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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IV / 한빛비즈 159번째 리뷰]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명심보감>을 시작으로 어릴 적부터 적지 않은 유교경전을 읽었더랬다. 하지만 스승님께 사사받는 수업이 아닌 '독학'으로 읽었기 때문에 뜻풀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되는대로 주워 섬기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읽은 셈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말씀'에 대한 기준만큼은 명확히 새기고 있던 터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 부끄러운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사람을 보는 기준이 '인성(人性)'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갈리는 편이다. 다시 말해, 내가 고개 숙여 존경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마음이 고운 사람'뿐이다. 그렇게 착한 사람에게는 진심을 다해서 예를 다하려고 노력한다. 허나 심성이 고약하거나 품행이 방정맞지 못하거나, 특히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사람은 딱 질색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절로 '호감'을 사게 되고, 반대로 부정적인 사람은 '반감'을 띠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예를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내것을 아끼지 않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반면, 하는 일마다 투덜거리고 제 일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몰상식한 사람과는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이런 당연한 소리가 바로 <논어>에 다 적혀 있다. 그렇지만 정작 <논어>를 읽어본 사람은 내 주변을 보아도 그리 많지 않다. 행여 드물게도 읽어본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소감을 물으면 "너무 지루하고, 어렵고 딱딱한 말투 때문에 다 읽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긴 나도 처음에 읽을 땐 딱 그랬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친절한(?) 해석'이 달려 있는 책들을 읽으면 그나마 읽을 만하다는 소극적인 권유를 하지만, 고루한 옛말투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논어>를 '현대어'로 풀어낸 책이 절실했는데, 이 책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가 딱 그랬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가 지적하듯이 <논어>를 '완역본'으로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하는 편이지만, 한자어휘를 남발한 책을 완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기에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요즘 세대들은 '고사성어'에 담겨 있는 지혜를 읽으면서도 "어쩔 TV~"로 대꾸하곤 하는데 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반감부터 생겨 어깃장을 놓곤 하니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할 지경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쉬운 풀이'가 절실한 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논어>의 전체를 실은 것이 아니라 '64개의 문장'만을 꼭 알아야 할 내용으로 삼고, 오늘날의 적절한 해석을 일일이 달아놓았으니, 그나마 읽을 만한 <논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지만, '조선 그림'에 대한 해설도 꽤나 '교육적'으로 보여서 '수행평가'에나 도움이 될 법한 '예시(모범답안)'로 삼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논어>, 그 자체니까 말이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논어>를 쓴 사람은 '공자'가 아니다. 위대한 성현들인 '예수'도 <성경>을 직접 쓰지 않았고, '무함마드'도 <꾸란>을 쓰지 않았으며, '석가모니'도 <불경>을 손수 적지 않았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저작물을 직접 남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의 '말씀'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의 '제자'가 그분들의 '말씀'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제자들끼리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해놓았다가 따로 모아서 책으로 남긴 것이 이른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경전'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성현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따라하고자 '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손수 집필하지 아니 하고 '내 제자들'에게 열실히 필기를 하라고..쿨럭쿨럭 암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논어>는 공자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적어 놓은 책이란 말이다. 더구나 공자는 교실 안에서 강의를 하는 '딱딱한 수업'을 하지 않았단다. 제자들과 함께 좋은 산천구경을 하며 다니다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BGM으로 시냇물 소리가 졸졸졸 흐르는 곳에서 노닐다가 악기를 연주하다 흥이 오르면 '좋은 말씀'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제자들은 그런 스승님의 흥취에 장단을 맞추다가 문득 '궁금증'이 떠오르면 질문을 던지는 꽤나 느슨하고 열린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 터이니 '강의 커리큘럼'이 따로 있을 리 없고, '교과 목표' 따위를 드러낸 교과서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떠오르는 영감'을 주는대로 받아 먹는 식으로 제자들도 공자님의 말씀을 적었을 뿐이다. 그러니 <논어>에 '읽는 순서' 따위는 없다. 아무 대나 손이 가는 대로 펴서 읽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이런 식이니 <논어>를 '격식'을 따져가며 읽을 필요가 전혀 없고, 읽는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전혀 없다. 오히려 그런 부담감을 갖는 순간 <논어>를 제대로 읽기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격식'을 내려놓고 읽다보면 때론 '파격'적으로 읽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땐 '그런 맛'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경전>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려는 '교조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성현의 말씀을 곡해하고, 원래의 뜻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짓이 되는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이다. '좋은 말씀'은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마음의 양식'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논어>를 읽을 때에도 아무 거리낌없고 막힘 없이 읽어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논어>의 가장 유명한 문장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也'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느냐'라고 직역을 해버리면, 그 뜻이 살지 못한다. 이 문장의 뜻은 한마디로 '아는 것이 많아지면 즐거워진다'는 공부하는 학생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자세라고 하더라도 '강요'하게 되면 즐거울 턱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때 시'를 강조한 듯 싶다. 언제 '학습'을 하면 가장 기쁘겠는가? 바로 '알고 싶은 것'이 생겼을 바로 '그 때' 알 수 있고, 깨우칠 수 있다면, 머릿속에 전구가 밝게 빛나듯, 지혜의 샘물이 콸콸 솟아나듯 '앓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야말로 진정 기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로 풀이를 하면, 이해가 쏙쏙 될 것이다. 이처럼 오래된 문장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공자가 살던 시대와 오늘날이 수천 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있는데, 이를 '세대차이'로 셈을 해본다면 얼마나 큰 차이겠느냔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과거의 지혜'가 세월이 흘렀다고 '낡은 지혜'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왜냐면 그 때에도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사람' 사는 데에는 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이를 '욕망' 또는 '욕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은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것이 없단 말이다. 다만, 사람이 살아가던 '세상의 모습(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그 '양식'만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좋은 말씀'은 그대로 오늘날에도 '유용한 지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논어>는 절대 고리타분한 옛글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 있는 지혜로 우리가 엿보고 배울 만한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다만 그 교과서를 '현대어'로 슬기롭게 바꾸어 읽을 수 있는 '짬바(경륜, 또는 경험, 삶의 지혜 따위)'가 필요한 셈이다. 일단 이 책의 글쓴이가 '풀이'한 내용을 참고 삼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논어>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들도 충분히 쉽게 해석하며 읽어 나가는 짬바(?)가 생길 것이다. 그런 짬바로 '좋은 말씀'을 다시 되새기며 읽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쯤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좋지 않은 점이 보인다면 '고치고 싶은' 용기도 생길 것이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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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 세상의 기준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의 생활법 _양승렬 / 한빛비즈
책속으로 들어가기 전, 띠지에 적힌 ‘이로움을 얻거든 의로운지 생각하라’는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 한국사회는 일부 정치인들이 의(義)롭지 못한 이득(利得)을 받은 문제로 시끄럽다. 그들은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잡아떼지만 그 반론의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관련 있는 정치인들이 최소 20여명이라고 한다. 대부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희한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이 모두 피해자일 텐데, 아무도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는 듯하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논어(論語)』는 익히 알려져 있듯,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텍스트로 처음 출현한 것은 중국의 전한시대(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출판계에선 꾸준히 논어와 관련된 도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생명력이 긴 책이다. AI시대에도 논어의 등장이 낯설지 않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 ,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년 전 인간의 삶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자세가 달라야 할까?
이 책은 그간 출간된 『논어』관련도서들과 성격을 달리한다. 우선 저자는 인문학자는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던 평범한 직장인이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문화숨결의 궁궐길라잡이 소속으로 경복궁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과 역사에 대해 알리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도서도 출간했다. 저자는 동양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대한 호기심으로 2020년부터『논어』를 파고 들었다고 한다. 논어의 한줄 한 줄을 옮기며 나름대로 풀이한 것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인문학자 못지않은 성찰이 느껴진다. 특이한 점은 논어의 구절들과 관련된 옛 그림을 함께 담아서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본다. 자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 정도면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구나.” 말은 쉽지만 이렇게 살아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는 제자들이 같은 질문을 해도 각 제자의 품성에 맞게 맞춤형 답변을 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 대답은 어느 제자가 물어도 같은 답변이 나왔을 것 같다. 저자는 이 글과 함께 조선의 화가 최북을 소개한다. 최북은 중인출신의 직업 화가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러나 돈으로 거만하게 굴거나 그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순순히 작품을 팔지 않았다. 언젠가 작품을 청탁한 사람이 그림을 주지 않는다고 협박하자, 최북은 분노하여 송곳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렀다고 한다. 이 일로 그는 한쪽 눈을 잃었다, 그는 비록 가난하지만, 재물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림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교만한 부자의 눈을 찌르고 싶었겠지만, 참으면서 자신의 눈을 찌른 것으로 이해한다. 안타깝다.
책은 크게 두 챕터로 편집되었다. ‘소재로 보는 그림’과 ‘화가로 보는 그림’이다. ‘소재로 보는 그림’이 저자가 나름대로 논어를 풀이하며 상념과 함께 그림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면, ‘화가로 보는 그림’은 그림을 그린 화가를 더욱 가깝게 찬찬히 들여다본다. 강세황, 김득신, 김정희, 김홍도, 윤두서, 신윤복, 심사정, 이인상, 정선, 조영석, 최북 등의 화가들 그림이 세 점씩 소개된다. 그리고 책 제목으로 쓰인 《하루논어》에 걸맞게 64개의 글, 64일에 걸쳐서도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하루논어 #일일논어 #조선의그림으로시작하는 #양승렬 #한빛비즈 #쎄인트의책이야기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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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깡꿈월드입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궁핍한 생활을 하던 그는 '학문'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공자'. 동양 최초 자기계발 현자 공자의 나다운 삶을 위한 조언. 1420. "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 입니다. ![]() ![]()
융통성이 없고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우기는 고집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배움의 조력자로서 제자들에게 반드시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움과 생각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꿈꾸지만 모든 일이 의지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노력은 기본이고 기회, 환경, 체력 조력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뭉쳐 힘을 발휘할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다. 의지를 나무로 비유하자면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인내심 필요하다. 저자는 참는다는 말이 수동적이고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절제한다'는 말로 자기 암시를 건다고 한다. ![]() 폭발하는 감정과 온갖 욕망 등은 어쩔 수 없이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절제라는 생각으로 심호흡을 한다. ![]() 처음에는 인내의 중요함을 몰랐지만 참기 힘들 정도로 모진 수모와 처참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서야 보잘것없게 보이던 글자가 가진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그 어떤 식물보다 앞서서 꽃을 피우는 매화도 그와 같다. 추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 공자는 55세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과 모험을 떠났다. 자신을 정치가로 기용해 줄 제후를 찾아서 13년 동안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꿈을 찾아서 떠돌아다녔지만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걱정한 제후들은 공자를 기용하지 않았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움츠러든다. 무엇을 해 볼 수 없을 때처럼 절망적인 순간은 없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내 영혼이 꺾이고 부러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들고 지칠 때가 생긴다. 작은 희망도 찾기 어려울 때 정신은 절망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러나 공자는 절망하지 않았다. 시련이 깊을수록 단련의 강도는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생각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담담하게 시작해 보자. 상황을 내 마음대로 할 순 없겠지만 시련을 겪으며 좀 더 단단해진 나는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 ![]() 세상의 기준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면 누구보다 세상의 기준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공자의 말 '논어'를 읽어보자. # 이 책은 한빛비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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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북유럽 #조선의그림으로시작하는논어 #양승렬 #한빛비즈 #신간 #동양고전 #추천도서 #베스트셀러 공자는 피의 시대를 맞아 귀족이라는 의미의 군자에 다른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군자는 어린 시절부터 세습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교양을 쌓았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특징을 감안하며 단어의 의미를 바꾸었습니다. 수양을 통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양승렬, 한빛비즈, 73 p 아무리 AI와 과학 기술이 대세라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생을 살면서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고전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 오랜 세월동안 살아남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이지요. 고전 중에서도 무려 2500년 동안 전해져내려오는 책이 있는데, 바로 '논어'입니다. 아마 <논어>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논어>는 읽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일단 한문으로 쓰여진 책이라 한문 실력이 중급 이상은 되어야만 읽을 수가 있어요. 번역본이 있다고는 해도,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이 좋은 번역본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2500년 전에 쓰여진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와닿는 부분도 많이 없습니다.<논어>는 인생을 살면서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번역본을 집어 들어도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빛비즈에서 논어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책이 한 권 발행되었습니다. 양승렬 작가님의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라는 책인데요. 일단 보통 논어 번역본과는 다릅니다. 일반적인 논어 번역본은 학이편부터 요왈편까지 그냥 쭉 번역해 놓은 형식인데, 이 책은 작가님이 '세상의 기준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의 생활법'이라는 주제에 맞게 논어를 편집하여 설명해 줍니다. 책을 읽으며 동양고전, 논어에 박식한 양승렬 작가님에게 1:1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에도 드러나 있듯 이 책은 단순히 논어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조선의 그림'과 '논어'를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지금까지 이런 책은 처음 보았습니다. 참신한 기획 하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총 64일동안 하루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저처럼 따로 독서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이 읽기에 아주 좋은 편집 형태입니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하루를 통으로 독서에만 몰두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출퇴근 시간, 쉬는 시간에 짬짬이 책을 읽지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끊어서 읽어나가면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는 마치 일일공부 학습지처럼 하루 분량의 글만 읽어도 되니 부담이 없습니다. 저는 한 편 읽는 데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습니다. 좋은 논어 문구와 미술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조선 시대 그림을 한 편 감상하면서 한층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작가님은 조선 미술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데, 어렵게 쓰지 않습니다. 저는 미술에 대해서 아주 적은 지식만 갖고 있지만,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조선 그림, 논어를 알아보고 싶은데 어려울까봐 망설이는 분들께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산수풍속화, 매화초옥도, 관폭도, 오수삼매 등과 같은 멋진 그림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그림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며 논어의 좋은 구절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좋았던 구절이 너무나 많지만 특히 79쪽의 "성공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입니다. 성공은 도달하거나 넘어야 할 기준점이 아니라 즐기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기준점을 정하고 닿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면, 도달하거나 넘어선 이후에는 허무만 남거나 또 다른 기준점을 찾는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하게 됩니다." 문장이 와닿았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저에게 꼭 필요한 말이어서 제가 일하는 사무실 자리에 붙여 놓을 생각입니다. 지금 현실이 힘들어서 마음이 자꾸만 흔들리는 분들께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를 추천드립니다. 앞으로 더 잘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논어 문구 및 조선 시대 그림들에서 많은 희망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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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를 읽고서···.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는 고전과 미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독특한 책이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그림을 통해 논어의 깊은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독자들이 고전의 지혜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단순히 논어의 문구를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예술과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사상적 깊이를 함께 전달한다.
책은 하루하루 한 편의 논어 구절과 그에 어울리는 조선의 그림을 매칭하며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각 그림을 통해 논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림과 함께 논어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전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스며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하는 것이다."[知之謂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본문 중에서 57쪽(논어 위정편)>
특히, 이 책은 논어의 가르침을 단순히 관념적 교훈이 아니라 현실적 지혜로 해석하는 데 주력한다. 조선 시대 그림에 담긴 인물들의 표정, 풍경, 삶의 모습은 논어가 전하는 인간관계와 도덕적 삶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는 구절을 설명하며, 진정한 군자의 삶을 그림 속 사군자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현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낸다.
또한, 저자는 논어의 각 구절이 가진 시대적 맥락을 조선의 역사와 연결해 풀어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논어가 단순히 동양 고전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조선의 풍속화와 산수화 속에서 논어의 메시지가 새롭게 빛나며, 독자들은 조선 선비들이 논어를 통해 어떤 삶의 태도를 지녔는지 엿볼 수 있다.
현대인이 이 책을 통해 고전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보다 ‘균형과 조화’다. 논어는 인간관계, 자기 수양, 사회적 책임 등 삶의 모든 면에서 균형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종종 성과와 효율만을 추구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놓치기 쉽다. 논어의 가르침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다움과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방법을 일깨운다.
또한, 고전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원칙’을 상기시킨다. 논어는 공감, 배려, 겸손과 같은 인간의 기본 덕목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타인과의 소통, 갈등 해결, 공동체 속에서의 역할 등 논어의 지혜는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도리에 맞지 않은 기쁨의 근본은 아부와 뇌물입니다. 그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부정과 편법에 빠지게 만듭니다." 본문 중에서 255쪽>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지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고전의 지혜를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저자의 통찰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각 장의 끝에는 저자의 깊이 있는 성찰과 질문이 담겨 있어, 독자 스스로 논어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자기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는 고전을 어렵고 딱딱하게 느끼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논어의 가르침을 조선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감상하며, 마음의 평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바쁜 현대인에게 하루에 한 구절씩,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이 책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는 고전과 예술을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논어의 깊이와 조선의 미학이 만나 탄생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전 속에서 길을 찾고, 조선의 그림에서 위안을 얻으며, 더욱 풍요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독자에게 무엇보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도 균형 잡힌 삶과 인간다운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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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고전! 언제부턴가, 추리소설! 언제부턴가, 수필! 그리고, 인문학! 그리고, 알게 모르게 곁에 있던 논어! 그림과 어우러져 더 가까이 다가온 하루 논어! 1일. 환경. ~ 64일. 통달. 하루에 한개씩, 64개의 문장을 매일, 한자,음 풀이까지 만년필 필사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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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그림으로시작하는하루논어 #양승렬 #한빛비즈 #인문 #고전 논어는 공자의 가르침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특히 공자가 강조한 자기 성찰, 배움, 인간관계의 조화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큰 울림을 준다. 논어를 소리 내어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내면의 평정심을 찾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공자의 철학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통찰을 전한다. 《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는 조선 시대 그림과 논어의 지혜를 한 권에 담으며,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조선 시대의 아름다운 회화와 공자의 통찰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동양 철학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조선의 그림 한 점과 논어의 한 구절로 구성된 짧고 깊이 있는 글을 통해 매일의 사색을 유도한다. 그림은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의 풍속과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역사와 예술의 맥락에서 논어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한다. 또한, 저자가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독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 책은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하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으며 잠시 멈춰 삶을 돌아보게 하는 구성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의 그림과 논어의 만남이 주는 여유와 지혜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동양 철학과 예술의 조화로 삶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성찰의 시간을 가질 보길 바란다. 공자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혜가 당신의 하루를 채워줄 것이다. ●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낸다면 능히 스승이 될 수 있다.(42쪽) ● 예는 그 가치를 실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선입니다.(48쪽)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리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62쪽) ● 다양한 해석은 시야를 넓힌다.(66쪽) ● 그림은 바탕색이 준비된 후에 그릴 수 있단다.(111쪽) ● 공자는 네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이 없었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320쪽)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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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종교는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철학과 예술이다. 종교는 맹신과 미신 같은 이단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철학은 이성과 성찰로 일상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예술은 감수성과 재미로 삶의 의미를 채워준다. 철학과 예술은 동네 산책처럼 천천히 느끼고 수시로 완상해야 한다. 지식욕이나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단거리 선수마냥 빠르게 질주하는 태도로는 철학과 예술의 정점에 설 수 없다. 동양 철학의 맛과 동양 미술의 멋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교양서가 나왔다. 작가 양승렬은 《논어》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준"을 추려내는데, 총 64개의 문장이다. 모두 험난한 삶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자기계발의 가치관을 강조한다. 더불어 조선 후기 유명화가의 그림 64점도 소개하는데, 《논어》 문장에 대한 설명보다 그림과 화가에 대한 부연설명이 쪼금 더 많은 편이다. 이 책을 펼쳐 매일 한 구절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의 길에 들어선다. 자, 다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니는 경지에 흠뻑 빠져보자. 흥미롭게도, 이 책 맨 마지막에 소개하고 있는 문장이 《논어》를 펼치면 바로 나오는 그 구절이다. "배움의 기쁨, 진정한 벗을 만나는 즐거움, 명성을 신경 쓰지 않는 초연함"을 강조한 학이편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저자는 '통달'을 키워드로 삼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경지에 오른다"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호생관 최북의 〈답설방우〉로, '눈을 밟으며 친구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공자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에 화답하는 멋진 그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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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은 책을 읽고 좋아서 저도 지인에게 선물했어요. 우선 나이가 50이 되어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방향을 잃어가고 있을 때 마주한 책인데 저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젊은 청춘들도 저처럼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분들도 읽어보시면 좋으실 것 같아요. 그림과 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읽기 부담스럽지 않아요^^ 소중한 하루를 이 책으로 시작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