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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날 수 없는 우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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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를 온 몸에 짊어지고 있는 듯, 흑백 사진 속에 갇혀 있는 그의 모습은 한 폭의 우울함이다. 그 표정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우울했고, 그가 전개해 나간 학문도 우울했으니, 이 모든 우울함을 가능케 했던 시대의 우울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20세기, 인류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부분이 전개되고 있던 그 무렵을 살다간 그였기에 이는 어쩌면 어쩔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
"헤어날 수 없는 우울함" 내용보기
삶의 무게를 온 몸에 짊어지고 있는 듯, 흑백 사진 속에 갇혀 있는 그의 모습은 한 폭의 우울함이다. 그 표정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우울했고, 그가 전개해 나간 학문도 우울했으니, 이 모든 우울함을 가능케 했던 시대의 우울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20세기, 인류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부분이 전개되고 있던 그 무렵을 살다간 그였기에 이는 어쩌면 어쩔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몇몇 이들은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건 그의 삶은 우중충한 회색 빛깔이었다. 21살의 나이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상류 부르주아 계층의 아이들에게 보장되는 경제적, 문화적인 안락함 속에 머물렀던 그는 부모로부터 적지 않은 음악적, 지적 능력을 물려받았고, 이는 그의 철학을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작곡가로서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는 분명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작곡가 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거기에 신칸트주의자였던 그의 지도교수 한스 코르넬리우스의 영향은 그로 하여금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은 연구를 가능케 했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의 삶은 전형적인 상류층의 삶,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는 그리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도, 망명해 있던 미국에서도, 그 어떤 곳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영원한 방랑자, 이방인으로서의 삶. 거기에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의 철학까지. 이것은 어쩌면 유태인이라는 그의 기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는 호르크하이머, 레오 뢰벤탈, 벤야민 등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철학은 부정의 철학이다. 많은 이들이 희망을 말할 때도 그는 인간 이성이 지닌 권력에의 집착을 주목했다. 인간과 자연을 구분 짓고,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과학이 결코 핑크빛 미래만을 보장하진 않음을 예기할 수 있었다. 그에게 과학은 인간의 이성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었다. 주객전도라고 해야 될까? 과학을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 역시 자신으로부터 분리, 객체화 시켰다. 이성은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마치 오늘날 끊임없이 생산성 증대를 부르짖듯,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모든 이들이 말하기에 그래야 하는 것. 인간의 이성 역시 그러했다. 그랬기에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키는 속에서 스스로 도태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발전시킨 문명에 대하여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룩한 발전은 결코 자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발전은 발전이었지만 그것은 자유롭지 못한 발전이었다. 권력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인간을 구속하는, 인간을 객체화시키는 권력이었다. 이러한 틀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아도르노느 끊임없이 허탈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대중문화는 민중에 의한 자생적인 흐름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 엘리트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된, 철저히 민중과는 유리된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대중문화 라는 용어를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우울함의 정서로 인해 진보도 보수도 아닌 묘한 위치에 처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를 지배하는 기제를 파악함에 있어서 그가 보여준 냉철함은 결코 인간의 저항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학문을 상아탑 안에 가둠으로써 그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 든다. 인간의 이성을 배격했던 그였기에, 인간의 이성을 이용한 저항 역시 무모한 것으로 여겨졌던 게 아니었나 싶다. 인위적으로 한가지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에 맞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행위 역시 그에게는 (인간의 이성이 개입한다는 점을 통해 본다면) 또 하나의 파시즘이었던 것이다. 이는 그의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반항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에게 ‘엘리트주의자’라는 비난을 날리게끔 만들었다. (실제로 그가 지닌 풍부한 문화자본 덕택에 그의 저서는 음악에 대한 어떠한 문화자본도 지니지 못한 나에게는 지극히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작곡가가 작품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역사가 작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쇤베르크를 변호하면서 아도르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그로부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어두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가야만 했던 그. ‘아도르노는 죽었다’라는 학생들의 야유와 함께 상처 투성이였던 그의 삶은 조용히 꺼졌다. 하지만 진보는 존재치 않는 듯한 오늘날 그의 이름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온갖 테러리즘, 정의를 위한 전쟁 등이 용납되는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어쩌면 아도르노는 이미 반 세기 전 오늘날을 예측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인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세상, 죽고 죽이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버리는 그 세상을 말이다.
q*****2 2004.10.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