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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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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내가 40대의 나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40대의 나는 60대나 70대가 된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이렇게 늙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늙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마음, 딸은 여왕처럼 살기를 바라면서 며느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어머니들의 마음도 아직은 잘 모른다. 비단 그런 마음뿐일까? 같이 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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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내가 40대의 나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40대의 나는 60대나 70대가 된 나를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이렇게 늙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늙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마음, 딸은 여왕처럼 살기를 바라면서 며느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어머니들의 마음도 아직은 잘 모른다. 비단 그런 마음뿐일까? 같이 늙어가는 내 또래 여자의 인생. 그 인생 앞에 시샘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나보다 15년에서 20년 더 나이 먹은 여자의 인생은 답답하면서도 쓸쓸하다. 그들에게 인생은 어떤 색깔이었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뭔가를 알게 되었을 때의 서글픔까지. 조금 일찍 노년(?)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훗날 내 삶이 될지 모를 그 삶의 색깔 앞에 숙연해지는 건 나뿐 일까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나이 먹은 여성의 고독이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콩쥐 마리아는 한인 이주 이민 백 주년을 맞이해 떠들썩한 이주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 두 할머니는 소외되었다. 양색시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을 미국에 오도록 주선한 할머니들이지만 이민자들은 그 양색시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미움 뒤에 숨다는 제왕같이 살았던 아버지의 자살을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엔 아버지가 없어지기를 바랬던 아내와 자식들.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자살하자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언니를 놓치다는 어린 나이에 자신을 놓고 북으로 간 언니의 한마디 말에 여태껏 살아온 동생의 이야기다. 오랜 시간 기다린 언니는 북 체제의 찬양을 일삼는다. 하지만 동생은 언니의 미안하다는 듣고 싶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언니와의 만남. 증오가 결국 그리움이었다는 걸 늦게 알게 되었다. 박제된 슬픔은 월북한 외삼촌이 간첩으로 남에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간첩으로 신고해야했지만 하지 않았던 가족은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 간첩 끄나풀이라는 이유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던 가족의 서글픈 이야기.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는 한 맺힌 순영 엄마의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다. 동네 부녀자들을 마구잡이로 겁탈하는 전직 경찰 에게 당하게 된 순영엄마. 그 상처를 남편은 외면하고 순영엄마는 자살한다. 순영엄마가 죽고 남편은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려 고군분투하게 된다. 고독의 해자는 소설가 아내이자 엄마의 이야기다. 가정에는 무심했던 소설가 아내가 죽고 그녀의 장례식에 모인 남편과 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삶을 살다간 그녀의 삶이 조금은 아프다. 이별은 나의 것은 이혼한 소설가 아내의 이야기다. 전남편의 재혼을 앞둔 여자는 묘하게 마음이 우울하고 아프다. 이후 조금은 담담해진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건너편 섬은 서른 즈음에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운 여자의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자된 여자에게 거침없는 성적 폭행을 한 남자들. 아들은 성공했고 돈도 있지만 혼자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과 똑같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파출부 일을 하며 위안 받는 여자는 많은 사람들 안의 섬이 아닐까 

 

조금은 다르고 조금은 먼(?)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쪽에 가족이 있지 않은 나에게는 이념적인 부분은 무시할 수 있겠지만 혼자된 여자의 심리는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설가로는 인정받았던 엄마이자 아내. 하지만 그 아내를 엄마를 남편이나 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만들고 공감하는 글을 쓰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이 아프다. 엄마라는 자리, 아내의 자리를 무시하며 사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모양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덜 외롭지 않았을까? 나도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이나 며느리로 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어 늘 긴장하지만 그 삶 안에 내 삶도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의 누구라는 삶보다는 내 삶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다가오니까.

 

이만큼 살다보니 삶의 가중치는 늘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가중치를 더 둘 수 있지만 조만간 내 삶의 가중치가 제일 높으리라 나는 믿는다. 가중치가 높아질 시점에 뭘 할까 고민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졌다. 이경자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 것 같은데... 중년 여성의 심리를 너무 잘 표현해서 참 좋았다. 기회가 되면 이 작가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4.12.03.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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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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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들이 눈길을 끄는 단편집을 읽었다. 8편의 짧은 이야기에서는 편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작가의 연륜이 생의 거친 모서리를 다 닦아내서 어디 한군데 모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주인공이 할머니들이어서 그런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은 있어도 집착이나 아집이 보이지 않아서 더 읽기에 편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있어서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
"노년이 아름다운 이유" 내용보기

소제목들이 눈길을 끄는 단편집을 읽었다. 8편의 짧은 이야기에서는 편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작가의 연륜이 생의 거친 모서리를 다 닦아내서 어디 한군데 모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주인공이 할머니들이어서 그런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은 있어도 집착이나 아집이 보이지 않아서 더 읽기에 편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있어서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미용실이나 찜질방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야기들이 거창하기보다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친근한 내용들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가족들, 그 중에서 특히 남편.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분단 상황을 그릴 때에도 이데올로기에 매달리기 보다는 이데올로기라는 괴물 때문에 해체되고 만신창이 된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감정이입이 더 잘되기도 했다.

 

내가 콩쥐 마리아의 금순이라면 필요할 때만 손을 내밀고, 좋은 일에는 배재해버리는 가족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가장 잘 이해해줘야 할 가족들이 오히려 남보다 못한 행동을 보여줄 때면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자신을 묶는 밧줄일 뿐이다. 그러나 착취당하기만 했던 금순도 나이가 들자 콩쥐처럼 답답하리만큼 참고 지내지 만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친한 할머니에게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받고, 그동안 맺힌 한을 스스로 풀어내 가는 모습에서 지혜로운 노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정치적인 명분보다 더 앞서야하는 것이 이산가족상봉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억지로 갈라 놓은지도 50년이 훨씬 넘은 지금, 그들의 맺힌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의 뜻에 달렸다. 헤어질 때 12살의 명희와 17세였던 세희도 이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상봉을 얼떨결에 마친 뒤에, 자신들의 마음을 제대로 풀어놓지 못한 채 다시 맞이하게 된 이별 앞에서 절규한다. 이런 자매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은 혈육은 만나고 살아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국가 구조다.

 

파면당한 김순경에게 겁탈 당한 뒤 자살한 순영엄마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준 것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남편의 참회의 눈물이었다. ‘파면당한 경찰조차도 쥐꼬리만 한 공권력을 휘둘러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는 억울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지 더듬어 생각해보니 울컥,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다.

 

뒤에 나오는 고독의 해자이별은 나의 것>, 그리고 미움 뒤에 숨다는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조금씩 들어있는 내용으로 읽었다. 특히 고독의 해자는 평생 소설가로 살아온 어머니와 아내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가족들이 무덤 앞에 와서야 자신들의 이기심이 어머니의 외로움을 만들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남녀차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정작 남성작가라면 이렇게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았을까 싶다. 소설가이기보다는 아내와 엄마의 자리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을 등 뒤에 두고 평생 소설만 파고드는 여류소설가의 무거운 삶이 작가와 동일시되었다. <이별은 나의 것은 전 남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혼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이다. 남편과 맺어졌던 시집의 모든 인연들이 이제 남편의 재혼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이혼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부부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면 고르게 좋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정성껏 차려놓은 시골밥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은 세월이 가르쳐준 지혜 덕분인지 더 이상 억울해하거나 힘겨워하지 않는다. 대신 참고만 있지도 않는다. 할 말은 할 줄 알고, 만나야 할 사람은 금강산에 가서라도 만나고, 남편의 죽음을 자신이 유리한 대로 해석할 줄도 아는 의뭉함도 가졌다.

젊음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발랄함과 역동성이 무기라면 노후는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젊음이 갈등으로 자라는 거라면 노후는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를 살펴야하는 나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지혜를 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노인의 모습을 보면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나 역시 조금씩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이 소설집에서 나는 그런 노년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마음이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것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 그게 자식이든 이웃이든, 모르는 남자이든......언제나 같았다(......)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문득 깊은 기쁨을 맛보는 일은, 그 여자만의 것이었다.

 

소설집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는다. 결국 우리가 잡아야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우리 자신인 것이다 

 

 

 

 

 

 

t******e 2014.08.22.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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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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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게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가 커 보이지만 나 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때가 있다. 이경자 작가의 '건너편 섬'은 외로움, 고독, 슬픔, 아픔이 가슴 속 깊은 속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단편소설이다. 책표지에 나온 이경자 작가의 사진을 보며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정작 저자의 책은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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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게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가 커 보이지만 나 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때가 있다. 이경자 작가의 '건너편 섬'은 외로움, 고독, 슬픔, 아픔이 가슴 속 깊은 속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단편소설이다. 책표지에 나온 이경자 작가의 사진을 보며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정작 저자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낯설지 않은 느낌의 이야기란 생각이 든 '콩쥐 마리아'...'콩쥐'란 우리의 전래동화 속 인물의 모습을 가진 마리아...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다. 미국이란 땅에 살면서 지금은 가족들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 놓여 있는 마리아란 여자의 이야기는 솔직히 드라마 속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인물이다. 한인 미주 이민 백 년을 기념하는 기획 프로그램에 한 많은 여인 마리아가 있다.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나 자신을 희생하여 혈육들을 뒷바라지 한다. 결혼을 했지만 속아서 했기에 결혼 3개월 만에 도망치듯 나왔다. 허나 그녀의 뱃속에는 이미 생명의 씨가 존재했다. 두고 온 자식을 가슴에 간직하고 홀로 미국 땅에 와서 많은 일가친척을 불러 들였지만 정작 그녀에 대한 고마움은 외면한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던 오빠들의 뻔 한 대사는 솔직히 내 일이 아닌데도 속도 상하고 화가 난다. 그들이 자리 잡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뒤에는 양공주로서 험난한 인생을 산 누이 마리아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누이를 창피하게 여길 뿐이라니... 한 많은 자신의 인생을 이제야 털어 놓는 그녀의 가슴 속 슬픔, 아픔이 온전히 느껴지며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는 할머니 역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짠해 진다.

 

세상에는 참으로 뻔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새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은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다. 사는 것은 어렵지만 사이좋은 부부에게 갑자기 닥힌 불행... 이 불행은 전직 경찰이란 성폭행범에 의해 깨지고 만다. 사랑이 크면 진실과 마주할 때 고통스러울 수 있다. 마음은 안 그렇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한 남편... 그로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된 남자의 처절한 싸움... 뻔뻔하고 악질적인 인물의 모습에 뉴스를 통해 종종 만나는 파렴치한 인물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외로운 감정을 온전히 글로만 표현할 줄 알았던 여자의 이야기 '고독의 해자'... 소설을 쓰는 여자란 것에 끌려서 마음을 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모습 속에서 낯설음을 느낀 남자는 결혼 10년 만에 자식까지 두고 떠난다. 두 딸은 어머니의 정 보다는 소설가로서의 차가운 모습이 각인되어 서운함을 가지고 성장한다. 자식을 낳고 어머니가 되었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던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아내를 만나고 자신이 아내를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남편과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딸들의 모습을 통해 소설가란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직업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단편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슬프고 서늘한 감정들이 몰려온다. 살면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전세대의 여자들의 삶의 모습은 안타까운 모습들뿐이라 마음이 아프다. 여자의 외로움, 고독을 들여다 보고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q******5 2014.08.30.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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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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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씨의《건너편 섬》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으로 싸한 찬바람이 들어왔다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내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책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동조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건만 무더운 여름철이 지금 왜 그리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지.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갖은 험한 일을 해 집안과 오라비들을 가르치고 먹여살려온 여자, 그런데 그 가족들은 고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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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씨의《건너편 섬》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으로 싸한 찬바람이 들어왔다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내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책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동조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건만 무더운 여름철이 지금 왜 그리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지.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갖은 험한 일을 해 집안과 오라비들을 가르치고 먹여살려온 여자, 그런데 그 가족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기보다 그녀가 가졌던 직업을 부끄러워하며 떨쳐 버리려 노력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없는 듯 몰래 숨어살던 그녀에게 성공해서 잘 살고 있던 오라비가 갑자기 전화한 이유는? 콩쥐 마리아

 

'콩쥐 마리아'의 삶속에서 내가 읽어낸 것은 6~70년대 가족을 위해 공장으로 남의 집 식모로 가야했던 그 시절의 여자들의 슬픈 삶이었다. 콩쥐 마리아 또한 다른 여자들이 그러했듯 그 길을 거쳐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가족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양공주가 된 여자다. 그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희생을 밑바침으로 대학을 다니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된 오라비나 남동생들은 그녀들에게 침을 뱉으며 모른 척 하길 강요하지 않았을까?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단 둘만이 남은 자매, 그 중 언니가 여동생을 남기고 북으로 떠나버렸고 세월이 흘러 그들은 상봉하게 된다. 그들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난 다시 수많은 '이산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야기를 이야기로 끝내지 못하고 현실과 연계시키려는 것이지?

 

남의 불행으로 남의 불행을 감춘다고 했던가? 타인의 불행을 읽으면서 나의 불행이 그보다 적음을 감사하게 되는 것은 이 책을 읽어 본 독자라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콩쥐 마리아'의 삶을 들으며 내가 그녀처럼 세상 끝으로 몰리지 않았음에 감사하게 되고 '언니를 놓치다'를 읽으면서 우리 집에는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없음을 감사하게 된다. '미주 이민 백 년'이란 슬로건 아래에는 어디에도 자신의 비극적 삶을 내비칠수 없는 슬픔을 가진 '콩쥐 마리아'의 삶도 포함되어져 있을까? 그녀이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민왔다는 일가친척을 포함한 백수십명의 가족들, 그들 가운데 콩쥐마리아가 자신의 가족이자 친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사람들 사이에도 섬은 존재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도 그 안에서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은 존재한다. 살아서 가족들을 괴롭히던 아버지가 자살을 선택하면서 다시 가족들을 괴로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책은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날이 다가오며 엄마와 딸의 불편하고 괴로운 심경으로 토로하고 있다. 자꾸 책속으로 동조되어 책을 접었다 펼치기를 여러번, 책속의 주인공이 내가 아님에도 그들이 느끼고 있는 아픔이 절로 공감되어져 간다. 저자 이경자씨의 이름이 익숙함에 의아해 했더니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던《귀비의 여자》의 저자였다. 그외에 다른 저서들을 살펴보니 여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들이 많았어.

s*******1 2014.08.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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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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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작품이 바로 [절반의 실패]라는 작품이었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유난히 여성들의 상처와 고통 그 인생의 쓸쓸함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던것으로 기억나는데 이 작품 역시 그 상처에서 크게 벗어나지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여덟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작품들은 모두 상실이나 상처 고통을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이채로웠던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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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작품이 바로 [절반의 실패]라는 작품이었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유난히 여성들의 상처와 고통 그 인생의 쓸쓸함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던것으로 기억나는데

이 작품 역시 그 상처에서 크게 벗어나지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여덟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작품들은 모두 상실이나 상처 고통을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이채로웠던 점은 혼자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이 마치 판에 찍은듯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는것이다.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이 마주하게 되는 그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눈을 돌리고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상하게도 사회는 변하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그 변화되는 시간들을 따라잡지못한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전쟁이 나고 남의 집 식모살이로 살던 명희를 겁탈하던 사내들도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자식을 키우기위해 봉제공장에 시다로 일하게 된 금자를 유린하던 사내들도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한치도 다르지않는 모습들을 보인다는것이 씁쓸함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첫번째 이야기 [콩쥐마리아]에는 가족들을 위한다고 평생을 고생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가족들의 수치가

된 여인 마리아가 등장한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공장에서 일을 해가며 잘난 오라비들 학비며 용돈이며를

감당했지만 돌아오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아니 차라리 냉정하게 관계를 끊었다면 모르겠지만 필요할땐

언제나 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정작 마리아가 그들의 가족으로 나서는것을 질색하던 사람들..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온 이후에 마리아의 도움으로 초청을 받아온 가족들은 여전히 마리아와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데 난데없이 마리아에게 오빠의 전화가 걸려온다.신문사든 방송사든 무조건 모른척

하라는 오빠의 말..그렇게 수십년을 끊임없이 착취하며 살아오고서도 착취에 대한 반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자신들의 일상이 깨질것을 두려워하는 그 오빠의 말을 마지막까지 마리아는 들으려고

애를 쓴다. 왜였을까...마리아가 정말 원한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그 어떤 억압감에서 진정으로 해방되는 순간이었던것인지...

 

[언니를 놓치다]편에서는 남북이산가족상봉으로 오십년이란 시간이 훨씬 넘은 자매의 재회를 다루고

있다. 단순하게 시간의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 역시 다가갈수 없는 자매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벌어져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명희에게는 늘 똑똑했던 언니 세희는 명희에겐 어쩌면

삶의 지표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쌀이 떨어지기전 금방 오마고 약속하고 떠났던 언니는 돌아오지않고

분단의 시간을 견뎌야했었다.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명희가 갈 곳은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가지 언니를 기다리는것..그러는 와중에 식모로 들어앉은 집에서 끊이지않는 겁탈..그 치욕의

시간들을 명희는 그저 언니의 이름을 읊조리며 언니를 기다리는것으로 버티고 버틸수있었는데..

막상 재회의 순간이 다가오자 명희는 자신이 지금 마치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고 만다.

세상 어디에 나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당당하고 멋있어야 할 언니 세희는 오간데없이 어쩌면

저렇게 늙었을까싶을 정도로 노쇠하고 남루한 할머니 하나..믿고싶지않은 순간이었다.

언니의 입에서는 연신 위대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말이 흘러나왔고 그런 언니에게 명희는 결국 성을

내고 만다. 언니를 기다리던 명희는 열두살에서 자라지못했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언니는 결국

없었던것이라고...그리고 찾아온 이별앞에서 갑자기 언니를 찾는 명희..

 

다른 일곱편의 이야기들도 모두 무게감있게 다가왔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은 아무래도

마지막 이야기인 [건너편 섬]이었던것 같다. 젊어서 혼자되어 아들을 죽어라고 키워놓고 결국엔

혼자 생활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먼 훗날 누구에게나 다가올 현실의 모습처럼 보였다.

장성한 아들은 용돈은 부치지만 모습을 잘 보여주지는 않고 손주나 손녀는 할머니의 집에서는

냄새가 난다며 할머니를 찾아뵙는것을 달가워하지않고 그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것이 익숙한

노년의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혼자서 베란다 유리에 이마를 기대고 서서 공터에 들르는

남자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그여자의 모습이 불순해보이기보다는 안타까워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것이 외로움의 깊이를 대충 짐작할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건너편 섬]은 잘 살아간다는것에 대한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던것 같다.

 

j******3 2014.08.20.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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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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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작가의『건너편 섬』은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서평단에서 받은 책이다. 이틀 전에 베르텔 레츠의 『헤르만 헤세의 사랑』과 함께 두 권을 함께 받았는데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한 것이다. 사흘 만에 완독을 하면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예상과 달리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예상과 달랐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책을 펼칠 때는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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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작가의『건너편 섬』은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서평단에서 받은 책이다. 이틀 전에 베르텔 레츠의 『헤르만 헤세의 사랑』과 함께 두 권을 함께 받았는데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한 것이다. 사흘 만에 완독을 하면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예상과 달리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예상과 달랐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책을 펼칠 때는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책을 펼칠 때의 나의 마음은 읽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2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무거운 상태였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이 더 가벼우니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 라는 걱정을 했다. 현대작가의 현대소설에 그런 것이 많지 않은가? 공연히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면서 더위에 지친 마음을 더욱 고단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밝은 내용이라는 것은 아니다. 양색시가 되어 미군에게 몸을 팔다가 미국에 정착한 마리아 할머니, 분단의 현장에서 좌익이라는 굴레를 쓰고 평생을 힘겹게 살아간 도문집의 아들 석이, 동리의 전직 순경에게 겁탈을 당하고 남의 눈총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을 한 순영 엄마, 이혼한 여류 소설가 정애와 정화 엄마……. 하나같이 답답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상했던 대로 무거운 주제였지만, 읽은 뒤의 마음이 고단하지 않았으니 ‘예상과 달리’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둘째, 편안하게 읽으면서 긴 여운을 느낀 단편소설집이다. 앞서 언급한 마리아 할머니, 석이, 순영엄마 등이 한 작품에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덟 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한 작품의 분량이 30~40쪽 내외니 그리 부담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긴 여운을 느낀 이유는 주인공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느꼈던 것이다.

 

순영엄마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마리아 할머니같이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했을 것이고, 그녀가 좀 더 많이 배웠다면 정애와 정화 자매의 엄마처럼 여류소설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인물들이 다른 사건에 얽히는 이야기이지만, 마치 연작소설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 이유가 무엇일까? 주인공들이 우리 현대사의 아픈 순간을 견디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이 소설의 인물들과 비슷한 시기를 공유하며 성장했다. 마리아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와 같은 세대이고, 순영엄마나 정애 자매의 엄마는 우리 어머니 세대다. 「미움 뒤에 숨다」의 여주인공은 나와 같은 세대이기도 하다.

 

나는 그야말로 행운을 만나서 우리 가족 중에는 마리아 할머니, 순영 엄마나 정애 자매의 엄마와 같은 이가 없다. 석이 같이 간첩 외삼촌으로 곤경에 처한 경험도 없는 등 이 작품속의 인물들과 같은 갈등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였다. 주위에서 마리아 할머니와 같은 분을 손가락질 할 때, 석이네 같은 집안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할 때 동조한 적은 없었을까? 새삼스럽게 이제야 그들의 고뇌를 생각하면서 나를 반성하면서 알 수 없는 여운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순영엄마가 남편을 용서하는 등 작품속의 인물들이 죽어서라도 화해를 할 때는 내가 용서를 받는 등 감동을 느꼈다.

 

셋째, 소설가의 삶에서 나의 삶을 생각했다. 작품 속에서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정애와 정화 자매의 엄마는 가족의 삶보다는 작품속의 세계에 더 빠져들었던 듯하다. 글을 쓰다 보니 가족을 돌보지 않은 듯하고, 그것이 딸들에게는 불만이었다. 남편과의 이혼 원인도 현실보다는 작품의 세계에 더 마음을 기울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엄마가 참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가 정이라도 붙일까봐 긴장해서 사람을 밀어내고 이해하기 힘든 직업인데…….”

아빠가 독백처럼 말했다.

“엄마도 참 힘들었을 거다. 사랑해야 할 피붙이를 두고……. 다른 삶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유명할진 몰라도 자신은 늘 춥고 불안하고 슬펐을 거다.”(207쪽 「고독의 해자」)

 

아내 생전에 “당신의 집념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망쳐버릴 거야. 소설을 잘 쓸진 몰라도!”라고 악담을 퍼 붓던 남편의 말이었다. 이 말이 왜 내 가슴에 와 닿았을까?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블로그에 여러 가지 글을 쓴다.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글을 보여주는 작가나 포스팅을 통해 누리꾼에게 글을 보여주는 블로거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우리 가족이 내게 “당신의 집념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망쳐버릴 거야. 블로그는 잘 꾸밀지 몰라도!”라는 불만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어찌 나만 그럴 것인가? 가족보다 직장에 우선순위를 둔 사람들이나 가족보다 신념에 우선순위를 둔 사람들 등은 나와 비슷한 사유로 상념에 잠길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떤 위치에 있는 독자든 각자의 처지에서 삶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y******3 2014.08.16.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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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현실이 아닌 듯 현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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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상한 일이 참 많다.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 날이 더 많은 내게 하수상한 요즘은 버겁다.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자기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데, 그 앞에서는 그 목숨을 건 행위를 조롱하고 놀리는 작태가 벌어진다. 아무리 실명제가 도입되고 문화가 성숙했다 하더라도 인터넷은 점점 천박해져 간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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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상한 일이 참 많다.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 날이 더 많은 내게 하수상한 요즘은 버겁다.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자기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데, 그 앞에서는 그 목숨을 건 행위를 조롱하고 놀리는 작태가 벌어진다. 아무리 실명제가 도입되고 문화가 성숙했다 하더라도 인터넷은 점점 천박해져 간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무서운 도구로 변해가면서 말이다. 며칠 전 코레일과 관련된 비리로 체포직전에 있었던 국회의원은 동료 국회의원들에 의해 구제되었다. 세월호나 다른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각을 세우는 여당과 야당도 언젠가는 자신의 처지가 될지도 모르는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다. 정말 이상하고 골치 아프고 답답한 나날이다.

한 번씩 투표를 할 때마다 이런 이상하고 괴이하고 소름끼치게 골 때리는 세상을 경험한다. 도무지 아무런 도움이나 혜택이나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또다시 그 사람과 그 정당에 투표를 하는 사람들. 방송 같지도 않은 방송을 하루 종일 보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어김없이 갇혀 세상을 반쪽으로 보는 사람들.

여권 성향이 강하고 보수적인 지역에 살다보니 가끔씩 ‘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나 노인들은 물론이고 내 나이 또래나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에게서도 나는 멀다. 그들에게 어떤 특정한 DNA가 전해지는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학 이후로 이 지역에서 잘 모르는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한다는 것은 단번에 빨갱이 내지는 친노종북 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도박이어야 했다. 운 좋게도 내 염려가 현실이 된 적은 없었지만 느닷없이 튀어 나온 일장 연설로 술자리 분위기가 냉랭해진다거나 그전까지 존경하고 신뢰한다던 후배 놈의 눈빛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었다.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 자체가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받아들이기 편할 것 같다. 외떨어진 섬들이 각자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평화롭게 세상이 돌아가고 이치가 형성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공염불일 때가 많다. 그것이 요점이다.

 

이경자의 소설 「건너편 섬」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각각의 ‘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8편의 단편소설은 읽기 쉽다. 언젠가 한번은 매체를 통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거나 본 장면들이다. 몇 다리만 건너면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과 거의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작품 <언니를 놓치다>는 이산가족을 그렸다. 분단이 된지 60년이 넘은 현재보다 몇 해 전이 소설의 배경이 된다. 그나마 지금과 바로 이전 정권보다는 훨씬 남북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정권이 배경이다. 북으로 넘어간 세희언니를 만난 남쪽의 동생 명희는 언니와 헤어진 54년 속에 갇혀 살았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것.

 

“....위대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님의 은혜로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이 훈장들을 봐라.” (p.77)

“언니를 비웃고, 찰나에 버렸다. 마치 54년을 게워내듯 해일처럼 솟구치던 지독한 환멸의 감정도, 지금은 얼핏 우스울 지경이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p.87)

 

명희는 언니를 만나 비로소 54년을 게워낸다. 게워낸 토사물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아픔인지, 그리움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54년이 흘러 머리가 희끗해진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54년 전 소녀의 모습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명희는 언니를 통해 자유를 얻는다. 54년 전 작은 소녀의 눈 속에 머물던 언니의 모습도 내버릴 수 있었다. 생물학적 자매를 발견한 다음, 물리적 이별을 통해서야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언니는 상봉이 끝난 후 북으로 가고 자신은 남으로 간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55년, 56년이 흘러도 언니를 놓친 채 자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 자체가 슬픔이다. 혈육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한 채 산다는 것. 분단의 상황. 이산의 아픔. 며칠 후 추석을 맞아 경색된 남과 북의 관계를 탓하며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또다시 판문점으로, 통일전망대로 향할 것이다. 침침한 눈을 비벼 뜨며 북쪽 땅을 바라본 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작품 <박제된 슬픔>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언니를 놓치다>보다 더 기이한 ‘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좌제로 인해 한 사람과 그 가정이 얼마나 참혹하게 파괴되고 불행해 질 수 있는지를 다룬다. 장편이 아닌 만큼 인물의 심리와 가정사, 개인사가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단편이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케 한다. 책에서 그려진 것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연좌제의 피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석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다.” (p.114)

 

석은 갑자기 내려온 외삼촌 용립으로 인해 출셋길이 막힌다. 사랑하는 여인, 순옥과 결혼해 시험을 합격하고 농협에 취직하게 되지만 거기까지 였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지점장의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총알이었다. 별다를 것도 없었다. 북으로 넘어간 가족들의 생사여부와 소식을 듣고 용립 삼촌이 잘 지키라고 한 물건을 땅에 묻은 것뿐이었다. 다만, 북에서 내려왔으니 간첩인데, 신고하지 않고 모른 척 한 것이 죄가 될 뿐이었다. 어린 석에게, 결혼을 앞둔 석에게 이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별다른 소식이 없었기에 당연히 용립 삼촌이 북으로 잘 돌아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려올 때 그랬듯이 갑자기 체포된 채로 다시 찾아온 용립 삼촌으로 인해 할머니가 목을 매고, 석의 삶은 깡그리 부서진다. 그의 절규 같은 신음대로,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을 감당’하기에 개인은 너무 불쌍하다.

이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은 이 혼란’은 2014년 현재도 유효하다.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잠시만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비참하고 서글픈 현실에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류현진 경기나 기다렸다가 챙겨 보거나, 매일 펼쳐지는 프로야구에 집중하고, 시답잖은 잡담과 공상들로 머리와 시간을 채우고 싶다. 찾아듣던 팟캐스트 방송이나 챙겨보던 인터넷 기사들도 멀리하고 싶다. 모른 체하면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른 체한다고 해서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박제’할 수 없다면 마주해야 하는데, 일상이 버겁다. 참나...

 

l****h 2014.09.05.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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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인생은 일장춘몽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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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무 실망하고 화가 나서 화조차 내지 못하던 사람의 눈빛과 태도를 보았다. 나는 엄마가 평생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걸, 엄마보다 더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화를 삭이느라 애쓰는 엄마의 등덜미에서 보고 한동안 숙연했다. 그랬다. 엄마는 미움도 사랑이며 어떤 삶이든 한 덩어리의 사랑이라고... 당신의 슬픔과 고독과 소외, 그리고 미움 뒤에 숨어서 부끄러움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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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무 실망하고 화가 나서 화조차 내지 못하던 사람의 눈빛과 태도를 보았다. 나는 엄마가 평생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걸, 엄마보다 더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화를 삭이느라 애쓰는 엄마의 등덜미에서 보고 한동안 숙연했다.

그랬다. 엄마는 미움도 사랑이며 어떤 삶이든 한 덩어리의 사랑이라고... 당신의 슬픔과 고독과 소외, 그리고 미움 뒤에 숨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줍게 알려주었던 게 아닐까. 

                                                                                     -미움 뒤에 숨다

아빠의 장례식을 계기로 딸과 엄마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미움 뒤에 숨다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엄마를 학대하며 제왕같이 살았던 아빠. 늘 화를 내는 아빠와 매를 맞는 엄마를 보면서 살아왔던 자식들은 엄마의 참혹함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엄마의 자식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정신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빠가 그들에게서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엄마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자식들은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미워했고, 없어지기를 바랬고, 죽기를 바랬었다. 소설가인 화자는 그런 아빠를 오래도록 잊고 살았고, 무려 6년 만에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의 양면과도 같다고. 그러니 미움과 사랑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 쪽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소설가 아내의 삶의 방식은 그와 너무도 달랐다. 어린 자식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새우처럼 잠이 든 모습을 보는 건 다반사였다. 소설가의 관심은 온통 사회와 다른 인생들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면 늘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고 면피가 되는 건 아니었다. 생활은 독서의 시간에 있지 않았다.

"엄마가 참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가 정이라도 붙일까봐 늘 긴장해서 사람을 밀어내고. 이해하기 힘든 직업인데..."

아빠가 독백처럼 말했다. 모두들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화가 아빠의 한쪽 어깨에 몸을 기댔다.

"엄마도 참 힘들었을 거다. 사랑해야 할 피붙이를 두고.... 다른 삶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유명할진 몰라도 자신은 늘 춥고 불안하고 슬펐을 거다."

아빠가 느리게 말했다. 정화도 정애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위들은 고개 숙인 채 들었다.

"사람이 죽어야 이해를 하게 되니 참 야속하다만 나도 니들 엄마 많이 괴롭힌 사람이다. 모욕하고.... 모욕했다."

아빠가 무겁게 말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저마다 무심하거나 생각에 잠겼다.

                                                                                         -고독의 해자 

 

고독의 해자이별은 나의 것에서는 소설가인 엄마가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수도, 혹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여성 소설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고독의 해자에서 엄마는 쓰던 소설이 끝나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바뀌어 맛있는 것도 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지만, 그런 날들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를 다니거나, 엄마의 공부방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상태로 글을 쓰는 일이 더 많았다. 자식들은 어린 날의 그 마음에서 도무지 나이를 먹지 못했다고 당시의 엄마에 대해 서운함을 잔뜩 가지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외칠 만큼의 상처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어느 덧 두 딸 모두 성인이 되고, 엄마의 일흔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해 따로 적금을 들고 오래 전부터 선물도 준비하고 편지도 쓰면서 자매들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엄마는 일주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다. 장례식을 위해 자식들이 모이고, 이미 30년 가까이 다른 가정을 꾸려 살고 있던 아빠도 모인다. 아빠가 소설가인 그녀를 아내로 선택할 때는 소설가라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 문학을 하는 여자는 적어도 속물은 아닐 테고, 여리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여자일 테니 라면서. 하지만 결혼을 한 뒤, 아내는 곁에 있어도, 웃어도 속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구와도 사무적이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맺었고. 10년 쯤 지날 때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참을 수 없는 원인이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를 듣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미워하고 괴롭히고 경멸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말이다.

대체 소설가란 무엇일까. 자신이 살아내지 않은 타인의 인생을 쓰는 일은 일상적인 생활마저 포기하고,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 어가 벽을 둘러야만 하는 것일까.

 

사진에는, 어디에도 불행은 없었다. 불가피한 불행, 그러니까 장례식 같은 것 말고는 불행을 사진으로 남기진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진과 사진 사이에 든 시간들, 생활들, 삶의 갈피를 기억할 수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와 남자가 아내와 남편으로 역할이 정해진 뒤에 관습적으로 제도적으로 균형이 흔들리던 것, 그것으로부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던 것, 제도화된 자아를 잃지 않으려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남성성에 절망하던 것까지. 행복했던 순간을 찍은 사진들에 잡히지 않는 삶에는 그런 것들이 찐득하게 깔려 있었다. 나만 아는 것. 나만 증언할 수 있는 것.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 그래서 부득불, 이 사진이 소중했다.                                                          -이별은 나의 것

 

이 소설집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거나,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공허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힐링을 하게 도와줄 치유제가 타인이 될 수도, 여행이 될 수도,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그것을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찾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기치유를 통해 결국에는 상처와 아픔과 슬픔, 그리움들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구원되기를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일장춘몽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못견디게 괴롭던 상황도, 미치도록 아팠던 이별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도 결국엔 지나가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 슬프거나 아픈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아프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언젠가는 결국 이해하게 될 거야. 지금 많이 어두울수록, 나중에는 그만큼 더 환한 날이 올 거야.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되니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4.08.2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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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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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중견 소설가 이경자 작가가 25년간 집필활동에서 틈틈이 쓴 단편소설들이 <건너편 섬>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총 8편의 단편들에는 약자인 여성들이 희생자로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한인타운에 외롭게 살고 있는 한 여성을 그린 <콩쥐 마리아>이른바 양색시로 미국에 건너와 일가 친척 100여명을 한국에서 데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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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중견 소설가 이경자 작가가 25년간 집필활동에서 틈틈이 쓴 단편소설들이

<건너편 섬>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총 8편의 단편들에는 약자인 여성들이 희생자로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한인타운에 외롭게 살고 있는 한 여성을 그린 <콩쥐 마리아>
이른바 양색시로 미국에 건너와 일가 친척 100여명을 한국에서 데려왔지만
자신을 기피하는 시선에 그녀의 몸과 마음에는 깊은 설움이 맺히고

어이없는 설움을 서글프고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헤어진 자매의 이산가족 상봉를 그린 <언니를 놓치다>
하지만 고대하던 것과 달리 자매의 상봉 후 모습은 꽤 씁쓸함을 남깁니다.

  

유일하게 남성 주인공 '석'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박제된 슬픔>은

남북분단의 역사 속에서 주인공 ‘석’이 겪어내야 했던 사상적 갈등이 잘 드러나는데

그가 겪는 내적, 외적 갈등과 시련 또한 어머니와 아내, 외할머니와 맞닿아 있답니다.

 

겁탈을 당해 자살로 인생을 끝낸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이야기 <세상의 순영 아빠>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이 전개됩니다.

 

<고독의 해자(垓字)>와 <이별은 나의 것>에서는

고독히 타인의 삶과 씨름하는 동시에 남편과 자식들까지도 건사해야 하는

‘엄마’라는 처지에 놓인 소설가의 모습도 넌지시 엿볼 수 있답니다.

 

저마다 가슴에 슬픔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등장하는 <건너편 섬>

그 슬픔은 즉각적인 해소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타인의 값싼 위로나 끝없는 현실도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차원이지요.

소소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주는 깊은 여운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을듯 하네요.

 

 

 

 

k******9 2014.09.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건너편 섬
"건너편 섬" 내용보기
차분하지만 강한 끌림 그래서 막힘 없이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 단편소설은 바로 금방 읽기지가 않더라구요. 아마도 끊어 읽으 수 있어서겠죠.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콩쥐 마리아, 미움 뒤에 숨다, 언니를 놓치다, 박제된 슬픔,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 건너편 섬 등 총 8편의 단편작품이 있는데
"건너편 섬" 내용보기
차분하지만 강한 끌림 그래서 막힘 없이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 단편소설은 바로 금방 읽기지가 않더라구요. 아마도 끊어 읽으 수 있어서겠죠.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콩쥐 마리아, 미움 뒤에 숨다, 언니를 놓치다, 박제된 슬픔,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 건너편 섬 등 총 8편의 단편작품이 있는데요.
첫 작품 콩쥐 마리아는 양공주인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요즘 아이들은 모를 것 같아요. '양공주'라는 말 자체를 말입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요. 장녀라고 맏딸이라고 뭔지 모를 책임감에 그렇게라도 해서 동생들을 가르쳐야 했던 시절이요. 그러나 동생들은 그런 누이를 창피해 했고 세상에 알려지길 절대 원치 않았지요.
아마 지금 미국에 건너가 자리 잡은 많은 사람들이 사연이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르지요.
세상에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숨겨진 마리아는 어떤 고독을 느끼고 있을까요?
 
분단의 상처를 이야기한 <언니를 놓치다>는 남과 북에 떨어져 살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된 자매의 이야기가 다뤄지는데요. 월북한 세희 언니가 만나기를 신청한 이후 솟구치는 그리움, 억누르기 어려운 울화, 그리고 서글픔 등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동생 명희의 기분이 그대로 전해 지는 듯 한데요. 자매가 만났지만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없더라구요.
진심은 없고 동생이 반갑지도 않은 건지, 북한의 선전과 진짜 달러벌이로만 나온 건지...언니 세희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역시 분단국가라는 아픔때문에 생겨난 이야기, <박제된 슬픔> 남파된 간첩으로 돌아온 외삼촌, 핏줄이기에 그래서 고초를 견뎌야 했던 조카와 노모의 이야기가 너무 아프게만 느껴졌습니다.
 
홀로 외아들을 어렵게 키우고 성공시켜 결혼해 분가해 잘 살고 있지만 어머니는 홀로 아파트에 지내는 이야기 <건너편 섬>,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 옆에 사는 어머니는 지금도 파출부를 다니는데요. 우리네 엄마들의 지금은 모습이 아닌지...홀로 지내는 엄마가 생각하는 단편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 그래서 더욱 외롭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그녀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일테니까요...
s*****1 2014.08.2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