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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킹데드'같은 '아포칼립스'드라마나, '헝거게임'같은 '디스토피아'영화나 소설등이 많이 나오는데요.. 제가 어린시절만 해도...'유토피아'에 관한 광고가 많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은 미래엔 '유토피아'가 올것이라고 믿지 않는것 같습니다. 도리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쌓여가는데요... 사실...이런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의 시작은 바로 '1차대전'과 '2차대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수 있으며.. 인간이 만든 과학문명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수가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더이상 '과학'이 '유토피아'를 만들것이라는 믿음을 믿지 않았는데요.. '메리 셸리'는 '프랑케슈타인'의 작가로 유명한데.. 그녀가...이런 암울한 종말소설을 쓴 사실은 몰랐었는데요..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만 듭니다...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신듯.. 그녀가 이 소설을 쓴 '1826'년은 '산업혁명'과 많은 과학적 발견이 일어나서 유럽이 무수한 발전을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사람들은 '낙관주의'에 빠져 있을때인데.. 그녀는....당시 풍조와 다르게....'아포칼립스'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데요.. 소설 자체가 거의 200년전 소설이지만... 소설의 배경은 그녀가 살던때에서 무려 360년후... 지금으로부터도 60년후인 2075년도가 배경인데요...ㅋㅋㅋㅋ 주인공 '라이오넬'...그의 아버지는 멋진 귀족이였지만, 방탕하고 노름을 좋아했고 그의 친구였던 왕은 그가 버릇을 고치기를 원하여 마지막으로 빚을 면해주고, 제대로 살아보라고 거금을 줍니다 그러나...그는 왕에게 받은 거금을 그날밤 도박으로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염치는 있어서인지...왕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오두막집'의 여인과 결혼하여 '라이오넬'과 '퍼디타' 남매를 낳은 아버지는.. 상류층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병들어 죽고 병들어 죽기전에 왕에게 자신의 자녀들을 부탁하는 편지를 남기지만 왕에게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고아가 된 '라이오넬'과 '퍼디타'는 밑바닥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고... '라이오넬'은 망나니처럼 자라게 되는데요... 그들의 삶과 관계없이 역사는 변하기 시작하는데요.. 피없는 혁명이 일어나서, '영국'은 공화국이 되었으며... '왕'은 '윈저'백작이 되어 물려나지만, 얼마후 병들어 죽게 되지요 한때는 왕자였던 '에이드리언'.. 그는 백작이 되어 자신의 옛 영지였던 '컴벌랜드'로 오게 되고 '라이오넬'은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의 옛친구인 '왕'의 아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에이드리언'의 영지에 침입하는 '라이오넬'은 시종들에게 잡혀 피투성이가 되지만 '에이드리언'은 그를 알아보고, 그를 구합니다..그리고 친구로 대하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런 모습에 감동받는 '라이오넬' 더 이상 망나니의 삶을 살지 않도록 결심을 하게 됩니다.. 1권은 '라이오넬'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의 성공담입니다.. 2075년 양치기였던 그는 '에이드리언'과의 만남 그의 우정..그리고 그의 조력으로 '외교관'이 되고.. 공주이자 '에이드리언'의 여동생인 '아이드리스'와 결혼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가정도 이루고, 출세도 하지만.... 그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2092년 동양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요.. 그리고 재앙이 시작되면서 1권은 끝납니다.. 기존의 '종말소설'과 다른점이라면...1권은 전혀 '종말소설'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라이오넬'이란 주인공의 이야기가 연이어 펼쳐지는데.. 언제 '종말'이 시작되는가? 싶었더니 1권이 끝나갈즈음에......징조가 보이네요 아무래도 2권은...좀 내용이 슬픈이야기의 연속일거 같습니다... 그리고 '상상력'...1826년에 상상했던 미래는...별 다른점이 없는데 말이지요.. 상상력의 부족인지? 아님. 작가분이 시대적 배경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것인지..... 무려 360년후가 배경임에도...소설을 쓰던 시대랑 소설 속 시대랑 별반 달라진게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완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가독성도 있고.... 그래서 얼른 2권도 시작해보도록 하겟습니다....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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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이미 '최후의 인간'이라는 단서를 붙여놓고 있지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이 종말문학에 속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2073년이라는 숫자도 오타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길 정도였다. 물론 그 숫자로 인해 책의 앞뒤를 살펴보다가 과거 1900년대에 씌여진 이 글이 21세기의 미래를 그린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미래공상소설과는 달리 이 책에는 로보트라거나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왕정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이야기라거나 전염병에 의해 수많은 인류가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와 미래소설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어 황폐해진 도심을 무작정 지나치는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가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황폐함속에서도 등장하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 최후의 인간은 삭막하게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인간성을 찾고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지성인들의 노력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73년의 영국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어 있다. 난봉꾼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오넬과 퍼디타 남매는 고아로 자라지만 아버지와 전 국왕의 인연으로 인해 전 국왕의 아들인 에이드리언과 그의 여동생 아이드리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최후의 인간은 라이오넬 남매와 에이드리언 남매, 그리고 정치적인 야심가 레이먼드와 그리스의 공주인 에바드네의 서로 엇갈리는 인간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라이오넬의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 책 '최후의 인간' 자체가 바로 라이오넬의 기록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엇갈리는 남녀의 사랑과 애증, 정치적인 권력과 야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에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전염병으로 인해 피폐되어가는 세상의 모습과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는 최후의 인간을 이야기위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분의 차이, 사랑과 명예, 민족과 전쟁... 실상 최후의 인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착실하게 보여주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세상의 모습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 가상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꾸만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 글이 한세기도 더 전에 씌여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네. 우리 스스로가 먼저 바라야 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천국이 되기를 말이네. 인간의 의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죽음의 화살촉도 무디게 만들 수 있고, 질병이 머무는 곳도 위로할 수 있으며, 크나큰 고통의 눈물을 닦아낼 수도 잇다네. 하지만 인간이 그토록 뛰어난 힘을 동포들을 돕는 데 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불꽃은 희미해져버렸고, 내 체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바닥나고 말았어. 그럼에도 나는 내게 남은 지성과 힘을 모두 한 가지 일에 바칠 거라네. 그건 내 사명일세. 힘이 닿는 한 나는 인류를, 내 동포들을 이롭게 할 거란 말이네!"(1권 137)
종말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점차 희망이 사라져가는 듯 하고, 최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최후의 인간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라 예상하게 되지만 이야기의 곳곳에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저자의 이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또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으로 무너지고 황폐해져버린 영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어느 곳이든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여 죽음을 기다리거나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모든 광기와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의 종말을 외치며 신을 찾아 부르짖던 사이비 종교인들이 실제로 있었는데 최후의 인간에서도 역시 광기어린 맹목적인 믿음으로 무너져가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최후의 인간은 과거에 씌여진 미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의 시점인 지금, 책에서 그려낸 미래보다는 과거인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저자 메리 셸리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절친의 죽음 이후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소설로 재현해내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주인공들의 꿈이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은 프랑스 혁명 이후 당대 사회 현실에서의 진보주의에 대한 의문과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의문, 자연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물음을 도전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한다.
최후의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앞서도 말했든 인간의 본성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세상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비극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는다. 사실 메리 셸리가 백여년 전에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는 흔해져버린 현실이 되어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진리는 결코 옛것이라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인류의 수는 엄청나게 감소했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엄청난 역병은 몇 년 내에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이 명백했다. 이대로 놔둘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역병을 막아야만 했다. 역병이 수천, 아니 수만 명을 더 학살하기 전에, 인류가 역병의 지독한 장난으로 말살되기 전에 우리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이 이제 진정한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소위 왕들이 지녔던 보물보다 소중했다. 한 인간의 생각이 깃든 얼굴을 보라. 그 우아한 육신과 장엄한 얼굴,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보라.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 부서진 배처럼 한편으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인류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의 자식들과, 그 밑의 자식들의 최후의 시간까지 인류의 형태와 이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2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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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는 우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아직 <프랑켄슈타인>을 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여러편의 영화를 통하여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접해본 것이 전부이다. 다소 괴기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이 작품의 저자인 메리 셸리가 여류 작가라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다. <최후의 인간>은 바로 메리 셸리의 작품으로서 SF의 선구적인 작품이라 평을 받는 작품이다. 실제로 윌 스미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도 <최후의 인간>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182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지만, 다소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이 책이 SF의 효시가 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SF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대적인 배경을 대략 2100년 경으로 설정을 하였으며, 모든 인류가 전염병의 창궐로 인하여 하나둘씩 사망하면서 결국에는 주인공인 에이드리언이 최후까지 살아남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이는 분명 SF적인 요소라 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다소 빈약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대략 250년 후의 시대를 가상의 시대로 설정을 하였기에 인류의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시기만 2100년일뿐 모든 것은 그녀가 살고 있던 당시 대영제국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간의 분쟁이라든지 생활상은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콘스탄티노플에서 창궐한 전염병은 과거 중세의 흑사병처럼 퍼지지만, 2100년대라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은 SF 소설의 효시라기 보다는 저자 본인의 삶을 재현해낸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류의 멸망으로 다가가기 직전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레이먼드와 퍼디타, 에바드네의 삼각 관계는 바로 메리 셸리의 결혼 생활에 대한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 메리 셸리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제자이자 시인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를 사랑했고, 이들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문제는 바로 퍼시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과정에서 퍼시의 부인은 임신한 몸으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메리 셸리는 퍼시 비시 셸리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작중의 레이먼드도 라이오넬의 여동생인 퍼디타와 결혼을 하여 영국의 호국경의 자리에 오르면서 행복한 삶을 보내지만, 에바드네의 등장으로 레이먼드는 갈등을 시작한다. 레이먼드 부부의 사이를 흔들어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에바드네는 레이먼드를 전쟁터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레이먼드 역시 결국 전쟁터에서 사망을 하게 된다. 퍼디타는 그러한 레이먼드의 곁을 지키기 위하여 결국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된다. 어떠한가? 그 누구라도 메리 셸리의 실제 삶을 알았다면 레이먼드와 퍼디타, 에바드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전염병으로 멸망하는 과정에서 결국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역시 작가의 마지막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순간에 클라라의 부탁으로 배를 타고 이동을 하던 에이드리언과 라이오넬은 풍랑으로 배가 뒤짚이면서 라이오넬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역시 메리 셸리의 남편이 항해 도중에 익사를 한 사건을 투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이들이 마지막에 배를 타고 떠나기 직전 함께한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설정 역시 메리 셸리가 낳은 자식중 단 한명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려서 사망한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자의 인생을 어느정도 알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이 결국 메리 셸리의 인생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부분이 저자의 일생과 비슷함을 느끼게 한다.
<최후의 인간>이 된 라이오넬. 그는 바로 저자인 메리 셸리 본인을 뜻하는 것이리라.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통하여 홀로 남게된 라이오넬은 남편과 자식을 잃은 메리 셸리가 남편 사망 이후 수많은 구애를 물리치고 홀로 독신 생활을 하게 되는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최후의 인간>은 단순한 미래의 인류의 재앙을 다룬 작품인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사실 1800년대의 저자의 비극적인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시기만 250년 후의 설정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당시의 저자가 처한 현실을 곳곳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에 더하여 <최후의 인간>은 메리 셸리의 다양한 기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내용은 그녀의 삶을 투영한 것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다수의 극작가의 작품의 글귀를 마치 하나의 책의 내용처럼 인용하는 기법이라든지 당시 대영제국의 일원으로서 전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기행문 형식의 구성도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라 여겨진다. 또한 국가간의 전쟁도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그녀가 바라보는 당시의 세계관과 정치적인 식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라이오넬이라는 최후의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인간의 욕망 싸움이라든지 종교적인 타락과 같은 종말론적인 표현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제법 묵직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저자의 삶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실제 인간에 대한 고뇌를 다룬 <프랑켄슈타인>과는 또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최후의 인간>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재앙은 아니지만, 점차 인간 관계에서 홀로 고립되는 우리에게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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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410페이지, 23줄, 26자.
1부(288페이지)와 2부(110페이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부는 라이오넬 번즈라는 고아 소년과 그 여동생 퍼디타가 일생의 관계자 에이드리언 윈저 백작과 그 여동생 아이드리스 그리고 레이먼드 경 등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리스 왕족출신인 에바드네 자이미도 있네요. 간단히 밝히자면 라이오넬-아이드리스, 퍼디타-레이먼드의 결혼과 에이드리언과 에바드네의 결렬입니다.
문장이 상당히 화려한데, 찬찬히 읽으면 (또 어쩌면 원어로 읽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대로 급하게 읽으면,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2부는 레이먼드가 다시 그리스로 가서 터키와의 전쟁을 지휘하는 것과 죽음을 다룹니다. 이게 좀 안 맞는 게 처음 전투에서 고작해야 20대 초반이거든요. 외국인 출신의 젊은이가 군대를 지휘한다라! 그리고 역병이 퍼지면서 인류가 서서히 멸망당하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물론, 19세기의 기준으로써 소식이 매우 늦게 전파되고 있습니다만.
시대는 대략 2190년대인데, 글을 쓴 시점이 그보다 무려 360년 정도 앞서기 때문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냥 (당시로서는) 먼 훗날이라고 설정한 거라 봐야겠지요. 게다가 일부는 15세기의 이야기처럼 쓰여 있기도 합니다. 안목 문제겠지요.
150101-150101/1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