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는 칠 년째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중년의 원숙한 고양이다. 요 고양이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하루의 절반 이상은 늘 자고 있거나 자신의 몸을 핥거나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무엇보다 주인의 요구에 그다지 응하지 않는다는 점도 태어난 지 넉 달 되었을 때와 같다. 물론 어릴 적보다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내가 사용 중이든 말든, 온기가 느껴지는 노트북 위에 털썩 앉거나, 제가 놀고 싶을 때는 깃털 장난감을 물어다가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또 참치 캔의 보관 위치를 잘 알고 있어서 배가 고프면 그 주변에서 야옹댄다. 내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자기의 편의를 위해서 살고 있는 고양이다. 그래서 가끔 얄미운 생각도 들지만, 그런 고양이를 보면 참 궁금해진다. ‘우리 고양이는 참 태평해 보이는데, 고양이는 행복을 느낄까?’ 이런 나의 궁금증에 답이라도 하듯이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의 주인공 HHC(His Holiness Cat)는 직접 고양이의 관점에서 인생에 대한 갖가지 견해를 들려 준다. 달라이 라마의 관저인 조캉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사랑까지 듬뿍 받고 있는 히말라야종 고양이, HCC. 성하의 고양이로 불리는 귀하신 몸이다. 당연히 그런 HCC에게도 매일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HCC는 사람과 똑같이 고민에 빠진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러 조캉을 방문하는 이들이 고민꺼리를 안고 찾아오듯이 말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모든 생물은 고통을 싫어하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한다는 점에서 고양이와 우리는 다를 바가 없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그 질문은 달라이 라마의 조언들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가령, HHC는 새끼 때 버려진 탓에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절제를 어려워한다. 또 본능적으로 몸을 핥아대는 탓에 털을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지만 멈추기 어렵다. 거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이나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단번에 극복하기 어려운 습관이나 마음가짐에 해당되는 일들이라 HCC를 비롯한 조캉을 방문하는 이들 역시 쉽게 삶을 변화시키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포기 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면 어느새 평안해지고 주변인들에게도 다정해져 간다. 어느날,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지만 스스로는 불행하다고 여기는 자기계발 지도자가 달라이 라마에게 묻는다. “행복의 진정한 원인은 우리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반적인 원칙이 있습니까?” “… 두 가지 진정한 행복의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겁니다. 불교도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지요. 둘째, 불만족스러워하거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비라고 부르죠” 달라이 라마의 무릎 위에서 감동을 받는 HCC처럼 나 역시 행복에 대한 그의 대답이 마음에 와 닿았다.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역시 혼자서 누리는 모습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장면이 떠오르니 말이다. 수행을 하는 명상가들 역시 명상 중에 타인을 위한 행복을 명상을 할 때가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전전두엽 피질이 가장 활성화 된단다. 그러니 최근 사회적으로 행복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우울하고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건 아닐런지... 이 책에서 HCC는 제 멋에 사는 고양이로 묘사되고 있지만, 내가 느끼는 고양이들의 매력은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또한 고양이가 굳이 자신 말고 다른 존재를 위해 노력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고양이라는 종은 내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 고양이는 작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혼신을 다해 뛰어 논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창가에 앉아서 햇살을 쬐거나 거리를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명상을 한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그가 누구건 곁으로 다가가 몸을 문대는 것으로 인사를 한다. 때로 깜박하고 밥을 못 챙기면 집을 떠나가도록 울어댄다. 그럴 때면 나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끔은 삶의 의미를 묻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고양이를 불러 본다. 그러면 어딘가에서 잠을 자던 우리 고양이가 나타나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 본다. 배가 고프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 순간 모든 게 단순해 진다.삶이란 과거에 있지도 미래에 있지도 않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을 고통으로 볼 것인가? 기쁨으로 볼 것인가? 눈앞에 있는 아름답고 유연한 고양이 한 마리가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는 동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달라이 라마 같이 위대한 영성 지도자의 곁에서 가르침을 받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고양이에게 일상의 소소한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달라이 라마 같은 뛰어난 스승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큰 행운이겠지만, 없다 해도 슬퍼할 일은 아니다. 주변에 고양이든 개든, 햄스터든 혹은 풀벌레든 때로는 지나가는 한 점의 바람이든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면 삶의 지혜를 들려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deepbluebody/120195187549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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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0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사랑이 피어납니다. 짓궂게 바라보면 거친 말이 튀어나옵니다. 사랑스레 마주하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짓궂게 마주하면 슬픈 모습이 잇닿습니다.
그런데, 온누리 모든 꽃과 풀과 벌레와 나무와 새와 고양이와 짐승은 모두 들에서 살았어요. 들 아닌 데에서 안 살았습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사람도 들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들 아닌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니에요.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책읽기,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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