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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에 대대적인 청소를 하면서 안쓰고 오래된 필름카메라 두대를 버렸다. 한대는 그러니깐 내가 중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카메라였는데 처음으로 내것인 내 소유의 첫 카메라였다. 그 필름카메라도 참 많이도 고딩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하는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디지털카메라에 뒤쳐서 집안 한귀퉁이에 쳐박혀 밉상인 존재가 되어버린 필름카메라
지금은 주변 모두가 디지털이다. 필름 걱정 없고 인화를 해야만 사진을 볼수 있는 것도 아닌 디지털카메라의 매력에 빠져 요즘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이책의 소개글...사진가 이상엽이 18대의 필름카메라에 담은 우리 시대, 뜨거운 삶의 단상들...이라는 글귀에 관심이 갔고, 필름카메라로 찍은 흑백사진을 보고픈 마음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책은 다큐멘터 사진가, 프로르타주 작가인 이상엽씨의 사진에세이다.
18대의 필름카메라로 찍은 100여 컷의 필름사진과 가난한 사진작가의 사는 이야기부터 사진속에 담은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고있다. 물론 이야기 곳곳에 필름카메라에 대해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통 그 분야에 관심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도는 잘 모르겠지만 ㅎㅎ 필름카메라의 역사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좀 안타깝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필름카메라의 가격은 내렸지만 필름이 가격이 만만치않게 오르고 ..왜냐? 코닥(필름)이 밥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단다,,,구매자가 줄어드니 그럴수밖에 없는 현실이 ㅠ.ㅠ
난 책의 시작쯤에 들려주는 가난한 사진작가인 저자가 사는 고기리의 사계가 참으로 좋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찍은 고기리 집의 모습, 한여름의 고기리, 단풍든 고기리 계곡과 동막천...아! 이런곳에 살고 싶구나!하고 말이다. 이어 서해 5도, 구럼비 해안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서 구럼비가 파괴되는 현장과 해군기지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반대 현장인 제주도 강정마을 담은 사진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때 한국 노동운동의 핵심이었던 울산, 천안시 외곽에 있는 독립기념관, 세계인을 매료시킨 <와호장룡>의 홍춘, 유목민의 땅 라무스,,,등등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컬러사진이 줄수 없는 흑백사진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어 느낌이 참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진과 이야기는 올해가 광개토왕비 건립 1600년이란다. 414년 장수왕이 새웠다는 광개토왕비,,,
지금은 허물어져 초라한 돌무지무덤에 불과한 태왕릉의 풍경이지만 당대의 크기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란다.
그리고 나를 가장 가슴아프게 했던 또하나의 사진과 이야기들.... 바로 너무나 가슴아픈 <세월호 참사>에 관한 것이었다.
펜과 카메라는 종횡무진 고통을 후벼파는 칼날이 된다. 계속되는 오보와 왜곡은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 ( P239).
글이 너무나 공감가고 가슴아프고 재난을 보도하는 언론은 무엇이낙?하는 제목아래 써내려간 저자의 글이 제일 가슴속에 와닿았다.
책에 흑백사진만 있는것은 아니다. 그런데 확실히 칼라사진에 비해서 뭔가 비현실적인 묘한 매력과 맛이 있는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속 사진들이 좀더 컸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보고 저자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더운날 좋은 독서의 시간을 가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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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찍고 싶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사진을 검색하고 보는 걸 즐겼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카메라는 내게 활용도가 낮은 비싼 물건에 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가슴 한편에 나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남아 있다. 이상엽의 『최후의 언어』는 그런 부러움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이국의 낯선 풍경을 담은 여행 에세이나 보통의 아름답고 예쁜 사진 에세이라고 여긴 것이다. 고백하자면 저자가 사진기자라는 걸 몰랐다.
이 책엔 저자가 소유한 다양한 필름 카메라와 함께 사진이 등장한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잘 아는 독자에게는 아주 유용한 내용이다. 그러니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필름 카메라를 소장하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닌 책이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 사용자인 나는 책에 등장하는 렌즈, 필름 카메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카메라의 역사, 카메라의 구조, 카메라의 기능, 제조사, 카메라의 종류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나 같은 독자에게는 사진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정교한 카메라. 그리고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자본.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 그것을 기꺼이 비싼 가격에 치르고 손에 들어 세상을 기록하는 사진가. 뭔가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깊은 관계인 듯한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잘 안 된다.’ (94쪽)
한 장의 사진과 그 사진을 찍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다는 표현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제주 강정의 분노, 울산 현대 자동차 공장 앞 노동자의 외침, 사막으로 변한 새만금의 상처, 진도 팽목항의 슬픔을 담은 사진은 경건한 기도와 같다. 수많은 방송매체와 언론의 보도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는 진실은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카메라가 삶을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사고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한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내 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80쪽)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모습은 때로 생경하다. 가족이나 친구를 담을 때는 묘한 감정을 불러오고 자연이 내뿜는 위대한 기운을 받는다. 저자의 말처럼 카메라가 아닌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은 애정을 부여하는 순간 나만의 특별한 대상으로 존재하니까. 시간이 지나 필름을 현상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커지고 다른 것으로 발현될 것이다. 그 감정을 몹시 사랑하는 이를 알고 있다. 내가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마음이 담긴 그런 사진, 나도 찍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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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모(LOMO)라 불리는 카메라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조악한 렌즈 탓이라고 했지만 독특한 색감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러시아 스파이가 이용했다는 둥의 이야기 역시 솔깃할 법했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고, 필름 구입과 사진 인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한다면 유지에도 끊임없이 돈이 들어가는데도 그랬다. 일명 ‘돈 먹는 하마’를 향한 사람들의 강렬한 욕망은 설명이 어렵다. 나 또한 한동안 열병을 앓았지만 여전히 그 때 왜 그랬는지를 말해보라면 꿀먹은 벙어리로 돌변하고야 만다. 카메라라고 말하면 최근에는 모두가 디지털 카메라를 떠올린다. 화소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나 초창기의 200만화소대의 제품을 떠올린다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는 중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대형인화에는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필름의 진득한 색감 역시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주장은 이제 소수의견이지 싶다. 점점 더 많은 필름들이 과거가 되고 있다. 일례로 카메라와 필름을 제조하던 코닥은 심각한 재정난 끝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필름 카메라를 이야기했다. 물론 그도 디지털 카메라를 무작정 외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손에는 필름 카메라가 들린다. 그에게 필름 카메라는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최후의 도구인 셈이다. 많은 수의 카메라가 그의 책에 등장했다. 자본주의 사회다보니 아무래도 가격에 가장 먼저 신경이 간다. 한때 몇 백만 원은 넘나들었지 싶은 기종들도 이제는 제법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면 구입이 가능해졌다. 성능면에서 떨어지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결과물을 놓고 본다면 배 이상 비싼 디지털 카메라보다도 더 나을 때도 있다. 다만 사람들이 찾지 않을 뿐이다. 사진 인구의 급증이라는 배경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대체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그 결과 사진을 업으로 삼은 사람, 사진에 정말 미쳐 있는 사람들은 사진 한 장을 찍는 데도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술하는 사람들이 종이 마구 쓰고 물감 마구 쓰는 일 없듯’ 사진을 하는 사람 역시 계속 인상될 약품과 인화지의 가격을 고려하며 셔터를 아껴야만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라 하겠다. 사진과 이야기 모두가 매혹적이었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전설과도 같은 카메라들이 토해낸 사진 앞에서 나는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상상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마냥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의 내 처지가 딱해 보였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미루기 바빴던 지난날이었다. 동시에 저자의 카메라에 대한 부러움도 샘솟았다. 그는 자신이 충무로 앞 카메라 상가들을 지나치며 철 지난 카메라들을 볼 때마다 군침을 삼킨다고 고백했다. 막상 손에 쥐어줘도 난해함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지 못할 게 뻔하건만, 저자의 꽁무니를 좇은 끝에 18대의 카메라 중 한 대라도 한 번 쓰다듬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카메라를 향한 내가 표할 수 있는 동경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언젠가는 정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역사가 되어가는 카메라로 저자는 잊혀져가는 것들을 담았다. 여전히 중국의 동화정책에 앓고 있는 티베트 민중들의 모습에서부터 이유도 모른 채 많은 이들이 죽어간 진도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개별 사건들도 물론 역사이지만 저자가 찍은 사진 또한 역사로서의 독립적인 가치를 지녔다. 귀한 필름을 아끼고 또 아낀 끝에 탄생시킨 사진이라는 점은 오늘날 너무도 쉽게 찍고 지워버리는 디지털 사진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고픈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 역시 존재한다. 필름 카메라가 정말 사라져야 할 시점이 도래 했을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사진을 찍게 될지. 차가운 줄로만 알았던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펄펄 끓고 있다. 쉽게 식지 않을 정도의 열정이 있다면 마지막은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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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지난 7월 8일에 썼지만, 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8월호에 실으려고 썼기에, 그동안 묵힌 글을 올립니다. 어제 <포토닷> 2014년 8월호가 나왔습니다. 사진책을 즐겁게 읽으며 사진과 삶을 읽는 이웃이 늘기를 바랍니다.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1 사진으로 이루는 빛을 바라보다 ―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 이상엽 글·사진 북멘토 펴냄, 2014.6.25. 이상엽 님이 선보이는 사진책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북멘토, 2014)를 읽습니다. 이상엽 님은 스스로 묻습니다. 이상엽 님은 이녁 스스로 ‘마지막 말’을 물은 뒤, ‘나는 왜 찍는가’를 묻습니다. 이 책은 이상엽 님이 이제껏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밝히려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 언제나 먹고사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 처지는 도시 생활의 미래를 무척이나 어둡게 한다 … 수면을 재빨리 차고 지나가는 물새들과 이름도 모르는 산새들이 숲과 계곡에 가득하다. 망원렌즈가 없어 그저 눈과 귀로 감상할 뿐이다 .. (28, 35∼36쪽)
누군가는 먹고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먹고살기는 어렵지 않으나 꿈이 없어서 헤맬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먹고살기도 어렵고 꿈이 없어 헤매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어렵지 않으면서 스스로 꿈을 밝혀 즐겁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어떻게 다른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밥을 어느 만큼 먹거나 돈을 얼마나 벌 적에 넉넉하다 할 만하고, 어떤 꿈을 어떻게 이루려 할 적에 즐겁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하루 두 끼니를 먹으면 어떨까요. 하루 네 끼니를 먹으면 어떨까요. 다달이 천만 원을 벌면 어떨까요. 다달이 백만 원을 벌면 어떨까요. 도시에서 아파트를 가지면 넉넉할까요. 시골에 오두막 같은 집이 있으면 아쉬울까요. 자가용을 굴리면 넉넉하고, 자전거나 두 다리로 움직이면 아쉬울까요. 이야기를 돌려서 사진으로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 사진을 몇 장쯤 찍을 때에 넉넉하거나 즐거울까요. 내가 찍은 사진은 어느 만큼 사랑을 받거나 얼마에 팔리거나 몇 장쯤 팔릴 때에 넉넉하거나 즐거울까요. 그리고, 어떤 사진기를 써야 사진이 그럴듯하게 나온다고 할 만할는지요. 값진 장비가 사진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100장을 찍거나 300장쯤 찍으면 훌륭하다고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사진 한 장을 백만 원에 팔 수 있으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상엽 님은 “라이카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는 작가”는 얼마 안 보인다고 말하는데, 라이카뿐 아니라 대형사진기이든 중형사진기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는 작가는 얼마나 된다고 할 만할까요. 소형사진기 가운데 아주 값싼 장비로, 똑딱이라 일컫는 가볍고 작으며 값싼 디지털사진기로 멋진 사진을 찍는 작가는 몇이나 된다고 할 만할까요. .. 무언가를 은폐하고 음모하기 위해 쳐 놓은 것이 가림막이다. 재개발지구에서, 4대강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림막을 보았다. 그리고 여기 제주도 강정에서 또 본다 … 명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라이카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 (59, 69쪽)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니, 사진장비를 허투루 다룰 수 없습니다. 아무 사진기나 쓸 수 없습니다. 사진기마다 값이 다른 까닭은, 사진기마다 화질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값을 더 얹어서 장만하는 사진기를 쓸 적에 화각과 화질과 해상도 모두 한결 뛰어나겠지요. 그러면, 화각과 화질과 해상도가 더 나은 사진을 얻으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왜 ‘더 나은 사진을 얻으려’고 해야 할까요. 우리들이 찍을 사진은 ‘더 나은 사진’이어야 할까요. 그래서 ‘세계 사진 역사’에도 이름을 걸쳐야 ‘사랑받는 사진가’가 될는지요. ‘매그넘 회원’이 되거나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외국 사진잡지에 소개되’거나 ‘사진 한 장에 제법 비싸다 싶은 값을 받고 팔아’야, 어깨에 힘을 줄 만한 사진가가 될 만할는지요.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되는 책을 팔 만한 글을 쓰는 작가를 가리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작가’는 ‘훌륭한 작가’나 ‘아름다운 작가’나 ‘사랑스러운 작가’는 아닙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사진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습니다. ‘인기 사진가’라 손꼽을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그야말로 ‘인기 사진가’입니다. 다만, ‘인기’를 얻는 사진가일 뿐입니다. 인기를 얻는다고 해서 이분들 사진이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따사롭거나 착하거나 참답지는 않습니다. 사진 한 장 판 적이 없어도, 사진책 한 권 내놓은 적 없어도, 스스로 사진을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따사롭거나 착하거나 참답게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즐겁기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한테 자랑하려고 우쭐거리려고 낚시를 할 수 있겠지요. 남한테 으스대려고 뜨개질을 할 수 있겠지요. 남한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자랑하는 사진이나 으스대는 사진이나 남한테 보여주려는 사진은 스스로 우리 삶을 얼마나 밝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가 바라보려는 빛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나누려는 까닭은 내가 바라보려는 빛을 가만히 보듬으면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얹어 이야기꽃으로 피어나도록 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 나는 비정규 노동자 천의봉, 최병승 두 사람이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고 느껴 버렸다. 이 시대 노동계급들에게서 말이다 …전범기업 니콘은 전후 평화헌법으로 군수시장을 잃자 민수로 눈을 돌려 카메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카메라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진가들이 전쟁을 고발하는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이 벌인 전쟁을 부인하고 있다 .. (88∼89, 143쪽) 사진으로 이루는 빛을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이루는 삶을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이루는 넋을 바라봅니다. 이상엽 님은 ‘노동자’를 자주 바라봅니다. 이상엽 님은 노동자를 바라보면서 ‘예술’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사랑’을 배웁니다. 다른 사진가는 다른 것을 바라보면서 예술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을 떠올리거나 사랑을 배웁니다. 어느 쪽을 바라보기에 더 낫지 않습니다. 이쪽을 보기에 더 낫지 않습니다. 사진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지 않습니다. 사진은 국경도 성별도 나이도 학력도 따지지 않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야 훌륭하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워야 아름답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마음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사람이 훌륭하구나 하고 느낄 사진을 찍습니다. 눈길과 생각과 사랑을 아름답게 돌보는 사람이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사진을 빚습니다. 사진을 열 해쯤 찍어야 ‘사진다운 사진’을 찍지 않아요. 사진을 서른 해쯤 찍어야 ‘사진다운 사진’을 바라보거나 느끼지 않아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진기를 처음 쥔 날에도 사진빛을 느낍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진기를 쉰 해 넘게 쥐었어도 사진빛을 느끼지 못합니다.
.. 오늘은 40킬로미터쯤 돌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내성천을 도는 지율 스님의 뒷모습을 좇았다. 몸으로 페달을 밟아 가며 내성천을 돌아보는 사이 우리가 자연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 영주시 평은면에는 지금 영주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219∼220쪽) 이상엽 님이 만난 수많은 이웃 가운데 지율 스님이 있습니다. 지율 스님은 참말 ‘스님’입니다. 그런데, 지율 스님은 백 날이 넘도록 물조차 안 마시면서 ‘밥굶기 싸움’을 했어요. 어떤 넋일까요. 지율 스님은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면서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자꾸 뚫는데, 온몸을 바쳐서 고속철도를 막으려고 하던 지율 스님은 어떤 숨결이었을까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우리가 삼십 분쯤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 무엇이 즐거울까요. 삼십 분쯤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기찻길이나 찻길을 닦는 데에 얼마나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가요. 이런 돈을 우리 삶을 가꾸는 데에 쓸 수 없을까요.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를 닦는다며 숲과 들과 골짜기를 허물기보다는, 숲과 들과 골짜기를 푸르게 건사하면서, 어른과 아이 모두 푸른 빛을 누리도록 하는 길이 아름답지 않을까요. 삼십 분 덜 빠르게 달리면서 푸른 빛을 아름답게 누릴 때에, 비로소 사진도 아름답게 태어나지 않을까요. 돈을 더 벌어서 하려는 경제개발은 그치고, 꿈과 사랑을 이웃하고 나누는 어깨동무로 나아가야 비로소 삶이 깨어나면서 사진도 함께 깨어나지 않을까요. 작가 대접을 받아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꾸준히 팔아야 작가로 지내지 않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이 값에 팔거나 저 값에 파는 틀을 넘어,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책을 내거나 전시회를 열기에 작가로 서지 않습니다. 사랑하며 삶을 새로 짓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라고 느낄 줄 아는 가슴으로 날마다 새로운 날이 되도록 생각을 짓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다고 느끼면 아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모레와 글피가 으레 똑같으리라 여기면 어떤 사진도 못 찍습니다. 날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빛나는 삶인 줄 온몸으로 마주하면서 온마음으로 사랑할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이상엽 님은 앞으로도 씩씩하게 사진을 찍겠지요.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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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찍고 싶은가 어떤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다. 왜 그 장면에 시선이 가는가? ‘무엇이든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특정한 장면이든 들꽃을 비롯한 식물이든 마음속에 담아둔다는 것은 결국 그런 부류에 주목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저널리스트와 같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가치관을 가지는가에 따라 주목하는 장면은 다를 것이다. 동일한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전달하는 저널리스트의 차이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고 본다. 포토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이상엽이 주목하는 오랜 활동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나는 왜 찍는가”라는 시각으로 그동안의 활동을 점검하고 있다. 그 결과물을 엮어 발간한 책이 ‘최후의 언어’다. 대중매체의 사진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현장에서 만나는 특정한 장면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진을 찍어온 스스로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이상엽의 이야기는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 댐 건설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냇가, 우리 역사 속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가거나 실크로드를 건너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사진을 매개로 기록과 보도라는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가 오는 강정을 찾아 제주가 동북아 분쟁의 전초기지가 될지 평화의 섬으로 남을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라며 환경생태에 대한 인간의 무례와 오만을 비판하고 이제는 불모의 사막이 되어버린 새만금에서 자연의 죽음을 담보로 한 ‘친환경’ 신도시 건설의 모순을 읽는다. 이렇듯 이상엽이 주목하는 분야는 역사와 정치, 문화, 예술 등을 아우르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전달해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직무를 떠올리며 성찰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진가에게는 필수적인 도구인 카메라에 대한 저자 이상엽의 애증이 결과가 덧붙여진다.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을 점령해가는 동안에도 필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사진기를 손에 넣기까지 에피소드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필름카메라 18종류를 소개하며 각각의 카메라가 주로 사용되었던 현장과 사진들의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만들어 준다. 이상엽의 카메라에 대한애정은 빛이 들어간 사진을 책에 그대로 사용하여 실감나는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카메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접하며 필름을 생산하던 회사의 파산으로 더 이상 필름을 사용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도 함께한다.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익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면서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필름 한 롤이 있다면 무엇을 찍을까? 이상엽이 스스로 묻는 질문이지만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질문으로 다가선다. 마지막 사진에 담고 싶은 그 무엇이 사진가에게는 사진이라면 일반인에게는 삶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는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 머물 수 없는 사회적 사명이 있기에 그들의 사진은 시대의 정신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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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많은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부수적인 글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사진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림이든 사진이든 보는 사람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아웃풋이고 독자들이 작가와 같은 감정을 느끼려면 공감대가 있어야하지만 그런 일이 매번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마음이 어디를 향해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에 대한 인식. 그런 점에서 사진과 그림은 대단한 창작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사진에 대한 책을 읽곤 합니다. 그냥 사진만 실려 있는 책을 더 좋아해요. 사진을 보면서 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내키면 사진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찾아보기도 하죠. [최후의 언어]는 표지에 찍힌 여자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제목 바로 옆에 찍힌 문구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나는 왜 찍는가’ 저는 그저 재미로, 즐거움으로 보는 사진이지만, 그런 사진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에게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버린 이상 느끼게 되는 고독과 어려움이 분명 있겠죠. 그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왜 찍는가’라는 물음은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책에는 소형 카메라로 찍은 11가지 주제의 사진들과 중형 카메라로 찍은 5가지 주제의 사진들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을 움직인 사진은 맨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 있는 <존 버거와 비정규 노동자들의 초상> 이었어요. 다른 사진들은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그런 존재와 사실들에 관한 것이었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사진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할까요. 딱히 제가 그 분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거나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 가득 클로즈업 된 사진에서는 열악한 노동조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떤 생명력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인터뷰에서 들은 고단하고 비참하며 열악한 노동조건과는 별개로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내뿜는 힘찬 기운 같은 것.
그런 것들과는 달리 카메라의 기능이라거나 카메라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시큰둥했다고 할까요. ‘최후의 언어’라는 제목이나 ‘나는 왜 찍는가’와 같은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과는 동떨어져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람들마다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작가가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한, 그런 사진이 가득 실려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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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분야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는 나도 무척이나 재밌게 봤던 책이다. 이상엽, 임재천, 노순택, 강재욱, 성남훈 등의 사진가들이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국내외를 여행하고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들을 진솔하게 풀어내서 사진 도서 분야에서 인기깨나 끌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나타나는 부작용은 바로 겉잡을 수 없는 '뽐뿌'! 그것도 성능 좋고 편리한 카메라와 렌즈에 대한 뽐뿌가 아닌, 낡고 오래되고 불편한 필름 카메라들에 대한 뽐뿌가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덕분에 수십 종의 필름 카메라들을 썼다 팔았다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내 손에 남은 카메라는 필름이 아닌 디지탈 센서를 이용하는 똑딱이 두 대뿐이지만…….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의 공동 기획자이자 저자였던 이상엽 사진가가 신작을 내놓았다.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마치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의 컨셉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책이다. 작가가 사용한 필름 카메라들을 소형과 중형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에세이로 기록한 책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의 재탕이 아닌가 싶겠지만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와 다른 두 가지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첫 번째 차이점은 바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책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낡은'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여행을 간 기행문의 형식이었던 반면에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는 특정한 지역의 여행기가 아니라 2014년의 대한민국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묻어나는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4대강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 세월호 참사 문제 등 한 사람의 진보적인 르포 사진가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좌절하고 부딪혔던 여러 모순점들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쓰고 있다. 이상엽 사진가와 노순택 사진가의 정치적 성향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나의 개인적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이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보다 훨씬 더 감명깊고 인상적이다.
두 번째 차이점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와 달리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점이다. 책을 읽었던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를 읽고 나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 한 대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사실상 오래된 필름 카메라에 대한 향수를 부추기는 역할을 톡톡히 한 책이 바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이다. 하지만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에는 장비에 대한 이야기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보다 상당부분 축소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은 것이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의 핵심 테마는 카메라 자체이겠지만,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는 책의 제목에도 드러났다시피 작가가 사진을 왜 찍는지에 대한 고찰이 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코닥이 필름 생산을 중단하고 필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 상황에서도 작가는 아직 전체 작업의 30% 가량을 필름으로 작업한다고 한다. 사실 요즘도 가격 저렴하고 성능 좋은 필름 카메라 한 대 사볼까 싶어서 장터를 기웃기웃하고는 있으나 쉽사리 손이 안 가는 이유는 좋아했던 필름들의 단종과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은 워낙 저렴하고 좋은 디지탈 카메라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시리즈가 발간될 2004년과 같은 상황은 절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상엽 사진가가 사진에 담고 싶어했던 치열한 고민들은 마음속에 깊이 와닿는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사진가로서 고통스럽지만 똑바로 마주보고 사진으로 기록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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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필름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에세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진작가 이상엽은 어떤 삶의 현장에 관심을 갖고 어떤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해 ‘찰나’를 담아냈는지, 그리고 그는 ‘찰나’의 이미지들을 어떤 글로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니콘 FA 카메라를 들고 지관스님의 해인사 다비식에 가서 찍은 흑백사진을 소개하며, 필름카메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디지털카메라와는 달리 필름카메라로는 많이 찍을 수 없다. 우리는 필름카메라 시대에 비용의 노예였든지,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이미지를 남발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필름카메라는 한 컷 한 컷 넘어갈 때마다 빛을 철저하게 읽고 상황도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필름카메라는 사진가의 자세를 아주 진지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스님의 다비식에서 잘 드러나듯 여전히 세상은 아날로그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난한 사진가라 어쩔 수없이 전원생활을 하게 된 것을 소형카메라에 담았다. 한 장 전체를 채운 <단풍든 고기리 계곡과 동막천>의 이미지는 나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작가는 백령도, 제주도 강정마을, 울산노동자의 철탑 농성 현장, 우익 단체들의 데모, 천안 독립기념관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 사진들을 찍게 된 에피소드와 함께 동행 했던 이들,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떠올렸던 단상(斷想)들을 담담하게 글로 표현한다. 그가 중형카메라를 사용한 사진들 중에 중국 홍춘의 이미지들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고전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를 사용해 홍춘의 인공호수인 난후, 어느 집의 담벼락, 황산의 위용, 한 골목길에서 만난 한족 소녀(이 사진은 표지로도 사용되었다)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로라이플렉스가 파인더를 보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기에 그 카메라를 ‘겸손한 카메라 혹은 신사의 카메라’라고 약간 썰렁한 유머를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글이 재미있다. 다시 그는 새만금 개발로 사막화된 부안군 앞바다 갯벌, 이번 세월호 참사의 현장을 쓸쓸하게 보여준다. 그는 예술사학자 존탁의 글을 인용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 일관된 역사도 없다. 사진은 제도라는 공간의 장을 가로질러 명멸하는 빛의 깜박임일 뿐이다. … 사진은 역사의 증거가 아닌 역사 그 자체다”(pp. 244~245). 이상엽은 마지막 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 사진들을 보여준다. 하나같이 웃는 표정들이다. 그들은 정말로 웃고 있는 것일까?
나는 캐논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 때에도 들고 갈 것이다. 이전에는 아름다운 장면을 찍거나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파일이 수 천장은 될 것이다. 아마도 평생에 한번이나 제대로 들추어볼지 의문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해 보자. 마치 필름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듯 그렇게 조금은 진지하게 피사체를 느끼며, 그것들에게 질문하며 셔터를 눌러보자. 나만의 시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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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든 사진가의 사사(私史)로운 기록
세상은 빨라졌는데 왜 우리는 바빠졌을까? 여행을 가거나 졸업식 전날이면 으레 동네 구멍가게에서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던 시절이 있었다. 필름 한 롤을 찍고 감아 현상소에 맡기고 인화되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곤 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그런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진을 찍고 바로 컴퓨터로 옮겨 불필요한 사진을 지우고 편집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컴퓨터를 켤 필요도 없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고르고 보정해서 SNS에서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삶의 속도는 빨라졌는데 왜 우리는 더 바빠졌을까? 카메라의 성능은 점점 더 발전하는데 진실은 점점 더 가려져 갈까?
말을 거는 사진가 한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건다. 필름 카메라를 건넨다. 그리고 함께 산책을 청한다. 이 책의 저자 이상엽은 말을 거는 사진가다. 으레 사진가는 감상자에게 오직 사진으로 말했다. 적어도 이상엽이 말을 걸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는 감상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사진가다. 감상자의 수준과 눈높이로 내려와 말을 건다. 사진에 내러티브를 덧씌워주는 도슨트 같은 사람이다. 2004년 그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라>를 내놓으며 말을 걸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편리하지만 무언가 사진가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이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라 1, 2>와 <사람들 사이로>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필름 사진 동호회로 출발한 “포클”에서 마련한 <최후의 언어> 출간 기념강연에서 저자의 사인 본 책을 들고 돌아오는 길.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책의 정체가 불분명했다. 사진 에세이인가? 어떤 주제를 다룬 건가? 필름카메라 에세이인가?
시민 이상엽이 바라본 한국 현대사의 귀퉁이 이 책은 크게 소형과 중형카메라로 부를 나누고 장마다 다른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며 쓴 포토에세이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무겁고 르포르타주라고 하기엔 가볍다. 필름 카메라를 매개로 하지만 장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장비는 그저 거들 뿐 그는 끊임없이 우리네 삶의 귀퉁이를 배회하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지회 시위현장, 시베리아, 티베트, 4대 강, 팽목항…. 최신형 DSLR과 망원 렌즈로 중무장한 PRESS의 관점이 아닌 느린 필름 카메라를 들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광각 렌즈로, 조용히 우두커니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공적인 PRESS가 아닌 시민의 눈으로 역사의 한 찰나를 베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이 역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겠느냐고?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오늘은 오직 후대에 “그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경고를 하는 역할 말고는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사족 - 사사롭다의 한자는 본래 私私이지만 사적이면서도 역사적이라는 뜻으로 私史롭다고 썼다. -출간기념 저자강연회 뒤풀이에서 저자와 한 테이블에 앉아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여 년간 책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실제로 처음 대면한 인간 이상엽은, 책의 화자와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사적이며 역사적인(私史) 장면을 찰칵찰칵 담아내는 시민이었다. - 세월호 참사를 다룬 “332.7킬로미터”는 5월 9일에 썼다고 저자는 본문에서 밝힌다. 책은 6월 25일에 발행했다.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어우러져 간단하지 않은 작업을 한 달 남짓한 기간에 해낸 책임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회가 된다면 편집자에게 후일담을 듣고 싶다. - 이 리뷰는 출판사와 “포클”에서 마련한 출간기념 저자 강연회에서 선물로 받은 저자 사인 본 책을 읽고 작성하였다. 그러나 일체의 금전적, 물질적 보상이나 향응, 증정도서를 대가로 작성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2014. 7. 25 이혜성
http://www.voigtclub.com/bbs/board.php?bo_table=review_info_photo&wr_i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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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왜 찍는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무언가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찍는 것은 공통된 목적일 것이다. 1968년 생인 사진가 이상엽씨는 진보적인 사진작가다. 따라서 "최후의 언어"에 담긴 사진과 글은 다분히 사회성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너무 어둡게 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사진은 보는 이에 따라 감성적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도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진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사진에 대한 해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몫이다.
저자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담았다. DSLR로 접어든 지 오래되었건만 아직까지 필름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저자는 필름 뿐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도 사용한다. 단지 책에서는 필름만 사용했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필름카메라는 사진가로 하여금 진지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필름은 디지털과는 달리 사진을 찍는 대상 뿐 아니라 배경과 빛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한장을 찍는다.
나 또한 취미로 처음에는 필름을 사용하다 나중에 디지털로 바꾸었지만 나 조차도 필름과 디지털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디지털과 달리 필름카메라는 한롤에 24컷 정도 사용할 수 있기에 한 컷 한 컷이 소중할 수 밖에 없다. 필름값도 필름값이지만 현상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와는 조금은 다른 이유이겠지만 사진가의 태도에 있어서는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사진가는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다. 저자 또한 사진가로서 그리 풍요롭지 못한 듯 싶다. 은행빚을 청산하고 다시 무주택자로 돌아왔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이 사진가이고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알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고, 평생 해야할 작업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여러개의 필름 카메라가 등장한다. 하나의 카메라로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카메라를 만든 회사마다 저마다의 색깔과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기에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물론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냐에 따라 차이는 생길 수 밖에 없다.
필름카메라 중에 가장 고가이면서 사진가들의 로망인 카메라가 있다. 바로 라이카다. 왜냐하면 필름카메라를 쓰던 외국의 유명 사진가들이 주로 라이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라이카를 좌파, 우파라는 용어를 던지며 몇장의 사진을 싣는다. 그러면서 좌파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우파 레니 리펜슈탈을 연결 시킨다.
사연은 이렇다. 레니 리펜슈탈은 나치 다큐멘터리 저자였는데 나치 당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히틀러의 요청으로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하였고, 11회 베를린 올림픽 기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 라이카도 2차대전 전범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라이카 매출의 90%는 독일 국경 밖에서 만들어졌기에 어떤 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교활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고로 그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찍는 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앙리 브레송과 리펜슈탈 손에 들린 라이카가 다르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사진은 좌, 우가 없다는 것이다.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들을 사진과 관련하여 풀어내는 저자의 눈은 사람에 맞추어져 있다.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카메라, 세상에 필요한 것을 만들 내는 자본,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마음과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의 실상은 너무도 다르다. 노동자들을 핍박하는 기업체와 회사를 위해 헌신했지만 버림받은 노동자들의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듯하다.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서민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며, 읽는 이에게 소리없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카메라가 단지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정신을 육화시키는 도구라 생각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재미로 사진을 찍는 일반 사람들이야 골치 아픈 설교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에 의미를 두고 진지한 자세와 마음으로 촬영하는 모든 사진가들에게는 지당한 말씀이라 생각할 것이다.
표지에 어린 소녀의 사진은 저자가 어떤 피사체에 마음이 가는지 말해준다. 특히나 저자처럼 사진가의 정신을 가지고 침묵의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들은 피사체를 통해 현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저자가 중국 홍춘의 한족출신인 어린 소녀를 촬영할때 아마도 자신의 어린시절과 현재의 내 모습이 크로스 되면서 어느 시절이 더 행복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람을 찍기에 좋은 롤라이플렉스2.8F에 대한 저자의 사진철학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몇장의 사진과 저자의 생각도 써 있다. 한 마디로 그 참상앞에서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좀 전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사진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상업주의 자본주의 이기주의의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을 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동물의 세계에 살고 있기에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지.정.의를 가진 인간이 그저 동물의 세계에서 하이에나처럼 물어 뜯는 저들과 똑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은 이것은 그야말로 가장 슬픈일일 것이다. 오히려 그런 자들을 향해 질타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국가와 언론을 향해 자신의 소견을 밝히며 사진은 역사의 증거가 아닌 역사 그 자체라며 끝을 맺는다.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강도가 경찰차를 빼앗아 달아났다. 그럼 그 경찰차는 어떤 목적을 가진 경찰차가 되겠는가? 경찰차는 국민들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사용하라고 국가가 내 준것이다. 근데 그 경찰차를 강도에게 빼앗겼다. 그럼 경찰차를 운전하는 것은 경찰이 아닌 강도가 되는 것이다. 강도가 경찰차를 운전하고 있는 동안 경찰차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닌 국민들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어 진다"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고가의 카메라들을 소유, 소장하고 있고, 사진경력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내면이 비정상적이라면 그는 분명 강도나 다름 없을 것이다.
나에게 마지막 필름 한 롤이 남았있다면 가장 편한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자연스럽게 웃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싶다. 왜냐하면 서로의 웃음 속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며, 사람만이 삶의 희망을 나누어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