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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전에 헤겔이 쓴 몇 가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정신현상학}과 {대논리학}을 읽고서 느낀 점은 오직 하나, "모르겠다"였다. 그 후 군대에서 말년병장 생활을 하면서 {정신현상학}을 다시 읽었을 때,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고, 얼마 전 읽은 것이 바로 이 {역사 속의 이성}이었다. 아무튼 이 책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그어나 헤겔을 처음 접하려는 사람이라면, 저질의 일본식 헤겔 해설서보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나마 역사적인 구체적 예들이 자주 삽입되어 읽는데 별 무리가 없고, 무엇보다 <역사>,<이성>,<진보>, 그리고 <자유>라는 19세기 서유럽의 화두(話頭)에 대한 헤겔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헤겔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역사 속의 이성}을 읽는다면,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맑스와의 연관 속에서 책을 읽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나는 헤겔의 책을 읽으면서 어설프게나마(?) 읽었던 맑스가 종종 떠올랐고, 실제로 헤겔을 접하게 된 것 역시 맑스를 읽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헤겔 사상의 일부분이 맑스주의와 교집합을 이룰 뿐, 헤겔사상이 맑스주의의 부분집합인 것은 결코 아니다. 애초의 의도가 어떻든지, 책을 읽는 순간 만이라도 헤겔만 생각하는 것이 난해한 헤겔을 읽는 그나마(?) 쉬운 방법일 것이다.
둘째,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말고 읽을 것을 권한다. 동양을 '역사의 미개단계'정도로 폄하하는 헤겔 사상은 책의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헤겔의 논리 속에서 그런 편견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헤겔 사상의 일부분에 한정된 부분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글의 전체적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끝으로, 책을 다 읽고 난 후, 꼭 반추해 본다.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등등으로 말이다. 아마 상당히 얻는 바가 많을 것으로 본다. 나 역시도 헤겔을 읽음으로 현재의 서구우월주의, 그리고 사이드(E. W. Said)의 오리엔탈리즘, 탈근대론자들의 논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에서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라고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헤겔 보다 250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헤겔보다 '황혼'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만큼 그에 관해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
"역사의 최종 목적지는 자유의 완성"이라는 헤겔의 주장은 더 이상 우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른다. '거대담론'의 대표적 예로, '냉혹한 근대성의 대표자'로, '국가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몰리면서 '죽은 개'가 되어 버린 헤겔의 사상은 단순히 '철학적 박물관 속의 유물'이 아니다. 오늘을 알고자 한다면, 또 지금의 사상가들이 지고 있는 빚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헤겔은 반드시 거쳐야 할 거산(巨山)이다. [인상깊은구절] 결국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 속에서의 진보이며-바로 이 진보를 우리는 그의 필연성 속에서 인식해야만 한다. 지금가지 내가 일반적으로 자유에 관한 앎의 구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동양인은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그리고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소수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반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자체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세계사에서 이루어내면서 또한 이 세계사를 고구해 나가는데 필요한 구분이다.자유>진보>이성>역사> |
| 1810년 슈타인의 뒤를 이어 프로이센의 근대화 개혁 정책을 계승한 총리 하르덴베르크에 의해 설립된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은 1818년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역사철학 강의 1822년에서 1828년까지의 첫번째 초안과 1830년의 두번째 초안을 싣고 있다. 1831년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그의 강의록이란 점에서 그의 역사철학의 대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면서도, 그가 직접 쓴 책에 비해 읽기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강의의 전반적 줄기는 그의 [정신현상학]에 있다. 세계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욌다는 이성에 대한 확신이다. 역사가 어떤 이성적 의지에 의해 섭리되어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을 닮았다. 하지만 헤겔에게는 신적 의지는 일반화된다. 선택이 아닌 일반계시가 전적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류전체는 이미 이 [신의 백성]으로서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고 그 긍정에 힘입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적 가치에 있어 죄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고 모든 유럽인은 혹은 독일인은 이미 선택받은 신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정체감과 물려있다. 이런 섭리의 궁극목적, 혹은 운동의 방향은 자유이다. 더 많은 자유.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해방. 그래서 고찰의 대상은 인간적인 자유의 이념 The idea of human freedom이다. 이념은 세계사 속에서 가장 구체적 현실성을 나타낸다. 현실로 나타나는 정신은 결국 개별자(개인)로 환원될 수는 없다. 헤겔은 이 정신의 현실적 구현, 현상을 국민정신으로 본다. 국가를 통해 이성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거다. 인간은 이런 국가안에서만 자신의 본질을 지니며 자유를 얻는다. 국가는 목적,시민은 도구라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하지만 이건 헤겔이 직접한 표현이다. 이런 이해는 자연스레 나로 하여금 우리민족의 사명과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끈다. 헤겔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규정성 안에 놓인 자유에 관한 정신의 의식과 그 발전의 단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1) 동양의 감각적 동기의 포기의 단계와 2) 그리스의 국부적 특수성을 소멸하는 보편성의 발견의 단계 3) 규정한계의 인식과 새로운 규정의 창출이 이런 역사의 발전 단계이다. 이 단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 놓인 현재적 세계정신을 파악하는 것은 정신이 세계사의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낸 정신 자신의 행적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우리 민족의 사명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국가에 속한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신의 이해이다. 개인은 교양을 쌓아 정신에 관한 자기의 개념을 확립하여야 한다. 개인은 스스로 앞선 시대의 각기 다른 영역을 경과하여야만 이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정신이 지금 현재 속에서 그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단계는, 나의 단계는?] 이라는 질문과 함께 당연히 그 이해의 틀로서 [정신현상학]을 사용하도록 이끈다. 이는 신학(정신의 포착)을 벗어나 각 개인도 철학과 정치로 가라는 권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세계사적 개인이 되고자,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을 의욕하고 완수하려는 열정과 의지이다. 실현의 능력이며 열정으로 집중하여 정신이 현상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 이들은 보편적 실체에 대한 통찰력으로 또한 이 정신의 현실적 실현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민족이 역사속에 실현하고, 봉사하여야 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관점이 우리 역사이해의, 나아가 [인간의 사명] 이해의 단초인가? 즉 역사발전 혹은 신적 의지에 의한 인간자유의 지상적 실현에 있어 이 민족이 어떻게 타오르 횃불이 되고 또 사그러져야 하는지(타고르)를 아는 것이 우리의 존재와 의미를 규정지을 수 있는가? 진정 그러한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존재 목적의 모두다인가? 헤겔이 말한 집단적 의미(大我) 이외에 개인실존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 진정한 신의 모습이 그리스도가 아니던가? 헤겔은 혹시 그가 원하는 모습만을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것은 아닌가? 국민교육헌장적인 인간이해와 개인의 존엄성은 과연 같은 것인가? 결론부에서 헤겔은 신의 자기귀착적 목적성(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1번,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을 전용(轉用)하여 정신의, 또 그 현재형으로서의 국가의 합목적적 자기정당성을 획득하게 한다... [개인은 정신 혹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필요한 생각이며 그리스적 이기주의의 파행을 극복하는 길임에는 틀림없으나, 나는 나 자신을 이런 목적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