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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신적 스승 하이데거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면, 아렌트가 내세우는 '정신의 삶'도 저절로 가치폄하하게 된다. 그런 정신의 삶과 사유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을까보냐,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이데거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국사(國師)로 자처하며 국가사회주의에 자신이 뭔가 커다란 멘토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망상한 것은 결국 이 철학자의 정신의 삶에 커다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확고한 반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신의 삶》은 사유, 의지, 판단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신활동에 관한 체계적인 성찰이다. 미완의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물론 이 세가지 정신활동의 상호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부재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아렌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제시한 활동적 삶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빚지고 있다면, 정신적 삶에 대한 이해는 칸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가령 칸트의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은 아렌트의 사유함, 의지함, 판단함과 같은 정신능력에 상응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렌트는 세 가지 정신의 삶에 대표적인 철인 모델을 제시한다. 사유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 의지의 철학자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판단의 철학자로 칸트를 각각 내세운다. 그리고 아렌트는 세 가지 정신 능력에 시간적 지향성을 부여한다. 사유함은 우리가 마주치는 현재시점의 세계 내 사물들과 관계되며, 상상력을 통해 다른 정신능력들이 더불어 작업을 하도록 재현물 혹은 후속 사유를 생기게 한다. 의지함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기관이다. 판단함은 우리의 전통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인간적 가치가 있는 예제들을 발견하는 기억의 구역인 보관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판단 및 의견과 우리를 연결시킨다.
《정신의 삶1:사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과 칸트의 판단미학을 모델로 주로 사유함의 속성과 무사유의 정치사회적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렌트에게 사유란 나와 나 자신과의 소리 없는 대화다. 반대로, 무사유는 바로 내부의 대화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아렌트의 말을 빌면, 무사유성이란 “무지하고 분별이 없음, 혹은 어쩔 수 없는 혼동, 혹은 하찮아지고 공허해져버린 ‘진실들’의 자기만족적인 반복”이다. 편협한 지방주의와 반유대주의, 국가사회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종교적 근본주의 등이 모두 무사유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사물에 대한 공통된 인간의 이해, 즉 상식과 공통감각이야말로 세계시민주의와 평화공존의 기초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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