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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세하고 간결한 만화집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인 작가를 닮았다 작가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랑을 말하고 싶어했고 또 그는 대책없는 낭만주의자여서 사랑 때문에 가슴을 끓인다 그 온도는 그리 높지 않고 그가 알고 있는 사랑의 색채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삶을 닮았고 바로 여기 우리의 누추하고 후줄근한 아픔을 반사한다 그는 이 책이 곧 잊혀져서 흘러간 가요처럼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가요가 유행가이고 한 시절 흘러 가다 부유하며 사라지는 음악이라고 해도 그 유치한 서정성이 우리를 울리고 우리 가슴을 꽉 움켜쥐는 것은 그 진정성이 아니던가 삶의 냄새가 배어 있는 이 책은 유행가처럼 우리를 울리고 우리의 속세의 속기(俗氣)를 액자에 담아 우리를 증거할 것이다 우리는 저렇게 아파했고 이러 이러하게 졸렬한 삶을 살았으며 그만큼의 무게로 슬퍼했다 다시 그러므로 사랑이다(라고 작가는 힘주어 발음한다 그 때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연민과 슬픔은 자신의 것이므로 우리에게 아름답다 우리는 각자이므로) 유행가도 완전히 잊혀지기만 할까 가요무대를 보라구
그의 만화 속의 세계는 소통의 부재와 삶의 빈곤함으로 결핍되어 있다 남자들은 한 번만 기회를 잡아 수작을 걸어 작업에 성공해 연애 한 번 섹스 한 번 하고 싶어하는 그저 그런 속물이지만 그래서 사실적인 정다움이 있다 우리 남자를 잘 알고 있어서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남자들은 늘 소통이 좌절되고 감정의 교류에서 차단당한다 어쩌면 그 차단은 남자들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인 작가가 그리는 여자 주인공들도 역시 소통에서 실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드물게 예쁜 여자 편에서는 갈등이 종식되고 봉합되며 자그마한 따스한 불씨 하나가 지펴지지만 그건 예외다 여자들 역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위와 소통하고 싶어하지만 화성에서 온 말인 남자를 지구에서 서식하는 소들인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평행을 걷는다 그 얼척 없는 아이러니가 소통과 공감의 부족에서 오는 것임은 자명하다 인물들이 그리 부귀하지 않은 평범한 재능이라서가 아니다 평범하고 뛰어나지 않아도 행복한 주인공들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의 질곡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그래서 남 과 녀 는 삶에 치이고 삶에 짓눌려 구원은 아니더라도 뭔가 계기처럼 연애를 기다린다 하지만 연애는 늘 실패한다 이 대목에서 홍상수 영화처럼 겹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실패라는 결과임에도 홍상수 영화와 용득권씨의 만화가 각기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세계관의 온도차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냉소로 이 세상의 악을 비웃으며 포기하지만 용득씨는 그럼에도 삶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따스한 손으로 소주 한 잔을 건네기 때문이다 삶은 결국 사랑하는 자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의아한 눈빛으로 슬픈 미소를 짓고 머릴 긁적이며 그가 건네는 소주 한 잔 이게 그의 만화이다
기회가 오면 문학비평처럼 장치와 분석을 총동원해 단편 하나 하나 모두 그의 만화를 해부하고 싶다 이 잘난 척 하는 의도는 그의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번갯불에 쇠고기 굽듯 대강 대충 수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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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를 소개한 글을 보면 웃음이 난다. “생텍쥐페리의 영향으로 공군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으나 면접에서 탈락하고, 이후 공대에 진학했다 낙제생이 됐다. 평생 직업 삼을 만한 일을 모색하다 자퇴를 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77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났으니 그이가 공군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다 탈락하고 공대에 다닌 때가 1997년 무렵이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을 받은 때다. 청년들의 삶이 급격하게 나빠지던 때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뒤늦은 출발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당연히 청년들이 겪는 어려운 삶을 더 강도 높게 겪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의 만화에는 우리나라 청춘 대부분이 겪는 어려운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더라도 작가는 평생 직업 삼을 만한 일을 치열하게 해 내고 있다.
8편의 단편 만화집이다. 7편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은 남성의 눈으로 그리고 마지막 한 편만 여성의 눈으로 그렸다. 여성 또한 만화가가 잠깐 사귀었던 사람이니 만화가 자신과 둘레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은 작품은 독립되었지만 등장인물이 겹쳐지기도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젊은이의 ‘사랑’과 ‘일’이다.
첫 번째 작품 「나머지의 진실」은 “도대체 이놈의 사랑이 뭘까요?” 질문에 대한 여러 생각과 사례를 보여준다. 옛 여자를 만났다가 지금의 여자 친구에게 들키자 “이젠 안 들키도록 조심할게….”말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남자의 속마음이자 요즘 세태를 드러내는 듯하다. 「영원히 안녕」은 옛 사랑을 만나 섹스를 한 뒤 그녀의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와나카의 추억」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떠났던 뉴질랜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긴다. 「그만한 돈」은 돈 5만 원에 얽힌 원고료와 창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똑똑똑」은 습관처럼 수돗물을 조금씩 틀어 놓고 다니는 주인공이 창녀촌 골목에서 친구와 함께 옷 벗기 게임을 하고 섹스를 한 이야기이다. 이튿날 아침 골목에서 쪼그리고 앉아 궁상을 떨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심란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집에서 혼자 누워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또 어떤가.
간밤의 그녀를 떠올리자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하지만 전화를 하진 않았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엄마가 또 괜한 걱정을 할 것만 같았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빈집을 혼자 지켰던 애인은 많이 속상했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똑, 똑, 똑…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98쪽)
「막차」는 대학의 여자 후배를 가운데 두고 남자 후배와 실랑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국화차와 소주」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예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자는 이야기다. 이상 7편의 작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찌질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방을 구할 돈도 충분하지 않고, 그렇다고 스스로 돈벌이를 하여 나아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여자 친구가 있지만 기회가 있으면 다른 여자랑 섹스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옛 사랑이 떠나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다. 일도 사랑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모습은 지금 젊은이의 대부분이 겪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 남다른 게 있다면 어려운 여건에서도 주인공은 만화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인가. 찌질함은 남자의 잘못이 아니다. 시대의 속박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만화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은 시대의 자장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테다. 찌질함이 찌질함으로 끝나지 않는 까닭이다.
「예쁜 여자」는 유일하게 여성의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 가장 많은 글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국화차와 소주」에서 하룻밤 상대로 끝났을 뿐인 예쁜 여자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펼쳐진다.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도 포함하고 있어 주제의 확장 가능성을 예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