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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사 없이 나오는 이 영화를 그저 코메디 영화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내 어린시절 찰리는 그저 그런 나에게 웃음을 전달해주는 사람이었다. 영화의 지식보다는 양에 치우쳤던 시절이기도 했고 이런 나에게 다시 한번 이 영화를 접해볼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내가 저 영화를 어느 유식한 비평가들처럼 널부래한 지식들을 펼쳐놓으며 자랑이라도 하듯 글을 쓸 능력은 못된다. 그런것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난 그냥 느낌을 이야기 하는게 좋다. 처음 사람을 만났을때 첫인상을 말하는 것처럼 아무런 지식없이 먼저 떠들어대고 남들이 내 무지를 깨우쳐 주는걸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내 무지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뭐든지 버려지는 공간 아래 찰리는 걷고 있다. 주택가의 거리에서는 온갖 잡동산이가 그의 발길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아이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아이 역시 버려지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어디에서 떨어진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그 아이와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드리지 못한 그는 폭소를 자아내며 아이를 다시 외면하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런닝타임 9분이 지나서야 받아드리게 된다. 한 여자가 묻는다. ‘당신 아이인가요(Is that yours?)'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아이라고 한다. 그리고 존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이렇게 그는 아이의 아버지가 된것이다. 경제적 능력이라곤 이 영화에서 그의 직업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능력하다. 하지만 가난한 그는 지극 정성이다. 헝겊과 의자로 아이를 위해 뭔가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크자 동업자 관계가 된다. 아이가 유리를 깨면 그 유리를 갈아 끼우며 생계를 챙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롱샷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유일 하게 제키 쿠건의 연기를 맛 볼수 있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다. 경찰이 오자 능청스럽게 아닌척하며 도망가는 장면은 나에게 웃음을 전해준다.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이 영화에서도 갈등이 묘사되어있다. 아이가 아프면서 의사에 의해 적절한 조치(역주 영화에서 적절한 조치라는 타이틀이 뜬다)를 받게 된다. 아이를 보육원에 넘기는 따위의 일이지만 그 시대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고 실제로 보육원에 보내져 강제 노동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 적절한 조치라는건 찰리 채플린 자신의 과거에서 느꼈던 어린시절의 비아냥과 풍자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등장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친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의사가 가져가게 될 때 잠시 주춤했다. 왜 저 사람이 편지를 가져가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으나 나중에 나올 장면에서 모든게 해결이 됐다. 바로 그 아이의 친 엄마가 드디어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의사로 인해 보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조치를 한 의사에게서 보게 된다니 뭔가 아이니컬하다. 정말 적절한 조치였나보군 하는 생각이 조크처럼 지나간다. 보육원으로 보내질 아이를 구한 찰리 그것도 잠시일뿐이었고 인상착의 하나 써있지 않은 신문광고를 보고 아이를 척 알아보는 대단한 여관 주인에 의해 아이는 드디어 성공한 엄마와 힘겨운 상봉을 하게된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서는 기쁨같은 건 보이질 않는다. 차라리 내 가슴을 움켜쥐게 만들었던 제키 쿠건의 두 번째 명연기를 볼수 있는 장면이 더욱 생각이 난다. 찰리를 애타게 부르며 보육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의 모습이 더욱 생각이 난다. 찰리의 꿈속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을 방해했던 모든 사람들을 질투라는 단어로 대신했다. 행복한 마을에는 악마가 들어오고 행복했던 시간도 모두 사라지고 자기 자신은 경찰에 의해 죽는다. 다시 현실 경찰에 의해 잠에서 깬다. 또 다시 경찰에 의해 끌려가지만 그 다다른 결말의 끝은 아이엄마의 선한 대접이다. 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얼핏 주워 들은게 있다. 보육원에 자주 들락거리며 그가 느꼈던 어린 시절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가난하지만 보육원에 보내지 않는 친부모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나보다 친 아이를 잃은 다음 찍은 영화여서 더욱 아이에 대한 애착 이 느껴지며 나에게 그저 코메디 배우로 생각되었던 그를 다시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감독이며 시나리오 모든 부분을 통괄했던 그에게 내 자신의 열정을 보내주고 싶다. 나에게 각오를 던져주며 분발해주는 이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