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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시리즈를 통해서 미학수업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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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과 지식이 그러하겠지만 예술 또한 천재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나는 천재성과 창의성의 사전적 의미에도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고 전문적 분야에 두각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이제껏 남들 하는 것처럼만 성실하게 공부하고 살아왔다면 좋았을텐데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많아졌다. 5월에 다시 읽은 <미학 오디세이>시리즈와 같은 전문서를 읽게 되면 예술분야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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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과 지식이 그러하겠지만 예술 또한 천재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나는 천재성과 창의성의 사전적 의미에도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고 전문적 분야에 두각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이제껏 남들 하는 것처럼만 성실하게 공부하고 살아왔다면 좋았을텐데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많아졌다. 5월에 다시 읽은 <미학 오디세이>시리즈와 같은 전문서를 읽게 되면 예술분야와 관련되는 역사, 철학, 인문, 음악, 미술, 문학에의 목마름이 끝임없이 밀려온다. 총체적인 지식의 실체를 명확하게 꿰지 않고선  이해는 물론 접근이 불가하기에 이 시리즈를 계기로 다양한 학문적 체험과 미학의 중심에 서 있는 유럽이란 동네를 샅샅이 뒤져보고야 말겠다는 결심까지 선다.

한 때 세상 사람들의 떠받듦으로 하늘에 닿을 만한 곳에 고고히 서 있던 신전의 위용은 힘을 가진 자와 힘을 잃은 자 사이의 결탁과 담합으로 기브 앤 테이크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상은 사라지고 권력이 난무하는 곳에 신전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터키의 고대 왕국이었던 페르가몬에는 그 신전의 유적지만 남아있다. 실제하는 신전은 통째로 떼어내져 콘크리트 구조물과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사방이 막힌 박물관 천장아래 무뚝뚝한 경관의 통제속에 오늘도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한다. 신들이 살았던 세계는 그토록 견고했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를 넘어서 세계를 지배하고 그 속에 떠다니는 부유물들을 세속화하였다. 처음 이 책을 읽고는 얼마되지 않아 베를린으로 달려갔다. 과거 견고한 세계를 만들었던 그 신전을 보기 위해서이다. 하얀 대리석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석상들의 부조물과 하늘로 통하는 계단은 바로 과거인이 보고자 했던 세계 자체였을 것이다.  

고전학파의 사실화에 가까운 세밀한 묘사는 무지한 인간의 눈으로 사실을 똑바로 보게 했다. 바로크의 루벤스는 멀리서 보면 꿈틀거리듯 살아움직이는 그림들로 사람들의 눈을 조금씩 흐릿하게 만들어놓았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루앙성당은 사물에 빛이라는 조명을 들이대며 사실적인 묘사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그 곳에 실제하는 실체의 모습을 감추고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실체를 묘사했다. 사물은 안개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명확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세상이 다각도로 변화되는 것처럼, 그래서 사실은 알 수가 없고 추측만 난무하는 일이 많아진 것처럼, 조명을 들이대고 멀리서 보면 그 형체는 보이지만 그 내용은 미궁속에 빠져버리고 만다. 빛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시던 학창시절 미술선생님은 인상주의의 자세한 내막을 알고 우리에게 지식을 던져주셨을까, 아마도 의문점을 갖고 질문을 하게 하려면 뭐든 실제로 봤어야 했다. 세포가 한창 신선한 시기에 반짝이는 감각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공자가 없었으니 얼마나 불행했던가. 보긴 뭘 보겠나 냉큼 자리에 앉아서 내일 있을 중요과목 시험공부나 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깐...

현대의 예술은 조금 수상하다. 개인적으론 마티스, 피카소는 고사하고 르네 마그리뜨나 살바도르 달리는 도통 이해가 불가하다. 클레나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사실화로 펼쳐놓으며 이게 추상화하기까지의 과정을 밀도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 때만 대충 알고 넘어가는 식이 전부다. 실제로 봐도 잘 모르는게 현대미술이고 위아래 구별도 안되는 혹은 색깔 하나만 덩그러니 칠해있는 그런 작품들을 보면 망각의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라고 전시한 건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인지도나 잘못 그린 작품하나에 의미부여를 잘하는 현대 비평가들의 허를 찌르는 평가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형식적으로 고정된 의미들을 얻어 가는 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개인의사고와 자유로움을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페쇄적인 감상이 그런 것이다.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그림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작품이 된다. 때때로 유명세를 치루는 예술작품들에 불명예스러운 위작들이 따라다니곤 한다. 실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진짜인 체 행세하는 것이다. 루브르의 방탄유리에 갇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진짜일까, 그런 즉 에드아르 뭉크는 같은 작품을 회화와 판화로 동시에 그려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절규>는 뭉크 미술관에 하나, 국립미술관에 다른 하나로 전시중이다. 앤디 워홀은 아예 자신의 작품에 대량생산이라는 개념을 덧붙였다. 마릴린 먼로의 다양한 형상들이 그것이고 수퍼마켓의 상품진열장에 빽빽이 들어찬 같은 상표의 저장식품처럼 예술의 형상과 본질은 사라지고 비슷하게 생긴 같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모방이 아니라 실제 같은 것들이 수없이 생산되는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무한 번식하게 된다.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이 무한 번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현재도 매트릭스의 세계와 다를 게 없다. 그림속 사실은 사라지고 평가여부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는 예술 작품처럼, 사물을 더욱 사물답게 찍어주는 디지털 카메라 복제기술이 원본과 사본의 간극을 없애버린 것처럼, 로그인만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본질은 무시된 채 사사로운 감정으로 순간 삭제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판화가이자 건축가였던 피라네시의 감옥을 주제로 한 고대 그리스풍의 판화속 내용은 언뜻보면 실제하는 거대한 성채의 내부같다. 이론상으론 비합리적인 건축 구조물의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미학의 역사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사라짐의 미학은 물론 눈에 보여지는 형상과 그 안의 본질이 극한 차이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눈을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b*******e 2011.05.28. 신고 공감 14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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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장자의 꿈인지, 장자가 나비의 꿈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인지, 장자가 나비의 꿈인지.." 내용보기
저자의 [미학 오디세이]는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이 에셔와 함께 가상과 현실을 탐험하는 원시, 고대, 중세, 근대예술에 대한 미학이었다면, 2권은 현대예술에 대한 미학을 마그리트와 함께 소통의 도식으로서 탐험했다. 그런 저자가 마지막 3권에서는 탈근대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전작에서 에셔와 마그리트를 통해 이율배반을 선보였던 저자는, 이제 18세기 이탈리아의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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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미학 오디세이]는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이 에셔와 함께 가상과 현실을 탐험하는 원시, 고대, 중세, 근대예술에 대한 미학이었다면, 2권은 현대예술에 대한 미학을 마그리트와 함께 소통의 도식으로서 탐험했다. 그런 저자가 마지막 3권에서는 탈근대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전작에서 에셔와 마그리트를 통해 이율배반을 선보였던 저자는, 이제 18세기 이탈리아의 바로코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연작을 통하여, 우리에게 탈근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전에 알아야 할 예술적 모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근대와 현대는 어떻게 나누어지는 것일까? 나는 근대와 현대가 딱히 다른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둘 다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라는 것이 있어서 근대가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던modern과 현대를 가르는 기준이란 새로운 것, 새로움의 추구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근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작품은 더 이상 교회의 필요가 아니라, 세속의 필요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나 싶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19세기까지 사람들이 세계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고전적인 세계의 붕괴는 고전적인 예술의 붕괴로 이어졌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자연을 모방하며, 그것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 올렸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가상이 탄생하고, 그 속에서 예술과 사회, 이상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라는 세상은 화폐라는 추상적 관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고, 그러기에 예술은 사람들을 따라서 추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낡은 세계의 무덤 위에서, 산업자본주의에 의해 지탱되는 현대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사실 근대미학은 작품의 진리를 예술가의 주체성의 표현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체를 중심으로 예술이 전개되는 것이 근대 형이상학의 한계이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탈근대의 지평을 연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여 작품을 통해 말 하는 것은 화가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벤야민, 하이데거등의 독일 사상가들이 마련한 진리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로 대변되는 프랑스 철학자들에 의해 급진화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기에 데리다에게 있어 그것은 해체의 대상이었고 유령이 되었던 것이다.

 

피라네시가 보여주었던 감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감옥이 아니다. 허구의 감옥인 셈이다. 보는 사람은 그 감옥에서 시각적인 결함를 분명히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런 시도는 번번히 좌절될 뿐이다. 도리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옥에 갇혀 있는 공상을 하게 만들고 탈옥을 꿈꾸게 만든다. 그런데 문이 보이지 않는다. ,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은 입구도 출구도, 시작도 끝도 없는 미로를 연상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가올 세계의 영상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상상은 기술과 결합하고, 공상은 실재와 얽히는 우리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세상은 또 다시 바뀌었다. 카메라의 등장은 회화의 위기를 가져왔고, 또한 그러한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모네가 그렸던 연꽃은 시뮬라크르(복제의 복제) 이지만, 현대의 영상은 원본없는 복제가 되었다. 회화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었을 때, 그때 세계와 재현은 닮음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세계는 사라지고 재현은 해체되었다. 예술이 아직 재현이었을 때, 현실은 원상이고 그림은 모상이었지만, 복제는 원본과 일치할 때 참된 존재이었지만, 이제 미디어는 예술로 하여금 재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미디어, 즉 사진, 영화, 영상은 모상과 원상, 복제와 원본, 가상과 실재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해지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참과 거짓의 구별마저 흐려지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가상이 현실을 위협하였지만, 이제는 현실이 가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예술이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실재고 무엇이 가상인지,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사라지는 것은 예술만이 아니라고 하는 저자는, 이제 우리는 실재와 허구가 복잡하게 뒤엉킨 새로운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렵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3권을 일독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책을 읽기 전에도 몰랐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에도 선뜻 무어라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가상과 현실로 풀어가는 저자의 미학은 나에게 장자가 나비의 꿈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다. 조만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k*****1 2011.08.24. 신고 공감 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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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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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시리즈의 완결판인 3권에서는 현대예술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세계를 탐험한다. 1,2권에서 현대 이전의 미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던 에셔와 마그리트의 역할은 18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피라네시가 맡게 된다. 또한 삽입된 대화편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에 디오게네스가 끼어들어 근대적 사유를 벗어나는 새로운 탈근대의 사유를 설명한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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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시리즈의 완결판인 3권에서는 현대예술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세계를 탐험한다. 1,2권에서 현대 이전의 미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던 에셔와 마그리트의 역할은 18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피라네시가 맡게 된다. 또한 삽입된 대화편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에 디오게네스가 끼어들어 근대적 사유를 벗어나는 새로운 탈근대의 사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예술에 나타난 아름다움(미)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새로이 등장시킨 인물들의 어떤 사람들인가? 먼저 피라네시는 합리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상의 감옥' 연작을 통해 유럽사회에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촉발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현실주의와 근대적 합리주의사상을 대변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대철학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예술, 특히 마티스, 클레, 칸딘스키, 마그리트, 피카소, 앤디 워홀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그리스 조형예술이 가지는 형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러 대상들을 기하학적 도형에 가깝게 단순하게 한 것도 있는가 하면 구성도 포기한 채, 그저 사각형, 원형, 십자가를 무채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물의 외양을 모방하지 않고 사물 속에서 보이지 않는 본질적 요소를 옮기려고 노력한다. 일반 대중들과의 공감과 소통이 어려운 것들도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다.

현대예술은 '사라짐의 미학'을 추구한다. 회화는 더이상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세계를 재현하려는 원리는 파괴되었다. 화폭 속의 형상들은 견고함을 잃고 흐물흐물 녹아버려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19세기 카메라의 발명으로 재현의 과제를 카메라에 넘겨준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 존재를 현시(presentation)하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사진과 영화의 발전은 원작과 복제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정확한 의미의 원작이 없다. 원본 없는 복제, '시뮬라크르'가 현대예술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사실 현대사회도 대량 복제생산의 시기이다. 이런 자본주의하에서 예술은 유일물을 만드는 장인적 생산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현대예술이 남들과의 차이를 추구하는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생소한 미학의 세계를 소개하는 이 책을 읽고서 현대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들인지 흐릿하지만 큰 방향을 느끼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너무 많은 철학적, 예술적, 사색적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난 아직도 장님 코끼리 만지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c******4 2011.03.15.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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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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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편에선 현대 포스트모드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보르헤스의 문학 세계관을 도입해 피라네시의 상상의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온통 보르헤스의 철학적 세계관이 넘쳐나는 이 책은 마치 보르헤스에 대한 저자의 오마주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현대 예술 전반을 이해함에 있어 보르헤스의 철학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음을, 또한 보르헤스의 문학 세계의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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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편에선 현대 포스트모드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보르헤스의 문학 세계관을 도입해 피라네시의 상상의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온통 보르헤스의 철학적 세계관이 넘쳐나는 이 책은 마치 보르헤스에 대한 저자의 오마주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현대 예술 전반을 이해함에 있어 보르헤스의 철학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음을, 또한 보르헤스의 문학 세계의 뛰어남을 또다시 입증하는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라네시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판화가, 고대 그리스를 예술의 전범으로 삼던 시절에 고대 로마 유적들을 동판에 담아 로마 건축의 위대함을 알려준 작가다. 책 전반에서는 걸쳐 피라네시의 동판을 통해 그의 작품이 현대 예술 세계에 어떻게 비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 예술은 '원본 없는 복제' 그래서 우리들은 그러한 작품을 통해 객관적인 생각을 끌어내기보다는 다분히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경향을 더 지향할 수밖에 없음이 또 하나의 현대 예술이 가진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나 사물이 무한히 또다른 사물들로 표현되는 시뮬라크르로 재현이 아닌 또 다른 복제가 무한하게 생성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면서 보르헤스의 문학 세계의 특징을 대표하는 패스티쉬(혼성모방)가 자연스럽게 이 책의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대상성이 사리진 현대 예술 작품의 추상성에 사람들은 칸트의 '형식미학' 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으로 예술의 본질을 고전주의 작품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형식에서 그 미를 찾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제기한다.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당연함이 현대 예술에 대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예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현대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모든 형식과 미적인 것에 대한 파괴로 이제 예술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자세가 어느 정도 바뀌어야 하고, 그러한 형식의 파괴, 즉 형식을 지향하는 무형식에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예술의 다소 사기적인 측면또한 고려하면서 바라보는 자세가 맞지 싶다. 작가들이 작품 세계에 부여하는 의미를 관람자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다분히 미술 평론가들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미사여구와 철학 사상을 가미시켜 표현하는 현란함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지 않은가. 여기서 몇 달 전에 읽은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가 더 의미있게 다가옴은 어쩔 수 없다.

 

저자는 현대 예술이 갖고 있는 다양한 복제와 그 의미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디어의 발달로 어쩔 수 없는 미술 변화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대 예술 작품에 있어 작품에 대해 가하는 허울이 관람자의 시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덮어버리는지도 살짝 꼬집고 있다.

 

형식적인 파괴, 보이지 않은 그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 현대 예술 작품에 그 어느 때보다 피로함을 느끼고, 혼란과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나 한 사람만의 생각일까.

상투적일 수 있는 대상들 속에 감춰진 무한한 형상들을 펼쳐보이는 것도 의미있지만, 관람자들의 생각까지 형상들에 감춰진 의미를 파헤치게 하는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갈수록 더욱 형식의 고갈에 대한 현대 예술이 가지는 한계점이 드러남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일 수도 있다고 본다.

 

온통 환상과 가상 세계를 여행한 3권을 통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진짜 세계인지, 좀 전에 본 세계가 진짜인지조차 헷갈린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현대 예술의 환상의 놀이 세계로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m******9 2012.09.15. 신고 공감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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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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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3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만만찮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이 담보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중심에 분명 미술이 있지만 철학과 수학이나 과학 등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학문 간의 소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완결판으로 3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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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3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만만찮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이 담보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중심에 분명 미술이 있지만 철학과 수학이나 과학 등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학문 간의 소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완결판으로 3권에 이르렀다. 1,2권이 근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쳤다면 3권은 그 중심에 현대예술과 철학이 담겼다. 1,2권과 형식은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3권에서는 ‘피라네시’를 따라가고 있다. 피라네시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건축가이면서 화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대화체의 중심이 1,2권에서는 플란톤과 아리스였다면 3권에서는 그 둘에 디오니게네스를 초대했다. 둘 보다 앞선 시대 사람으로 이들의 대화를 부추 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미술이라고 하면 우선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이 점이 예술과 대중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으로 그림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 모두 같은 생각과 느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보고자 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나마 공감하는 꺼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그 꺼리가 불분명하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인상이 현대미술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여전히 고전적인 미술의 지평은 대단히 넓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고전 예술과 현대 예술에 대한 저자의 구분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 현대 예술의 모호성은 바로 대중과 예술이 공유하는 코드의 상실로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오직 예술가 자신만의 코드를 만들어 내고 대중과 공유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난해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점이 현대 예술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을 모방하거나 예술가의 새로운 창조라고 하더라도 화폭에 담겨졌을 때 그것을 발보고 인식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생각에 의해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과 이를 역으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공감과 소통이 중심이 아니라 창조자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으로 변화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미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에서 ‘낭만주의’로 다시 ‘현대 예술’로 이어지며 그러한 변화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이 철학 등의 사상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며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하기에 저자가 주로 이야기하는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의 독일 사상가, 그리고 푸코,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 등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미학을 전개하고 있는 사상가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3권에 걸쳐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며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흐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은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동떨어질 수 없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특히, 세계인식에 대한 사상사적 흐름과의 관계는 주목해서 보았던 점이기도 하기에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렇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인 예술은 여전히 어려움 부분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 예술이 대중과의 교감을 코드로 상정하지 않고 예술의 창조자들만의 독자적인 코드가 만들어져 온 점에 대하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작품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조그마한 공감이라도 찾고 싶은 순수하한 아마추어라 어쩔 수 없는 한계 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간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소통이 전재되지 않는다면 그 예술이 추구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미학을 이야기 하는 책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평이 대부분이기에 일반인이 미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란 좀처럼 어렵기만 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그러한 아쉬움을 덜어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m*****8 2011.03.11.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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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힘든 완성도 높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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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미학자 진중권 보다는 진보 논객 진중권을 더 좋아한다. 40줄이 넘은 나이, 철학자, 서울대 출신, 우리나라의 대표적 논객이란 관념들만으론 그를 이해할 순 없다. 이건 마치 이 책에도 나와 있는 형과 색을 파괴하는 탈근대적인 회화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이라고 할까? 아무튼 어떤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본문 내용 보다는 구성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보기 힘든 완성도 높은 책이다." 내용보기
개인적으론 미학자 진중권 보다는 진보 논객 진중권을 더 좋아한다. 40줄이 넘은 나이, 철학자, 서울대 출신, 우리나라의 대표적 논객이란 관념들만으론 그를 이해할 순 없다. 이건 마치 이 책에도 나와 있는 형과 색을 파괴하는 탈근대적인 회화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이라고 할까? 아무튼 어떤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본문 내용 보다는 구성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재치와 능력을 이야기 하고 싶다. 보드리야르, 푸코, 벤야민, 보르헤스,들뢰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사상을 미학의 관점에서 풀어쓰고 있다. 미학이란 분야내에서 찰학자들을 이야기 하다보니 철학자들의 생각의 국소적인 부분만 설명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다면 걱정 하지말라. 내가 본 어떤 책보다 재치있고 이해하기 쉽게 그들의 사상을 포괄적인 범위에서 설명해 준다. 책의 구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있다. 예술작품과 내용, 거기에다가 이번 3편에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디오게네스 까지 끌어드려 쉽지 않은 부분을 친절하고 재기발랄하게 설명해준다. 본문을 살포시 이야기 하자면 작가는 현대미술을 료타르의 설명에 근거하여 숭고함을 나타내려 한다고 말해주고, 이외에 또 다른 한 축으로 시뮬라크르(복제의 복제, 원본보다 더 실재 같은 복제)를 말한다. '우리시대에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이 가장 적격일 것이다. 예술의 의미를 초월해 사회 전반에 잠재해 있는 비물질적 에너지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i********7 2004.04.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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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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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로 인해 카메라, 영화 등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서 현대예술이 어떻게 진행해가고 있는지를 기술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화가 모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근원인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현대예술을 이야기한다.획일성과 비인간성의 사회에 항의하며 기존의 소통 코드를 깨고 새로운 형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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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로 인해 카메라, 영화 등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서 현대예술이 어떻게 진행해가고 있는지를 기술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화가 모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눈에 보이는 '존재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근원인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현대예술을 이야기한다.
획일성과 비인간성의 사회에 항의하며 기존의 소통 코드를 깨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가는 현대예술의 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현대예술에 대한 관점 포인트를 잘 안내해주고 있다. 더 이상 이해받기를 포기한 현대예술, 그 끝은 어디인가 궁금증을 갖게 한다.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술 작품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그리는 것만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던 나의 좁은 미술관(美術觀)이 좀더 넓어지게 되었다. 

 

저자의 글쓰기 실력은 책을 읽는 도중 높은 파도가 쳐도 포기하지 않고 잘 헤쳐나가도록 해준다. 1, 2권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3권에는 디오게네스까지 대화를 통해 어려운 내용을 정리하고, 자기의 통찰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능력에는 절로 탄복이 나온다.

 

미학이란 결국 인간 정신의 표현일 것이다. 인간은 그 시대의 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예술 역시 그 시대 정신의 영향을 받는 것, 아니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예술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말하고 있다.

예술, 미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정신과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또 다르게 전개될 지를 예측해보는 재미속으로 배를 띄워 보시라.



j***h 2008.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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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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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배척하는 두 단어가 만나 한 단어를 만들었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가상은 현실이 아니로 현실도 가상을 밀어낸다. 물론 이 단어의 뜻은 현실같이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말한다. 하지만 세계는 점점 가상과 현실의 벽이 낮아지고 오묘하고 맞붙어간다. 블랙혹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화이트 홀은 다시 내뱉는다. 이 두 개의 홀 사이의 통로는 매우 가깝다. 이번의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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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배척하는 두 단어가 만나 한 단어를 만들었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가상은 현실이 아니로 현실도 가상을 밀어낸다. 물론 이 단어의 뜻은 현실같이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말한다. 하지만 세계는 점점 가상과 현실의 벽이 낮아지고 오묘하고 맞붙어간다. 블랙혹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화이트 홀은 다시 내뱉는다. 이 두 개의 홀 사이의 통로는 매우 가깝다. 이번의 3권은 1,2권보다 더 혼란스러워 진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 다룬 혼란을 더 체감적으로 경험하는 셈이다. 모르는 걸 모르고 다시 망각한다. 다시 책의 끝에서 첫 페이지 '모든 새로운 것은 단지 망각일 뿐....'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시뮬라르크....그리고 숭고 끊임없이 피라네시의 감옥과 에셔의 괘도에서 헤멘다. 궁금한 건 이 미로를 어떻게 나가야만 하며, 그 금기의 한 문장은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 번...아니 2번 더 읽어봐야 겠다.
l******e 2004.08.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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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피라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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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학오디세이3권을 읽었다. 아...6월 말에서 7월 초에 몰아친 사건사고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 미학오디세이3! 책상위에 조용히 나를 기다리던 유난히 어두운 표정의 3권 속으로 GO!GO! 솔로몬 왕의 말이 벌써 세번째 인용되는 것임을 굳이 밝히는 저자의 입담을 시작으로 미학오디세이3은 시작한다. 저자는 탄탄한 지식의 기반위에 주관을 담뿍담아 그 만의 이론을 펼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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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학오디세이3권을 읽었다. 아...6월 말에서 7월 초에 몰아친 사건사고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 미학오디세이3! 책상위에 조용히 나를 기다리던 유난히 어두운 표정의 3권 속으로 GO!GO!

솔로몬 왕의 말이 벌써 세번째 인용되는 것임을 굳이 밝히는 저자의 입담을 시작으로 미학오디세이3은 시작한다. 저자는 탄탄한 지식의 기반위에 주관을 담뿍담아 그 만의 이론을 펼친다. (난 편식이 심하고 귀가 얇은 위험한 독자이지만 그의 이론은 왠지 믿음이 간다.ㅎㅎㅎ)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태양은 역시, 맨눈으로 볼때 아름답다"라고 말한 센스있는 조선의 왕이 대체 누구신지 너무너무 알고 싶다. 역시...달따려다가 강에 빠져 달로가신 이태백님의 지역아닌가~! 운치있는 동양이 난 좋다!ㅋ 

특히나 글머리에 쓰인 '월인천강지곡'은 유난히 운치있다. 달밤에 창가에서 꽃잎 띄운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시며 글을 쓰신겐지...

 

방바닥에 둥글게 호수를 토해놓고 그 위에서 출렁거리는 달~ 수 많은 사람들이 나눠가져도 남을 달,달,달!!!달이 사라진 세상에 달의 그림자들이 저 홀로 생겨났다 스러지며 제 멋대로 살아간다? 달은 어디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작은 반딧불이 엉덩이에서 뿜어져나올 수도 있고, 강물에 비친 별빛이 모여 점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달은 단순히 해의 복제품이 아닌 것이다! 아...신선하다. 톡톡 튀는 상큼한 생각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하지만 은근 끝맛이 씁쓸하다. 원본없는 세상위에 복제된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나'의 모습이 순간 색이 사라진 회색TV 속의 인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흠;;;

 

씁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벨의 언어를 읽으며 학창시절 무의식적으로 번호에 응답했던, 주민번호를 당연시 외우고 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만 유의미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이에게는, 사회에게는 13자리 주민번호로 인식될 뿐인 내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번호로만 불리는 것에서 죄수들이 떠올랐는데 그 외에도 번호로 인식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제는 익숙해져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이제는 어딜가나 번호를 뽑는게 익숙해진 나. 가슴이 답답해졌다.

 

타락한 바벨의 언어가 아닌 아담의 언어를 보는 미메시스의 능력! 예술가들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그 능력에서는 은근 기분이 좋았다. 사물과 대화할 수준은 아니지만 으레 사물이나 동물을 보며 의인화시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내가 동물의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생각해보면 걔네를 인간화 시켜 생각했다.-_=;흠...;; 

 

난 이 책이 좋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고 저자의 위트있는 글맛도 좋고, 근데...근데! 답없이 질문만 써놓는건 반댈세! 왕과 시인과의 일화를 친절히 알려주고 마지막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 건 뭔 심뽀란 말인가! 호기심만 잔뜩 자극해놓고~!!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제공해주었지만, 덕분에 뇌가 1평은 넓어진 듯 하지만, 가려운 데 못긁은것마냥 매우 찝찝하다. 세상에 정답이 어디있겠냐마는 그래도, 시인이 말한 대답은 있을거 아닙니까~!부디...미학오디세이4권을 쓰시고 답을 넣어주시든지, 별도로 알려주시든지...알려주시길 바란다.

 

단 한번도 나는 '내 존재'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다. 내 존재,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른다니...한문시간에 꿈에 관한 고사성어에 낑겨있던 장자와 나비의 일화. 아무생각없이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가 이렇게 심오한 뜻을 담아 내 뒷통수를 후려치다니. 멍-하니 허공을 봤다. 이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세상이라 입으로는 말하며 혀를 차댔지만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의심은 한 적이 없다. 이 세계가 허구라니, 누군가의 '꿈'이라니...으~생각하기도 싫다.

 

벗어날 수 없는 윤회바퀴 속에서 '꿈'으로 놀자는 디오게네스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그의 생각대로 살면 조금 더 집착하지 않게 되고, 조금 더 고민하지 않게되고, 조금 더...편하게 이 세상을 즐길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오게네스, 너무 일찍 만난 것 같기도 하고...ㅎㅎㅎ 내 머리를 가슴을 몰랑몰랑하게 해준 미학오디세이 시리즈가 끝났다. 3권이 1권인냥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좋았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아리스와 플라톤은 이제 어디서 만나지?ㅋ 이제는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맛있는 문체를 만나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 아무래도 신비롭고 재미있는 그림과 아리스와 플라톤이 그리워질 것 같은데, 4권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d*****4 2009.07.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