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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의 거짓말 뒤집기
"혜경궁 홍씨의 거짓말 뒤집기" 내용보기
지금도 못 잊는 장면이 있다. 당시 배우는 유인촌과 김영란이었고, 드라마의 제목은 "안국동 아씨"였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보았던 이 드라마에서 연기파 배우 유인촌이 사지를 뒤틀면서 옷소매가 끼워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마침내는 옷을 찢기까지 하는 장면이었다. 어찌나 그 장면이 강렬했던지, 그 이후, 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치고 이만한 장면은 못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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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못 잊는 장면이 있다. 당시 배우는 유인촌과 김영란이었고, 드라마의 제목은 "안국동 아씨"였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보았던 이 드라마에서 연기파 배우 유인촌이 사지를 뒤틀면서 옷소매가 끼워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마침내는 옷을 찢기까지 하는 장면이었다. 어찌나 그 장면이 강렬했던지, 그 이후, 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치고 이만한 장면은 못 본 것 같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자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사료가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지금에, 사도세자의 죽음을 극단적으로 슬프게 표현한 가장 절절한 기록이 바로 아내인 혜경궁홍씨의 기록이니. 누가 생각해도 아내보다 더 남편의 죽음을 애통히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전제하에 지금까지는 모두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사도세자의 죽음을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역사기록인 영조실록조차도 사도세자가 정신병으로 죽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귀책사유가 영조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조는 즉위 자체가 거의 반정에 가까운 왕이었다. 경종의 독살설을 끌어안고, 당파의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당쟁을 탕평한다는 정책을 편다. 그런데, 영조의 탕평책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바처럼 성공적이지 못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영조 자신을 왕으로 만든 세력을 주축으로 반대파 일부를 살짝 끼워주는 식이었고, 그래서 항상 불만이 내제하고 있기도 했다. 영조는 틈만 나면 왕위를 양위하겠다는 시위를 해서 조정을 들끓게 만들고, 세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하기도 했다. 태생이 활달한 사도세자는 그런 잔인함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서 영조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게 되고, 정치적으로 영조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사도세자만 잡으면 살 것 같아서 끊임없이 사도세자를 붙들고 늘어지는 소론과, 사도세자가 정권을 잡으면 소론에게 정권이 넘어가서 자신들이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노론 사이에서 사도세자 자신의 운명을 걱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당파와 집안만을 생각하면서 , 남편이고, 사위인 사도세자를 눈의 가시로 여기는 처가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恨중록이 아니라 閑중록으로 한가한 날의 기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들인 정조가 왕이 되어 자기 집안이 도륙되는 것을 지켜본 혜경궁 홍씨는 손자인 순조가 왕이 되자 집안의 신원을 요구하게 되고, 칠순의 늙은 노파가 자기 집안은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 연관이 없음을 강변하기 위하여 이 글을 썼다는 것이다 . 낙랑공주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북을 찢었지만, 혜경궁은 집안을 위하여 남편을 죽인 여인이 되었다. 어쩌면 아들조차도 죽였을 지 모른다. 정조역시 병사를 가장한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l********t 2004.06.03. 신고 공감 2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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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사도세자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로로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TV에서도 그의 아들 정조를 소재로 한 사극이 방송되기도 했고, 수원화성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나타내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물론 정조 개인적인 견해도 있겠으나, 통념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무수한 의혹만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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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경로로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TV에서도 그의 아들 정조를 소재로 한 사극이 방송되기도 했고, 수원화성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나타내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물론 정조 개인적인 견해도 있겠으나, 통념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무수한 의혹만 있었을 뿐,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 이덕일과 같은 사람처럼 대중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한중록의 저자 혜경궁에 대한 의혹을 첫머리로 제시했다. 지금까지 혜경궁은 우리에게 남편을 여의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평생을 눈물로 지샌 여인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혜경궁과 그의 아버지인 홍봉한, 그리고 숙부인 홍인한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해오면서도 혜경궁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 일은 적었다. 즉,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으로서의 혜경궁으로 그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홍봉한, 홍인한 형제 뿐만 아니라 혜경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댄다. 그리고 그 눈물이 죽어가던 남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의 몰락에 대한 눈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혜경궁이 철저하게 정치적이었으며, 가문의 영예를 위하여 세자까지도 이용한 악처였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저자가 글을 이끌어가는 논점은 명백하다.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진 영조실록과 개인의 회상에 기초한 한중록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혜경궁의 생각을 엿보고, 정쟁에 희생된 사도세자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려고 한 점이다. 물론 사도세자가 노론의 공작에 의해 희생되었음은, 조선 후기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자가 정신병이 있었고, 온갖 비행을 저질렀음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사도세자는 완전히 비난받을 수도, 연민을 받을 수도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런 사도세자를 역사의 뒤안길에서 끌어내어 그 누명만이라도 벗겨 주려는 저자의 생각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소설의 형식을 도입한 것도 상당히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데 일조했고, 역사서를 보면 늘상 느껴야 했던 지루함도 해소해 주었다. 특히나 저자가 사도세자의 관점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부분은, 흡사 소설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저자의 문체적 특성이 글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문체적 특성도 어느 정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영조실록이나 한중록처럼 비교적 출처가 명확한 인용문이 있는 반면에, 어떤 부분은 허구적인 내용과 객관적인 내용들이 마구 섞여 있어 작가가 글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도입한 허구적인 장치들이, 잘못하면 처음 사도세자의 사건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명백한 사실로 다가설 수도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나, 두 번, 세번 읽어나가면서 그런 부분이 상당히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차차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 허구적인 내용이라는 꼬리말을 달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객관적인 내용과 주관적인 내용의 구별을 위해 단락 구분이라도 해 주는 정도의 배려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도 책 전체의 논점을 흐리지는 않는다. 줄곧 저자는 사도세자에 대해 관대하고 옹호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나가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여당(與黨)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노론의 입장에 반대론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저자는 흡사 자신이 그당시 세자를 옹호하던 소론의 입장이 된 것처럼 글을 써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작가에게 갈채를 보내주고 싶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역사, 패자의 역사는 왜곡될 수 밖에 없고 결국 후대 사람들이 보는 것은 승자의 역사, 다수의 역사일 뿐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당시 소수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다시 역사를 곱씹어 보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역사를 대중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역사를 사실 그대로, 혹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을 무비판적으로 재생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식을 굳건히 하고, 때로는 소수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다수에 대한 외로운 싸움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역사가의 진정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j******j 2005.08.1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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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역사속에서 보는 한줄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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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을 예전에 한참동안 고민했던 적이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열심히하고 땀 흘리는 자들도 있지만 기회를 잘 잡아서 인생을 잘 살려는 기회주의자들과 로또인생의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군상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책내용을 토대로보면 노론은 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대는 물론이고 몇대는 누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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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을 예전에 한참동안 고민했던 적이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열심히하고 땀 흘리는 자들도 있지만 기회를 잘 잡아서 인생을 잘 살려는 기회주의자들과 로또인생의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군상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책내용을 토대로보면 노론은 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대는 물론이고 몇대는 누릴수있는 권력의 힘을 가진집단이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갈겨쓰는 우리역사~ 건국 58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아도 그런 군상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있다. 풍문인지 실제로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대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시골이장까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이지않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덜하다고해도 떡방앗간 주변에 떡고물이 어련히 있겠지하는 마음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책의 배경인 조선시대에도 누가왕이 되느냐에 따라서 어느집단이 살고 어느집단은 삼족의 씨가말라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음을 당쟁이란 정치적 이슈를 보면서 읽을 수 있었다... 왕조국가에서 왕의 계통을 잇는다는 것은 우리시대에 흔히 목도하는 각종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 ,합종연횡하고 자신의 둥지를 찾아나서는 철새정치인을 보면서 알 수 있듯이 그리 순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목숨을 건 정치의 최고場이다.... 지금은 문제가 있으면 예전 유배에 비교되는 감옥에 가는것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삼족의 씨가 말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것으로 보아 불과 몇백년의 차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야수의 시대를 살아왔었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자신의 장점(북벌론,무예숭상,쉽게 자신의 생각을 보이지않는 것)을 자신을 죽이는데 철저하게 이용했던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했던 고립무원의 사도세자.. 나이가 들어 생기는 노욕과 더불어 자신만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혈육의 정마저 끊고 뒤주속에서 아들을 죽인 영조.. 죽을때까지 자신의 아비죽음에 가슴의 화를 간직한 채 많은 사람의 아쉬움과 개혁을 갈망하는 의로운 신하들을 뒤로하고 사도세자품으로 너무나 빨리간 정조 아마도 책의 중심내용은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관계가 주가 되지만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조를 통해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희망이 있었고 한줄기 빛이 되주기 바랐던 사도세자의 소망이 꽃을 피운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견해가 책속에 포함되 있는것으로 보여진다. 꺼져가는 등불이었던 조선에 마지막 희망이었던 정조. 아마도 정조를 정조되게끔 한 것은 사도세자란 큰 역사의 거울이 있었기에 현 시대에도 인정받는 정조대왕이 될수있는 기틀을 제공했을것이다. 사도세자가 펼치고 말하고 싶어했던 것을 그의 아들인 정조는 충분히 보여주었고 펼쳤다... 다만 의문속에 너무 빨리 죽은 것을 제외하고~ "사도세자의 고백"은 비록 패자의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역사의 긴 호흡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다보면 희망이 있고 한줄기 빛이 주변에 있을것임을 알려주는 책으로 읽혀진다. 저자의 붓끝을 거치면서 독자들에게 돌아오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이전에 미디어를 통해서 알았던 정신병자의 모습만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합리적인 정치를 펼치고 북벌론을 외쳤던 효종처럼 거대한 야망을 가진 인물로 좀 더 한 개인을 균형되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준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란 말을 하면서 조선 22대왕 즉위식을 맞았던 정조를 생각하며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는다..

[인상깊은구절]
정조왕의 한맺힌 즉위식 연설내용 중 한 대목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m*****e 2005.02.1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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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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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여기 사라지고 지워진 '패자의 기록'을 복원하려고 애쓴 저자 이덕일 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뒤주에 갇혀 여드레를 굶어 죽은 사도세자. 영조가 대부분의 기록을 없애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쓰인 대로 정신병을 앓다 완벽주의자인 영조의 미움을 사 비명횡사 한 줄로만 여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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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여기 사라지고 지워진 '패자의 기록'을 복원하려고 애쓴 저자 이덕일 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뒤주에 갇혀 여드레를 굶어 죽은 사도세자. 영조가 대부분의 기록을 없애 그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쓰인 대로 정신병을 앓다 완벽주의자인 영조의 미움을 사 비명횡사 한 줄로만 여겨지지만 한중록 역시 승자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지만 살려달라며 자결하지 않자 뒤주를 가져오게 한 자가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이란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마저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정적으로 여겼고, 나라의 이익보다 당파의 이익을 앞세우기에 급급했던 노론은 지금의 야당격인 소론인 사도세자를 정신병이란 조작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 당시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닌 '노론의 나라'였으며 영조 역시도 경종 당시 노론의 택군(왕의 동생을 왕세제로 봉함)이 없었으면 왕의 자리에 앉을 일이 만무했으니, 당시 조선은 신하가 왕을 세우고 세자를 죽이는 한심한 놀음판 이였다.


 선왕 경종을 독살한 과거에 발목 잡힌 영조가 소론의 상소를 빌미로 기나긴 피의 숙청을 단행하자 홀로 소론을 위해 방패막이 가 되어 정조의 미움을 사게 되는 발단이 되는데 말로만 탕평책을 쓴 영조보다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궐내 야당 세력을 보호하려 했던 사도세자가 오히려 성군으로서의 자질이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본심을 속이고 영조나 노론의 화살을 피해갈 수 도 있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사도세자의 몸속에 흐르는 왕의 피가 그런 소인배나 할 행동을, 자신을 속이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앓았다면 어떻게 무려 14년 동안 대리청정을 수행할 수 있었겠으며, 죽기 2년 전 피부병을 고치지 위해 온양에 행차를 했을 때 신민들이 세자의 여러 덕행을 칭송한 일 또한 만무했어야 한다. 노론인 생모 영빈 이 씨와 역시 노론인 세자비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에게 마저 버림을 당하고 소론마저 씨가 말라버린 궁궐에서 아무에게도 의지 할 곳이 없었던 사도세자는 술과 여자에 빠져 미친 척이라도 해서 자신에게 겨눠진 죽음의 화살을 피하고 싶었을 터이다. 그토록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는 없던 신경증이라도 생길 판이지 않겠는가.


 사도세자는 문무를 겸한 군주의 자질을 갖추었다. 자신이 무예에 관한 뛰어난 전문가였으며, 무예에 관한 새로운 방법을 담은 '무기신식' 이란 책을 반포했을 뿐만 아니라 북벌을 꿈꾼 마지막 군주였다. 당파의 이익만을 위해 현실에서의 안정을 구하던 노론에게 북벌은 위험한 발상 이였고 사도세자를 제거해야할 또 하나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홍봉한과 풍산 홍 씨 가문을 변명, 비호하기 위한 조작에 지나지 않았고 역사적인 기록과 상반된 부분 역시 많다. 홍봉한은 사도제자의 아들 세손이 왕위에 오를 것을 두려워했고, 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홍봉한의 아들이자 혜경궁 홍씨의 동생 홍낙임은 정조 독살 사건을 지휘하는 수장 노릇을 한다.


 책을 읽기 전엔 정신병을 앓고 뒤주에서 굶어 죽은 세자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 마지막 장을 덮자 군주에 대한 존경과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일신의 영광과 당리당락 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판의 모습은 그제나 이제나 다름이 없어 한 숨이 절로 난다. 멀리 중원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는, 북벌의 꿈을 꾸던 사도세자는 못 따라갈망정, 망국의 사대적 꿈에 빠져 있는 모습들을 보면 이 나라 백성은 어찌 이다지도 지도자 복이 없을까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란.




m****e 2008.03.0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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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책!
"오랜만에 좋은 책!" 내용보기
나는 역사 분야를 좋아해서 이 책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구입하게 됬다. 택배를 뜯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책 읽는 속도가 느림에도 이틀만에 다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로서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눈물이 날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한중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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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 분야를 좋아해서 이 책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구입하게 됬다. 택배를 뜯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책 읽는 속도가 느림에도 이틀만에 다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로서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눈물이 날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한중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아니 그것이 진실일 것이다. 평소 나는 혜경궁 홍씨가 우리가 흔히 아는 문정왕후 같은 악녀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책에서 발견한 진실은 혜경궁 홍씨야 말로 정말이지 무섭고도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저 흥미거리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쳤다면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조금은 저급한 상업적인 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조선시대의 왕과 신하의 관계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과, 경종시대 때부터 순조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당쟁과 정치형태의 변화랄까, 뭐 이런 거창한까지는 아니더라도 교과서에서 딱딱하게 배웠던 부분을 정말 실제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면서,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내용은, ''갑갑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내가 원하는 결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실화이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도세자는 정말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밝혀냈고 그들에게 극형을 처했지만, 그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버지 영조는 자신의 행동을 깨닫지 못하니까 말이다. 너무너무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역시, 사도세자가 영조를 이어 임금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벌을 가슴에 품고 있던 문무에 능했던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지도가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일본에게 지배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갑했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이긴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후손으로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도세자를 혜경궁의 말처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g*****e 2006.12.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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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의 희생자를 다시금 알려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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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조선왕독살사건과 문체가 비슷하다 했더니 같은 작가였다. 그래서 왠지 정감가고 더 쉽게 읽혀질 수 있었던 듯 하다. 사도세자는 정치권력의 희생자였다. 솔직히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을 남긴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 분쟁으로 인해 그 희생양이 된 사도세자, 그리고 그 권력으로 죽고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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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조선왕독살사건과 문체가 비슷하다 했더니 같은 작가였다. 그래서 왠지 정감가고 더 쉽게 읽혀질 수 있었던 듯 하다. 사도세자는 정치권력의 희생자였다. 솔직히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을 남긴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 분쟁으로 인해 그 희생양이 된 사도세자, 그리고 그 권력으로 죽고 죽이고를 반복하는 당원들. 후세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런 일들을 했는지 의아심만 생길 뿐이다. 조금만 더 타인을 배려했다면,, 조선왕조의 이러한 비극들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역사속에서는 살아남는자와 죽는자. 두 분류만 존재한다. 사도세자는 살아남지 못했기에 우리는 폭군이였던 세자로밖에 기억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위해 아들까지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영조또한 비극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흘러가버린 물결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더 낳은 미래를 위해.

[인상깊은구절]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린 물결이다. 현세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힘이 미치는 곳은 현재이지 과거가 아니다. 현세의 권력으로 과거를 뒤바꿀 수 있었다면, 이는 인간의 권력을 과대형가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것이다. 과거가 현세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현세가 과거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s******i 2006.10.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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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한 소설가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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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학교때 누구나 한번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어보았을 줄로 안다. 그리고 그 책 속에선 사도세자가 정신병으로 몰러 끝끝내 뒤주에 갇혀 8일만에 비명에 간 것으로 나와있다. 우리모두 그렇게 알고 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이런일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한 소설가의 노력." 내용보기
중고등 학교때 누구나 한번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어보았을 줄로 안다. 그리고 그 책 속에선 사도세자가 정신병으로 몰러 끝끝내 뒤주에 갇혀 8일만에 비명에 간 것으로 나와있다. 우리모두 그렇게 알고 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고,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이런일이 있었겠구나..라고 생각될 만큼 필자의 글솜씨 또한 매우 우수했다. 이 책은 사도세자의 일생은 물론이고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 영조가 자신의 왕위를 정당화 하기 위한 모든 행동, 그리고 노론과 소론의 극단적 대립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1. 영조가 보위에 오르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이 죽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위에 올랐다. 소론의 지지에 있던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들은 당연히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종의 배다른 동생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자는 주청을 해 결국 왕세제로 책봉된다. 그래도 불안했던 노론은 왕세제에게 대리청정을 하도록 한다. 이른바 ''택군''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경종은 남다른 영리함을 발휘해서 이 일을 꾸민 노론들의 주동자를 처형한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못한 경종은 끝내 앓아 눕게 되고 연잉군(영조)이 올린 게장을 먹고 숨을 거두고 만다.(이 때 어의는 영조에게 게장은 병을 더욱 악화 시킨다고 말했음에도 영조가 경종에게 게장을 올렸다고 한다. 이른바 ''경종 독살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왕세제로 있던 영조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2. 사도세자의 탄생 영조의 첫째 아들 효종세자가 오래 살지 못하자 영조는 왕자를 낳기 위해 매우 애썼다. 그러나 그 후로 옹주 두 명이 태어났고, 마지막으로 사도세자를 낳게 되었다. 영조는 기분이 매우 좋아 즉시 사도세자를 세자로 책봉했다. 사도세자의 탄생은 축복 그 자체였다. 누가 사도세자의 탄생에 비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는줄 알 수 있었겠는가. 사도세자는 매우 비범한 인물이어서 장차 영조를 이을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러나 여기에 또 노론과 소론의 분쟁이 격화된다.(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한 이유도 자기가 노론 덕분에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노론과 소론 모두를 아우르는 군왕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말년에 노론쪽으로 기울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탕평이라는 이름으로 벼슬을 내려도 노론과 소론에게 공평하게 내리고 있었다.) 사도세자의 처소가 옛날 경종의 처소 였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에는 소론의 무리들이 있었고 사도세자는 거기에서 컸기 때문에 소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자빈 혜경궁 홍씨를 아내로 받아들임으로써 갈등은 더욱 극화된다. 그것은 혜경궁 홍씨의 집안이 노론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노론의 계략으로 소론들이 모조리 처형당하고 사도세자도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죽게된다.(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병자여서 영조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나오면서, 그래도 혜경궁 홍씨 자신은 남편인 사도세자에게 모든 정성을 다했다고 나오지만 실상은 궁 안에 사도세자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기 위해 뒤주를 준비하고 주청한 사람이 바로 사도세자의 장인 즉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였다. 혜경궁 홍씨는 남편보다는 자신의 집안을 먼저 생각했다.) 3. 정조의 즉위 사도세자가 죽고 나서 온 세상이 노론의 세상인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였다. 노론은 완벽히 일을 처리하고 위해 정조 또한 죽일려고 했으나 이 문제는 혜경궁 홍씨때문에 무산되었다. 혜경궁 홍씨는 자기 아들만큼은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영조가 죽은 후 정조가 즉위하게 되면서 노론들은 불안 해 할수 밖에 없었다.(정조가 즉위하면서 한 첫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라고 하니 노론들의 불안은 당연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큰 맥락은 이 세가지 정도가 있으나 아마 더 많을 것이다. 문득 생각난 것이 이 정도이니 이 책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관이 올바른가라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 해 볼 수 있었고, 한중록이 혜경궁 홍씨의 행동들을 대변하기 위한 홍씨의 변명에 불과한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정조가 즉위하면서 한 말)
w********t 2006.08.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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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PD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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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좀 유보적일 필요가 있다. 역사라는 것은 '이긴 자의 기록'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만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기득권층일 것이 분명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부정하고 배척했던 대상에 대해서 공정하게 판단하고 기록을 남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신라에 대한 태도와 후세들의 백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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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좀 유보적일 필요가 있다. 역사라는 것은 '이긴 자의 기록'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만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기득권층일 것이 분명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부정하고 배척했던 대상에 대해서 공정하게 판단하고 기록을 남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신라에 대한 태도와 후세들의 백제에 대한 시각이 결코 곱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고려를 뒤엎고 등장한 조선의 세력들이 고려를 무능하고 타락한 왕국으로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은 지금의 우리 현대사를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한중록>을 공부하면서 세자의 아내로 왕비가 되지 못하고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가여운 여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중록>의 곡진하고 우아한 문체와 아름다운 표현들이 그런 생각을 더욱 짙게하는 데 일조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다만 한쪽의 이야기만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 의하면 <영조실록>과 <한중록>의 기록은 많은 상이점을 보인다.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가 미쳤고, 그의 아버지 영조는 매우 편벽된 성격이상자인 듯 기록하고 있으나, 이 책에서는 당시의 당쟁이 가장 큰 원인임을 들고 있다. 영조를 왕위에 올린 노론세력이 자기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 사도세자에 대해 가졌던 경계심, 그리고 사도세자의 죽음에 가장 깊이 관여한 인물이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 이라는 것 등은 사도세자의 죽음이 단지 미친 아들과 까탈스런 성격의 아버지가 벌인 기족간의 갈등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한중록>의 저술 배경을 이 책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변명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죽음과 자기 친정의 관계를 부인하고 정조 즉위 이후에 몰락의 길을 걷는 자기 친정에 대해서 손자인 순조에게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한중록(閑中錄)>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작가 이덕일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한중록>만을 읽은 독자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e*****j 2010.10.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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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도세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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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책들을 즐겨본다. 내가 디자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역사학과에 가서 역사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역사란 누구의 관점으로 쓰여졌냐에 따라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여주곤 한다. 그게 역사에 관한 몰입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인것 같다. 판단은 내가 하지만 역사란 정말 알면알수록 재미있는 학문인것이다. 이덕일 선생의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의 감정과 허탈한 마음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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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책들을 즐겨본다. 내가 디자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역사학과에 가서 역사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역사란 누구의 관점으로 쓰여졌냐에 따라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여주곤 한다. 그게 역사에 관한 몰입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인것 같다. 판단은 내가 하지만 역사란 정말 알면알수록 재미있는 학문인것이다. 이덕일 선생의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의 감정과 허탈한 마음이 교차되면서 다시한번 조선의 역사에 대한 애증이 교차됨을 느낀다. 명분없는 인조반정으로 야기된 비극의 시작은 당쟁으로 왕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신하가 나라를 지배하는 어이없는 형국으로 나아간다. 수많은 독살의 의혹과 신하들의 방자함이 이 시기를 전후해서 더욱 많이 보여지는 까닭도 그것이리라... 지금의 정치판이 이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노론의 나라가 당쟁의 그 지겹게 긴 끈들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는것에 울분을 느낀다. 백성의 나라도 왕이 나라도 아닌 소수의 기득권들만 배불리는 그런 나라...그런 유산을 우린 물려받았는가? 소신있는 군주가 기세를 펼칠 수 없는 절망 그리고 고립무원의 쓸쓸함...이책은 좋은 책이다. 또 한번 역사의 교훈과 비정함을 느끼며 이런 시각의 책을 접하게 해준 이덕일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잘 봤습니다. ^^

[인상깊은구절]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인가? 암튼 정조가 왕에 즉위하면서 했던말 ..노론의 당파들이 무척 쫄았던,,
c*****z 2007.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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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왕세자, 사도세자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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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남아 정권을 쟁취한 이들의 손에 의해 역사가 다시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잘못된 역사 속의 내용들이 후대에 고스란히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예가 허다하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 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지금껏 사람들은 혜경궁 홍씨에 대해, 젊은 나이에 영조와 사도세자사이에서 가슴을 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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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남아 정권을 쟁취한 이들의 손에 의해 역사가 다시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잘못된 역사 속의 내용들이 후대에 고스란히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예가 허다하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 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지금껏 사람들은 혜경궁 홍씨에 대해, 젊은 나이에 영조와 사도세자사이에서 가슴을 찢는 아픔과 슬픔을 견디며, 과부가 되었고, 현명하게 처신하여 정조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 가장 한국적인 여인으로 알고 있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이런 사실을 뒤집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즉, 다수가 알고 있는 내용 이외의 숨은 이야기들을 실록에서 찾아내어,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한중록]의 기록이 사실은, 남편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게다가 자식까지 의혹속에 가게 한, 한 여인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도세자''-한 인간으로서, 그것도 축복속에 태어난 왕세자의 신분으로서 그렇게도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억울하고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 앞에 눈물이 났다. 조선시대 거세었던 당파에 희생되고, 변덕스럽던 아버지의 질투와 경계에 희생되고, 목숨이나 집안을 염려하는 생모와 부인에게 희생되었던 사람,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사도세자의 외로움이 책을 읽는 내내 아픔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버님, 살려주옵소서"라고 목놓아 우는 아들을 더운 날, 뒤주속에 가두어놓고 영조는 그 여드레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여 가슴아파 울지는 않았을까?...하지만, 영조는 그 여드레동안 사도세자를 측은히 여겼던 신하들의 신분을 파직하거나, 관련자들을 사형시키는 일에 열중했다. 역사의 기록 어디에도 아들의 고통을 괴로워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왕의 자리와 당론이 자식의 죽음을 앞설 만큼 대단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조선시대...부모자식간의 정, 부부간의 정을 뛰어넘을 만큼, 권력은 탐나는 것이었나보다. 당론으로 얼룩진 어두운 역사의 아픔이다. 정조는 아버지의 고통과 아픔을 가슴속에 묻은 채, 왕이 되었다. 즉위 당일 빈전 문밖에서 대신들에게 하루도 잊지 않았던 가슴 속의 한마디를 선포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노론은 경악했고, 정조 시대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를 추모하면서 펼쳐진다. 막연하게만 바라보았던 수원화성에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의 이같은 노력으로 사도세자의 묵은 한이 모두 풀어졌을리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조 역시 당론의 희생자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역시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남긴채 말이다. 당론이 거세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의욕적이고 넓은 시각을 갖고 있었던 조선의 왕세자들이 왕이 되어 제대로 정치를 펼쳤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쉬움과 울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가 이렇게도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은 역사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성 싶다.
s*******0 2006.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