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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대의 무신란, 탕평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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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은 영조 즉위 4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갓 즉위한 영조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막 다져갈 무렵에 일어난 셈인데, 집권 초기에 이런 거센 도전을 맞았으니 가뜩이나 일각으로부터 정통성에 의심을 받던 군주에게는 시련이 아닐 수 없었겠습니다. 비록 가장 세력이 큰 노론을 새로이 등에 업었다고 해도 말입니다.사실 경종은 건강 문제가 아니었다 해도, 최대 정치 세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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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은 영조 즉위 4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갓 즉위한 영조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막 다져갈 무렵에 일어난 셈인데, 집권 초기에 이런 거센 도전을 맞았으니 가뜩이나 일각으로부터 정통성에 의심을 받던 군주에게는 시련이 아닐 수 없었겠습니다. 비록 가장 세력이 큰 노론을 새로이 등에 업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실 경종은 건강 문제가 아니었다 해도, 최대 정치 세력인 노론을 적으로 돌린 만큼 그 실권(失權)이 언제나 위태로웠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영조가 뜻밖에 조기 집권한 건, 조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어쩌면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뭐 난 그런 건 죽어도 인정 못하겠다고 들고일어난 이들이 있었다는 건 확실히 이 나라 조선이 그리 간단치 않은 나라라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는 포인트이겠습니다. 


저자는 독특하게 이 사건 등을 두고 "무신란"이라 규정하는데 이인좌는 무신(武臣)이라 부를 신분은 아니라서 처음에 약간 의아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그저 이 난이 무신(戊申)년에 일어났다는 뜻일 뿐이었습니다. 다만 12세기 고려 무신란과 견주어 차이가 있다면(ㅎㅎ), 고려 때의 정변은 어디까지나 무신의 권익과 자존을 바로세우기 위함이 그 동기였던 데 반해, 18세기의 이 사건은 당파의 재건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죠. 여튼 이인좌 등은 군주가 소수 당파를 부당하게 탄압했다고 여긴 게 틀림없고, 이 과정에서 영조의 비천한 신분과 미심쩍은 즉위 경위 등이 재대두한 것입니다. 


이인좌는 충청도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영남 세력의 큰 협조를 얻었고, 따라서 난이 진압된 후 이 지역은 반역향으로 찍혀 이후 백여년 간 벼슬길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경종이 노론을 길들이느라 무리한 처사를 일삼은 바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즉위 직후 일거에 목호룡 등을 성급히 처단한 건 반대 세력의 불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은 건 이후 영조의 현명한 결정이었는데, 사실 같은 실수를 매번 되풀이하고도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르는 사람하고는 말이 안 통하기 마련이죠. 

v*****7 2020.07.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