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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저자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뇌의 차이가 애초에 있으니 다르게 교육하고 훈육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육아서적을 보고 그 근거가 되는 실제 연구를 찾아본다. 실험과 뇌과학적 발견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되어 왔으며 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르몬이 신경과학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고 가장한 성차별주의가 유치원과 학교 문 너머까지 흘러넘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한다. - 237쪽
신경 과학은 온갖 과학적 권한을 가지고 구식 고정 관념과 역할을 강요한다. - 334쪽
남성의 뇌는 원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성적이고, 여성은 수학에 약하고 감정적이고,,,, 이런 남녀간 뇌의 성차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고정된 남녀의 뇌를 말하는 이론을 21세기 과학이 만들어 낸 새로운 신경 성차별 혹은 뇌 성차별이라고 부르는 “뉴로섹시즘neurosexism”이라고 부른다. 비록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성차를 보이는 행동을 할지라도 그것은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이며 고정불변이 아닌, 언제든지 새롭게 바뀔 수 있는 차이라고 본다.
이제 밝혀졌듯이 우리의 뇌는 우리의 행동, 우리의 생각, 우리의 사회, 세계에 따라 변한다. 뇌 발달에 대한 새로운 신경 구성주의적 견해는 신나게 얽혀 있는 유전자, 뇌,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중략) 그렇다, 유전자 발현은 신경 구조를 낳고, 유전적 재료들은 외부 영향에도 전혀 끄떡없다는 이야기이다. 유전자에 관한 한 , 우리는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그대로 태어난다. 하지만 유전자 활동은 도 다른 이야기이다. 유전자는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스위치를 껴고 끈다. 우리의 환경, 우리 행동, 심지어 우리의 사고조차도 발현된 유전자를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생각, 학습, 감각은 모두 신경 구조를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다. - 256쪽
요새 부모들은 자녀를 성중립적으로 키우려고 한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면 아들은 핑크를 거부하고 딸은 공주 의상을 챙긴다. 이를 보며 타고난 차이가 있다보다,하며 포기하지 말자.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만 받는 게 아니다. 또래집단 피드백, 매체, 사회 문화 환경 문제 등등 외부에서 오는 압력에더 반응한다. 이를 아닌 내적으로 기인한 문제라고 잘못 정의내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당신이 보는 성 불평등은 당신 마음속에 있다.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성에 대한 문화적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맥락과 상호 작용하는 복잡하게 얽힌 심리적 연상 속에 존재한다. 이 상호 작용을 통해 자아 인식, 관심사, 가치관, 행동, 능력이 생겨난다. 환경 속에서 성이 두드러지는 방식은 다양하다. - 331 ~ 332쪽
책은 진지하게, 단계적으로 각각의 실험과 연구 과정을 추적해서 독자에게 보여준다. 같은 실험이라도 여러 조건에서 행한 결과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보겠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심정을 알아맞추는 실험을 하면 여성이 더 잘 맞춘다. 여기에서 뉴로섹시즘을 강화하는 쪽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감정이입을 잘 하게 타고 났다,라는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데 감정을 잘 맞추면 금전적 보상을 해 준다며 다시 실험을 하면 남성들도 굉장히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게 된다고. 이번 실험 결과가 말하는 것은 즉, 남성들은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는데 안하며 살고 있다는 것. 타고난 뇌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 왜? 강자들은 약자의 감정을 살필 필요가 없으니까. 사회가 남성들이 살기 더 편리하니까. 바로 여기에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의 뇌 차이가 있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사회에 퍼져있는 성적 불평등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그 이유가 우리 사회의 불공평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다. 강추. 드미트리님 리뷰 덕분에 2년 전에 읽은 책인데 이번에 박근혜 탄핵 과정을 보다가 생각나서 다시 읽고 리뷰 남긴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남녀의 뇌 차이가 근본적 성차별의 원인은 아니라는 걸. 남성들은 타인의 감정을 읽고 배려해주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순전히 다 뻥이라고. 보라, 여자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녹취를 해 놓고 다시 들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행할 정도로 배려심이 강한 존재가 남성이다. 부모 잃은 공주님이 불쌍하다고 그렇게나 여성에게 감정 이입 잘 하는 어르신들도 남성이다. 절대 남성의 뇌가 감정 이입에 약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냥, 강자에게 감정이입을 더 잘 하고 약자에게는 둔감한 존재들이 있을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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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수능시험이 있었다. 13년 전이었지. 상대적으로 여성은 인문계가 많았고, 남자는 자연계가 많았다. 언어 영역에서는 여성 점수가 높았고, 수리 영역에서는 남자 점수가 높았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도 '영국에서 행해진 실험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각종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공간 지각력이 뛰어나 공적인 업무에 적합한 반면, 여성은 감성적이라 감정 노동에 뛰어나다는 내용 말이다. 『젠더, 만들어진 성』은 이런 통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여성과 남자의 차이를 강조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담론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와서 새삼스러울 게 없으나, 달라진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작금의 섹시즘(성차별주의)는 더 교묘하고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신이 여성보다 남자를 우월하게 만들었다는 식의 신앙에 호소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정당성을 과학에서 찾는다. 특히 '놔과학'이 그 역할을 떠맡았는데, 이런 식이다. 남자의 뇌가 수리적, 공간적 지각력이 뛰어나다면 여성의 뇌는 공감력에서 우월하다는 설명. 이런 설명은 여러 가지가 문제가 있다. 우선 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실험 과정이나 분석에 결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표본이 너무 적다거나, 순환론적 해석을 저질른다든지, 무엇보다 아직 인간이 뇌의 각 영역과 호르몬에 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나온 여성과 남자의 뇌에 관한 설명은 여성과 남자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대학 입시라든지, 취업이라든지 각종 사회적 관문에서 말이다. 사실 뇌과학이 말하는 여성의 뇌와 남자의 뇌를 받아들이자면, 남자는 공적 영역에서 일해야 하고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출산과 육아만 담당해야겠지. 이런 모습은 역사상 한 차례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만이 아니라 노동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고, 남자 역시 사적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정이 이런데, 왜 여성의 뇌와 남자의 뇌 차이를 극대화시킬까. 의도했든 안 했든, 현재의 뇌과학은 남자가 의사결정에서 주도권을 지닌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데 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런 연구 결과가 여성에게 열패감을 주고, 포기하도록 종용하기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이런 실험이 있다. 한 집단에게는 여성의 뇌와 남자의 뇌가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다른 집단에게는 여성의 뇌는 남자의 뇌에 비해 수학을 푸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집단에게 같은 테스트를 했더니, 결과는 어땠을까. 당연히 후자 집단에서 여성과 남자의 성취도 차이가 더 벌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위의 이야기 가상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여성의 뇌와 남자의 뇌 차이를 이야기하며 여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자리로 내몰고 있다. 그 결과로 여성이 주로 문과로, 남자가 이과로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상적인 내용 중 한 부분은, 한국보다 훨씬 성 평등적일 것 같은 미국에서도 남아 선호 비율이 53%로 아주 미세하게나마 여아보다 높게 나온다는 사실. 이놈의 가부장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 뉴로섹시즘, 즉 신경 성차별은 성에 대한 문화적 믿음을 반영하고 강요한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말이다 (28쪽) 맥락이 적절하다면 여성적 자아와 남성적 자아는 다른 어떤 사회적 정체성만큼이나 유용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융통성 있고, 상황에 민감하고, 유용하다는 것은 '고정적으로 배선된'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공감 능력의 성 격차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면밀한 검사에서 고정적으로 배선된 탓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사회적 맥락 속에 도사린 기대에 맞춰 자아를 세심하게 조정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6쪽) 안타깝게도 '수학=남성'이라는 암묵적 연상 정도가 특히 강한 여성은 고정관념화된 위협에 빈번히 빠지는 위험이 보였다. (중략) 여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은 경력의 사다리를 가장 힘겹게 오르는 여성들에게 특히 해로울 수 있다. (75쪽)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성이 승진하고 힘을 쥐는 걸 좋게 보지 않는다. (103쪽) 모건과 마틴은 전문적인 여성 영업 사원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전"을 야기하는 또 다른 인기 유흥 장소가 스트립 클럽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만 남성 동료와 고객 들은 여직원과 함께 그런 장소에 가는 것을 꺼린다. (120쪽) 가정에서의 장벽도 포함된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중에서도 가정생활에 맞추여 경력을 굽히지 않겠다고 결정한 여성은 추가적인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남편의 자존심을 둘러싼 심리적 우유부단함이라는 형태의 성 일탈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146쪽) 방법론적 결함이 있는 연구는 너무 많다. 많은 연구들이 지나친 해석을 한다. 하지만 논문 저자나 그걸 읽는 이들이, 남녀가 타고난 차이가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성 계층화된 사회 때문이라는 결론을 떠올리게 하는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178쪽) 걱정은 필요 없다! 모순된 자료가 나타날 때면, 연구자들은 남성이 하나의 뇌 반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심적 회전 능력이 좋다는 가설과 남성이 뇌의 좌우반구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심적 회전 능력이 좋다는 완전히 모순된 두 가지 가설을 함께 이끌어 낸다. (215쪽) 신경 과학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고 가장한 성차별주의가 유치원과 학교 문 너머까지 흘러넘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나를 불안하게 한다. (237쪽) 뇌에서 나타나는 많은 성 차이는 뇌 자체보다도 뇌의 크기 때문이라는 걸 떠올려 보라. 심리학과 신경 과학이 유사점이 아닌 차이점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발견을 보고하는 방식을 기억하라. 물론 남성과 여성의 뇌는 서로 다른 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유사점이 있다. (중략) 이 세상에 여성의 뇌만큼 남성의 뇌와 흡사한 것은 없다. (241쪽) 어린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이런 엄격한 드레스코드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중략) 한때 분홍색은 "확고하고 더 강하고" "열의와 용기"를 상징하는 빨강과 가까운 친척에 해당하는 색상이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에게 선호되었다. "보다 예민하고 얌전"하고 "믿음과 지속성의 상징"인 파랑은 여자아이들 것이었다.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지금의 관습이 자리 잡았다. (297쪽) 계집애 같은 소년보다는 모험하는 소녀를 찾기가 그남마 쉽다. 아동 도서 내 성 고정 관념에 맞서는 건 대체로 여성 등장 인물이 마주하는 과제라고 많은 연구자들이 발견했다. (314쪽) 가벼운 뇌, 힘을 약화시키는 난소, 남성적 능력을 키울 여유가 없는 특별한 양육 기술 등 불평등의 원인이 여성의 내적 한계에 있다는 데 그들의 초점이 너무나 집중해 있기에, 스티븐 J. 굴드의 말처럼 그들은 "외부에서 부과된 한계가 아닌 내적으로 기인한 문제라고 잘못 정의하고 있다." (중략) 당신이 보는 성 불평등은 마음 속에 있다. (3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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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사회, 그리고 인간의 가소성’
- <젠더, 만들어진
성>을
읽고
【내 안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기억으로부터 –
어릴적 경험】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우리 집에는 피아노 소리가 자주 들리게 되었다. 내가 6살 때 즈음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누나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바쁜’ 생활을 하는 동안 누나를 괴롭히며 빈둥거리던 나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모아졌던 모양이다. 나도 피아노 학원에 가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그 이유는 내가 당시에 ‘피아노는 여자들만 연주하는 악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빈둥거리는 남자아이라도 나의 생각에 피아노는 남자인 내가 ‘연주해서는 안되는’ 악기였던 것이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그리고 나의 누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느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내가 오래도록 지닌 – 아마도 가장 오래된 – 궁금증이었으며 풀리지 않을 숙제였다. 그리고 당시 어린 내가 느꼈던 수치스러운 감정은 이후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아직도 느낄 수 있을만큼 내 안에 각인되어 남아있다.
실험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성(Delusions
of Gender)>를 읽으면서, 피아노 학원에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어린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이 책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성구별적’ 문화 코드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이의 성별을 알게되면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기대의 유형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과 같은 전형이 이름표나 담요, 옷 등부터 아이가 뱃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언어까지 노골적으로 유형화되어있음을
알게되었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성구별적’ 환경의 ‘무차별적’ 세례를 받는다.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성에 대해 상식처럼 알고 동의하게 되는 사항들 – 예컨대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이 다르다는 점 – 이 일종의 ‘모태신앙’과도 같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저자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시기가 5-6세 때라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결국 내가 특별히 ‘성구별적’ 환경에 있지 않았더라도, 6세 즈음 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던 이 사건은 나만 경험했던 특수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저자가 하나의 장(章)으 제목으로도 사용한 ‘성평등은 집에서 시작된다’는 문구는 이 ‘성구별적’인 세상에서 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곳은 바로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어려서부터 보다 주의깊게 이러한 편견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피아노를 더 좋아하고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문제는 피아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한 인간의 삶에 평생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치관의 문제에도 연결될 수 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들도 어쩌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러한 ‘성구별적’ 환경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견해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차별 선진국으로서의 미국】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 사실 하나는 미국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문화를 만드는데 있어 ‘선진국’이었가 하는 점이다. 보편적인 성차별적 편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곧, 남자는 ‘수학 및 과학’등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에 능한 반면, 여자는 상대방에 공감하는 일과 종합하는 일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별 차이를 부각시키고 정형화하기위해 미국의 최상위 지식인들이 여성의 ‘열등한 특성’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던가 놀라울 뿐이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백인 남성에 의해, 백인 남성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세계 제일의 성차별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선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서
공부하는 여학생비율을 국가별로 비교한 통계가 매우 흥미롭다. 제3세계 국가에서 컴퓨터공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50%를 상회하는 반면, 유독 미국에서 15%수준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미국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성구별적’ 사회심리 구조가 얼마나 포괄적으로 남녀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분명한 단서를 제공한다.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19세기 말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에드워드 클라크는 여성의 열등한 특성을 의학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여성의) 지적 노동은 난소에서 뇌까지 위험할 정도로 맹렬하게 에너지를 보내 생식력을 위험에 빠뜨리고, 의학적으로 심각한 다른 질병들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남성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노력은 그나마 유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지식인층에서 여성과 남성의 ‘뇌크기 차이’를 가지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알게되면 더욱 경악하게 될 것이다. 곧 미국이라는 사회는 국내 최고의 지식인들(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집단)에 의해 남녀의 성차별적인 인식이 계획적이고 정교하게 형성된 사회임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모순적으로 얼마나 쉽게 사회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행동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가지고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사라진 반면, 그 자리를 신경과학의 뇌촬영 영상이 대신하게 되었다.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나 PET(양전자 단층촬영)로부터 ‘재구성’된 뇌의 활동부위 스냅사진들은 여성과 남성의 ‘뇌기능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데 ‘이용’되고있다. 여기서 ‘이용’이라고 쓴 이유는 과학장비로 측정된 신경과학적 결과와 실제 남녀의 행동의 차이를 연결해주는 심리적 해석이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측정’된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있어 수많은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여과하고 선택하여 그 의미를 ‘추출’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로부터 측정한 단순한 전기적인 신호를 다시 그 심리적 원인으로 환원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신경과학’에서 보여주는 뇌활동의 남녀 차이를 제시하며 ‘그러므로 남녀가 다르게 행동한다’라고 주장하는 연구가 있다면, 우리는 이 연구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선천적인 차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하버드 대학 인지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를 들 수 있는데, 결국은 핑커도 앞에서 19세기 말 ‘여성의 신체적 열등함과 지적 열등함’을 언급했던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의 견해와 크게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티븐 핑커는 신경과학의 결과를 언급하며 좀더 고도화된 자료와 언어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곧 장비로부터 측정된 수치와 지표만으로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해석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의 연구결과가 이를 다루는 ‘(백인)남자 전문가 집단’에 의하여 어떻게 남녀 차이를 지지하는 견해를 공고히 해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책의 중간에서 다음과 같이 슬며시 내비친다.
“뉴로섹시즘(신경과학이 만들어내는 성차별)은 고정관념의 손상, 한계,
잠재적 자기 성취를 촉진한다. 3년 전 나는 내 아들의 유치원 선생이 아들의 뇌가 감정과 언어를 연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읽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254면)
책에서는 약 40년 전 자신의 아이가 성차별적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심리학자 부부를 언급한다. 이 부모는 아이가 보는 책을 보고 성차별적인 신호가 보이면 지우거나 수정하고, 가정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동일하게 나눠 하도록 노력했다. 코델리아 파인은 이 부부들과 같은 노력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이나 교육과정에서 평등한 성교육을 방해하는 문화적인 신호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이들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환경이 우리를 얼마나 은밀하고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까운 예로 나의 조카를 떠올려본다. 조카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부모들이 걱정할 정도로 ‘변신로봇’류를 좋아하던 여자 아이였다. 그런 조카가 어느 순간 로봇을 집어던지고 분홍색과 공주 코드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당시에는 나도 ‘여자 아이니까’하고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젠더,
만들어진 성(Delusions of Gender)>은 나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주었다. 이 모든 급격한 변화가 ‘성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나 생물학적-선천적으로 다르게 배선된 뇌구조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성차별적’ 환경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여성들이 자신들은 ‘여자라서 수학을 잘 못한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이것은 ‘사회에 형성된 편견의 영향을 받은 개인이 그렇게 선택한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느 한 집단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마취’의 작용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말은 여성과 남성사이에 해부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차이는 특정 분야의 지적 성취와는 무관하다는 점,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보다 덜 선호하는 이유는 사회심리학적인 편견의 결과라는 뜻이다. 곧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호르몬에 의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 차이가 어느 한 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이것은 어떤 근거를 ‘선택’하여 ‘주장’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여성과 남성에게서 보이는 ‘차이’(행동의 차이든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차이든 혹은 뇌구조의 차이든)를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반론의 여지가 있는 점들을 ‘사소한 차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타인의 실험과정 및 결과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잘못 해석될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반면 내가 볼 때 저자의 연구에서도 파고들어 의문을 제기하면 명확한 대답을 얻기 힘들 소지가 보인다. 물론 저자는 이 점에 시간을 따로 할애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저자가 여러 연구들에서 보이는 ‘사소한 차이’를 무시하기보다 여기에 주목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편견에 의해 잘못 해석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저자라면 남녀간의 이 ‘사소한 차이’를 무시하고 덮어두는 것보다, ‘인간의 여성과 남성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지적 성취 및 우열을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등’의 의미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 중에는 ‘양성평등’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상황을 여러 번 맞게 되었다. 과연 ‘평등’의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평등’의 의미를 물을 때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50:50으로 역할이나 몫을 분담하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의 의미만을 막연히 주장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 잣대로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는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누군가 ‘모든 직업 분야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기회와 일자리를 배분해야한다’라고 한다면 이 차체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평등’이라는 것은 ‘기계적 산술적 평등’의 의미로 한정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 또는 역사의 무대에서 산업혁명 이후 변화된 ‘인간의 조건’과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평등’의 의미가 연관되어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경제적 평등’을 생각해봄직하다. 오히려 경제적 관념이 반영된 ‘평등’은 여성과 남성에게 대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생리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연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겠다. 이는 분명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문제를 안고있다. 남성이 여성처럼 임신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문제에도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의 강도를 요구하거나, 휴가없이 남성과 동일하게 일을 강요하게 된다면 이 또한 불공평한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할 때, 보다 주의를 기울여 이 개념이 적용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동등한 경쟁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평등’의 신조를 서로에게 강요하게 될 때(예컨대 명문화된 규정이나 법 등으로 강제력을 띠게 될 때), ‘평등’의 의미가 부여하게 되는 일종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윤리적인 판단을 필요로할 때, 상황을 둘러싼 환경과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것처럼, ‘평등’의 개념을 현실에서 적용할 때 보다 유연하고 상대적인 가치를 염두해두어야 할 것이다.
【만들어진 성, ‘젠더’의 의미에 한 발 더 까까워진 기회】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젠더’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되었다. ‘젠더’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성’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의도된 결과임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의 방향이 앞으로 어떠해야하는가라는
문제는 너무나 근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문제다. 그만큼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의 삶 전반에 이들 모든 문제가 관여되어 있으며, 그 해결의 실마리도 우리의 삶 전반에서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이 “여성들이 경력을 단절하고 가정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는 가정 내 성불평등 때문이다."라고 말한 점에 공감하며 다시금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우리의 삶 전반에 배어있다면 그 문제는 일상에서, 좀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가정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겠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실천해나가는 것으로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의 상생, 곧 서로에 대한 생명을 붇돋아주고 존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정 내의 성불평등은 부부가 설겆이를 50%씩 나눠하거나, 청소 구역을 절반 씩 나눠하는 문제를 넘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가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소박하지만 더 근본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인간이란 타인 및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형성되어가는 존재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 1장 시작부분 - 성전환자 Jan Morris의 말 인용 ˝나는 광대하다. 내 안에는 다수가 존재한다.˝ (월트 휘트먼의 말)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의 말(7장 참조)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7장 참조) ˝당신의 딸이 여성적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는 건 당신의 딸이 가진 소녀의 뇌 때문이다.˝(10장 참조) *영장류 학자 프랜시스 버튼의 견해(11장) *또 다른 영장류 학자 윌리엄 메이슨의 견해(11장) *성차별적인 생물학자의 견해 - 조지 로매니스(George Romanes) *하버드 의대 교수 에드워드 클라크의 견해(14장 참조) *교육운동가 레너드 삭스의 견해(15장) *남여에 따라 다르게 성유형화된 부모들의 기대(1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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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젠더의식이 한 여자아이나 남자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조심해야 하는지 이 책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여자아이라고 얌전하고 애교를 부려야한다거나 남자아이라고 해서 화가나거나 아플때 울면 안된다는 것 모두 편견이자 폭력이다. 여자 아이는 원래 그래 남자 아이는 원래 그래. 모두 우리가 고쳐야 할 문제이다. 여자와 남자의 특성에 있어서도 많은 편견들이 존재한다. 수학만 보더라도 전세계에서 성평등에 가장 가까운 북유럽국가들에서 여학생 남학생 수학성적차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역시 편견을 뒤엎는 일이 발생하는 중. 우리가 해야할 것은 여자아이는 원래 그래 남자아이는 원래 그래가 아니라 그들의 성장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대상으로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본인과 사회의 틀 안에 가두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나 자신조차 스스로 가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