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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아이의 눈에 보이는 나는 어떤 어른일까?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만나는 10층 어린이에게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일터(어린이들과 밀접한 곳)에서 만나는 아가들과 10대들에게 나는 어떤 어른으로 보여질까? 평소,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고, 나 정도면 괜찮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오던 나인데 글을 읽으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으며 소통하고 있는 작가의 책이다. 매일 매일 어린이들과 생활하며 호흡하고 있기에 ‘어린이’의 상대편에 있는 ‘어른’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글을 읽다 보면 자꾸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생각, 어린이들의 마음을 엿보게 되며 나의 지난 행실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손도 들고, 반성문도 써야 할 것만 같은 죄책감이 자꾸 든다.
글 속의 작가는, 말수가 적은 아이가 본인과의 대화가 불편하진 않았을까 고민하는 세심한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이지만, 유아차 일행이 건물에 들어설 때 조금 빨리 가서 문을 열어주거나, 어린이에게 화장실 순서를 양보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쭈뼛쭈뼛 머리카락 한 줌 일어서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삶의 순간순간에도 남의 눈과 생각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위로를 얻는다.
작가는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세상이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고, 즐거울 수도, 어두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여러분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어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어린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린이를 보호해주고, 어린이를 환영해주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린이는 빨리 자라니까요.」라고...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내 아이만 봐도 어린이는 차암 빨리 자란다.
또한 작가는 김장하(책을 읽는 내내, 두 달 전쯤 OTT 서비스로 시청했던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 어른이 자꾸 생각났다. 감히 그분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의 언아더레벨이신 ‘어른의 어른’이었다.), 박막례, 채현국, 김영만 선생님 같은 자신이 존경하는 어른들처럼 내가 마치 그런 어른인 척하고 살자고, 따뜻하게, 힘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자고,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꼭 되자고 다짐하듯 당부한다.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 글 속에 진정,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장면이 있다. 은정이와 유진이 이야기이다. 둘은 학년은 같지만 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좀 떨어져 있고, 수업시간도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만나는 장소가 있다. 독서 교실 한 쪽, ‘클래식’ 책장 앞! 한 명은 월요일에, 한 명은 화요일에 그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꺼내 읽는다. 그러다 어느 주엔가는 둘이서 미리 맞춘것처럼 850쪽짜리 「제인에어」를 만지작 거렸단다. 현실에서 만날 순 없지만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를 만나며 책을 통해 마음을 교환하고 공감하는 두 사람을 그리는 영화와 같은 장면이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책을 쓰는 작가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그 책을 읽는 무수한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나의 인간관계가 더욱 넓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왠지 모를 소속감으로 충만해졌다.
책을 한참 읽다가 문득 이렇게 선한 마음의 소유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을 때까지 혹시나 나의 예상과 달라서 책의 좋은 느낌이 다 사라져 버릴까 봐 작가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당도하고 책을 덮은 후에 ‘김소영 작가’를 슬그머니 검색해 보았다. 작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역시!’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했다. 그 모습에 선함과 사랑과 배려가 가득했다. 사람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잘 살아야겠구나. 선하게, 사랑스럽게 살아야 되겠구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몸이 다 자랐다고 해서 어른이라 칭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사회, 나라에서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각 자리에서 책임을 지며 최선을 다하는 이 시대의 참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 나부터!!! #올해의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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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어의 어원은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운 한문을 배우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을 ‘어여삐’ 여긴 세종에 의해, 당시의 민중들은 우리의 문자가 없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리다’는 ‘어리석다’ 혹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어린이가 적절한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여겨, 신체적 발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어린이’라는 단어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어원은 ‘얼다’일 터이고, 더 알아봐야겠지만 그 의미는 ‘제대로 갖췄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린이보다 못한 어른’이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하겠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도 자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어떤’ 어른이 되고자 하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책에서는 여전히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또 다른 ‘어떤’ 어른도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늘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저자는 ‘어린이한테 자신만의 삶을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라는 경력을 거치고, 이제는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고 소개하는 저자의 책을 이전에도 접한 적이 있다. 어린이를 ‘당당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자는 주장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아이에게는 먼저 웃으면서 ‘안녕!’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 때로는 짓궂은 ‘악동’의 모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배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릇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어른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평소에 만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누군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상대의 진정이 담긴 마음을 읽어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미숙한 어른’들이 너무도 많고, 오히려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앞으로 우리가 대접받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아울러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나도 끝까지 나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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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제보다 나은,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어떤 어른>을 읽고 나도 어린이였다. 지금은 한 어린이와 한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 이 어린이는 나를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종 이렇게 부러워하거나 실망한다. 어른은 좋겠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서. 어른이 그것도 모르다니 엉터리다. 어른이라고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외쳐보려 하지만 나 역시 그랬던 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고 만다. 어린이의 마음을 그때 그 시절에 두고 오기라도 한 것인지 어린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몇 해 전, 아리송한 어린이의 속마음과 마음 속 목소리에 각각 돋보기와 청진기를 갖다 대어 보고 들으며 생각한 것들을 담은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 초대받아 기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언제 어디서든 함께하면서도 잘 보이지 않았던 어린이를 어른의 두 눈 앞으로 데려와 우리집뿐 아니라 '남의 집 어른'이 되어보자고 제안했던 김소영 작가, 그는 신작 <어떤 어른>을 통해 "어린이한테 어떤 어른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어른에게도 '어떤 어른'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소설 속 피터팬이 아닌 이상 현실 세계에서 어떤 어린이든 언젠가는 어른이 되게 마련이다. 어린이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어른의 세상으로 한순간 점프하듯 건너지 않고 열린 문 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보기를 거듭한다. 어린이는 어른이라는 유리창 혹은 거울을 통하여 '두 눈에 무엇을 담고 마음에 무엇을 남긴다.(75쪽)' 따라서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보면 좋겠다.(64쪽)'고 저자는 권한다. 어른의 좋거나 나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다 말다 하고, 거울에 비쳐 흔들리거는 그림자처럼 보일 테다. 유충이 나비가 되기 전에 번데기라는 성장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어린이가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도 청소년이라는 경계인이 되어야 한다. 이들을 우리 사회 구조에 비추어 거칠게 호명하자면 ‘학교 안팎 청소년’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입시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생활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니면 일찍부터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일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어른의 세계를 향해 한 발씩 자기만의 보폭으로 나아가는 이들에 대한 시선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어른대던 것들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감각하고 생각하면서 멈추게 되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보통 부모(어른)가 자식(어린이)을 키운다고 말한다. 이때 어른은 능동적이고 어린이는 수동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어린이가 '자란다'고 말하면, 어린이는 자발적인 존재로 새롭게 보인다.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낼 순 없지만 때로 어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스스로 해결해 나감으로써 어린이는 어른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현재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 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과의 일화들을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어서 그 어른스러움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른답지 못할 때가 있는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독서 교실에서 만난 어린이 가운데 못된 녀석도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이다. 그는 초창기 미숙한 운영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의 말에 상처를 받았던 이유를 어린 시절에 어른들에게 착한 어린이로 인정받고자 행동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찾아낸다.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에 어린이가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 또는 비난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생겨난 미움을 잘 처리하고 새 얼굴로 어린이를 보고 한 번 더 어린이를 다독이는 것이 어른의 몫(286쪽)'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어떤 어른은 어린이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어른이니까 참고 넘어가야 하냐고 따져 묻거나, 또 다른 어른은 세상 참 좋아졌다며 라떼 기억에 질투 한 숟가락 넣은 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커서 모르는 게 많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어른들은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 일들이 어린이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는 충분한 연습과 다양한 경험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미래의 어른을 만든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런 인정과 이해의 과정에서 어린이와 어른은 “우리가 다 같이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연대 의식을 서로 나눠가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
어린이의 마음이 자라서 어른의 마음과 이어진다는 얘기다. 설령 조금 찌그러지거나 부풀어 예쁜 동그라미가 아니어도 괜찮을 테다. 그건 앞으로 살면서, 자라면서 메우거나 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년을 건너 훗날 노년이 되어도 계속 자라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나이 듦이 단순히 늙는 게 아니라 자라는 일로서 어린이에게 어른이 필요하듯이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른의 어른, 그 어른이 바로 그가 바라는 '어떤 어른'의 지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어떤 어른>이 내게는 '어른의 어른' 같은 책으로 여겨진다. 어른이 어른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른의 어른은 어른의 '품격'이 무엇인지 삶 곳곳에서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쉽지 않겠단 생각이 들지만 일단 '멋있는 어른인 척'부터 해야겠다. 저자가 일러준 꿀팁을 참고하여 생활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보려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우리집뿐 아니라 남의 집) 어린이와 차도 사이로 자리를 옮기는 어른, 차로 이동할 땐 무조건 서행하는 어른,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어린이에게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코를 찡긋하며 주의를 주는 어른,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어른, 어느 상점이든 직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어른, 그리하여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하는 어린이에게 기댈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어(제보다 나아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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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살고 있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싶어서 구입했다. 나는 고요함과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저에너지형의 인간이라 평소 절전 모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우리집 어린이가 너무 질문이 많고 흥이 많아질때 나의 짜증이 올라가면서 화를 많이 내왔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집에 사는 어린이가 신나서 그런건데 그걸 못받아주는 어른이었구나 반성했다. 그리고 어른인 내 입장에선 화가날만한 상황도 어린이의 시선이 되어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흐름을 거쳐 나온 행동이라서 그동안 나는 한번도 진지하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없었구나 싶어서 우리집 어린이가 정말 외롭고 답답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처음본 나한테 다짜고짜 반말하면 기분나빠하던 나였으면서도 나역시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하는 내로남불을 더는 저지르지 않아야겠다. 우리집 어린이도 남의집 어린이들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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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업을 가져서인지 김소영 작가의 새로운 신간에 관심이 간다. 이 책에서는 어린이를 어리고 미숙한 존재로 보지 않고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어른으로 아이들을 대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고(친구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불리해지면 어른으로서의 권위만을 내세웠다) 앞으로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힘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부조리를 잊지 않은 그 젊은 어른처럼,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니, 꼭 되고야 말겠다. P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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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자 다짐했다면, 한 번 쯤은 읽어봐도 좋은 책 인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다정한 길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정말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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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3년 전 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을 ‘어린이라는 세계’였다. 개인적으로도 ‘어린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어 어린이를 일상에서 접하는 시간이 꽤 오래지만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며 진한 여운을 느꼈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이라는 존재 자체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존중하는 마음이 너무 기억에 남아 대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린 지금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 존댓말로 인사를 건네는 습관이 남아있을 정도로 어린이라는 존재를 대할 때 이따금씩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을 떠올릴 정도로 인상적인 글이었다.
저자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책을 골라 산 뒤 한참을 읽지 못했다. 전과 달리, 개인적으로도 가정에서 어린이라는 존재가 태어났기 때문에. 한 책을 집중해서 오랫동안 읽는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해 이 책을 사고 나서 페이지를 편 것은 가족여행으로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스테이를 할 때,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카페에서 책을 잠시 읽었을 때뿐이었다. (책을 읽고 보니 그곳에서 책을 읽은 것도 작은 우연일 지도 모르겠다) 그 후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순간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다시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책을 다 읽고 나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따뜻하게 변해야겠다고 달라졌던 그 때의 느낌을 받고 싶어서였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크게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전작처럼 어린이라는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또는 어른이 쉽게 알지 못했던 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어린이라는 세계로 안내받아 잠시 어린이의 시선으로 어른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어 기대한 것처럼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가령 어른스럽다고 칭찬받는 어린이들도 사실은 어린이라는 것.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고,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린이가 잠잠하게 듣고 있으니까 어려운 말을 하기도 하고 양보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럴 때가 많아 뜨끔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박물관이나 문화예술 등과 같은 예시로 과거에 비해 좋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데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도록 나아가야하고 그것이 사적인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성을 통해 모두에게 이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말씀이 특히 좋았다. “서툴다는 것도 어른들 생각이지, 어린이 입장에서는 연습을 거듭한 ’지금‘이 가장 잘하는 때다. 설령 어린이에게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린이의 인격이 미숙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어린에게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덧붙여 챕터 마지막에는 작가의 세바시 강연 원고도 있는데 읽는 내내 울림이 있었다. “만일 공공장소에서 악을 쓰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곳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 바로 그 어린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자기도 답답하겠지요. 당연히 공공장소에서 지켜야할 예절이나 질서는 어린이도 배워야할 것이다. 가르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린이 입장에서 어떨까를 먼저 생각해본 어른이 그렇지 않은 어른보다 더 많을까. 사실 나조차도 그럴 때마다 어린이를 조용히 시키거나 데려가 그 장소를 벗어날 생각부터 할터였다.
두 번째 챕터는 열일곱 살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데, 어린이라는 보통의 관념에서 벗어난 숫자라 다소 의아했는데 챕터를 읽으며 작가의 생각은 보다 전작보다 확장되었고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나아가 고등학생에까지 어쩌면 어린이라는 건 우리 모든 어른에게도 갖고 있는 모습이라 존중받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할 대상을 훨씬 넓힌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두 번째 챕터를 읽는 것이 가장 책에서 새로웠고 어린이라는 관념을 보다 넓힌 느낌이었다. 어린이들이 가족을 제외하고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아가는 학교라는 세계와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제 역할을 해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가는 현 위기 상황 속에서 어린이에게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막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믿어줘야한다는 말에 어찌보면 당연한 말임에도 너무 감사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어린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사춘기라는 말로 많은 것을 뭉뚱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표현에도 적극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어른이 하면 어엿한 한 명의 의견과 감정으로 인정받을 내용도 사춘기라는 틀로 뭉뚱그려 바라본다는 점이 뜨끔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작가의 표현처럼 어른이 되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매달리는 게 답답하게 보이지만 나도 그 때 그랫듯 당사자는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가며 어른이 된 뒤보다 내일이 더 걱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챕터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에 관한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이다. 어린이에게서 좋은 모습만 보고 싶어서 그런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볼 때면 쉽게 비난하고 탓했던 것 같다. 동심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어린이의 마음은 착하기만 한 게 아닌데. 평소 착하게 말하고 잘 웃는 사람이 모든 일상의 순간에서 항상 친절하고 웃기만 해야하는 건 아닌데 그렇지 않은 날엔 뒤에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어린이에게 순수한 존재로 상상하고 천진난만한 모습만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어서 뜨끔했다. 어린이가 미워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어른스럽게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은 작가처럼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른이니까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좋은 어른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는 어린이를 아주아주 많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니까.
‘나에게 없는 것을 어린이에게 줄 수 없으니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어린이와 관련된 많은 담론이 있었고 저자의 마음과는 달리 ‘노 키즌 존’은 여전히 곳곳에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노 키즈 존’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 속에서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했을 때 불편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아이들이 생겨 ‘노 키즈 존’에 해당하는 경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 표현이 더 차별적이고 기회조차 앗아간다는 마음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는 환경이거나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들로 인해 소란스럽거나 물건을 파손하는 등 가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에서의 표현처럼 복잡해야 하는 건 복잡하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한다. 단순하게 ‘노 키즌 존’이라는 단어만 붙이지 말고 왜 그래야하는지 굳이 설명해주시고 적어주시면 좋겠다. 그럼 이해할 수 있고 무시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공감되었다. 물론 예스 키즈 존, 케어 키즈 존 등 표시가 되어 있는 가게를 들어가면 괜히 고맙고 또 그만큼 신경쓰고 싶으며 존중해주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괜히 사장님에게도 어필해보려는 마음도 든다. 작가님 덕분에 또 마음을 다잡고 내일 그리고 또 모레 앞으로도 한동안 어린이를 만나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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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책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기대하고 구매한 책. 독서모임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작가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선정해서 읽게 되었다. 참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ㅎㅎ 세계관 연결을 해야겠다.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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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까지 어린이이고 언제부터 어른일까. 베스트셀러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의 신작 <어떤 어른>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나 자신의 지난날을 헤아리면서 어린이였던, 청소년이었던, 어른이었던 날들 내내 나는 나였다는 걸 알았다." (6쪽) 정말 그렇다. 언제까지 어린이, 언제부터 어른이라는 기준이 나라마다, 사회마다, 개인마다 다양하게 있지만, 나이에 상관 없이 '나는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인 '나'들과 어른인 '나'들을 구분한다. 대체로 그 구분은 약자인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구분이 어린이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건 무엇이고 차별한다는 건 무엇일까. 이 책은 오랫동안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현재는 독서교실 선생님으로서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 저자가 바람직한 어른의 태도란 무엇인지 고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 어떤 어린이가 친구 문제로 고민하자 지켜보던 부모님이 이런 말을 했다. "졸업하면 다시 안 보는 사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른 되어서 만나는 친구가 더 좋은 친구다" 부모님 입장에선 어린이를 위로하기 위해 (좋은 뜻으로) 한 말이고, 내용 자체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 당사자에게는 이런 말도 상처가 된다. 졸업하면 안 볼 사이니까, 어른 되어서 만나는 친구가 더 좋은 친구이니까 지금 만나는 친구와 겪는 문제는 별일 아닌 걸로 치부하는 어른들의 이런 태도는 어린이 입장에선 보호가 아니라 차별이다. 어린이는 순수하다, 명랑하다, 활달하다 같은 생각도 편견이다. 어른들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듯이 어린이들도 한 명 한 명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다. 그런데 어른들 멋대로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놓고는 그에 맞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답지 않다'는 딱지를 붙인다. 이러한 편견이 확장된 사례가 '노 키즈 존'이다. 저자는 '노 키즈 존' 자체에는 반대하지만 어린이 동반 손님을 배제할 수 밖에 없는 업주들의 입장 또한 이해하므로, 단순히 '노 키즈 존'이라고 명시하는 대신 어린이 동반 손님이 수긍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줄 것을 제안한다(예 : 식탁에 화기가 있어서 위험하다, 깨지기 쉬운 장식품이 많다). 이렇게 하면 어린이 동반 손님 입장에서 차별 당하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보호 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어린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어린이의 정체성이다. 정체성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면 '노 휠체어 존'이, '노 시니어 존'이, 또 '노 무슨 무슨 존'이 생길 것이다. 사실 문제 상황을 가정한다면 차별과 배제는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나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풀고 싶다. 평등을 찾아가는 길은 원래 어려운 법이니까. (264쪽) 인간은 어린이일 때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일 때도 자란다. 후자는 보통 '늙는다'라고 표현하지만, 늙음, 노화를 수용하는 과정 또한 개인에게는 '자람'이다. 늙는다고 생각하면 서럽고 슬프지만, 젊을 때 누린 것들을 헤아리면 그렇게 서럽고 슬프지만도 않다. 저자는 <아기 공룡 둘리>의 연재를 실시간으로 읽고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1집 때부터 좋아한 것이 자랑인데, 같은 이치로 <슬램덩크>, <세일러문>의 TV 애니메이션을 실시간으로 보고 H.O.T, 동방신기, 엑소를 데뷔 때부터 본 내가 자랑스럽다(ㅎㅎ). 앞으로 건강 관리 열심히 해서 일흔 넘어서도 잘 먹고 잘 읽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그때 '노 시니어 존', '노 휠체어 존' 같은 차별을 안 당하려면 (머지 않아 어른이 될) 어린이들이 어린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