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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 그렇게 좋았다고 하긴 어렵다. 르귄의 작품들 대부분이 정서적으로 딱 맞는다... 뭐 그런건 아니다. 정통 하드보일드(로저 젤라즈니)나 웅장함(톨킨)이 매력인 판타지에 비해서 약간 힘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때문에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는데에는 일말의 의심도 들지 않는다.
흔히 톨킨의 업적을 '새로운 세계/공간의 창조'에 있다고 하는 평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판타지나 SF들이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형의 재구성이나 토대구축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톨킨은 대단하다. 서구 판타지적 골격을 선이 굵게 설계했다고 할 수 있을테니까. 어스시 시리즈나 헤인인 시리즈를 만든 르귄 역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르귄은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리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대체로... '아 이 세상은 대략 이정도의 구조를 가지는 것 같은데...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군'이란 생각을 가지게 한다.
헤인인 시리즈.. (아직 많이 읽어보질 못하긴 했지만), 그리고 어스시 시리즈도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그가 그려낸 세상의 한 10% 정도만 작품에 직접적으로 사용을 한다. 어찌보면 플롯의 낭비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양장 책 표지 안쪽에 그려져 있는 어스시의 지도 중에서 직접적인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섬들은... 진짜 10%도 채 안되 보인다. 그런데 왜 그런 지도를 그려냈는지... 중간계가 그려진 반지의 제왕과도 다르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소개되는 지도와도 성격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러한 특징... 그게 르귄의 강점이나 독자를 난해하게 하는 측면이다. 서사적인 문체로 지루하게 만드는 톨킨과는 또 다른 성격 말이다.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다.. 라는 평을 르귄은 많이 받는다. 톨킨의 서사적이고 남성적인 문체와 대비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적인 함축성이 플롯과 공간설정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서서히 조여드는 긴장감을 분명 조성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주인공의 낙관적이고 여유로운 인생관은 독자에게 충분한 호흡의 여유도 함께 부여한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주인공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한다는 건 매우 작위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르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의 왜소함을 기꺼히 인정한다. 우주의 광대함과 세상의 신비에 몸의 의탁하는, 그런 인물들이 주인공이고, 그렇기 때문에 부드러운 힘을 지닌 자들이다.
게드, 혹은 새매라는 인물도 그렇다. 1편에서 미숙하고 도발적인 이 인물은 2편과 같은 모험을 통해 점점 세상을 달관하는 도가적인 인물이 되어, 3편에서 어스시의 파국을 막아낸다. 그리고는,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를 새로운 인물에게 맡기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이끌어 낸다. 그게 한 개인으로써는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라고 수용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르귄은 혁명보다는 자기개혁을 선호하는 성향의 소유자이지 싶다. 나찌즘을 경멸한 톨킨이나 공산주의 이상을 상실했지만, 극우주의자의 발흥을 강하게 경계한 하야오와는 확실히 차이를 보이는 정서다.
이러한 작가의 철학이 잘 배어있는 어스시 이야기... 뭐 판타지의 명작, 무게감있는 이야기.. 그런 레토릭들과 함께, 그 어느 작품보다도 판타지적 세계에 잘 녹아있는 인물을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 정서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서 좋았다고 하긴 뭣하지만.. 그래도 아주 감동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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