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샘물하고 똑같다. 샘물은 자꾸 품어야 새로운 물이 솟아나온다. 생각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미줄처럼 기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생각을 품어내지 않으면 생각이 가득 차 있고, 가득 차있으면 넘쳐흘러가 없어지거나, 다음의 새로운 생각이 솟아 나오지 않게 된다. -209 형제가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천리길 유배지에 간신히 도착했으나 지친 몸을 쉴 곳조차 마련되어 있지않았다.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서라도 낯선 사람을 선뜻 집 안으로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정약용에게 주막집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두문불출하고 있는 그에게게 글공부배우기를 청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칼날이 그를 향하고 있었고, 또다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좌절도 잠시 풀려난 뒤에 할 사업을 구상해 본다. 이번에는 목민관들을 위한 지침서를 써야겠다. ![]() 오탁악세를 헤쳐나가는 뜻있는 선비로서 몸을 더욱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거처하는 방을 '사의재'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의 이름이 그 운명을 좌우한다. 사의재라는 이름이, 이 방에 거처하는 나의 운명을 바꾸어줄 것이다. -098 정약용은 자신의 처소를 사의재라 이름붙였다. '네가지를 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으로 생각, 용모, 말, 행동 이 네가지를 바로 하는 것을 말한다. 사의재의 뜻을 새겨보면서 나또한 마음을 바로 잡아 본다. 먼저 떠나 보낸 형제와 친구들, 가슴에 묻은 아이들을 마음 속에 품은 채 긴 세월을 버텨낸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수없이 고초를 겪었지만 또 음으로 양으로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음이며, 다산초당에서 초의와의 만남 또한 귀한 인연으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강진에 유배되어 살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고, 허무에도 물들지 않고, 견고하고 알차게 살아 배길 수 있었던 것, 그들의 눈에 탁옹으로 비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267![]() 긴 유배를 끝내고 마침내 돌아온 여유당! 다산의 생애와 업적을 압축해서 한 권의 책에 담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 수많은 고심이 따랐을 것 같다. 주요 등장인물, 다산 정약용 연보를 보며 그의 삶, 시대를 훑어보기에도 좋았다. 방례초본, 목민심서, 흠흠신서, 아언각비..... 다산이 남긴 책, 그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책으로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고전을 읽듯 많은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읽고 뜻을 펼쳐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첫 눈이 내렸다. 창 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멋진 풍경이었지만 때아닌 폭설에 안전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찬바람 속 다산의 유배길을 함께 하고 나서였는지, 사극 드라마 속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보며 읽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다산2 #정약용 #한승원 #열림원 #북유럽 #서평이벤트 |
![]()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는 다산. 역사책에서만 보던 황사영 백서 사건을 덕분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황사영이 다산의 가장 큰 형이자, 이복형인 정약현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이미 눈 밖에 나있는 다산을 어떻게든 끌어내려는 노론 파는 이번에도 황사영 사건에 다산을 끌어들인다. 결국 무죄임이 밝혀지지만, 다산을 호락호락 놔주지 않는 서용보를 비롯한 인물들은 정순왕후의 의견과는 달리 다산의 석방을 막는다. 결국 다산은 강진으로 다시 유배된다. 다산뿐 아니라 둘째 형인 약전 역시 유배길에 오른다.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눈물의 이별을 하는 다산과 약전. 이게 그와 형의 마지막일 테지...라는 생각에 두 형제 모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유배지에 도착했지만 다산은 또다시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관아에서 비밀리에 서울에서 오는 유배자에게 집을 내주지 말라는 명령이 집집마다 전해진 것이다. 결국 가는 곳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산을 거부한다. 결국 길에서 이불을 펴고 자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다산에게 한 줄기 빛이 든다. 자신의 어머니가 하는 주막에 모셔도 되겠냐는 한 여인의 말에 다산과 몸종은 같이 주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산 앞에 정성이 담긴 밥상이 들여진다. 그들의 도움에 목이 메는 다산. 그가 안내된 방에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벽 한편에 세워진 거문고와 책상에 놓여있는 주역 책과 엽전 6개. 도대체 이것의 주인은 누구이고,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 것일까? 주막 부녀의 도움으로 다산은 유배생활에 어려움을 조금씩이겨낸다. 하지만 또 다산을 얽어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방을 비롯한 관아에 속한 아전들의 아들들이 다산에게 학문을 배우겠다고 온 것이다. 근데 그게 빌미가 될 줄이야... 맹자를 가르치던 어느 날, 다산은 반역죄로 관아로 끌려간다. 유배 온 죄인이 나라와 임금을 욕했다는 죄명이었다. 그리고 증인으로 나온 아이는 이방의 아들로, 맹자의 내용을 읊으며 다산이 반역을 꾀했다고 증언한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저 다산은 맹자를 그대로 풀어서 설명할 뿐이었는데 말이다. 다산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주역의 이치를 깨달은 다산과 강진에서는 모든 학문을 통달했다고 소문이 난 혜장 스님. 주막에서 절로 거처를 옮긴 다산은 이 소문을 듣고 머무는 절의 주지와 함께 혜장을 만나러 간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잠을 청하러 비좁은 방으로 옮기게 되는 다산을 다시 찾아오는 혜장. 그가 다산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혜장은 다산으로부터 주역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쉽지 않은 유배의 길에서 다산은 후세에 도움이 될만한 많은 글을 남긴다. 여전히 다산을 죽이려는 서용보를 비롯한 반대파들이 득실거렸지만, 그럼에도 다산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폐족으로 벼슬길이 막힌 아들들에게 쓴 편지와 약전의 아들이었던 학초와 약용의 막내아들 농장의 죽음에 애끓는 심경을 시로 쓰기도 한다. 또한 군정의 문란으로 인해 사망한 시아버지, 남편,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에게도 군포를 내라는 말에 남편이 거세를 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 상황을 지켜본 다산은 답답한 현실을 시로 남기기도 한다. 역사서처럼 촘촘하게 서술 된 다산을 통해 정약용의 삶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덕분에 다산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반가움이 교차한다. 딱딱한 역사 안에 나름의 로맨스나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겹쳐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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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총애가 양날의 칼이 되어 돌아오다. 정약용은 성균관 유생시절부터 특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직에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내지만 향사례 모임과 이벽, 이승훈과의 교류 그리고 형 약전, 약종과 함께 천주학을 접하였다. 라는 이유로 노론의 반발로 좌천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기 잘못을 척결하는 상소를 올리며 중앙무대의 복귀를 거부하지만 정조의 총애를 얻은 정약용은 형조참의로 다시 양날의 칼을 잡게 되는데 하지만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다산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더불어 시작된 천주교 박해와 신유박해는 노론세력에 의해 남인세력은 정치적 희생양을 만드는데 그 중심에 정약용이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다산은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는데 유배 생활은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으며, 동시에 그의 학문적 업적이 꽃을 피운 시간이었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며 삶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농민들의 삶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 노력했다. 또한 지방 행정의 올바른 운영 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목민심서를 집필하였고. 경세유표에서는 국가 제도 개혁을 위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며, 사회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안했다.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고달팠지만, 그는 이를 학문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또한 다산은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신을 통해 가족들과의 애틋한 가족애를 볼 수 있었으며 멀리 떨어진 형 약전과 편지를 통해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정약용이라는 위대한 학자의 삶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내면적 고뇌와 철학적 성찰, 그리고 시대적 갈등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삶이 단지 역사 속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약용의 인간적 모습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가족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위대한 선각자이자 학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특히 저자의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체는 책을 읽는 내내 생동감을 느끼게 하였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부연 설명과 문학적 상상력은 정약용 선생이 느꼈을 고독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의 절망과 희망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나의 삶의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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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2]는 '황사영 백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서울로 압송된 정약용이 겨우 살아남아 더 먼곳 강진으로 유배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솔직히 정약용은 귀양간 강진에서부터 어쩌면 더 자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문하에 제자들이 줄을 서고, 마음대로 저술활동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암울한 우리 근대사를 보면 그가 귀양가지 않고 조정에 남아 있었다고 해도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반대파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엄청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다른 일에 연루시켜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멀리 귀양가서 조정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니 오히려 열심히 집필활동에 전념해서 거대한 저작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산2]의 내용은 강진 생활이 대다수이다. 물론 18년 후 해배되어 다시 고향으로 올라온다. 강진 유배 시절의 이야기에는 그곳 사람들과의 인연과 여러가지 애피소드들이 소개 되어 있다. 작가는 아무래도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그의 저술활동이나 제자들과의 이야기보다 인간적인 인연에 얽힌 이야기에 집중하여 소설을 엮은 것 같다. 그 지역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초의, 혜장 스님과의 이야기 등등. 딸을 윤서유의 집안으로 시집 보낸 것은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 중인데도 사돈을 맺고자 하는 집안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다산의 학문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품이 어떠했는지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를 보면 자식을 안다고 다산만을 보고 딸을 며느리로 삼았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다산 정약용이 엄청난 인물이지만 그 시대만 하더라도 귀양 온 죄인이 아닌가! 노론이 득세하던 시대라서 자신의 아들이 처가 덕을 볼일은 절대 없는데도 말이다. 윤 서유라는 인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하엔 두 개의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진리이냐 아니냐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하면 이익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하는 기준이다. ~~사람이란 곰처럼 미련한 방법을 취할 때도 있듯이,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 때도 있다. -p250 [다산2]를 읽으며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하는 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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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독자를 이렇게 만들려면 소설가는 아마 다산으로 한동안 살면서 그의 사상과 고민, 기쁨과 좌절까지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글의 결마다 느껴지는 치열한 사유의 흔적은 다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손으로 붓을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머릿속에 스며든 듯한 생생함이 페이지마다 묻어나, 마치 다산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이토록 절절히 전해지는 건, 작가가 다산의 시간을 온전히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한승원 작가의 조선 천재 3부작 중 다산 정약용에 대한 2권의 책이다. 다산 정약용의 삶을 입체적으로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다산의 사상과 그의 치열한 생애가 생생한 서사로 다가온다. 여기에 담긴 다산의 고민과 인간적인 면모는 단지 조선 시대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그의 사유와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다산의 사상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면서 그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사학자의 고증이 아니라 소설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 방식이다. 단단한 고증 위에 세워진 생동감 넘치는 서사 덕분에 다산이 품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관직에 있을 때와 유배지에 있을 때의 심리적 변화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억압적인 정치 속에서 유배를 당한 그는 오랜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단지 유배지의 다산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외부의 환경이 그를 옥죄어도, 그의 사유는 결코 유폐되지 않았다는 점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다산의 생각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확장되는 과정이 보인다. 그의 사유는 갇혀 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유배라는 시간은 다산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더욱 거대한 사상가로 만들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산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산의 생각이 내 생각으로 스며들고, 그가 던진 질문이 나에게도 던져진다. 단지 다산의 삶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질문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는 조선 후기의 격변기였고,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가 던진 질문들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 한승원이 이 작품을 위해 긴 시간을 바쳤고, 다산의 사유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다. 그는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 전국의 유배지를 답사하고, 그의 저서를 직접 읽으며 그의 사유의 근원을 파고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다산'이 되었고,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기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산을 다룬 많은 전기와 연구서가 있었지만,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에는 정약용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다산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다산의 고뇌, 사랑, 절망, 신념, 고독을 오롯이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
천주학, 천주교와 얽힌 인연으로 정약용을 감싸 안았던 정조는 대신들의 상소와 논쟁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양을 보내게 된다.호시탐탐 기득권 노론 세력은 다산을 죽여야만 하는 지상과제를 안은것 처럼 다산의 일거수 일투를 감시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 예의치 않게 조카 사위 황사영이 그들의 그물망에 걸려들게 되어 또 한번의 난관을 맞게 된다. 하지만 정약용 스스로 정조에게 쓴 편지에서 학문으로의 대상이었지 믿음의 대상으로의 천주교가 아니었음을 명시하고 이후 다시는 천주교에 대한 가담이나 탐구를 하지 않겠다는 맹서를 함으로써 목숨은 연명할 수 있게 된다. 평상시 다산의 인품을 백성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워낙 죄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론의 영향에 따라 강진으로 간 다산은 하인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주막집 여식을 만나 주막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의 다산은 폐족에 대한 염려로 아들들과의 연락을 자주 하였고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부정(父情)을 보여준다. 한 번이 힘들지 두번은 덜 힘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우리의 의식에 각인된 그 무엇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보다 쉽게 인식하게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 다산의 마음에 자리한 천주교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불가에 선승으로 알려진 혜장과의 대화에서 다산의 학식과 지혜에 무너진 혜장은 나날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파계적 행위로 일관하게 되는 모습은 우리 역시 나, 우리 자신의 관념이나 의식을 무너트리는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게 되면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는 이들이 존재함을 비꼬듯이 다산과 혜장의 논쟁에서 다산은 원효의 '화쟁'을 통해 달을 보아야 함을, 부처님께로 가는 길이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기 보다 부처님이 말한 진실인지 아닌지를 논쟁해야 함을 말하며 진리에 다다르는 주문을 요구하고 있다. 원효도, 다산도 어쩌면 껍데기로의 진리가 아닌 참된 진리에 대한 논쟁으로 시대를 바꿔놓고 싶어 한 인물들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이들을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배되는 인물이라 참수하거나 귀향보내는 일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더더욱 혼탁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이 마치 조선의 백성들이 겪는 힘겨운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 학연이 내민 편지에는 그간의 행위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어 원대 복귀를 함이 어떠하겠냐는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정약용은 같은 방식의 편지로 답하며 천하의 기준으로 그 일을 하는것이 진리이냐 아니냐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의 기준을 말하며 네가지 등급 중 마지막의 진리 아닌것을 추종하며 해를 입는것에 대한 우려를 말헤 주고 있어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의 좌표로 삼을 수도 있는 근거를 얻을 수도 있다. 다산의 저서 목민심서는 그러한 배경하에서 목민관들이 백성을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 서술한 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산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매우 직설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무언가를 가두어 두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 들에 사는 동물을 가두어 가축을 만들고 외간 여자를 가두어 아내라는 노예를 만들고 적으로 부터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백성을 성에 가두고 적당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파당을 만들고 그 파당 속에 자신을 가두고 주자학과 같은 사상에 자신을 가두며 산다고 했으며 자신 역시 자신을 다산 초당에 가두고 살았음을 명시한다. 저자 한승원은 다산의 도학적 사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자신 역시 그러한 삶으로의 지향을 바람직하게 판단하는 바 다산 정약용의 삶과 그의 행보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일이 그에게는 구도의 길과 같음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어 다산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오늘의 우리 삶에 비춰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네이버 카페 책을좋아하는사람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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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1을 비바람 보며 읽어낸 며칠 뒤 하늘이 맑다. 다시 동네 찻집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아 다산2을 마저 읽어냈다. 장편이라 두 권으로 나눈 것일뿐 다른 의미는 없는 듯. 다산2는 황사영백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라도 강진으로 기약없는 유배를 다시 떠나게 된 배경이 된 사건이다. 학교 다닐 때 천주교 박해. 황사영 백서. 이렇게 키워드만 줄곧 외웠던 기억이 난다. 다산은 한때 천주교(서학)에 귀의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당시 천주교인은 극형을 당하던 때라 적발되면 폐족이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다산은 그의 형 정약종과 달리 자신의 신앙을 유보하는 상소를 쓴다. 죽임은 겨우 면했지만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유배형을 받는다. 자산어보로 이름을 남긴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끝내 유명을 달리한다. 강진에 자리잡은 다산은 유학자로서 저술과 제자 훈육은 물론 불가의 인물과도 교유한다. 혜장 스님과 초의 스님이 그들이다. 근원을 탐구하는 그들은 각자가 신봉하는 유학과 불교(경)을 고집하지 않는다. 한승원 작가의 필치로 그려낸 그이들의 선문답 같은 차담을 엿듣고 보다 보면 2세기 전 강진의 어느 산자락에 가 있는 듯한 아련함에 잠기게 된다. 다산과 혜장, 초의 선사가 밤을 새워가며 논쟁-감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을 하는 광경을 그려보면 오늘날 행태에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다투는 수준을 뛰어넘는... 취한 듯 책장을 넘기다가 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바로 모르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국어사전이랑 포털 어학사전을 뒤져도 안나오는 낱말이 꽤 있었다. 편집자 주석이나 말미에 부록으로 단어풀이를 해 주는 배려가 아쉽긴 했다. 더해 한자 병기가 필요한 단어들...특히 조선시대 관직명이나 당시에만 사용했을 용어는 한글로만 표기되었을 때 그 뜻을 밝히 알기 어려웠다는 평범한 독자의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다산이 걸었던 인생 역정을 가야금 가락처럼 묵직하게 같이 걸을 수 있는 책 읽기였음에, 여운이 크다. *** *** 정약용은 생각했다. 불교인들의 '저절로(본연지성)'란 것이 사실은 저 거래와 대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유학 선비들이 천주교를 신앙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천명'에 따른 사업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다면, 스님들은 저 자기와의 거래와 대립을 참회라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다잡는다. (155쪽) 그녀가 거문고를 밀어놓고 다시 술을 따랐다. 둘이 다 취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일렁거리는 밤바다가 되어갔고, 그는 그 밤바다 여기저기를 밀행하고 있었다.(182쪽) 울고 또 울고 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꿈이 너무 허망하여, 그는 새삼스럽게 천장을 쳐다보면서 꿈에 본 형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었다.(2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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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승원 선생이다. 그는 수많은 역사적 산물을 남긴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한승원 선생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자취와 삶의 업적을 '다산 1, 2'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전달하고 있다. 정치사에서는 비일비재하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에게도 어둠의 그림자들이 곳곳에 드리워졌다. 정약용을 엮어 현실 정치에서 퇴출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을 반대파에서 꾸준히 움직였다. 그중에 황사영과의 엮음은 누구보다 뼈아픈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정약용은 눈을 힘주어 감은 채 속으로 오열했다" 오열할 수 밖에 없는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 저자의 글은 독자들에게 다산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한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의 시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그가 가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만 장수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갈 수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산 정약용에게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다산 선생도 용납하지 않았다. 오늘의 다산 정약용은 '선생'으로 존경하며 따르지만 당시에게 죄인으로 낭패와 고초를 당한 존재였다. 오늘의 정약용은 꿈과 희망을 주지만, 그날의 정약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와 손가락질을 받는 인물로 포장되었다. 그러기에 그를 오늘의 평가에서는 희생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희생양이며 정치적 제물이 된 다산 정약용을 다신 평가하며 글을 써 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저자의 글 "다산 1, 2"을 읽으면서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때로는 다산의 눈물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시한번 "다산 1, 2'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서평은 쓴다. 이 책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2권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시작된 다산의 유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황사영 백서사건을 이용해 정치의 희생양이 된 정약용은 경상도에서 이미 유배중이었지만 다시금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강진으로의 귀양은 다산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게 된다. 귀양살이가 뭐 그리 좋겠는가마는 허름한 주막이라도 몸을 눕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안락함은 있었다. 강진에서의 귀양살이가 그곳의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정약용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여전히 다산을 지켜보는 관청의 감시는 계속되었고, 보이지는 않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다산을 겨누고 있었다. 비록 기거하기에 누추하고 별 볼품은 없었지만,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기거하는 곳을 ‘사의재’라고 이름을 붙여서 기거했다. 이것은 '네 가지를 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이다. 이 네 가지는 생각, 용모, 말, 행동, 네 가지를 바로 하는 것이다. 다산은 이 네 가지를 늘 바로 하려고 ‘사의재’를 바라보면서 그곳에 기거하면서 늘 이 네 가지를 올바르게 지키려 노력했다. ![]() ![]()
다산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그를 수없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산은 힘들고 머리가 복잡하여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우이봉에 올랐다. 그곳에서 다산은 멀리 보이는 우이도의 형님과의 약속을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도 자신의 형님과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그 모진 삶을 견뎠던 것이다.
강진에서 정약용은 혜장과 초의라는 승려와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그들을 통해 자신의 학문의 폭을 더 넓히게 된다. 그리고 18년이라는 긴 유배를 끝에 마침내 돌아온 여유당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위대한 삶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산의 생애와 업적을 따라가면 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를 보았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시대를 읽고 그 시대 가운데 등대와 같이 그 시대를 비출 인물이 필요하다. 다산을 읽으면서 그런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왜 이 땅에는 나타나지 않는지..... 다산이 남긴 책과 그의 삶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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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약용은 천주학에 빠져 귀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많은 저서를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목민심서'를 통해 농사법을 개발하고 백성들을 위한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ㅈ고나니 학문을 즐겼던 정약용은 천주학을 학문으로 공부하고 잡학들 또한 섭렵했던 인물로 이해된다. 다산의 사상과 철학속에는 주자학과 천주학이 공존한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에서 가볍게 읽었던 다산 정약용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런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다산2권은 유명한 황사영 백서사건, 홍경래의 반란과 유배지에서의 심경이 잘 드러나있었다. 이 소설은 학자로서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깊이있게 다룬 역사소설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오랜 연구를 한 한승원 작가의 멋진 결과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반 제도를 개혁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던 시대를 앞서간 그의 사상과 철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산》을 읽고 나니 한승원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은 소설의 소재로서 매우 무겁고 방대하다. 선생의 삶과 정신을 새로이 해석하려고 애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내 속으로 선생을 들어오게 하여, 혼융 일체가 되어야 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다산》을 읽고나니 그의 저서《추사》와 《초의》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