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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서 4박5일 간의 국빈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교황의 방한에 대해 유수의 언론은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 수가 가장 적은 아시아 대륙에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바티칸의 노력을 몸소 보여주게 된 것”이라며 “한때 일본 선교사로 가는 게 꿈이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기회에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단 3%뿐인 아시아에 가톨릭 교세를 확장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의 방한으로 최대의 ‘수혜’를 입은 것은 한국 천주교다. 한국 천주교 신자 수는 인구의 약 10%인 54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교황의 소식을 다룬 온라인 기사에는 자신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교황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찬사 댓글이 수천 개씩 달렸다.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나는 가톨릭을 믿지 않으나, 교황이 한 말씀을 접하며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 방한으로 전 국민의 조그마한 상처까지 치유되길 바란다” “그의 모습에서 무언가 경건성과 전통성이 보였다. 정부가 버리고 외면해서 상처받은 국민을 교황이 위로했다. 이게 종교인의 자세다” “그의 모습에서 정말 언행일치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종교를 떠나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 “이렇게 기분 좋고 행복할 수가 없다. 그분의 기도처럼 좀 더 평안한 우리나라가 되길 바란다”라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의 유력지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실리면서 일어났던 내용을 엮은 것으로 무신론자였던 스칼파리라는 사람이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교황의 답변이었다. 교황은 자기 배만 불리는 카톨릭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신자와 무신론자라는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프란치스코교황과 무신론자의 대화’에서는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두 사람의 대화를 담았다. 2부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서는 교황의 편지를 계기로 ‘라 레푸블리카’ 지면 위에서 펼쳐진 세계 지성인들의 토론이 실려 있다. 스칼파리의 질문에 답을 하던 교황은 어느 날 스칼파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교황의 거처인 산타 마르타관에서 두 사람이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선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 볼 수 있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자신과 세상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가 대화를 청하는 교황의 인간미를 보게 된다.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자기애는 훨씬 강해졌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비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신의 사랑을 알리고 예수의 언행을 삶에서 실천해야 할 종교지도자들과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사회지도층이 오랫동안 부재했다. 헐벗은 예수 옆에 선 잘 차려 입은 교황, 척박한 삶의 광장 옆에 있는 화려한 카톨릭교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이 시대가 당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책에서는 위기를 만난 세상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이어야 하며,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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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진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품고 있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이 모든 것은 교황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실렸다.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교회 권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온 한 언론인의 칼럼에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놀랐다.
교황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솔직한 견해가 담겨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교황이 언론인에게 편지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교황이 신앙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의 양심의 가치에 대해서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상을 괴롭히는 가장 심각한 재난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실업과 노인들이 처해 있는 고독입니다.나이가 많은 사람은 곁에서 돌봐 줄 손길이 필요하지요.젊은이들에게는 일과 희망이 필요합니다.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것들을 얻지 못했고,불행하게도 이제 더는 그런 것들을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그들은 현재라는 시간에 짓눌려 버렸습니다. 사람이 현재에 짓눌린 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욕구도 없이,계획을 세우고 앞날을 꿈꾸고 가족을 꾸리려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그런 식으로 계속 견뎌 나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제 생각에는 그 점들이 바로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교황의 편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이 책에서 주목해 본다.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과 더불어 그의 강생과 부활을 되새김으로써,계율의 교회에서 복음의 교회로 돌아가려는 의지와,단죄보다는 관용을 호소하는 교회의 본연의 임무를 되새기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도 무척 중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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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프란치스코 교황/바다출판사]
8월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으로 전국이 즐거웠을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교황의 특이한 출신 이력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배려의 말씀과 신속한 행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깨침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다. 특권을 거부하고 낮춤과 나눔의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바람을 언제 어디서나 한결 같이 실천하고 있기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신자가 아니라 무신론자에게 교황은 무슨 말을 할까. 무신론자인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인 스칼파리가 교황 띄운 편지 형식의 질문에 교황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
무신론자도 용서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교황은 말한다.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고. 진리가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뜻은 아니지만 진리가 유일하게 하나의 길, 하나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진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부터 진리에 대한 겸손함과 열린 마음을 갖추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예수의 삶 역시도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눈먼 자들을 눈뜨게 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고, 모두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 하느님이 보낸 선물이라는 것이다.
길 잃은 양에 대한 배려 문제에 대해 교황은 이렇게 답변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공동선의 씨앗이라고. 사회는 지금 청년 실업으로 젊은이들이 미래 없다는 고통에 시달리고 노인들의 고독사가 문제가 되고 있다. 타인을 향한 아가페적인 사랑은 남을 개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사회가 이런 아가페적인 마음을 갖는다면 청년실업과 노인 고독사도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사랑은 관심과 배려에서 출발할 테니까.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게 아니며, 오히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이 확고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신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리가 그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가 진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진리가 그에게 입을 맞추고 그를 소유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본문 중에서)
젊은이들이 겪는 청년 실업과 노인들의 고독사, 개선되지 않는 사회문제, 자기 배만 불리는 교회지도자에 대한 비판에 대한 날선 돌직구들이다. 교황은 무신론자의 양심의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교황의 회칙인 <신앙의 빛>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다분히 신학자적인 관점, 교리적인 해석에 대한 이야기가 즐비하다. 1부에는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2부에는 <라 레푸블리카> 지면 위에서 펼쳐진 이탈리아 신학자인 비토 만쿠조, 스페인 의학박사이면서 교황청 공보실 대변인이기도 했던 호아킨 나발로 발스, 밀라노의 암치료 권위주의자인 움베르토 베로네지 등 세계 지성인들의 토론이 실려 있다.
13세기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바꾼 취지처럼, 사치스럽고 호화스런 권력을 버리고 청빈과 겸허, 평화와 사랑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바라는 교황의 진정성을 볼 수 있었다. 지도자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오는 걸까. 존경은 지도자의 종교 지도자로서의 세상에 대한 관점, 스스로의 말에 대한 언행일치, 의견이 서로 다른 무신론자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 누구와도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 현실을 마주하고 선으로 바꾸려는 행동에서 올 것이다.
종교 조직의 수평적인 구조를 원하는 교황이다. 그의 목회활동, 빈민구제, 선교 활동, 교육 활동에 대한 일관된 생각들이 일상에서도 실천되고 있기에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모든 종교 지도자들의 모델을 보는 듯하다. 종교를 가진 세계 대부분의 종교인들만 달라져도 세상은 살만하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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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에게 보내준 편지들을 읽었다. 명목상 이 책은 교황과 무신론자가 주고받은 서신 교환과 이에 대한 지식인들의 논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교황과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렇다. 나는 에우제니오 스칼파리와 같은 계몽정신에 바탕을 둔 세속적 무신론자다. 또한 그처럼 어릴 때 천주교를 믿었고, 여전히 예수와 그리스도교 신학에 관심이 많은 무신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칼파리에게 감정이입하기가 쉬웠다. 한편, 나는 성자 프란체스코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 커다란 호감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호감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평화를 구하는 기도문을 암송하고 있고,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소설을 보고 분수처럼 눈물을 터뜨린 문청기를 보낸 바 있고, 지금은 친필 사인이 된 교황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교황의 '진리=사랑'이라는 신념과 제도교회의 탐욕과 야만적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예리한 비판에도 공감하고 있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교회의 가장 시급한 책무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동선의 씨앗을 널리 멀리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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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그 자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일간지 창립자인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해 교황이 직접 답장을 보내온 것을 함께 실었고, 그리고 두 사람은 교황의 거처에서 급기야 만남을 가지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에 나눈 대화를 함께 이 책에 실었다고 했다. 저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로 인해 모태신앙을 갖고 있었으나 중등교육을 받게 되면서 읽게 된 철학서중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구절에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이면서 생각의 자율적인 중심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던진 질문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 무신론자도 용서 받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한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교황의 말에 나는 공감하는 바이다. 교황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기 때문에 진리는 관계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이 주고 받는, 또는 오고 가는 소통속에서 존재하듯, 신과 인간이 서로를 향해 주고 받는 사랑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교황의 답변을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린 시절, 무작정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니다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스스로의 의지로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가르쳐준 가톨릭에 대한 존재자체와 그 목적은 실제 가톨릭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처음 교리반을 다니며 공부를 했을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왜 개신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걸까... 가톨릭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때, 어떤 사람이 수녀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내용인즉, 남편이 성당에 나가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가정에서의 불화로 힘들다고 말했다. 이때 수녀님은 '남편분이 그렇게 싫어하시면 나오지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었다. 이어 수녀님은 ' 신앙보다도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다' 하시며 가정의 화목을 위해 나오지 마시고 나중에 남편이 받아들일 수 있을때 그때 뵙자고 말씀을 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한 가정에 두 개 이상의 종교로 힘들거나, 혹은 무신론자를 가족으로 두어 그들과 싸워서까지 이 종교를 믿지는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가정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고, 그냥 양심에 맞게 살면 신은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신다고... 무신론자도 용서 받을 수 있느냐고? 당연히 하느님은 당신을 믿지 않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귀기울이며 사는 이들을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종교가 가진 참된 가치는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배려하며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2장에서는 교황의 편지를 계기로 각계 지성인들의 종교의 참된 가치에 대해 벌이는 토론들을 담고 있다. 무신론자이든, 신앙을 갖고 있는 자이든 ,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이 물음들에 대한 교황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이에 대한 보다 폭넓은 사람들의 시각을 듣고 싶고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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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여러 기사를 접한 후 이 분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 최근에 앞다퉈 나온 여러 프란치스코 교황 관련 책을 읽었다. 대부분 뭔지 모르게 수박 겉핥기 식의 내용이 많아 실망스러웠는데 그 모든 실망과 갈증을 모두 해소시켜 준 책이 바로 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이 편지>였다. 교황에 관련된 책 중 한권만 읽어야 한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사실 난 어디가서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가톨릭이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믿음은 그리 깊지 않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예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정말 구원 받을 수 없는지' 등등의 물음이 항상 있어왔던지라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교황님이 어떻게 들려주실지 정말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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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양심에 따르는 사람을 용서할 것이다. 신의 자비엔 한계가 없다. 진리는 관계입니다.
책의 내용을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느꼈던 종교에 대한 갈증과 의문이 상당부분 해소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가 가진 생각, 이념등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현재 종교를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품었던 사람이라면 절실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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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진리는 절대적인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잡게 된 책입니다. 저는 천주교 모태신앙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위의 두 질문들에 대해 기존의 종교관과 다른 생각을 늘 하곤 했습니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무신론자도 경건하게 산다면 용서받을 것이라고요. 어찌보면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말은, 그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일 뿐이지 않을까... 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인간들이 기록하고 가르치는 진리는 사실은 일부 와전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잊지 않으려 노력해요. 경전에 적힌 글귀 하나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따듯하게 대하고 그들을 위해 작은 사랑을 베푸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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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인류는 종교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전쟁을 치렀다. 종교전쟁은 종교와 관련된 모든 전쟁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종교전쟁은 7세기 경 발생한 이슬람교의 정복포교,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유럽의 기독교 연합군과 중동의 이슬람교간의 벌어진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이후 16, 17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이다. 이러한 종교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이다. 현대에도 종교와 종교, 종교와 과학의 갈등 등으로 종교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사회 발전의 장애가 되어 대중의 멸시를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민감한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커다란 논쟁의 시작되었다.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라는 교황의 파격적인 편지 때문이다. 이 편지는 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실렸다 한다. 이 일간지의 창립자인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질문한 답이었다. 라 레푸블리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자 우리나라의 온천지는 평화와 화해의 축제의 장이었다. 교황의 한국방문은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큰 사건이었기에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또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실 교황이 방문하기 얼마 전에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했다는 뉴스를 접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2013년 9월 11일,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톨릭교회는 종교와 종교, 종교와 과학 간의 수많은 갈등을 낳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놓고 볼 때 언론인은 가톨릭의 권력에 비판적이었다. 스칼파리도 같은 입장을 갖고 있었다. 교황은 비판적인 언론인의 칼럼에 답장을 보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어느 날, 스칼파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교황이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당신의 생각을 더 알고 싶으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합시다.”라며 먼저 말을 꺼내자 스칼파리는 약속에 응했다. 며칠 뒤 스칼파리는 교황의 거처를 찾아갔다. 산타 마르타 관의 작은 방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종교에 대한 견해를 솔직하게 피력한다. 비판도 스스럼없이 받는다. 놀랍다. 놀라웠다. 교황이 한 말씀 중에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은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 “진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품고 있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신하들을 거느리는 궁전 같은 분위기는 교황제도의 나병입니다.” 등 이다 이 책에는 교황의 편지를 계기로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한 세계 14명의 지성인들의 열띤 토론이 덧붙여져 있다. 평소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위를 던져버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파격적인 행보는 사회의 큰 이슈거리였다. 이 편지로 인한 이 사건(?)도 전 세계에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는 평화를 주기보다 종교문제로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종교와 인간의 갈등, 종교와 종교의 갈등, 종교와 과학의 갈등 등으로 세계사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이 책에서 세계 평화를 위하는 교황의 또 다른 진취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라는 말로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핵심적이고 본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 같다. 진정한 세계 평화는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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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진리는 절대적인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잡게 된 책이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궁금했어도 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를 갖고 싶어 하지만 믿음이 생기지 않아 무신론자로 남아있는 나로서는 종교관련 책만큼 지루하고 따분한 책이 없기에 아무리 좋다고 소문난 책이어도 종교와 관련된 책은 기피해왔다. 그럼에도 내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를 읽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봐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순히 교황, 가톨릭의 수장이라서 존경할만한 인물이 아닌 모든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모습, 악에 굴복하지 않고 거침없이 발언하는 진정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변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책을 다 읽고 덮은 그 순간 나는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책속의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답변들은 그동안의 거침없고 대담한 행보처럼 대담한 답변들이었다.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는 신자들에게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다” 등의 답변은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답변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답변들에 다시 한 번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벽을 보고 독백하는 것이 아닌 ‘대화’를 한다. 많은 연설에서 들려주셨던 말들이 진실로 다가왔다. 내가 만약 교황이었다면 이러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 자리의 무게와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압박감에 옳은 말일지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 속의 편지들은 분명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발언들이 꽤 있었다. 실제로 교황의 파격적인 편지로 인해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될 것을 분명 알고 계셨을 텐데, 그럼에도 발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담함과 무신론자라 배척하지 않고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또한 권위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데서 함께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과 스칼파리가 주고받은 편지, 토론뿐만 아니라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성인들의 토론까지. 종교인/비종교인 모두 읽어보면 좋을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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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유럽 출신이 아닌 첫 남미 출신 (아르헨티나)교황이다. 무슬림 여성에게 세족식을 하신 첫 교황이며 2001년 요양 시설을 찾아가 에이즈 환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기도 했다. 관저 없이 지내며 대중 교통을 타고 다니며 손에 끼는 반지형식의 도장도 이전 교황님과 다르게 금반지가 아닌,금칠을 한 반지를 끼셨다고 한다. 이번 책을 읽으며 잠깐, 인터넷에서 그를 검색해보았다. 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를 바라보는 언론이나 세계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를 살펴보았다. 그의 행보와 행적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말이다.
무신론자; 신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신을 믿지않는 입장을 지지하거나 주장하는 사람
스칼파리는 2013년 7월 7일과 8월 7일 - 두 번에 걸쳐 교황에게 짧은 글로 질문을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공동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공유한 두 진영 사이에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여기서 역사상 유례없는 교황의 편지를 접해보며 언론인에게 처음 편지를 보낸 첫 교황에게 세계인과 무신론자에게까지 관심을 받게된다. 굉장히 진취적이며 진보적이고 소위 파격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그이기에 '교황의 편지'는 참으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스칼파리의 질문은 '교황청의 권위'나 그리스도교' '가톨릭 교회'에 도전적이거나 공격적일 수도 있다고 느껴진다. '교황의 회칙'인 '신앙의 빛'을 언급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심은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등을 묻는다. '신앙의 빛'은 애초에 라칭거의 작품이란 것을 제외하면 중요한 일이 아니라한다. 믿음은 진리와 동의어고, 진리는 믿음과 사랑 속에 담겨있는데 '사랑'이 가톨릭교회의 정수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으며 이것이 가장 긍정적인 특징이지만,모든 그리스도교 종파가 사랑은 같은 방식으로 설교하지않는다고 주장한다. 또,신의 강생과 말씀의 현현은 다른 종교들과 대비되는 그리스도교만의 변별적이고 배타적인 면임을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제국의 시대에 탄생했으며 황제의 권위와 투쟁해야했기에 그 결과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없었다는 면도 재조명한다. '아브라함의 신' - 유대인들에게 번영과 안녀을 주겠다고 약속한 신 - 은 야속을 지키지않았다고 단정짓는다. 스칼파리는 교황을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여우처럼 교활하다'라고 평한다.그동안의 교황 중 단 한 사람도 청빈의 깃발을 높이 세우지 않았다는 점도 말한다. 수평적이기 보다는 수직적인 모습만을 보여왔다는 점도 얘기한다. 프란체스코는 매혹적이며 무신론자에게까지 인기가 있기는 하나 바울로가 없었다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소신도 분명히해둔다. 스칼파리의 연재로 인하여 발생한 한 사건은 로마의 대주교가 2013년 9월 11일 ,'편지'를 보냄으로써 주목받게 된다. (이미 예수의 행보를 닮은 듯한 그의 행보에 빠져있는 분들이라면 교황의 '편지'는 뜻밖이며 포용력에 감사함이 느껴질 것이다) 편지뿐 아니라 스칼파리와 프란치스코와 만남으로 이어진 '대화'는 최고조의 집중을 발휘하게한다.마음을 열고 답변을 드린다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교황의 편지는 겸손하다. 회칙은 그리스도교인들 뿐아니라 무신론자로 규정되는 사람들과도 진지하고 엄정한 대화를 이끌어내기위해서 쓴것이라고 한다.교회와 그리스도교적 영감의 문화,그리고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근대적인 문화 사이에서 의사소통 불능 상황에 봉착된 것도 설명한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편견이 배제된 열린 대화,만남을 시작하기위한 첫 번째 노력의 이정표라고 덧붙힌다. 신자는 교만하지않으며 진리가 그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우리로서는 현재 예수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는 부활이며 , 예수가 '아바'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도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의 증거임을 알려준다. 예수의 독특함은 소통이며 유대인 형제들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유대 민족은 예수라는 싹을 틔운 성스러운 근원임을 확인한 점을 예로 들어 강조한다. 교황의 편지에 대한 스칼파리는 본인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교황의 답변을 깜짝 놀란 듯하다. 게다가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매력적인 발명품이라고 하니. 그의 무신론자의 입장이 단호히 확인되는 대목이다. 스칼파리에 비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매력적으로 그의 질문을 포용하며 여우처럼 교활하게 답변을 하는 교황의 모습은 신의 한수가 아닐까. 스칼파리도 ,무신론자도 타종교인도 하느님이나 그의 아들이나 교황에게도 '길 잃은 양'일 것이다. 로마 대주교의 말처럼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에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남을 개종시키는 것이야말로 허황된 짓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늘려가는 것. 그것은 즉 . '타인에 대한 사랑 '이 아닐까! 스칼파리와 교황의 대화는 진지하며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 둘의 모습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아닐까?
교황의 편지와 스칼파리와 교황의 만남 속에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하느님'을 알고 그리고 알리기위해 각성하기위해서 '신'은 스칼파리를 이용했을지도 모를일이다. . '신'이 하는 일에 '그냥'은 없는 일이라 믿으므로. 더해진 지성인들의 열린 토론까지 참으로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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