로그에서 미라클맨의 눈으로 줌인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는 느닷없이 26년 뒤로 과감하게 점프를 합니다.(그림체나 이야기 스타일도) 50년대에서 80년대로, 혹은 골든에이지 전성기에서 실버에이지의 여명기로. (혹은 모던에이지의 동틀녘으로)

 

컬러는 마블에서 이번에 단행본을 내면서 채색을 새롭게 했는지 촌스럽지 않고 꽤 세련됐어요. 밑그림을 담당한 개리 리치의 아트웍도 훌륭하고요.

 

사실 이 첫번째 파트는 굉장히 전형적인 이야기에요.

사고로 오랜 시간 기억을 잃고 살아 온 주인공이 우연한 사건으로 기억을 되찾는 이야기죠. 심지어 주인공은, 기억을 잃게 한 사고를 매일 밤 악몽으로 꾸기까지 한다니까요!

하여간에 우연인지 운명인지에 휘말려 기억을 되찾은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십수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자신이 되찾은 모든 기억과 능력을 얘기해줍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의 말들을 믿지 못해요.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들려주는 얘기들은 전형적인 골든에이지 룰루랄라 유치찬란 스토리라고요.

그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힘을 준 것이 무려 인간을 초월한 학식의 경지에 이른 천체물리학자랍니다. 게다가 이 천체물리학자란 양반이 주인공에게 힘을 주는 것도 무슨 과학실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설의 대마법사인양 변신주문을 알려주고 사라져요.(말 그대로 걸어서 떠나는게 아니라 모습이 점점 사라짐)

그 뒤 미라클맨 패밀리가 되는 동료들의 등장이나 악당들과의 전혀 치명적이지 않으면서 끝도 없는 싸움 이야기도 유치뽕짝이라 기도 안 찰 노릇이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치명적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패밀리를 잃고, 기억을 잃고, 골든에이지를 잃습니다.(그리고 실버에이지 대부분도)

 

작중에서 이 사고가 일어난 게 1963년 10월인데 주석에 따르면 원작의 연재가 끝난 게 63년 2월, 동시기인 62~63년에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마블코믹스 캐릭터들이 나왔고 이들이 실버에이지를 열어 젖혔다는 건 우연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었겠지요.

 

 

 

두번째 파트 : 패밀리의 죽음 or 슈퍼맨vs슈퍼보이 프라임 or 캡틴마블(에라이, 여튼 패밀리끼리 싸우는 것들 죄다)

 

 

너무 일찍 찾아 온 모던 에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던에이지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충격적이고 장엄하고 스펙터클하게.

시대를 앞서나간 스토리와 전투씬은 알란 무어가 단순히 천재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선각자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니 그 미래를 열어젖힌게 본인 작품인 와치맨이었으니 미래를 내다본 게 아니라 만든건가요 

 

 

 

 이 녀석이 그러니까 우주 최고의 망나니라고 불리는 슈...하여간 그 넘의 원조다.

 

 

 

 

세번째 파트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마침내 미라클맨의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이 파트에서 알란 무어는 골든에이지를, 슈퍼히어로를, 그리고 신을 철저하게 해체해 버립니다. 이 작품 연재 당시 브이 포 벤데타를 동시 연재하고 있었다는데, 그래서인지 같은 모티브를 쓰고 있어요.(일명Lab Rat)

니체의 사상을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실행해 버리는 것으로 모자라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프로젝트명이 대놓고 [프로젝트 짜라투스트라].

 

골든에이지 시절의 야! 신난다 우리들의 영웅 천하무적 미라클맨패밀리의 슈퍼파워어드벤쳐 룰루랄라 스토리들은 사실은 실험을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었다는 부분은 타일러 더든이란 이름의 절름발이가 알고보니 귀신의 아빠였는데 그게 다 가상현실 매트릭스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으응?)

 

사실 프롤로그의 에피소드에서 악당들이 떠나 온 미래가 81년인데 본편의 내용이 그 1년 후인 82년이라서 무슨 의도인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것에 대한 복선이었던 셈이죠.

 

어째 30년도 더 된 실버에이지 말기 작품이 지금까지 막 이래 신선해도 되는거냐! 싶어요.(알란 무어 이 방부제 같은 인간)

 

 방부제는 작품에다 다 썼어?

 

 

 

그 뒤에 미래에서 벌어질 일을 보여주는 맛보기식 단편 하나랑 그린랜턴을 형이상학적으로 재해석한..아니 꼬아버린 단편이 하나 있는데 지금으로썬 코멘트를 달 수가 없어요. 전체 그림에서 얘들이 무슨 역할을 할 지 짐작도 안 가고.

 

 

 

출판사 문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모던에이지의 시작을 와치맨과 다크나이트리턴즈가 아니라 미라클맨과 브이 포 벤데타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 작품 다 같은 시기에 같은 작가의 손에서 나와 결국 미완성이란 같은 운명을 겪게 됐는데, 결국 브이는 몇 년 후 알란 무어의 손으로 끝을 맺게 되지만 저작권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있던 미라클맨은 긴 시간을 잃게 됐네요.

 

알란 무어 이후 펜대를 잡았다 저작권 문제로 중단했던 닐 게이먼이 다시 스토리를 이어가서 이 전설을 드디어 완성한다고 하니 많이 기대가 됩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스포일을 당하는 기분도 들어요.

닐 게이먼이 집필하는 '능력이 봉인된 채 오랜시간 유폐됐던 신적 존재가 긴 공백기를 깨고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시련을 겪는 스토리'라니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 작품은 미라클맨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닐 게이먼이 자신이 구상했던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 그럼 결말은..

흠흠.

 

작품 속에서 미라클맨은 기억상실로 골든에이지 후기와 실버에이지 대부분을 잃어버립니다. 작품 밖에서는 저작권 소송으로 실버에이지 후기와 모던에이지 대부분을 잃어버리구요.

기억을 되찾은 미라클맨이 높이 날아올라 포효하던 모습처럼, 오랜시간을 돌고 돌아 온 이 작품이 더 높이 날아올라 더 크게 포효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전설을 완성하고, 또 다른 시대의 문을 열 수 있기를. 그 전설을 동시대에 내 눈으로 목격할 수 있기를.

 

시작...

d**********2 2014.08.15.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