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크 바이올린은 현대 바이올린에 비해 날카롭고 폭이 좁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연주 역시 현대악기 연주에 비해 깔끔하고 선명한 맛을 살리는 데에 포인트를 두고 있지요. 그런데 루시 반 딜의 연주는 색다릅니다. 바로크 바이올린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무척이나 넉넉한 보잉과 느긋한 울림을 내 주고 있지요. 그래서 느린 악장의 경우 특히 빛을 발합니다. 거두절미하고 CD를 들어보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프시코드의 반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처음 등장할 때의 길고 은은한 울림은, 향이 깊고 담백한 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 주지요. ^^ 유명 잡지나 여러 감상자들의 리뷰 모두에서 공통되게 찬사를 보내는 바로 그 [느림의 아름다움]은 정말 새롭고도 신선합니다. 그러나 일장일단. 깊고 은은함이 강조되다 보니, 아무래도 칼같은 맺고 끊음이 기존의 명연주에 비해 부족합니다. 특히 역동적이어야 할 부분들에서 파비오 비온디 류의 탄력적이고 선명한 음 처리에 비해서는 좀 어정쩡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새로운 장점을 취하기 위해 기존 원전연주의 장점을 어느정도 누그러뜨렸다고 해야 할까요? 반 딜의 유려한 바이올린은 원전악기가 감미롭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줄 정도로 새로운 것이지만, 그 느낌을 위해 포기한 것들 역시 명백하기에 이것이 원전연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이 연주는 분명히, 최소한 A급입니다. 저는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바로크 실내악 연주에 개혁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 지 싶어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 기존의 명연주와 비교하자면 빠른 패시지에서의 명쾌함 부족 정도가 단점이 되겠지만, 그러나 상쾌하지는 않을지언정 또박또박 분명하게 각 소절을 처리해가고 있습니다. 어리버리한 것과는 다르죠. 스타일이 틀릴 뿐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하프시코드의 심지 굳고 단호한 리드 덕분인데요, 밥 반 아스팔렌의 하프시코드는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명확한 연주를 들려 줍니다(왠지 레온하르트가 떠올랐었는데, 내지를 보니 역시 레온하르트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의 부족함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깔끔함-선명함-맺고 끊음 등의 표현들이 바로 아스팔렌의 연주가 갖는 장점이지요. (소나타 6번의 하프시코드 솔로는 그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멋진 트랙입니다) 그러한 특징을 가진 하프시코드가 음반 전체를 안정감있고 일관성있게 리드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의 깊이있는 선율이 덧씌워지지요. 무척 고무적인 콤비플레이입니다. 하프시코드가 화음의 카펫을 깔아 놓으면 그위에 바이올린이 서서 노래하는 것이죠. 원전연주의 시대에 "그윽하다" 라는 말을 쓰게 만드는 연주가 나올 줄을 누가 예상하고 있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종류의 [느긋한 원전연주]가 얼마나 호응을 얻고 지원군을 갖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로운 스타일은 분명히 칭찬받을 만 하지 않을까요? ^^ 개인적으로 원전연주는 아직까지 발전과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온 연주들로 볼 때 반 딜과 아스팔렌의 콤비는 단연 톱클래스에 속하며, 그래서 남들에 비해 뒤쳐지는 연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연주에 만점을 주겠습니다. 날카로움이 부족한 대신에 환상적인 깊이를 갖고 있는 연주와 기존의 명연주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는, 취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평가의 우열은 아무래도 가릴 수가 없네요. ^^; 아참, 녹음 좋습니다. 낙소스 제품번호 8.554*** 이후의 음반들은 거의 다 녹음이 좋지요. 바이올린의 깊은 울림이 주는 감질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하프시코드의 울림도 깊이있게 잡아냈구요. 밝고 화사한 Virgin이나 DG의 바로크 녹음들과는 달리 낙소스의 바로크 녹음은 대체로 약간 깊고 어두운데, 저는 낙소스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같은 구절에서도 보다 절절함을 더 느끼는 쪽이 더 좋아서 말이죠. +_+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 또 하나. vol.2에서는 6번 소나타의 여러가지 버젼 중 선별된 몇몇 악장을 수록하고 있어 오리지널 악장과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음, 가격대비 성능 또한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린다면, 간접광고 수준이 되는군요...이제 그만~ ^^ Fortu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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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보곤 CD외엔 앞표지와 맨뒷장의 수록곡 목록만 달랑 들어있을거라고 짐작했지만, 예상밖에 영어, 불어, 독어로 된 바흐의 일생과 각곡에 대한 설명이 든 8장의 부클렛이 들어있었다.
BWV1017을 듣고선 살자쿵 반해서 바흐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곡 6곡이 다 함께 들어간 것을 찾다가 요거 (volume 1)이랑 volume 2를 사들였다. 근데 예상되로 volume 1에선 BWV 1014~1016, 즉 4작품중 처음 3작품을 듣는데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의 볼륨이 균형적이지 않아 바이올린 소리가 압도적으로 들렸다. 약간 실망하고 있는데 들은 4번째이자 바로 그곡 BWV 1017은 균형이 맞았다. 안의 녹음 스케쥴을 살펴보니, 런던 하이게이트의 세인트 마이클성당에서의 녹음은 BWV 1017만 따로 나중에 이뤄졌다. 다행이었다.
여하간, 바흐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또는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6곡은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많이 작곡, 연주되었던 바이올린작품들의 영향으로, 바흐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무반주와 2중주 소나타 사이를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중에서 BWV 1017이 유독 내 관심을 끈 것은, 바흐가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작곡했던 것이기에 이 작품에선 '느리고-빠르게-느리고-빠르게'의 소타나 양식이 그저 형식이 아니라 바흐의 감정이 느껴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런 사별등의 내용을 알기전에 미리 Largo부분에서 무언가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인지라 피아노솔로곡 등으로도 사랑받는 이곡을 통해 대가의 마음 한조각을 엿본것 같아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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