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화기 소설 중에 안국선의 『禽獸會議錄(금수회의록)』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최초로 판매 금치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나’가 꿈에서 본, 여덟 마리의 동물들이 회의를 열어 주장하는 내용을 기록한 액자소설입니다. 동물들은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 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며 인간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화 소설(寓話小說)이며 정치 소설(政治小說)로서 강한 계몽성을 띠고 있는 셈입니다. 안국선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동물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인간들을 성토한다는 발상의 『동물 회의』는 훨씬 흥미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 발상을 떠나서라도 『동물 회의』는 재미있습니다. 안국선의 소설처럼 문제 제기만으로 끝나지도 않고, 안이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니, 동물들이 동물 회의를 하기 위해 묵게 된 동물 회관을 묘사한 대목입니다.
악어에게는 악어새를 몇 마리 구해다 줘야 했다. 악어새들은 으레 그래 왔듯이 딱 벌린 악어의 입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빨 청소를 했다. 기린 레오폴드는 두 층 짜리 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레오폴드가 묵을 아래층 방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그래야 그곳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을 테니까! 올빼미 울리히는 어두컴컴한 방을 부탁했다. 열대의 나비들은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꽃을 주문하면서 싱싱한 꽃들로만 갖다달라고 했다! 쥐 막스는 방은 필요 없으니 쥐구멍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최신식 건물에 쥐구멍이라니!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곤란한 것은 황소 라인홀트의 주문이었다. 라인홀트는 지배인을 불러서 혼자서는 너무 심심하니까 예쁘고 알록달록한 암소 한 마리를 보내 달라고 했다. 호텔 지배인인 황새 마라부는 깃털에 맺힌 땀을 닦아야 했다. (66 - 69쪽)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세상을 향해 머리를 짜내는 동물들의 모습이 즐겁습니다. 동물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인간 세계의 정상들은 마침내 동물들이 준비한 조약서에 서명을 하게 됩니다. 조약서 내용을 보면 에리히 캐스트너가 꿈꾸는 세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항은 모든 국경 초소와 울타리를 철거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국경이 없는 세상입니다. 둘째는 군대와 모든 무기를 없앤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경찰은 활과 화살로 무장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상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넷째는 사무실, 관청, 서류함은 꼭 필요한 정도로만 줄인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공무원은 교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드는 행복한 세상을 보며 즐거워하는 독자에게 에리히 캐스트너는 마지막 선물까지 잊지 않고 선사하니 그 역할은 지렁이에게 돌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