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저자 이인우 파람북 2024-07-12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일본문화 여행 > 일본여행 > 문화/역사기행
근래 답답한 일들이 있다보니 마음 한 켠에 시원함을 불어넣고 싶어 여행과 관련된 책을 꽤 읽고 있는 중인데 차례차례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여행할 나라는 일본입니다. 2019년 중국 우한시에서 발병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전세계가 봉쇄되었었습니다. 당시 국내를 여행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시기였기에 여행업계는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19는 개발된 백신으로 인해 점차 수그러들었고 봉쇄되었던 나라들이 점차 해제되면서 이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해외여행객 수도 점차 증가하게 되었는데, 2023년은 특히 여행시장 회복의 해였습니다. 그 중 인기있던 나라는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기준으로 2023년에만 1,350만여명이 일본 노선을 이용하였는데 도쿄(나리타), 오사카, 후쿠오카 등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시즈오카, 마쓰야마 등 소도시 노선에도 연간 6만명 이상이 모였다고 합니다. 오사카 노선의 여객수는 381만명에 달했는데 이는 인천공항을 오고 간 노선 중 가장 많은 여객을 운송한 단일 노선으로 꼽힙니다. 두 번째는 도쿄(나리타) 노선, 세 번째는 후쿠오카 노선으로 단일 노선 여객수 톱3가 전부 일본 노선일 만큼 가장 인기있는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 오늘은 일본에서 특히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고 고풍스럽지만 탈역사적인 척하는 곳인 교토로 여행해보려고 합니다. 교토는 역사와 문화가 차곡차곡 쌓인 곳인만큼 하나의 인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기자이자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이기도한 저자는 천년고도의 곳곳을 답사했다고 합니다. 특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라고도 극찬하고 있지요. 책에서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교토의 명소들도 가득하지만 현지인들조차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숨겨진 명소 또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진 곳이다 보니 책을 통해 저자와 함께 하는 인문 기행이 마냥 새롭고 설레임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가쓰라리큐, 슈가쿠인리큐, 시센도, 겐닌지 등 교토의 볼거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교토의 예술문화가 담긴 8곳을 통해 교토의 풍경을 한껏 구경할 수 있습니다. 3부에서는 교토 산책길에서 빠지면 섭섭할 아름다운 교토 정원 12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4부에서는 교토의 시작점인 두 가모신사를 시작으로 교토의 신라신사들 즉, 신라인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5부에서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토의 인상적인 장소 즉, 한일 연대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 벚꽃이 예쁘게 피던 시기에 일본을 다녀온 친구가 여행을 마치고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선물 중 하나가 벚꽃을 연상케하는 한정판 입욕제였습니다. 특히 사진으로 마주한 일본의 벚꽃 풍경은 황홀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예쁘고 황홀한데 실제로 보면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겠지요. 교토의 벚꽃은 3월 말부터 4월 초순이 절정이라고 합니다. 교토 동쪽 히가시야마 산기슭 아래 데쓰가쿠노미치라고 불리는 산책로가 있는데 북쪽 끝에는 긴가쿠지가 있고 남쪽에는 에이칸도와 난젠지가 있습니다. 중간중간 호넨인 등 고찰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데, 이 명승지군을 하나로 꿰는 실이 철학의 길입니다. 일본의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국제적인 명소인 이 곳은 혼자 걷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고 합니다.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은 일본 근대철학계의 거두 니시다 기타로(1870~1945)가 명상하며 이 길을 걸은 데서 유래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면, 일본 교토엔 '철학의 길'이 있다는 식인데, 관광산업 측면에서는 신의 한 수 같은 작명이다. 사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길이 어디 이 길뿐이랴. …… 철학의 길 중간쯤에 니시다가 만년(69살)에 썼다는 하이쿠(일본 단시) 한 수가 새겨진 둥근 돌을 만난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나는 나의 길을 갈뿐이다." 니시다는 불교의 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일본 철학을 수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후학들은 비문에 "선생의 가르침이 철학의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애창되기를" 바라지만, 시구만을 보면, 왠지 모르게 고집 센 노철학자의 '절대고독'이 먼저 느껴진다. ![]() 일본어에서 정원은 고대에 식물채집지를 뜻하는 '니와'와 울타리 쳐진 경작지를 뜻하는 '소노'가 합쳐진 말로 니와와 소노가 집안으로 들어와 제사 장소가 되고 점차 유락과 예술적 관상의 장소로 변해간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 일본 정원들을 보면 특유의 분위기가 있죠. 이는 대륙에서 들어온 불교와 도교사상이 융합되어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선종사원에서는 돌과 모래를 주로 하는 가레산스이가 만들어졌고 권력층이 된 사무라이계급 사이에서는 호화로운 서원정원이 만들어졌죠. 부유한 중간계급으로 성장한 마치슈계층에서는 다도를 결합시켜 다정과 노지를 만들게 됩니다. 정치권력을 무사에게 빼앗긴 왕실은 귀족적 미의식을 투영시킨 궁정별장을 짓게 됩니다. 이러한 정원의 형태는 곧 서민들에게도 전해져 근대 이후에는 계층 상관없이 일본적인 생활건축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교토는 천년고도라는 말답게 보석 같은 정원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중 저자가 가본 12곳의 정원을 첨부해봅니다. 1. 도후쿠지 방장 핫소노니와 2. 히가시혼간지 쇼세이엔 3. 다이토쿠지 료겐인 4. 묘신지 타이조인 5. 난젠지 곤치인 6. 루리코인 7. 교토고쇼 8. 닌나지 교쇼정원 9. 만슈인 10. 쇼렌인 11. 짓소인 12. 다이고지 산보인 ![]() 해마다 교토에서는 '교토 코리아 페스티벌'이 펼쳐집니다. 펼쳐지는 행사 중 하나가 조선시대 일본방문 사절단인 조선통신사 재현 행진입니다. 2022년 9월 18일,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중단되었던 시기였지만 교토 국제교류회관을 출발한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은 오카자키공원 일대를 행진하게 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요? 나라 간의 관계는 나쁠지라도 사람 사이의 끈은 놓지 말자는 의지의 표현을 보인 것이라고 합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12차례를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조선 입장에서는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송환과 문화전수를 통한 일본의 침략욕구 억제가 목적이었고, 일본 입장에서는 대규모 조선사절단을 통해 막부의 권위를 높일 수 있어 200여 년간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끌려간 피로인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으며 귀국 교섭에 진력했었다고 합니다.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반까지 한일관계는 우호적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적대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1719년 조선사절단이 환송연을 거부하며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한 무덤때문이었습니다. 도요토미가 세운 절 앞에서 환송연을 열려고 했을 뿐 아니라 절 부근에 일본군이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이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3년 교토시가 정비한 이총의 안내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 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는 자성의 문구가 담긴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요토미 시데요시를 신으로 모신 도요쿠니 신사가 여전히 이총을 '전공'처럼 거느린 모습은 '용서하되 잊지 말자'는 말의 의미를 깊이 경계시키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역사적 사건 등의 이유로 유독 멀게 느껴지는 나라, 일본! 특히 5부에서 나오는 한일 연대 기록은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등장합니다. 교토 유명 명소들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역사 탐방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기에 인문, 예술사에 가까운 책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 세계에 초점을 맞춰 그간 읽어왔던 여행 에세이와는 달리 넓은 견문으로 일본과 일본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물론 그의 인문학적 해설과 역사 지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처음인 여행객은 물론 일본의 숨겨진 명소를 찾는 여행객들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과 하이킹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또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이방인들에게 추천합니다. ![]()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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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직 기자이자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인 이인우 저자의 교토 탐방기다. 1년간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교토 걷기가 진행됐다. 한번은 교토 속의 ‘일본’을 찾아서 한번은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서, 한 주씩 번갈아 떠난 것이 총 69회에 걸쳐 120여 곳에 달했다. 책은 5부로 되어 있으며 에필로그는 교토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작별인사를 바치는 필자의 소회로 대신했다.
교토 동쪽 히가시야마 산기슭 아래 ‘데쓰가쿠노미치’라고 불리는 산책로가 있다. 철학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가족, 친구와 함께 걷기도 좋지만, 나 홀로 걷는 것도 좋다고 한다. 철학의 길에는 교토라는 천년고도가 낳고 일궈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이 있다, 교토에서 이 길을 거닌다는 것은,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내면을 산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토에서는 많은 절이 문화유산급의 뛰어난 그림과 조각, 공예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다이토큐지, 쇼코쿠지, 난젠지 같은 절은 일반관람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소장목록을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초일류 미술관이다.
금각사와 은각사는 교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각각 금각과 은각 이름의 누각으로유명하다. 짧은 일정 속에 방문 인증샷이 필요하다면 금각을 배경으로 한 컷을 남기는 것과, 여유 있는 일정이라면 은각사를 천천히 거닐어보는 것이 어떨까. 교토의 랜드마크는 교토타워가 될 것 같다. 옛날 오사카와 나라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은 멀리 5층탑 꼭대기가 아스라이 보이면 ‘교토가 가까웠음’을 알았다고 한다.
교토 산책길에서 빠지면 섭섭할 이름난 교토의 정원 12선을 소개한다. 일본에 정원은 “만들 때까지가 4할, 이후 유지관리가 6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종의 현재진행형 예술행위로까지 높여진다. 루리코인은 교토 히에이잔 케이블카 야세역 앞에서 왼쪽으로 맑은 시내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야세 계곡은 고대부터 귀족과 무가 계급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사진에 담기 위해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찾아온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사가 중에는 신라의 연오랑세오녀 설화에서 실마리를 찾는 이들도 있다. 신라 동해물가에 연오랑 세오 부부가 살았는데, 연오가 바닷가에 나타난 바위에 실려 왜로 갔고, 남편을 찾아 세오 역시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그곳에서 왕이 돼 있던 연오와 재회하고 귀비로 추대됐다는 이야기다. 아득한 고대에 신라와 왜 양쪽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한 어떤 실화가 모티브가 됐을 것이다. 설화 후반부는 연오와 세오가 왜로 떠나자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신라 왕과 백성이 당황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해마다 교토에서는 조선시대 일본방문 사절단인 조선통신사 재현 행진이 ‘교토 코리아 페스티벌’의 하나로 펼쳐진다. 풍물패가 우리 민요와 농악으로 흥을 돋우는 가운데 쓰시마번사를 앞세운 사절단의 정사와 부사가 국서함을 받들고 오카자키공원 일대를 행진했다.
가미가모신사 근처 주택가에 ‘고려미술관’이 있다. 일본 역사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오직 한국 문화유산만을 소장 전시하는 뜻깊은 곳이다. 1988년 재일동포 사업가 정조문이 설립했다. 정조문이 수집한 고려청자, 조선백자, 회화, 민예품, 고대 유물 등 한국의 고미술품 1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지병을 앓던 정조문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여명을 갈아넣은 필생의 결실이라고 했다. 고려미술관 개관을 도운 일본인은 역사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시바료타로이다. 현재는 아들 정희두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교토에 살면서 윤동주기념비를 찾아보는 일은 일종의 ‘의무’에 해당했다. 가장 먼저 세워진 도시샤대학의 시비는 이미 ‘관광’ 명소로도 이름나 있다. 교토를 여행할 수 없지만 글로나마 정원도 거닐고 윤동주 시인의 삶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교토 트레킹을 꿈꾸는 여행자들의 가이드로도 제격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교토길위에저시간속에#이인우#파람북#인문#책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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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는 일본 교토부 남부에 위치, 794년부터 1869년까지 일본 수도였던 도시 교토에 대해 알려주는 인문 기행기 일본문화 여행책이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교토 명승지인 긴가쿠지(금각사), 가쓰라리큐(일본 황실정원) 등은 물론 현지인들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도시 곳곳의 숨은 관광 스폿들을 한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 철학과 함께 엮어 '일본인의 내면세계'를 깊게 탐구,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아득한 시간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
약 1,000년간 일본의 수도를 담당했던 도시, 교토- 책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의 저자는 이곳을 '굴곡이 많지 않은 거의 평지에다, 발에 채일 정도로 문화유산이 가득하고, 고대 한국인의 발자취가 짙게 밴 천년고도'로 더할 나위 없는 걷기의 천국이라 말한다. 한 번은 교토 속의 '일본'을 찾아, 한 번은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 도보로 답사하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익숙한 명승지는 물론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교토의 명소와 거리, 그리고 5~6세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과 한국 문화의 자취를 살펴보는 이 책은 관광만을 목적으로 한 가이드보다는 인문 문화기행의 교토 탐방기로 읽을수록 몰랐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의 조합으로 산수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가장 일본적인 정원인 '가레산스이'와 교토 절 특유의 '테이레(손질)' 수행으로 느끼는 일본의 정적 문화와 한국 채소 아욱과 일본 채소 아오이의 언어적 유사성과 문장으로 남은 문화 또한 인상 깊게 알아가고 배울 수 있었던 책-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의 역사적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아 갈 수 있을까. 타국의 길과 시간 속에서 더 알아가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된 이곳! 교토 트레킹을 꿈꾸는 여행자, 일본을 알아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읽어보길 권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후기입니다. https://blog.naver.com/lemontree17/223523467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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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책이 많다. 너무 많다보니 어쩔수없이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종종 나눔을 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 책들이 있다. 대체로 역사책 또는 역사기행문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책, 역사기행문을 다 이고지고 가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 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책들만 살아남아,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다. 내 취향에 맞는 역사책, 역사기행문은 대체로 한국사, 일본사, 한일관계사와 관련된 책이 많다. 특히 한일관계사는 고대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자타공인 역사더쿠 피로가 해외 답사를 주기적으로 다니게 했던 건 다름아닌 도래인과 한일고대사 유적지였으니까. 그런 내가 오랜만에 한일고대사 답사 여행기를 읽었다(엄밀히 따지면 이 책은 교토 전체를 답사하는 여행책임ㅋㅋ). 그리고 이 책은 남 주지말고, 끝까지 소장하자고 생각했다. 이 교토 여행책 제목은 『교토, 길 위에 저 시간속에』 다. 제목만 봐도 ‘일본 교토 여행기’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 여행기가 어떤 방식으로 쓰여졌는지는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다. 혹은 저자가 누구인지를 알거나. 본격 리뷰에 앞서, 이 교토 여행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살짝 귀뜸해보자면? 힌트 하나! 이 책의 저자는 현재 교토 리쓰메이칸 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 연구원이다. 힌트 둘 ! 이 책의 부제는 「교토,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 다. 그렇다. 이 책은 교토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문화적 시선으로, 역사적 시선으로 바라본 여행기이자 답사기다. 교토는 헤이죠쿄에서 헤이안쿄로 천도한 8세기부터, 19세기 도쿄로 이전하기 전까지 일본 수도였다. 무려 천 년 동안 일본 수도였던 장소이기에, 그 곳에 켜켜이 쌓인 역사는 하루 밤낮을 이야기해도 모자란다. 하지만 여기서 교토 천 년 역사 중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천 년 역사의 팔할이 한반도 도래인이 쌓아올린 역사라는 점이다. 아니, 교토의 시작 자체가 ‘도래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교토 여행지 중 관광지로 유명한 여러 사찰, 신사들은 한반도 도래인이 창건한 경우가 태반이다. 교토 여행 시 한 번 이상은 꼭 들른다는 후미시이나리타이샤, 기요미즈데라, 키타노 텐만구, 야사카 신사. 이 신사, 사찰을 창건한 사람이나 모시고 있는 신은 모두 한반도 도래인이거나, 도래인이 모셔온 한반도 신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도래인, 한일고대사 유적지 답사를 자주 다녔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해도, 일본을 연 2회씩 다녔다. 여행겸, 덕질겸, 답사겸 겸사겸사 말이다. 제일 자주 방문했던 곳은 아무래도 ‘교토’다. 일본 곳곳에 도래인 유적지가 산재하지만, 접근성이나 명성 등 교토에 있는 도래인 유적지가 여러모로 압도적이다. 그래서 더 교토를 자주 찾은 면도 있다. 이 책 4번째 챕터가 바로 교토 도래인에 대한 이야기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내용 자체는 알고 있는 내용들이 다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큰 테두리 안에서다. 세세한 내용 중에는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았기에, 더욱 집중하며 읽었다. 특히나 출산 이후 일본을 못 간지가 n년 째 되는지라, 더 집중한 면도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가봤던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소가 많이 변했음을 책을 통해 알게되서 조금은 씁쓸한 면도 있었다. 아래는 ‘도래인’과 관련한 주요 키워드다. 아오이(=아욱)
푸른 아욱 잎사귀는 가모족 신화에 등장한다. 신화에 따르면, 신을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은 ‘푸른 아오이 잎으로 몸을 장식하라’는 신탁이 있었다고 한다. 신이 강림한 신산에는 푸른 아오이가 무성했다고 하고,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에게는 푸른 아오이 잎이 ‘만남’의 매개가 되어주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에 근거해 아오이의 어원을 일본어의 ‘만나다’라는 뜻인 ‘아우’와 신령 또는 신의 힘을 뜻하는 ‘히’의 합성어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후손들의 신화적 해석일 뿐 한국어와의 유사성으로 볼 때 ‘아오이’는 토템화된 ‘아욱’ 그 자체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p 260 ‘아욱길’을 따라 열도에까지 이른 ‘도래인’들은 어떻게 ‘일본’이 되어갔을까. 아오이마쓰리 퍼레이드의 종착지인 가모신사의 문장은 ‘후타바아오이’. 두 장의 잎으로 묘사된 아오이 문양이다. 이 문장은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인 시모가모와 가미가모 두 신사의 친족 관계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저도 있다. 교토의 또 다른 도래인 호족이었던 신라계 하타씨 신사에도 이와 똑같은 문장이 있기 떄문이다. 가모씨와 하타씨는 혼인 등으로 유대를 맺고 고대 교토 일대를 양분해 다스린 호족이었다. 794년 간무덴노가 천도를 단행했을 때 배후에서 이를 지원한 세력이 이들이었다고 전해진다. 두 부족은 덴노가 교토로 옮겨운 뒤에는 황실 수호 신사를 자임했는데, 이런 내력으로 후타바아오이는 가모족의 내부 결합에서 나아가, 가모씨와 하타씨 두 부족 간의 단단한 동맹, 즉 ‘결합력’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개의 가모신사 자체가 애초 가모족과 이즈모족 동맹의 결실이기도 했다. p 262~263 교토를 가면 한 번 쯤은 꼭 거니는 가모강변. 가모강변 상류에는 두 개의 신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은 가모강변 상류까지 가지는 않는다. 아오이 마츠리가 개최하는 시기 빼고. 여튼! 가모강변 상류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두 개의 신사가 있는데, 바로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다. 이 두신사는 한반도 도래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사다. 뭐, 애초에 교토 일대를 일군 사람들이 한반도 도래인이다보니, 교토 내에서 천년 내력을 가진 신사와 사찰 중 도래인 연관성이 없는 곳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다. 도래인이 창건했거나, 혹은 그 후손이 창건했거나, 혹은 도래인의 비호를 받았던 사람들이 도래인(또는 그들이 모셔온 한반도 신)을 기리기 위해 창건했거나.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 내력을 보면, 아주 오랜 과거 초대 천황인 진무의 정복전쟁* 당시 큰 공을 세운 가모족이 공로로 받은 영지가 바로 가모강변 일대였다. 이후 이즈모족이 가모강변 일대로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두 부족은 영지 다툼없이 융합되어 살았다고 한다. 대충 혼인동맹으로 추정된다고나 할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가모족 수장의 이름과, 이즈모족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초대천황 진무는 일본 건국시기를 기원전 660년으로 설정하며 생겨난 허구 인물이다. 초대부터 9대까지는 시간상 끼워맞춘 인물이며, 이들 천황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서기』에도 크게 다루지 않는다. 물론 진무의 이야기를 지어냄에 있어서 일부 사실이 있을 수 있으나, 『일본서기』 특성 상 5%의 진실로 95%의 허구가 나왔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가모족 수장의 이름은 ‘야타가라스’. 우리 말로 하면 큰 까마귀다. ‘큰 까마귀’! 한국 고대신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다면, 바로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바로 ‘삼족오’다. 본디 삼족오는 태양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철기 기술을 지닌 부족이기도 하다. 따라서 삼족오(태양)을 숭상하는 부족은 대체로 철기기술을 바탕으로 농경을 하는 집단이다. 이즈모족 명칭도 우리말로 풀이하면 ‘떠나는 구름’이다. 즉 이즈모족도 구름이 떠나면, 떠오르는 태양을 섬기는 농경부족이었던 셈이다. 두 집단 모두 농경 부족이었기에 융합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타 씨(=진 씨) 대언천을 건설한 주체는 4세기 무렵 신라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온 도래인 집단 '하타‘ (한자로는 ‘진’을 쓴다)씨 일족이다. ‘하타’ 또는 ‘하다’ 라는 씨족명은 한국어 ‘바다‘ 에서 왔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파단국’에서 유래한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하타씨는 처음에는 교토 남쪽 나라현 가쓰라기 지방에서 살다가 도래계 주민들을 이끌고 야마시로 (지금의 교토) 남부 지역으로 이주한 뒤, 당시 황무지였던 이곳 대언천 개발에 성공했다. 하타씨들은 대언천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상업에도 진출, 7세기 초에는 대호족으로 성장했다. 아라시야마 일대는 물론 강 건너 동쪽의 사가노와 우즈마사, 교토 남쪽 후시미의 후카쿠사 등에서 대촌락을 이루었고, 마침내 야마시로 전체의 주인이 됐다. p 267 대호족으로 성장한 하타씨는 대언천 건너 동쪽 지역도 세력권에 넣었다. 마쓰오신사에서 동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우즈마사 라는 지역인데, 이름을 그대로 풀면 하타씨의 맏이 , 즉 큰집(장손집) 또는 ‘종갓집'을 의미한다. 하타씨의 씨족명이 그대로 동네 이름이 된 셈이다. 우즈마사와 인근 사가노 일대에는 하타씨족의 것으로 인정된 고분이 즐비하다. 그중 특히 우즈마사 주택가에 돌무지로 남아 있는 헤비즈카 고분이 유명하다. 전장 70여 m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이 전방후원분 유적은 하타노 카와카쓰축 (생몰년 미상)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것으로 추정된다. 하타씨족의 수장이던 하타노 카와카쓰는 유명한 고류지는 절을 지은 사람으로, 7세기 초 일본의 통치자 쇼토쿠 태자의 정치 고문이기도 했다. p 270 이 책 리뷰를 하면서 과거에 내가 포스팅 했던 도래인 유적지 답사 및 역사책 리뷰를 다시 봤는데, 당시 나는 옛 강원도 울진 땅에 있던 ‘파단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하타 씨’가 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표현했더랬다. 정확히는 신라장군 이사부가 파단국을 점령하던 그 때, 신라에 복속되기를 거부하고 일본으로 갔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하타 씨’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파단’을 일본어로 읽으면 ‘하타’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왠걸! 현재 한일고대사에선 ‘파단국’ 사람들이 일본 ‘하타 씨’가 된 게 정설이라고 본다고 하니, 내 나름대로 잘 추론한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즈마사에 있는 하타씨가 세운 가이코노 야시로 신사 산쥬도리이와 대마도 와타즈미 신사 산쥬도리이와 연관성에 대해서도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뜬금없이 왜 산쥬도리이 이야기인가 하면, 일본 신사는 기본적으로 금문(?) 역할을 하는 도리이가 세워져 있다. 보통 도리이는 기둥이 두 개인데, 교토 우즈마사에 있는 하타 씨 신사에 기둥이 세 개인 도리이가 있다(일명 산쥬도리이).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대마도 와타즈미 신사에도 산쥬도리이가 있다. 와타즈미 신사에 있는 산쥬도리이는 용왕신 이야기라, 언뜻 보기엔 하타 씨와 큰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이게 또 아예 연관이 없다고 하기엔 좀 꽁기꽁기 하다. 일단 대마도가 한반도와 제일 가까운 지역이자, 도래인들이 넘어갈 때 경유지가 되는 지역이기도 하고 말이다. 너럭바위배 (핏, 연오랑 세오녀 설화) 일본황실이 시조로 여기는 진무덴노가 정복전쟁(어디까지나 가공의 역사이다)을 벌일 때. “진무의 어머니 다마요리 히메가 오사카만에서 요도가와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사당을 지었고, 그때 타고 온 배를 사람들이 들로 덮어 놓은 것”이란 전설이 ‘황실 버전’이다. 두 번째는 유사한 내용에 주인공이 진무의 어머니에서 가모신사 제신 의 어머니(다마요리 히메라는 이름은 똑같다)로 바뀐 ‘신토 버전’ 이다.p 281 그런데 묘하게도 기후네신사의 중궁은 끊어진 인연을 다시 맺어주는 결연의 신사로 이름이 높다. 고대의 여류시인 이즈미 시키부가 기후네신사를 찾아와 냉담해진 남편의 마음이 돌아오길 빌어 소원을 이룬데서 유래했다는데, 고대의 이 지식인 여성은 무슨 '전승'에 근거하여 이 깊은 산속 신사에까지 와서 재회의 소망을 빌게 됐을까? p282 우리나라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연관성이 있는 너럭바위 배 전승. 나는 너럭바위배 전승이 시마네현에 있는 카라카마 신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교토 키후네 신사에도 있었다. 물론 카라카마 신사 너럭바위와 키후네 신사 너럭바위에 얽힌 내용은 조금, 아니 상이하긴 하다. 오히려 연오랑 세오녀와 연관성은 교토 기후네 신사보다는 시마네현 카라카마 신사가 훨씬 높다고 해야할까? 물론 세오녀가 일본에서 연오랑을 만난 뒤 ‘귀비’에 추대되었다는 점과 ‘기후네’ 신사 명칭의 연관성, 그리고 연오랑과 세오녀의 끊어진 인연이 일본에서 다시 이어졌다는 점과, 기후네 신사가 끊어진 인연을 연결해주는 신사라는 연관성을 보았을 때, 확실히 기후네 신사에 얽힌 전승이 연오랑 세오녀 전승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현제 기후네 신사에서 내려오는 전승은 누가봐도 일본 황실 주도하에 변형된 전승이고. 연오랑, 세오녀, 너럭바위 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마네현 카라카마 신사에 얽힌 전승(일본 건국신 스사노오 전승) 살짝 해볼까 한다. 물론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 건국신 스사노오는 신라국 소시모리라 불리우는 곳에서,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넘어온 신이다. 스사노오가 탄 바위배가 카라카마 신사에 남아있다(①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연오랑). 이 외에도 스사노오 일화 중 야마타노 오로치 퇴치 설화에 ‘가라쿠니(韓國)마루’라는 칼을 사용한다. 이는 가라쿠니에서 만든 칼이라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②철기문화를 지니고 있던 집단으로 대표되는 연오랑/현재 ‘포항’은 제철소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시마네현에는 스사노오를 주신으로 모시는 히노미사키 신사가 있는데, 이 신사 권내에 작은 신사가 남아있다. 실제로는 이 작은 신사가 히노미사키 신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작은 신사에는 ‘가라쿠니(韓國)신사’라고 적혀있다.(③한반도 도래인 ‘연오랑’이, 한반도 신을 위해 만든 사당) 또한 시마네현에는 ‘니시코리’라는 도래인 성씨 집성촌이 있는데, 이 성씨의 한자를 풀이하면 ‘비단을 짜는 집단’이라는 뜻이다(④직조기술을 지닌 집단이 ‘세오녀’를 대표하여 일본으로 들어옴). 이 외에도 『이즈모 풍토기』에서 나오는 ‘쿠니비키’ 일화, 시마네현 ‘고진다니 유적’등 스사노오와 ‘연오랑 세오녀 설화’ 연관성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간무 천황 2001년 당시 일본 아키히토 덴노가 68살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덴노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 이라고 역사(속일본기)에 기록된 사실에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이 발언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충격적 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발설해서는 안되는 일종의 '금기'를 덴노 자신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히라노 신사는 아키히토 덴노가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한 간무덴노의 어머니 다카노노 니가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신사이다. p 288 적자인 이복동생을 제치고 44살에 어렵게 즉위한 간무는 정통성 강화를 위해 왕권신수설을 내세웠다. 기존의 일본 태양신(먼저 열도에 들어온 가야, 신라계 태양신앙)에 대륙(고구려, 백제) 태양신을 더해 자신을 하늘이 내린 덴노로 포장하고 싶었다. 황태후 추존문은 그런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기록은 8세기 일본에도 고구려 난생신화가 전해진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무척 흥미롭다. 이처럼 간무와 니가사는 자신들의 혈통, 즉 고구려에서 백제로 이어진 도래계 계보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간무 집권 뒤 정치는 간무 옹립을 주도한 후지와라 가문과 백제, 고구려 출신의 도래계가 주도했다. 대신 등 고위직을 뜻하는 '의정관' 5명이 고구려와 백제계였던 사례는 이때 말고는 없다고 한다.p 294 간무 덴노, 그의 어머니 다카노노 니가사(고야 신립), 간무 집권 시 도래계 고위직 등 이런 이런 이야기는 포스팅을 워낙 자주 했으니 생략...하지만, 여기서 자주 반복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 하나를 말하자면. 간무덴노 당시 일본 최초 정이대장군(쇼균)이 발탁되었다. 그의 이름은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그가 발원하여 창건한 사찰이 있으니 바로 교토 최대 관광지 기요미즈데라(청수다)다. 기요미즈데라 경내에 있는 ‘전촌당’에 다무라마로 부부상이 모셔져있다. 물론 비공개라는게 함정. 여기서 중요한건, 바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본인. 일본 최초 쇼군이었던 다무라마로는 백제계 도래인 후손이다. 책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어서, 후술하자면. 일본 사서 『속군서류종』에 따르면 다무라마로의 조상은 백제 왕족인 ‘아지사주(=아치노오미)’다. 특히 ‘아지사주’는 야마토 아야씨의 조상이기도 하다. 참고로 야마토 아야씨는, 5세기 야마토 정권 당시 무력(군사력)을 쥐고 있던 도래인 집단이었다. 그들의 후예인 다무라마로가 일본 최초 쇼군에 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여기서 조금 더더더 덧붙이자면, 교토가 수도가 되기 이전부터 야마토, 아스카, 나라시대 모두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 황실 외척 및 주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동안 한일고대사책을 멀리했었는데, 이 책 덕분에 꺼져가던 지식의 불씨를 살렸다. 이제 다시 한일고대사 책을 읽어보기로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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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지금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일본 여행을 권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졌지만, 나의 두 다리는 이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시 일을 내려놓고 허망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는 지금도. 여행은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어쩌면 둘 다 있어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내겐 그저 벅찬 무언가가 되어버린 듯하다. 아쉬움은 책으로 대신 달랜다. 정작 여행을 한다면 놓칠 많은 것들을 타인의 성실한 기록을 보듬음으로써 내 것으로 만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로지 간접 경험에만 머무르는 비겁함을 정당화하며 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았다. 가보지 않은 나라이므로 아는 바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여행을 할 때 선호하는 도시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살짝 접한 바 있을 따름이다. 책은 가벼이 교토의 역사를 살피는 것으로 출발했다. 저자는 기원전 3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도시의 원류를 찾으려 들었다. 농업기술을 갖춘 이들이 출몰하기 전까지 이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다. 거처를 옮겨온 이들 중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건너온 경우도 다수였다. 대륙 문화의 이식에서 차츰 벗어나 일본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꽃 피우기 시작했을 무렵, 교토로 낙점 받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가 가속화 되는 과정에서 도쿄에 수도의 지위를 물려주었으니,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토는 일본의 중심이었다. 이와 같은 흐름을 알지 못할지라도, 책을 읽으면서 유독 눈에 들어온 단어는 ‘도래인’이었다. 문명은 대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일본의 많은 것은 우리로부터 비롯됐다. 이는 우리에게도 성립해, 우리 또한 중국 대륙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껄끄러운 한일 양국의 관계가 역사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을 방해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도 하나, 유독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큼은 숨기려 안간힘을 쓴 데에는 오늘날의 역사 인식도 꽤 반영됐을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마냥, 저자가 소개한 장소들로부터 우리의 것과 닮은꼴을 발견하려 드는 나의 태도가 어쩌면 뒤틀린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고여 있기만 한 물은 썩는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첫 단추는 남이 끼워줬더라도 이후 과정에는 자신만의 색채를 입히기 마련이다. 도래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든 경우도 물론 존재했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본만의 무언가가 덧칠해졌다. 고로 일본의 것을 우리 것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혹은 낙후됐다며 얕잡아 보는 건 그릇됐다 할 수 있다. 뿌리를 부인한 채 오로지 줄기의 굵기만을 키우려 드는 어리석음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 옳지가 않다. 실체는 하나인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반된 시선이 더해지면서 정체성에는 혼돈이 가중된다. 교토의 많은 문명이 그런 상태인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난 정치적인 이슈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편히 읽혔다. 그 중 가쓰라리큐와 가레산스이를 다룬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가쓰라리큐는 무려 2만여 평의 대지를 자랑하지만 황실의 소유물인지라 출입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시골 농가 풍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별개로 연못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짙은 푸른빛을 뽐냈다. 자연석과 인공석을 오묘하게 배합한 돌판길이 풍기는 고급스러움은 시골과는 전혀 아니 어울렸다. 가레산스이는 보자마자 ‘이것이 정원인가’ 의문이 들었다. 건물의 가운데 공간, 이른바 중정이 정원을 대체하는 형태였는데, 이끼가 뒤덮인 돌이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바람이 불어도 모래 연못은 일렁임을 모를 것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나 또한 흔들림 없이 버티어야겠다는 다짐을 부르는 정원이라고 보아야 할까. ‘가장 일본적’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얼지, 나로서는 궁금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윤동주 시인을 소환했다. 몇 달만 더 버텼더라면 조국의 광복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고향 용정으로 되돌아가거나, 일본 혹은 제3 국에서 학업을 이어갔거나. 시인에게 다른 삶을 허락지 못한 시대로부터 벗어남이 필요하다는 고요하고도 묵직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교도의 많은 역사는 우리나라나 일본,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을 때 제대로 읽힌다. 왠지 이 도시가 마음에 든다. 교토를 대하는 모두의 시선이 부드러워지는 때를 기다려본다. 우노로평화기념관이, 오색팔중산춘으로 불리는 쓰바키데라의 동백이 머금은 따스한 기운이 모두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때를. |
나는 코로나 이전에 일본 여행을자주 갔었으며 이후에는 여행에세이를 통해 일본의 곳곳을 만나고 있다. 일본문화 속 한국의 이야기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 에세이 책은 딱 그런 책이었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책은 인문학 책 추천으로 교토 가이드북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책을 통해 사진과 글로 떠나는 독서여행을 참 좋아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그 나라에 푹 빠져서 랜선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파람북에서 신간도서로 나온 '에세이 추천' 책으로 만난 여행책. 요즘은 코로나가 풀리면서 많은 사람이 일본을 찾고 있고 다양한 일본 여행으로 힐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책에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토의 볼거리를 시작으로 관광지로 유명한 곳곳을 보여주고 사진을 담아주어 한참을 보면서 읽을 수 있는 포토 에세이 책이다. 특히 마지막에는 교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일 우호의 기록이 담겨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내가 몰랐던 교토를 책을 통해 알아가니 빠져서 읽게 되었던 일본 문화 책. 나는 일본 여행을 할 때 오사카를 먼저 생각하였는데 교토 여행을 꿈꾸게 했던 여행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또한 이인우 작가가 직접 찍어 온 사진들은 책을 보는 내내 힐링이었다. 명소와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역사와 의미가 있는 장소들을 인문학적 해설을 담아내 관광 여행책이 아닌 인문 기행기로 교토를 알아가면서 그 속에서 한국의 이야기를 읽게 되어 좋았다. 에필로그로 만나는 윤동주 시인의 '동주를 기리며'는 슬픔이 담겨있다. 인문학 도서이자 역사책 추천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책을 통해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세한 책사진과 글&영상은 블로그에서 확인가능합니다.)<글과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은 내가 몰랐던 역사와 내가 알고 있던 장소의 내면으로 안내한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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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릴스나 숏츠 등에서 교토 문화에 대한 짧은 영상이 자주 나오기도 해서 관심이 가는 지역이었는데, 마침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라는 책을 발견해서 독서를 시작했다. 저자 이인우는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이제는 정년을 맞이했으며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언어와 문명에 대해 연구 중이다. 도쿄가 수도가 되기 전, 천 년이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전통적인 도시이다보니 워낙 교양 있고 프라이드가 높은 곳이란 알고 있었는데,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가 가득한 곳이었단 걸 새삼스레 되새길 수 있었다. 이름난 절과 명소 그리고 당시 시대의 품격을 담아낸 정원 12곳까지, 일본의 미감이 잘 드러나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가치가 뛰어난 여러 문화재들 그리고 여전히 교토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 문화와 교류했던 흔적과 가슴 아픈 조선 역사의 일부까지 함께 살펴 볼 수 있는 점이 제일 좋았던 부분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신라와 백제, 고구려, 조선통신사를 통해 활발하게 전파된 한국 전통의 문화적 양식에 대해서도 볼 수 있고, 우익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운 윤동주 기념비에 대해서도 언급되니 한국적인 일본 기행기라는 카피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하니 만약 교토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일반 여행서와 달리 역사와 함께 해당 지역을 살펴 볼 수 있어 훨씬 심도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의 탐미주의와 한국의 미학의 정수로 농축된 교토 가이드북, 무척 추천한다! |
![]() 정년을 마친 전 신문기자 이인우 저자의 역사 문화 답사기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2022년부터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생활하며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 역사와 문화를 산책한 저자가 교토의 매력을 전하는 책입니다. 교토를 걸으며 교토 속의 일본,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 120여 곳을 다녔다는 이인우 저자. 일본적 미학의 정수는 물론이고 한반도와의 연결고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교토는 메이지유신으로 도쿄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습니다. <교토, 길 위의 저 시간 속에> 제목의 길과 시간은 문명과 역사를 상징한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토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철학을 탐구하며 독자들을 일본인의 내면으로 안내합니다.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토의 절과 신사, 명소를 저자의 관점을 담아 소개합니다. ![]() 금각사와 은각사, 그리고 철학의 길 등 익숙한 장소들이 등장합니다. 저자는 그 속에 숨겨진 일본적 미학의 정수를 깊이 파헤칩니다. 금각사는 화려한 외관으로 일본의 권력과 부를 나타내는 반면, 은각사는 검소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일본인의 내면을 표현하며, 일본의 두 얼굴을 상징합니다. 교토의 예술 문화를 있게 한 물적 기반들도 소개됩니다. 장사꾼들의 거리와 신사, 막노동꾼과 거리의 예인들이 활보하던 강변이 그 무대입니다. 교토의 상공업자와 민중의 생활을 조명하며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삶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화보처럼 보여주는 교토명정순례에서는 이름난 교토의 정원 12곳을 선보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교토의 정원 속에서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철학을 발견합니다. ![]() 그런데 교토가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도시라는 건 생각 못했는데요. 교토를 한국사적인 외국 도시라고 일컫는 저자는 고대 신화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 나섭니다. 교토에서 또 하나의 한국 역사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교토 건설과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한반도 도래인들의 흔적을 추적합니다. 도래인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일본의 초기 역사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교토에는 신라계는 물론 백제계, 고구려계로 분류할 수 있는 신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신사들을 돌아보며 사라져 가는 한반도 이주인들의 흔적을 세심하게 살핍니다. 더불어 고려미술관의 건립자 정조문, 자이니치(재일교포) 철거민의 투쟁과 승리를 다룬 우토로기념관 이야기처럼 단순한 관광 이상의 깊은 감동을 만끽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일본의 미학과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교토의 정밀한 구도와 상징성, 그 속에 담긴 일본인의 내면을 엿봅니다. 일본 문화를 이해하고 교토와 한일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 교토. 이 교차로를 걸어보세요. 교토 n차 방문을 계획하는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장소들이 가득합니다. #도서협찬 #교토길위에저시간속에 #교토여행기 #인문기행 #여행에세이 #이인우 #파람북 #인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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