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짧게 말해서 나는 윤대녕 소설의 팬이다. 그런데 이번 창작집 <누가 걸어간다>는 좀 실망스럽다. 부연하자면 난 윤대녕 소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왔다. 통상 ‘존재의 시원을 찾아 떠나곤 한다’는 윤대녕 소설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고독과 위트를 사랑하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늘 현재 서울의 풍경은 항상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작가만의 참신한 문체가 좋았다. 우리말과 우리 문학에 대한 각고의 연구와 노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한 느낌은 <은어낚시통신>에서 <미란>까지 여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걸어간다>에서 난 뜻밖의 사실을 목도해버렸다. 예전 창작집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읽으면서, 혹시나 작가가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 의혹의 확증을 얻은 듯하다. 2. 혹자는 윤대녕 소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류 혐의를 찾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일본 사소설의 기미가 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단편들이 그렇다. 뭐, 작가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사소설도 좋고 윤대녕도 좋다. 사소설들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애잔한 맛이 좋다. 그리고 윤대녕 소설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작집 <누가 걸어간다>에서 나는 사소설의 그러한 장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신변잡기적일 뿐이다. 고독한 자아를 과장스럽게 그려놓아 오히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올빼미와의 대화), 우연성의 남발은 차라리 TV드라마보다 못하다(찔레꽃 기념관). 어떤 것은 하루키도 아니고 사소설도 아니고 윤대녕도 아닌 듯싶게 어수선하다(흑백텔레비전 꺼짐, 무더운 밤의 사라짐). 안타깝다. 그나마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에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 소설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남성성이 그럴듯하게 다가올 뿐이다.(eg. 새조롱을 드높이) 아, 도대체 윤 선생님은 섬에서 무얼 하고 계신 거죠? 설마 <올빼미와의 대화>의 화자처럼 유유자적하시다가 마감이나 겨우 맞춰 신작들 팔아먹는 재미로 지내시는 건 아닐 테죠? 만약 그렇다면, 슬픕니다. 다른 작가들이 그런다면 또 몰라도 윤 선생님은 그렇게 퇴락해버리기엔 그 ‘존재’의 광도가 너무나 눈부시었습니다. |
|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등 그의 작품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일상의 늪에 빠져있는 인간들에게 충격적인,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했던 게 사실이다. 그는 독특하고 민감한 더듬이로 우리 삶의 깊은 곳의 상처를 드러나게 하고, 피가 흐르게 하였으며 그리고 그 위에 치유제를 발라 주었다. 그러나 미란에 이어 눈의 여행자를 읽으며 솔직히 나는 그의 이즘 작품들이 윤대녕의 작품인지, 윤대녕을 흉내낸 자의 글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TV 드라마 작가 000을 그렇게 닮아가는지. 어쩌면 그렇게 단순화되가는 인간들, 냄비처럼 끓는 세인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기 위해서만 그의 재능을 할애하는지 답답하다. 서사란 세상의 모습을 잘 바라보고 세상이 왜 그런지를 밝히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작가는 눈을 씻고 부비어야 한다. 그의 초기작품들에 비해, 이즘에 발표되는 작품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전혀..... 아니다. 그가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듯하여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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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표지는 금세 나를 윤대녕만의 세상으로 이끈다. 네 번째로 만나는 그의 소설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그 설렘을 기억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소설들, 혹독하게 말하자면, 윤대녕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와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윤대녕의 소설에는 언제나 낯선 이와의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행로, 누군가의 부재, 결핍이 있다.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 2004)소설집에서도 마찬가지다. 6편의 중단편의 소설을 통해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 상실, 절망에 대해 쓰고 있다. 그의 글은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보랏빛의 소설, 서정적인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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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해보는 심리테스트부터 좀더 정확한 성격분석 프로그램인 애니어그램과 MBTI까지 내가 누구인지 알기위해 그동안 내가 해왔던 테스트들이 떠올랐다. 윤대녕 작가의 <누가 걸어간다>를 읽으면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흘러가면 자신의 내면적인 모습 또한 서서히 변해간다고 한다. 나 또한 어릴적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난다. 스무살 초반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그때는 무엇을 하던지 당당했던거 같다. 식당이나 매표소,옷가게 등 여러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부탁을 하거나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웠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떠올려보면 어디를 가든지 조금은 불편한 느낌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사과 아랫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다보니 어디를 가던지 자꾸만 눈치를 보게되서 저절로 소심해져버렸다. 가끔은 내 자신을 잃어버린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 2004년 3월 8일날에 발행한 소설집 하나가 내 손안에 들려있다. 이 책은 <흑백 텔레비젼 꺼짐>,<무더운 밤의 사라짐>,<누가 걸어간다>,<찔레꽃 기념관>,<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올뺴미와의 대화>의 총 6개의 중단편들로 묶여져있다. 2000년 봄부터 2003년 겨울까지 계간지에 실린 소설들의 묶음집인데 그 당시의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남겨져있기 떄문인지 주제는 모두 동일하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기 정체성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듯이 보인다.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것에 맞춰서 계획대로 살아가고, 하나의 꿈을 정해놓고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로 가기위해 노력한다. 가령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위해 그 회사가 정해놓은 토익점수,학벌,각종 사회활동경험등을 기록해놓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목표를 생각해놓고 출발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빠르게 도달할수있다는 생각에서이다. 하지만 인생은 예기치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달리는 도중에 시련을 만나면 마음의 여유로움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을 하게된다. 그리고 몇몇은 자칫 위험해질수 있는 행동까지 하게된다. '자신이 쓸모없다'는 비관적인 생각때문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이런 아찔한 외줄타기에 맡기는 것일까? 무엇이 되고자하는 열망과 욕망전에 '내가 숨쉬고 존재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것이며 내게 주어진 능력을 이 세상속에 펼쳐보이자'라는 다짐부터 하고 출발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6개의 중단편중에 그 중 인상적이었던 작품 <올빼미와의 대화>를 살펴보고자한다. 아내가 장모님의 입원을 돕기위해 떠난 후에 새벽에 낯선 남자에게서 전화가 오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것이 주요 내용이다. 전화벨이 울리던 첫 날부터 이 낯선 사내는 주인공에게 반말로 응수하고 게다가 스토커보다 더 무시무시 할 정도로 주인공의 모든것들을 샅샅이 알고있는듯이 말한다. 그렇다. 낯선 사내는 바로 주인공의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이다. 아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옛 애인과 만나보고픈 욕망과 옛추억이 깃든 일산의 술집을 찾는것 또한 낯선 사내의 입을 통해서 나오게된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낯선 사내 즉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만나기위해 달려가지만 만날수 없다는 결론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자신의 또 다른 모습과 마주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덕적 관념에 갇혀서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동일하기 떄문이다.
이외에도 나머지 글 또한 현대인의 소외감과 자아의 정체성 혼란과 위기,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등의 모습들을 잘 나타내주고있다. "저는 물방울 같은 존재였어요. 무엇에 부딪히면 툭 꺼져버리는 존재말예요, 그걸 터뜨리지 않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아왔어요, 매순간 숨이 차게 말예요. 하지만 그게 햇빛 속에 떠 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버티겠어요." -P55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모두'물방울같은 존재' 처럼 작은 파편들의 움직임에도 무너져버릴수 있는 허물어진 성벽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현실의 우리의 자화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기억한다. "내가 좋아하는것을 그려라"라는 미술심리교사의 말에 사선으로 동일한 간격의 각기 다른 색으로 칠했던 내 모습을 말이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려넣을수가 없었다. 어느 덧 삶의 규칙들만 머릿속에 넣어놓고 날 위해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나의 과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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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 오랜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칙칙함과 습습함과 끈끈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술 한 잔 걸쳐야 할 것 같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소설의 내용과 내가 겪어가는 현실이 그리 틀리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여운과 그 독이 내 생활에도 만만치 않게 엄습해 들어 온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현실의 삶이 흐느적거리고 김이 샌다.
전개가 빠르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가 탐닉할 만 하므로, 읽는 속도가 쉽게 오르지 않고, 내용 또한 매우 즐겁지는 않으나 천천히 야금야금 읽게 된다. 그의 문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가 담배를 물고 어둠 속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처음의 선택이 나중의 선택과 다르지 않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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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느낌도 어김없이 화자는 홀로 있다. 아마 윤대녕이란 작가는 외로워 하며, 자기자신을 무척이나사랑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흑백텔레지전이 꺼짐>에서도 결혼식 당일 신부가 홀로신혼여행지로 떠나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주인공도 당황스런일이지만 신부를 찾기위해 아둥거리지보다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이나, <무더운 밤의 사라짐>에서도 같이 장을 보러간 아내가 잠시 장을 보러갔지만 연락이 두절되고 그 사이 옆에 자신과 한때 연애하던 여자가 옆에와 자신과 이야기 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다. 당황스럽고 짜증스럽지만 주인공은 옛여자와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집에 온다. 밤 늦게 들어온 아내에게 어디갔냐고 물어보지만 딱히 정확한 대답은 없다. 그렇다고 그 또한 그것에 대해 캐묻지 않는다. 너무도 가까운 사이인 부부가 서로 다른 섬같은모습을 보여주다. <누가 걸어간다>에서도 어느날 위암이란 애기를 듣고 이미 헤어진 가족에게 연락하기 구차하고 그냥 회사에 병가를 내고 파주의 한 오피스텔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같은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는 학원강사의 여자를 알게된다. 한때 잘나가던 학원에서 일하던 여자이지만 여전히 불행한 가족관계와 과거를 가졌다고 말하는 여자의 삶. 그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다듬어 줄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작가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 낮선이에게의 고함>도 조금 낯선 관계에서 시작해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하지만 서로의 삶을보다듬어 주기보다 그저 서로에게 얘기하며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 올빼미와의 대화>에서도 늦은 밤 걸려오는 낯선이의 전화가 아마도 주인공의 또다른 자아라는 설정으로대화하는 듯 하지만 딱히 공감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여전히 윤대녕은 홀로있는 섬의 모습으로 이 소설집에서도 보여주었다. 주변거리-특히 서울 종로 주변의- 세심한 묘사들이 마치 그 거리를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을 주고 제주도에 한동안 있었다는 작가가 소설 속에서도 제주도라는 공간을 잘 설명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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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에 반해서 다음 작품으로 선택했는데, 솔직히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재미가 없었다. 취향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리가 되지 않은 난해한 소설은 딱 질색인데 작품 전체적으로 정리 정돈된 맛이 없었다.
소설 읽기의 재미는 읽은 후의 강한 감동, 혹은 여운일텐데... 감동이나 여운은 고사하고 줄거리도 별로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저 그랬던것 같다.
다른 분들 역시 비슷한 느낌이였던것 같고... 은어 낚시 통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어보고 윤대녕을 더 좋아해야할지 그만 접어야할지 결정해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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