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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젊음의 자화상『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표류하는 젊음의 자화상『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내용보기
장마 내내 나를 반기는 건 뙤약볕이었다. 정작 장마가 끝난 후 연이은 태풍에 매일 같이 비가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심하더니 오늘에서야 반짝, 쨍하고 해가 보였다. 계속되는 비가 그치면 쌀쌀해지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후덥지근하다. 막바지 더위일 테다. 작별을 고하기 아쉬운 여름이 전하는 마지막 몸부림. 내년에도 여름은 오겠지만 2014년의 여름은 지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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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내내 나를 반기는 건 뙤약볕이었다. 정작 장마가 끝난 후 연이은 태풍에 매일 같이 비가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심하더니 오늘에서야 반짝, 쨍하고 해가 보였다. 계속되는 비가 그치면 쌀쌀해지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후덥지근하다. 막바지 더위일 테다. 작별을 고하기 아쉬운 여름이 전하는 마지막 몸부림. 내년에도 여름은 오겠지만 2014년의 여름은 지금뿐이고 올해의 여름은 올해로 끝이니까.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강한 태양, 휴가, 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합집합 같은 한 단어, 젊음. 그렇다. 여름 하면 '젊음'이 가장 먼저다. 더위나 긴긴 장마 따위는 가뿐히 펀치를 날려버릴 것 같은 젊음으로 대변되는 패기와 열정이 여름 안에 고스란히 침투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에서는 조금 달랐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도 투지를 잃지 않는 젊음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마의 우중충한 색깔, 즉 젊음의 어두운 면이 더 드러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좋은 시절인 젊음이 아니라 현실적인 젊은 시절을 말하는 소설이다.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당히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에 부닥친다. 젊음이 당면하는 숙명이다. 소설은 그런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옛날의 영광을 잃어가는 지방 예술대학, 그곳의 자취촌은 학기가 끝나면 생명력을 잃는다. 돌아갈 곳이 없거나 갈 곳을 잃어버린 몇몇 사람들만 남아 황량함과 쓸쓸함을 꾸역꾸역 주워담는다. 소위 '고아의 도시'가 된다. 20대 대다수가 그러하듯 소설의 등장인물 또한 장래를 고민한다. 이상적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을 따르는 PD 지망생 요조, 어릴 때 입양되어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카우치 서퍼로 살아가는 민영, 이들 가운데 삶의 맥락을 잃어버린 화자 나까지. 이들의 고민은 '살아감'에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무작정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이 고아의 도시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던 이유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이다. 신예 작가 정지향은 소설 속 인물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다. 그들의 방황과 번민을 고스란히 작품에 투사할 수 있었던 건 그런 데 있다. 나와 주변 가장 가까운 이들이 공유하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소파만 있다면 어디서든 잠을 청할 수 있는 카우치 서퍼라는 등장인물에서 이미 감이 오지 않는가. 젊음을 대변하는 부분이지만 그만큼 힘겹고 방황하는 시기임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젊음=방황하는 시기라는 등식은 섣부른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상상하기 어려운 나이에 자기 삶을 멋지게 재단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니까. 하지만 어떤 시기가 되었든 간에 떠안고 짊어지며 가야 할 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의 고민이 비단 20대에 국한해서 읽히지 않는 까닭이다. 단단하게 메꿔진 지반 위 표층에서 당당히 발을 구르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사이 사이에 수반되는 고통을 인내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 것이고 말이다.

 

비가 내리는 날, 습한 기운에 몸은 말할 것도 없고 기분까지 눅눅해질 때가 있다. 불쾌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마냥 눈 감아버릴 수 없는, 마치 내가 물에 흡수되어 흠뻑 젖어버린듯한 기분.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기분이 비슷했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여름의 물기를 머금은 소설이다. 대학소설상 수상작이라 조금은 발랄함을 기대했다. 대신 그 또래만의 진지한 고민을 들어주는 어른이 된 기분이다. 비단 장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뿐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하는 성장통도 내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자라면서 떠안게 되는 타자와의 갈등, 방향성의 고민 등 자기 삶을 관통하는 씨실과 날실이 오밀조밀하게 엮여있기에 말이다. 방향을 잃어 표류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런 소설 하나쯤은 필요하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누구나가 거쳐야 할 순간이라고 받아들이면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딱딱한 문체가 아닌 구어체로 조곤조곤 속삭이는 언어는 마치 소설이 아니라 내 이야기 한번 들어줄래?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에 화답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퍽 많을 것 같아서 구어체 리뷰 대신 하던 대로, 내 식대로 감상평을 끄적였다.

 

화자가 인도에서 만난 텀플링플랜트.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가 물만 있다면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그 식물처럼, 그들의 젊음도 뿌리내리기를 반복하며 살아갈 것 같다. 깨어지고 넘어져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의 끈이 붙어있는 한. 쉼없이 구르는 건 끝나지 않을 테고 물을 찾는 여정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막연히 먼 언제쯤, 누군가 쉬어갈 수 있는 초록 소파 한 짝을 들여놓는 그날이 올 때까지.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시라. 표류하는 젊음에게 따라오는 물기 머금은 시절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 할 수 있다

 

흰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히고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자화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건

나이가 몇이건 간에

불행하고 스스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초상은 여전히 인내심을 갖고

그 그림을 완성해주기를 기다린다. - by Jinger Heath

 

w*****8 2014.08.23. 신고 공감 12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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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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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아파야 청춘이다’, ‘청춘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모두 청춘이 아닌 이들의 목소리다. 청춘의 상처, 청춘의 꿈, 청춘의 사랑은 청춘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지향의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를 읽으면서 울적해지는 이유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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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은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아파야 청춘이다’, ‘청춘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모두 청춘이 아닌 이들의 목소리다. 청춘의 상처, 청춘의 꿈, 청춘의 사랑은 청춘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지향의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를 읽으면서 울적해지는 이유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떤 시간도 소유하지 못하고, 어떤 공간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아온 무표정한 내 모습을 마주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설은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쓰듯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울의 새 캠퍼스로 이전하는 지방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동아리 선배 요조와 동거 중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도시를 요조는 고아의 도시라 불렀다. 그러니까 젊음이나 활기는 사라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만난 민영이 고아의 도시를 방문한다. ‘나’를 찾아온 것이다. 입양아 민영은 열여덟 살부터 누군가의 소파를 빌려 생활하는 여행자다.

 

 ‘나’는 학기가 끝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취집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한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죽음으로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이다. 요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연락을 끊고 지낸다. 양부모님의 이혼으로 독립한 민영과 다르게 자발적으로 독립한 셈이다. 소설은 서로 닮은 듯 다른 세 명의 청춘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세 명이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어떤 놀라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민영이 오면서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하는 요조가 자신의 고시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쓸쓸한 대학가 주변을 스케치하거나 일상을 나열함으로 자신의 불안을 드러낸다. 하여 불안의 깊이는 알 수 없다. 그 불안이 넓게 퍼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고아의 도시를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불안하고 초초하다.

 

 ‘나는 세탁기로 다가가서 정지버튼을 눌렀어. 물소리가 그치자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작게 들려왔어. 몇 겹의 벽과 창을 거치느라 뭉툭해진 소리였지만 말이야. 나는 창을 활짝 열었지.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어. 맞은편에 주르륵 늘어선 건물들이 보였어.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동네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방들 중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을 거야.’(17쪽)

 

  ‘나’는 어떤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서 해야 할지, 소설 쓰기에 전력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을 요조나 민영을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전까지 민영이 언제까지나 소파를 옮겨다니면서 지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그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어. 나는 민영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 씩씩하게 보이는 그애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거야.’(85쪽)

 

 청춘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 때는 알 수 없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그 시절도 끝이 있다는 걸 몰랐다. 결국엔 셋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말이다.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청춘의 감성을 차분하게 잘 담아냈다. 청춘을 살아내고 견디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남겨지는 사람이 되었어. 태어날 때부터 살던 집에 아빠를 남겨놓았고, D시에 엄마와 오빠를 남겨두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었는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나는 별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남겨지고 나니 떠난 사람들밖엔 생각할 수 없더라고. 내가 보는 모든 자리에 그들이 앉거나 섰던 그림자들이 놓여 있더라고.’(140쪽)

 

 어느 순간 찰나가 될 그 시간을 생각한다. 정착하지 않고 부유해도 좋을 시간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파에 되어 잠시 표류해도 좋을 시간 말이다. 조금은 싱그러웠고 눈부셨던 시절...  

r*********s 2014.12.0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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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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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향의 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얇다. 얇아서 그럴까, 얼른 읽어보고 싶고,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산뜻하게 읽힐 것만 같다. 초록색이 주는 싱그러움의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는 제목 탓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에는 ‘풍금’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처럼 정지향의 이 소설, 단 한 번도 ‘초록 소파’는 등장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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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향의 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얇다. 얇아서 그럴까, 얼른 읽어보고 싶고,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산뜻하게 읽힐 것만 같다. 초록색이 주는 싱그러움의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는 제목 탓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에는 풍금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처럼 정지향의 이 소설, 단 한 번도 초록 소파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지향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 

 

   소설은 읽기 쉽게 구어체로 적혀있다. 마치 독자인 우리에게 작가가, 아니 화자인 가 말을 걸 듯, 자연스럽게 녹아내려간다. 그렇기에 마치 놀러간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메모 쪽지, 혹은 일기장을 몰래 훔쳐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깨닫게 된다. , 이건 너의 메모와 일기가 아니었네. ‘의 일기였네, 이것은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였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가 떠올랐다면 이상한걸까? ‘카우치 서퍼라는 이름으로 각 도시 사람들의 거실을 전전하며 마음껏 자유로이 여행을 하는 정지향의 소설 속 민영과 여행을 삶으로 삼으며 여행을 가면 여행자가 아닌 말 그대로 그 나라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본인 하루오의 모습은 자유로우나 쓸쓸하고, 독특하나 짠하다. 하루오가 자신이 머물 곳을, 그리고 그곳에서 사귈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 하염없이 돌아다니듯, 민영 역시 이곳저곳 소파로 상징되는 타인의 공간에서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단 한 곳, 한국에서만은 그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요조’. 그렇게 그들의 기묘한 삶이 시작된다.

 

(...) 내가 했던 잘못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떤 잘못을 할지 지켜보지 않을 사람, 그래서 나에 대해 실망할 일도 없을 사람 같았지.

 

   묘한 레즈비언의 감성을 풍기는 민영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사이이다. ‘요조의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기묘한)사이에 들어오게 된 민영. 이로써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관계의 균열은 그럼에도 그 균형을 맞추어간다. 그것은 바로 가 민영에게 느끼는 감정 때문이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가는 길에서 백화가 여행지에서 처음 본 사내들에게 자신의 본명을 말했듯, 타지는 언제나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쉽게 열게 한다. 그렇기에 타지 그 자체인 민영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 왜냐하면, 민영은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모를, 그저 스쳐지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민영은 그저 고아의 도시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어. 그 애가 나에게로 여행을 데려온 거야.

 

   하지만 는 이윽고 깨닫는다. ‘요조는 취업준비로 자리를 비우고, ‘민영역시 서울이 마음에 든다며 새로운 옥탑방을 계약한 후, 늘 떠나기만 했던 삶에서 남겨진 삶의 경험을 겪게 된 는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민영은 인도에서 한국으로, 그것도 에게로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에게 여행이라는 것을 선사했다는 것을 말이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하지 않는 힘, 민영은 그렇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며, 그리고 당연시 여겼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며 를 바꿔 나간다.

 

   20대의 성장통, 각박한 취업현실,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 정지향의 소설은 이전 성장소설들이 그려냈던 그 기본적인 코드들을 말 그대로 2014년도의 코드에 맞게 재해석하여 담아냈다. 그렇기에 이보다 더 나은 성장소설이란 있을 수 없다. 가장 베이직하다. 이렇게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소소한 감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장 하나, 마침표 하나, 공백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 생각의 여지를 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김미월의 여운있는 감성과, 정이현의 소소한 일상을 정지향에게서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건 말이다.

 

   물론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소설임에는 자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굳이 장편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에서 너무나도 비슷한 감성을 맛봐서일지는 몰라도, 캐릭터는 무거운데 에피소드는 가벼운 것이 조금은 아쉽다. 에피소드를 조금만 더 세밀하게 풀어내어 이야기를 넓혀갔다면 보다 장편으로서의 무게감과 입체감이 선명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굳이 이 소설을 억지로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충분히 매력 있는 소설이고, 잘 쓰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대학 소설상일까, 이 의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대학 소설상이고 왜 정지향인가, 하지만 우리는 그 의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떠돌아다니는 민영에게,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에게 그리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요조에게, 아니 언젠가 나를 찾아줄 그 누군가에게 내어줄 초록 소파하나 준비해두면 된다. 페이지를 하나씩 넘기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 마음속에, 초록 소파를 자리하게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x*****7 2014.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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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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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 영화를 본 성소수자들이 말했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생생하다.’, ‘눈물이 난다.’ 등. 아마도, 이 영화가 개워냈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당사자들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나에게 위와 같은 작품이었다. 나의 실상, 20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소설. 마치 거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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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 영화를 본 성소수자들이 말했다.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생생하다.’, ‘눈물이 난다.’ . 아마도, 이 영화가 개워냈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당사자들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나에게 위와 같은 작품이었다. 나의 실상, 20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소설. 마치 거울을 보듯 생생해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소설 말이다. 이따금, 눈을 감고 싶었을 정도로 눈앞으로 유유히 흘러 지나기도 했다.

  그들의 호흡과 일상이 고스란히 나의 몸을 적셨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마따나 나는 그렇게, 이 소설에 젖어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와 요조, 미영. 이 세 인물은 묘하게 닮아 있다. 또한, 교묘하게 달라 각각의 개성이 소설의 은근한 재미로 다가왔다.

  ‘고아의 도시에 살고 있다. 길을 거니는 수많은 고아들이 눈에 들어오고, 소설 속의 역시 고아다. 내가 만약 그 길가에서 를 마주했더라면, 그녀는 나에게 역시 고아라고 했을 터. 여기서 고아라 함은 부모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짐작으로 미루어 보자면, 학교에서의 버림받음과 더 나아가 사회에서 낙오된, 이 사회의 고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싶다. 낙오자라는 표현보다, 고아라는 표현이 더 아리게 느껴진다.

  특히, ‘라는 인물이 지방 소재의 예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탓인지, 깊은 공감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생활 패턴이나 일상이 낯설지 않았다.(이성임에도) 또한, 그녀가 소설 속에서 고민하는 바가, 어느새 나에게로 와 그 무게를 함께 견디고 있었다.

  

  “제대로 살고 있나.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인가 아니면 글쓰기 같은 건 하루라도 일찍 때려치우고 토익학원에라도 다녀야 하는 것인가. (중략)아예 다시 태어나야 하나?” - p. 92

  

  이 부분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비단,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구나.’에서 오는 안도였을지 모를 일이고, ‘그러게.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에서 오는 진한 공감이었을지 모른다.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취업이란 것도, , 등단이란 것도, 아니면 어떠한 것에 대한 만족을 취한다는 것도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나는 오히려 이 소설 속의 가 소설의 말미에까지 글을 놓지 않음에 감사했다. 나는 그러지 못해도, 이 소설의 만큼은 올곧게 펜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비록, 오롯이 성취를 해내진 못했음에도)

 

  이 소설이 적나라하게 현실을 개워내고 있음과 함께, 너무 좋았던 것은 구어체였다는 점이다. 마치 나에게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나란히 누워,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어.’와 같은 대화를 나누는 듯도 하였고, 나의 귀에 나직이 흘리는, 은밀한 속삭임 같기도 했더랬다. 이 소설은 편지문의 형식을 띄고 있기에, 내가 그 당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소 몰입하기 쉬워 좋았다.

  그리고 소설이 취할 수 있는, 화자가 말하는 잠언적 내용이나, 교훈적 내용의 직접적 언급이 아닌, 풍경이나 당사자의 마음을 개워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 것이 좋았다. ‘인생은 이렇다.’, ‘사랑은 이렇다.’가 아니라, 그저 독자에게 이 소설을 느끼게 했고, 끌어안아 젖어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장치나, 소재, 사건들이 치밀하게 연결되어 이 소설이 더욱 빛이 났다 할 수 있겠다. 촘촘하며 오밀조밀한 그 구성은, 가히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덕분에 독서가 탄력적이어서 좋았고, 소설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라 좋았다.

  이 책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신인작가대학소설상이라는 키워드가 오히려 이 소설과 나의 연대감을 쫀쫀히 만들었다. ‘독서는 독서를 낳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소설 덕분에, 선입견 보다는 넓은 마음으로 독서 할 수 있는 여유를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뜻 깊은 독서였다.

e***3 2014.08.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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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잠시 머무르기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잠시 머무르기" 내용보기
어딘가에서 리뷰를 읽고 리스트에 올려 두었는데, 근처 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해도 없었다.알고보니 '소파'를 '쇼파'로 검색해서 나오지 않은 거였는데도서관 검색은 자동완성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내 실수를 바로잡기 전까지는 이 책을 볼 수 없었다.그게 마치 서로에게 닿기 위해서 소통의 접점을  찾아야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잠시 머무르기" 내용보기

어딘가에서 리뷰를 읽고 리스트에 올려 두었는데, 근처 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해도 없었다.

알고보니 '소파'를 '쇼파'로 검색해서 나오지 않은 거였는데

도서관 검색은 자동완성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내 실수를 바로잡기 전까지는 이 책을 볼 수 없었다.

그게 마치 서로에게 닿기 위해서 소통의 접점을  찾아야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각자에게 닿고 싶고 함께 존재하려 애쓰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자기의 행동조차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고

그냥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게 자기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방식인가보다.


주인공 '나'는 요조와 동거하며 살고 있다가

카우치 서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민영에게 자기의 방을 내어주기 위해

요조를 원래 그가 있던 고시원 방으로 돌려보낸다.

나, 나와 요조, 나와 민영, 나와 민영과 요조,

이렇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적혀있다.


요조와 민영이 떠나고나서야 처음으로 남겨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문득 엄마의 떠남(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애도 과정의 처음을 밟게 된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지.

나는 처음으로 당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어.

머릿속에 소파를 하나 그려넣고, 당신을 거기에 앉혔지.

아주 오랫동안 호흡을 가다듬었어. 다른 사람들이 쉽게 그러듯이.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놓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당신이 듣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내는 작은 감탄사들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으로.... (p.143)



대학생들이 할 만한 고민, 나도 했던 고민들이

무심하게 펼쳐지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되고,

아직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연대감조차 느껴졌다.


그런데 이 소설이 지금의 대학가 풍경을 완전히 그려냈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심사자의 말마따나 이 소설은 세 남녀의 사회로의 입사과정을 그리고 있는 일종의 성장소설인데,

이들은 현실이 강요하는 사회로의 '굴욕적인'입사는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그렇게 하고 있단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고민은 사치로 여긴 채 그런 굴욕적인 입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또 모를 일이다.

어쨌든 91년생의 작가가 섬세한 문장으로 자기를 표현해준 것이 참 좋았다.




나는 수학영재반에 편성되었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어쩌다 벼락치기를 훌륭하게 해버렸던 것뿐이었는데,

풀 수도 없고, 풀고 싶지도 않은 문제 앞에 앉아 다른 애들이 샤프를 딸깍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오후들 말이야. (p.21)



스무 살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어.

해면처럼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한참 후에야 혼자 깜깜한 자취방 안에 남겨져서

체한 것들을 쿨럭쿨럭 뱉어내는 나이였지. (p.26)


그래서 오히려 그애가 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했던 잘못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떤 잘못들을 할지 지켜보지 않을 사람,

그래서 나에 대해 실망할 일도 없을 사람 같았지. (p.51)


그애는 진심을 손에 잡히는 물건처럼 사용할 줄 알았지.

그럴 때면 의심이 많은 나 역시도 그에게서 그것을 건네받을 수밖에 없었어. (p.53)

​나는 우리가 그냥 그렇게 한 번 같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지.

그렇지만 가끔은, 거기서 물을 마시지 않았다면 더는 구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 (p.57)



덧.

<굿모닝 팝스>에서 처음 카우치 서핑을 알고 흥미를 느꼈는데

나도 한번쯤 카우치 서핑을 하고 싶다.

그런데 쉽게 그러기엔 내 생활이 너무 안정권에 접어든 것 같아 서글프다.



s******2 2015.04.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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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냥 네가 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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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냥 네가 되면 돼.         당신이 날 또 살렸네, 씨발 엄마가 날 또 살렸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자의 딸로 살아가는 건 힘들어 상처를 주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에게 벌을 받는다는 걸 알아.   -Puer Kim, <It’s hard to be a daughter of a woman loved by god>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시, 그 시의 일부분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큰 깨달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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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냥 네가 되면 돼.

 

 

 

 

당신이 날 또 살렸네, 씨발 엄마가 날 또 살렸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자의 딸로 살아가는 건 힘들어

상처를 주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에게 벌을 받는다는 걸 알아.

 

-Puer Kim, <It’s hard to be a daughter of a woman loved by god>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시, 그 시의 일부분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큰 깨달음이 오거나 깨우침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달라진 건 참 많은데 말이다. 정신적인 나이는 스스로도 판정 내리기 힘들지만 육체적인 나이로 따져 보면 아무튼 나는 어른이다. 나이는 어른인데 하는 짓은뭐 아무튼 좀 그렇다. 그런데 애까지 낳았다. 애까지 딸렸으니 어른 노릇을 피할 수도 없다. 어른이랍시고 애를 혼내다 보면 한심한 기분도 든다. 혼내는 나는 얘보다 나은 게 뭐니. 뭐 아무튼 그렇다.

 

별로 없는 깨달음의 와중에도 딱 하나 자신 있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사람이 혼자 살 수 있는 존재인 줄 알았었다. 혼자 살기를 은밀하게 바랐었고, 때로는 인간 없는 세상을 은밀하게 꿈꿔보기도 했었다. 친구나 가족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할 때가 더 많았다. 인간과의 관계란 힘든 것이다. 일기장 어딘가에 이렇게 적어놓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 어느 한때는 늘 찌푸리고 웅크리고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자 깨달았다-대학생을 어른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로구나.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나는 혼자 살고 싶어하는 존재가 아니로구나. 그래서 나는 혼자 살기보다 같이 살기를 택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왜 혼자 살 수 없다고 깨닫고 만 것일까?

 

친구 중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거쳐 혼자 있기로 결정한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지금에 이르게 한 계기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사랑 받은 사람이었다. 책 속의 민영이 말하듯, 지금 현재의 그를 보고 누가 안쓰러워할 때 그는 나는 괜찮아. 충분히 사랑받았거든.’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받을 사랑을 미리 다 당겨쓴 사람처럼 현재를 훨훨 떨치더니 그 친구는 그냥 홀로 살길 택했다.

 

나에게는 혼자 살지 않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렸던 것이고 그는 혼자 사는 것이 가장 그다운 것이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을 읽고서 뜬금없이 말이다.

 

한때는 그를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주제넘게, 마치 내가 그의 엄마라도 된 것처럼, 마치 그가 믿는 신의 계시라도 내가 대신 받은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혼자 살지 않기로 결심한 내 삶이 너무 바빴으므로.

어쩌면 그는 그에게 가장 맞는 자리를 겨우 찾은 것이었는데 내가 주제넘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이다. 나와 어느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부터는 이 책의 와 민영, 요조그리고 당신들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책엔 혼자가 된 어른아이들이 나온다. 자신을 신에게서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정한 듯한 화자인 ’, 그런 와 다를 것도 없지만 똑같지는 않은 요조’, 그리고 신에게서 사랑 받지 못하는 게 무슨 대수랴고 생각하는 민영이 나온다. ‘요조가 어른의 삶보다는 어른이 아닌, 말하자면 아이의 삶에 머무르길 택했다면 민영은 그 둘과는 다르다. 그녀는 어른이 어딨고, 애가 어딨냐고 생각한다. 요컨대 아이와 어른을 구분 짓는 그 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와 요조가 민영을 만나 아이와 어른 사이의 그어진 선을 없애버리는 그런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민영이 그 둘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오히려-아이로 살아가는 것이 대체 뭐가 나쁜데? 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지 않으면 어때? 아이도 어른도 아니면 어때? 민영이 가르쳐주는 건, 스스로를 무언가로 구분 짓지 말라는 것이다. 구분 짓는 선 안에 억지로 자신을 가두려 들면 오히려 너는 그 선에 목을 매게 될걸 

 

배고프면 배고프다 소리치고, 아프면 아프다고 울고, 잠이 오면 잠을 자도 되는 것이 아이이다. 본능대로, 하고싶은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만이었다. 배가 고프면 젖을 찾으면 되고, 두 손으로 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어먹어도 오히려 박수를 받던 아이들. 그랬던 아이들이 어느 날 숟가락을 건네 받는다. 숟가락과 포크. 그 다음에는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연습용 젓가락을 마스터했더니 별안간 뾰족한 금속의 젓가락 한 벌을 건네 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젓가락 외의 것들을 불결하거나 저급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딱딱한 쇠젓가락 한 벌에 아둥바둥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쇠젓가락으로 집어먹는 삶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삶도 그 삶대로 청결하고 보기 좋고 더할 나위 없이 가지런하다.

 

애초에 아이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신이 내린 축복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신의 뜻과 반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가 신의 뜻으로만 보였었는데, 언제부턴가 신의 뜻을 구해야만 하는 존재로 변해가고 그때부터 아이는 아니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신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그까짓 거, 신의 뜻대로 안 살면 어때. 신의 눈밖에 나면 어때.

 

신의 뜻 안에 머물길 바라다가 아직도 누군가 숟가락을 쥐어줘야 하는 처량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 그런 존재를 요조는 병신이라고 칭한다. 그런 요조와 는 어찌어찌 제대로 살지 않고도 살아가고 있다. 사실 애초에 제대로 산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뭔지도 모르고 사는 삶에도 나름의 미덕이 있지 않은가. 이 미덕을 민영이 오롯이 풀어 보여준다. 애써 알려고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 무리하게 앎으로써 사람은 얼마나 피폐해지는가. 신의 존재 또한 알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 신의 뜻 따위를 알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과 뜻이 맞아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온전한 한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온전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할 것이 참으로 많다. 온전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남에게 꿀리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야 하고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가진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앞으로 일류대에 들어갈 아이를 낳아야 한다. 학교를 다닐 이유를 찾지 못하고 돈을 벌 이유가 생존만을 위한 것이 되거나 혹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함이라면, 결혼이란 것을 할 생각이 없다면, 결혼이란 것을 아무도 나와 해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나와 닮은 아이를 낳을 자신도 없고 아이를 낳는 것이 국가와 인류에 도움을 줄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면,

신은 이 사람을 버릴 것이다-라고 온전한 한 사람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이 책의 아이들은 별로 신의 사랑 따위 구하지 않는다. 애초에 신이 있었나 엄마가 있었나 아빠가 있었나. 온통 뭐라고 특정 짓지 못할 당신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는 와중에 아이들은 사랑 따위 구하기를 그만 둬 버린다.

 

이 책의 당신’. ‘당신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신을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의 첫 장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화자의 말투를 보며 이 아이는 과연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말을 하고, 걸고 있는데, 이 말은 주고받는 대화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독백이다. 독백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앞의 상대가 자신의 말을 반드시 경청하리라는 확신도 전혀 가지지 않은 듯한 대화이다. 술자리를 생각했다. 어쩌면 상대는 가 일하는 그 바의 어느 익명의 손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해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화자는 당신이 귀 기울여 듣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할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있잖아,듣지 않아도 돼.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말을 굳이 듣는 척 하지 않아도 돼.

 

사실, 화자의 당신은 화자가 마지막에 호명하는 그 당신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당신

그녀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갖가지 당신들. 이 책에는 참으로 당신이 많이도 존재한다.

 

당신들은 그녀가 바라지만 동시에 밀어내고 싶은 모든 존재들이다. 바라기에 그녀가 결국에는 찾아나서는 존재이고, 밀어내고 싶기에 당신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름을 차단해버린다. 그런데 아무렴 어떠랴. 그녀는 당신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하여 이제까지 그녀가 부르던 당신이라는 호칭안에 갇혀있던 당신은 당신이라는 빗장을 풀고 자유로워진다. 그녀의 갈망 아래 깔려 뭉개지지 않고 이젠 당신도 자유로이 부름을 되받아치고 그녀를 불러낼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이제 등을 돌려 그녀를 외면해도 괜찮다, 이젠 다 괜찮다. 거부당해도 이겨낼 수 있는 탄성이 이제 그녀에게도 생겼으니까. 차라리 당신은 그녀를 거부하라. 그녀가 결코 당신을 구하지 않고도 제대로 혼자일 수 있는 삶을 은총해주길. 혼자서도 그녀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녀는 어른이 되지 않고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른이 되지 않으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녀가 어머니를 구하든 아버지를 구하든 신을 구하든 그 모든 당신들이 그녀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닐 거라는 말이다. ‘긴 여행이 될 것이고, 그 여행은 당신을 종착지로 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보여주는 그 어떤 어른상도 지나가는 역인 것이다. 대신 이제 그녀는 지나가는 그 역을 자세히 봐주리라. 눈을 감고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역을 지나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찾아갈 것이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가장 그녀에게 잘 맞을 그러한 인간으로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4.08.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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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감스러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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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소설, 청춘을 소재로 하고있는데다 젊은 여대생 작가가 썼다기에 읽기도전에 괜시리 가슴이 쿵쾅쿵쾅거렸다. 국내 젊은 작가가 쓴 소설중엔 조금 묘사나 숨은 의미가 강해 그 진정한 뜻을 알기도 전에,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책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데 정지향 작가의 소설은 그런 겉멋보단 소설이 추구해야할 깔끔함. 깔끔하고 자연스러워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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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소설, 청춘을 소재로 하고있는데다 젊은 여대생 작가가 썼다기에 읽기도전에 괜시리 가슴이 쿵쾅쿵쾅거렸다.

국내 젊은 작가가 쓴 소설중엔 조금 묘사나 숨은 의미가 강해 그 진정한 뜻을 알기도 전에,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책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데 정지향 작가의 소설은 그런 겉멋보단 소설이 추구해야할 깔끔함. 깔끔하고 자연스러워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지는 문장이나, 평범한 독특함이 돋보이는 주인공들이 굉장히 기분좋게 다가왔다.

여담으로 주인공 삼인방중 유일한 남자인 '요조'의 이름은 처음엔 요조숙녀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곧장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이란 책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인간실격의 주인공도 요조인데, 주인공이 책에서 인물들의 대화로 인간실격과 요조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말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인간실격을 흥미있게 읽은 나로썬 다른 책에서의 다른 요조와의 만남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맞은편에 주르륵 늘어선 건물들이 보였어. 창문이 모두 닫혀있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동네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방들 중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을 거야.'

 

 

책의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구절이지만,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느낀 구절이다.

주인공들이 '고아의 도시'라고 부르며 그들의 삶의 거처가 되는 칙칙한 도시.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꿈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창하게 꿈을 키우는 것도 아닌 단순히 시간을 죽이거나, 자신의 취미를 즐기거나, 밀린 숙제나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살아간다. 평소엔 나, 내 가족, 친구정도밖에 머릿속에 염두하며 살아가지만 잘 생각해보면 당장 창문을 열고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도 한 집 한 집 사람이 살고있다. 그 사람은 모두가 다른 생각과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평소에도 가끔가다 생각하는 것이 작가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보여진다는 경험이 좋았다. 그들의 삶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내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서 빌려온 것 같았어.'

 

 

그런 시간들을 살면서 느껴보았기에 공감가는 말이었다. 주인공은 홀로 여행을 떠나 느낀 감정이고, 난 하릴없이 산책을 하고있을 때면 느끼는 감정이다.

나와 주인공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시간을 멍하게, 효율적이지 못하게, 기분내키는대로, 목표 없이 사용한다는 것일까.

그저 지금 걷고있으니 걷는 것이고, 누워있으니 누워있는 것이다.

매일 정해진 일만 수행하는 나사처럼 하루하루 살다보면 이런 여유. 혹은 나태라고 불러도 좋을 시간과 어색해진다.

 

 

'그러고 보면. 민영은 그저 고아의 도시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어. 그애가 나에게로 여행을 데려온거야.'

 

 

주인공 '나'(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기에 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카우치서퍼 민영, 나의 남자친구 요조.

이 셋의 기묘한 관계와 유대감을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민영은 카우치서퍼로 '나'가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만나게된다. 카우치서퍼란, 카우치서핑이랑 사이트에서 각 나라별로 소파를 빌려주는(상징적 의미로 집을 빌려주고 여행객의 여행담을 듣는 목적이 많은 것 같다.) 것으로 책의 제목과 긴밀하게 연관이 있는 소재다.

여행을 대려온다라는 표현이 좋았는데, 평범한 회색빛 일상에 한 사람이 나타남으로 여행을 하는듯한 설렘과 독특한 감정의 기류를 맛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같아 마음에 쏙 든다.

 

 

'제대로 살고있나.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

 

 

주인공의 긴 독백속에 섞여있는 말이지만, 내겐 큰 임팩트로 다가왔다.

삶. 누구나 원해서 태어난 사람도 없을 것이고,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린 과연 제대로 살고 있을까.

확답은 신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난 이 구절을 읽고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느꼈다.

퍼즐을 완성하기엔 가지고있는 조각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아버린 기분과 비슷하다고 할까. 인생의 공허함이 느껴졌다.

주인공 셋도 공허하게 살아간다. 분명한 목표도 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무엇인가 척척 해내는 빛나는 주인공들과 달리 현실감있고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 하다.

내용 스포일러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청춘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v******7 2015.06.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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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시간에만 흐르는 그리움이 있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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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울고 말았을까. 당신의 소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을 때였어.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그대로 울고 말았지. 소리 없는 울음이었어. 가끔 그렇게 울음이 나올 때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려 내가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다고 느꼈지. 아주 어릴 때에는 내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고 생각했어. 짧은 생으로의 여행을 하다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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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울고 말았을까. 당신의 소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을 때였어.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그대로 울고 말았지. 소리 없는 울음이었어. 가끔 그렇게 울음이 나올 때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려 내가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다고 느꼈지.

아주 어릴 때에는 내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고 생각했어. 짧은 생으로의 여행을 하다가 지루해질 즈음엔 다시 내가 왔던 별로 간다고. 그 별의 이름은, 사람들마다 부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그 별의 이름을 감춰뒀었지. 당신의 소설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어. 어린 시절에 했던 생각조차도. 소설을 통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나는 다시금 느꼈어.

당신의 소설에서 만난 요조와 민영, 그리고 '나'는, 표류하고 있었지. 나는 표류하다가 그들을 만난 기분이었어. 그들은 각기 저마다의 소파를 갖고 있었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을 소파를 나 혼자만 갖지 못한 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눈물이 난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모두 한번쯤은 자신의 소파를 내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사람은 한없이 외롭게 하거든. 별이 떨어지는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리움은 그날의 시간에만 있기 때문에 그리워할 수 있는 거야. 언젠가 홍대 거리를 걷다가 교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년을 보았어. 소년은 밝은 얼굴로 리듬을 맞추듯 고개를 까닥이며 노래를 불렀지. 그가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들리는 목소리가 거리 곳곳으로 퍼지는 걸 보았어. 한번쯤은 누군가 걸음을 멈춰 그 노래를 들었을 거라 생각해. 누군가는 어느 날 그날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겠지. 그날에만 존재하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날의 그리움이 생겨난 것이라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가진 그리움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된 게 아닌가 생각했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라고 말이야. 요조와 민영이었을 누군가를, 당신이 소설에서 말한 당신이란 존재를.

어떤 기억은 생각만 해도 곧장 풍경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지.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고민해야 떠오르기도 해. 당신이 남긴 소설은, '나'가 부끄럼 없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될 때에도 요조를 떠올린단 말처럼, 소파만 봐도 떠올릴 것 같아. 나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지나치는 가구점에 진열된 소파에서 민영과 요조와 '나'가 나눈 대화를 떠올릴 거야.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에서, 하나씩 소파를 살 것이란 말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을 어두운 밤거리에서도 그들이 서로의 발걸음을 새기며 걸어갔던 것처럼 나도 그러리란 것을. 붉게 그어져 가는 지평선 너머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여명의 빛깔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했던 시간들을 아로새길 거야.

당신은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고 했지. 나는 그 말이 당신이 쓴 소설 그대로라는 걸 알았어. 그날 할 수 있는 사랑처럼 그날 살 수 있는 삶이 있다고 말이야. 어정쩡하게 흘러가던 시간들은 사실 그대로의 시간이었어. 민영이 입양아로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다가 '나'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 어떤 시간과 어떤 시간은 만날 운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

요조가 살아온 시간들은 그가 새긴 발자국이야. 민영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민영의 발자국이지. 그들 모두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나를 돌아보게 한 글이었어. 내 스무 살은 어땠는지, 아주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민영을 떠올릴 거야. 민영이 뿌리를 내렸다가 거두고 사라졌던 여행의 흔적과도 같은 삶을 그리워하면서 앞을 바라볼 거야. 나는 당신의 소설에서 보인 성장통이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날의 시간에 머무는 그리움이 점점 커지듯, 나의 시간도 점점 커져서 언젠가 민영과 요조처럼 어떤 그리움을 남기겠지. 당신이 남긴 소설처럼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무한정으로 펼쳐져 있어 때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그날에 머물러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게 된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움이 머무는 곳에서 한 발씩 멀어지면 새로운 그리움을 쌓아갈 테야. 그러니까 그날까지 당신도 안녕.

t*****g 201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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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도 노랑도 아닌 초록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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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 있다. 올려다보면 막연히 파랗게 펼쳐져 있다. 노란 햇살도 그렇다. 그저 어느새 피부에 맞닿아있는 것. 「고아의 도시」에 사는 ‘그들’, 아니 ‘우리’는 현실을 그렇게 체감한다. 실감하기보다는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것들. 하지만 자의로 잡거나 거부하거나 할 수도 없는 그런 성질을 가진 것들. 그래서 ‘초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입장이 다르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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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이 있다. 올려다보면 막연히 파랗게 펼쳐져 있다. 노란 햇살도 그렇다. 그저 어느새 피부에 맞닿아있는 것. 「고아의 도시」에 사는 ‘그들’, 아니 ‘우리’는 현실을 그렇게 체감한다. 실감하기보다는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것들. 하지만 자의로 잡거나 거부하거나 할 수도 없는 그런 성질을 가진 것들. 그래서 ‘초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입장이 다르기보다 명암이나 농도 같은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쩌면 청춘이고 연애이고 삶의 방식일 테니까. 정지향의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초록과 같이 명확한 듯 명확하지 않으며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모호해서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한국에 간다면, 그때 말했던 것처럼 네 ‘소파’를 내어줄 수 있어?

  -p.39

 

  이 소설은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나, 요조, 민영. 이들은 너무 친밀하기도, 너무 친밀해서 잘 모르기도 한다. (이것은 주로 ‘나’와 ‘요조’의 관계이다.) 자발적 고아든(요조) 이국적 고아든(민영) 아니면 후천적 고아든(나-그렇다고 선천적이란 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있다. 모여들었다는 말이 정확할까?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혹은 사회로부터 겨우 그림자 정도만 걸쳐 둔 공간이 바로 「고아의 도시」다.

 

  요조와 나는 방학 한가운데서도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애들을 고아라고 불렀고, 거기엔 우리도 포함됐지.

  -p.14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무더운 여름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무기력이라고 할까, 아니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힘든 무감각의 상태라고 할까. 그것은 ‘나’의 소설 쓰기에 드러난다. 요조와 늘 같이 있기에 쓸 수 없는 요조에 관해서. 민영과 한순간 너무도 가까웠지만 ‘나’가 한국에 돌아와서 무언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민영에 관해서. 그리고 마음보다 손이 빨라 보이는 문창과 후배들의 열정에 관해서. 한 문장조차 쓸 수 없었던 ‘나’의 어떤 소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므로. 그것이 여름-장마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이므로. 고아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겪어왔던 우리의 이야기이므로.

 

  나는 민영을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요조를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어.

  -p.102

 

  나에게 민영은 어쩌면 파란 하늘처럼 자유로운 존재로 보였을지 모른다. 요조는 늘 내리쬐는 태양처럼 붉고 노랗고 익숙했을 거다. 이들은 사실 누구나 ‘카우치 서퍼’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곳은 ‘나의 방’이고, ‘언젠가 갖고 싶은 초록 가죽소파’이다. 앉아 있는 순간에는 알 수 없다. 이미 ‘초록 가죽소파’ 위일지라도. 느끼지 못하는 ‘초록’보다는 왠지 아늑하고 편안하고 좋아 보이는 ‘초록’을 원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그걸 꿈꾸는 게 대학생들의 권리이고 의미니까.

  모두 ‘초록 가죽소파’ 위에서 ‘표류’ 중이니까.

 

  나는 김이 빠진 맥주를 부끄럼 없이 나눠 먹을 사람을 또 만난다고 해도 언제나 요조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 나는 언제까지나 미국 산티아고 위성도시의 방식으로 볶음밥을 만들 것 같아.

  -p.140

 

  청춘의 시기에 느끼는 외로움이란 게 이럴 거다. 혼자여도 괜찮을 줄 알았던 것들이 불현듯 찾아오는 순간들. ‘맥주의 시간’과 당신과 나눠 먹던 어떤 ‘음식의 시간’, 혹은 ‘나’를 한때나마 증명하고 긍정하던 그들의 흔적이 묻은 사물들. 표류의 끝은 무엇일까? 사회로의 진입이거나 한 생을 포기하는 것? 아니면 고아임을 자처하면서 고아임을 스스로는 알고 있는 것? 아마도 표류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순간이 아닐까. 소설 쓰기가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이전의 서사들, 사건들이 그리워지는 그 순간이 아닐까. 표류의 끝은 아이가 어른이 되기보다는 아이가 다른 아이가 되어 ‘다른 소파 위에 앉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 퇴근시간의 지하철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지. 손잡이를 잡을 수조차 없었어. 사람들 사이에 낀 채 가만히 서 있을 때면, 고아의 도시와 서울이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어. 둘 중 어느 곳이 정상인지 알 수가 없었어.

-p.35

 

  나의 말을 들으며 나와 요조와 민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공감보다는 교감에 가까울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거나 동질감을 느끼기보다는 너와 나는 다른 처지지만 갈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하는 것. 친구와의 대화란 늘 그렇다. 함께일 땐 듣기 싫으면서 듣고 싶은 생활이 있고 나누고 싶지만 나누기 싫은 마음이 있고 혼자일 땐 그립고 서러울 정도로 외로운. ‘나’의 말은 그래서 아는 것은 불편하고 그래서 친밀한, 무기력하지만 다 같이 무력해질 수 있는 한패가 되어 서울 시내를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뭐가 더 좋은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디가 더 좋은지를 생각하는 일. ‘가죽소파’ 위에서. 누구나 가지고 싶었고 누구나 떠나게 되는 ‘초록’의 세계에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고 위태로웠고 떠나갔다. 더 짙거나 연한 ‘초록’의 청춘을 향해.

  당신을 당신이라 부를 수 있는 한때이기에.


s****r 2014.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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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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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한테 일부러 더 실없이 농담하고 모든 걸 다 가볍게 하려고 해. 요조처럼. 그래서 우리의 이상한 동아리에도 들어갔던 거고.(32쪽)’ 비가 왔다 그친 후,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습기. 허벅지를 철썩 붙게 하는 진득이는 장판. 그 위에 누워 새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직육면체 모양의 각진 공기가 날 내리누르고, ‘대학생’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20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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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한테 일부러 더 실없이 농담하고 모든 걸 다 가볍게 하려고 해. 요조처럼. 그래서 우리의 이상한 동아리에도 들어갔던 거고.(32)’


비가 왔다 그친 후,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습기. 허벅지를 철썩 붙게 하는 진득이는 장판. 그 위에 누워 새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직육면체 모양의 각진 공기가 날 내리누르고, ‘대학생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20’, ‘청춘이란 단어가 함께 딸려온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시절이란 의심스러운 덕담이 필수적인 향신료처럼 첨가된다. 피식 웃는다. 자취방의 적막이 내 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일부러 더 실없이 농담하고 모든 걸 다 가볍게 하려고하는 요조가 내 웃음에 동조한다. ‘가장 좋은 시절에 우울하면 안 될 것 같아 가시를 세우고 나를 보호한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대학생이 쓴 대학생에 관한 소설이다. 나 또한 대학생이고, 때문에 이 소설 속 대학생들의 모습이 특출하게 무료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형상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20’, ‘청춘’, ‘가장 좋은 시절이란 말과 어쩌면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고 볼 수 있을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지금도 축축한 공기 속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쥐고 있을, 그 수많은 대학생들. 가족문제와 인간관계, 취업난, 여행, 사랑과 우정 같은 키워드 속에서 골머리 앓는 이들을 어떤 이야기와 어떤 언어로,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하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할까, 하는 문제를, ‘대학소설상의 수상작가가 능수능란하게 해결했다. 어쩌면 대학소설상이 원했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던 건지도 모른다.


소설은 민영이 찾아옴과 함께 시작되고, 민영과 요조가 방을 떠남과 함께 끝난다. 언뜻 보면, 이것은 민영의 고아의 도시방문기다. 또 언뜻 보면, 세 친구의 결합과 불가피한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작가는 천연덕스레 이것이 그들의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민영은 그저 고아의 도시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어. 그애가 나에게로 여행을 데려온 거야.(72)’

 

셋이 지내기엔 좁은 방에 초록 가죽소파가 있다 치고, ‘카우치 서퍼민영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행이어쩌면 표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시작되었다. 고아의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서울의 후원에 갔다가 연못에 둘러앉아 날밤을 새기도 한다. 무슨 고급 노천탕처럼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민영은 요조와 에게 또 다른 고아의 도시와 또 다른 서울을 선사한다. ‘여행을 데리고 왔다는 표현이 이보다 어울릴 수 없다. 남겨지거나 남을 남겨두고 왔던 고아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해류가 닥친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남겨져서 표류하는 그들에게선, 이상하게도, 땅에 정착해있을 때와는 다른 묘한 생기가 느껴진다. 요조와 민영이 떠난 후, ‘는 생각한다.

 

눌러뒀던 생각들이 봇물처럼 터졌지. 민영과 요조가 모두 떠나고 나면 나는 방안에서 뭘 해야 할까. 학기가 시작되고 도시로 나갔던 아이들이 모두 돌아오면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모양으로 걸을까.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시간을 견뎌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어. 고작 일 년 전의 일인데 말이야. 새벽에 혼자 방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나와 연결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버텼는지. 수업이 끝난 뒤 이 도시와 서울의 낯선 동네들을 아무렇게나 걷다가 해가 지는 하늘을 봤을 때 그리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버텨왔던 건지.(113-114)’

 

그래, 어떻게 버텨왔던 걸까. 그때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온 였고, 이제는 남겨진 . 요조, 민영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문득 문득 떠오를 것이고, 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인지, 슬플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대신 그리워 할 것이고, ‘나와 연결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대신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민영과 요조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들의 표류는 성공적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당신과의 화해처럼 말이다. 언젠간 나도, 민영에게 소파를 내어주고만 싶다.

p*******9 201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