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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어린이 미술관 역사 왜곡의 진실 공방전을 불러 일으킨 바람의 화원. 팩션 안에서의 진위 여부를 떠나 소설 바람의 화원은 무척 재미있었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세계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엄마와 함께 보던 아이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했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아이에게 우리 그림에 재미를 붙여주고자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어린이 미술관-조선을 그린 화가 김홍도 그런데 아이도 아이지만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면서 내가 푹 빠졌다. 김홍도의 그림과 해설을 보는 묘미가 좋았고 더불어 잘 몰랐던 그에 관련된 일화와 주변 인물들의 그에 대한 평, 다양한 면모의 김홍도를 알게 되어 기뻤다. 키가 크고 용모도 아름다웠다는 김홍도. 퉁소부는 재주며, 시 쓰는 솜씨며, 글씨며, 그림이며 다방면에 출중한 재주를 지녔던 그는 팔방미인 예인이었다. 일만 개도 넘는 털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그린 송하맹호도 속의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어흥하며 튀어나올 것 같다. [서원아집도][씨름][길거리 판결][벼타작][마상청앵도][무동][서당][자리짜기][고누놀이][송석원 시사연도][시흥행궁환어도][군선도][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 등 우리 민족의 풍속, 일상 풍경, 문화, 국가의 행사, 양반들의 모습, 서민들의 일상, 중인 계층의 문화 등 다양한 모습과 문화를 그려내었고, [총석정][명경대][도담상봉] 등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풍경도 담아내었다. 그가 그린 정조시대 어진과 금강산을 그린 10미터가 넘는 비단 채색화가 화재로 소실되어 볼 수 없다하니 참 안타깝다. 팔방미인 예인 김홍도. 조선시대 후기의 예술의 큰 폭을 장식한 김홍도를 뿌듯한 마음으로 만나보아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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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TV를 통해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이야기를 즐겁게 만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을 보는 순간 표지의 '무동'부터 친근하게 느껴지고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김홍도는 준수하고 호방한 기질을 보였다는 것도 이 책으로 세세하게 알게 된 그의 이야기네요. 이렇게 김홍도의 삶과 그의 삶에서 그림이란 어떤 것인가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삶과 그림을 모두 진중하게 들여다보고 그 연관성 속에서 그림을 들여다보면 더 크고 깊은 느낌과 이해가 따라서 더욱 신났어요. 혹자는 예술은 그 자체로 느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술활동을 한 사람의 이력들을 알고 그 그림을 만나면 더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이미 많이 봐온 김홍도의 그림들보다 그의 삶과 이 그림들의 연관성에 더 깊은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 독서욕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아이도 엄마도 모두 그림보기와 이야기듣기에 푹 빠지게 됩니다.
김홍도가 어떻게 화원이 되고, 글의 삶에서 그림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잘 이야기해주니 그의 그림들 한 점 한 점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그림들에서도 김홍도 특유의 거침없는 필선과 남성다움이 이해가 되고 강하게 느껴져서 아이와 한창 들여다보기를 하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역시 그림은 텍스트 이상의 의미와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김홍도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화풍이 발전하고 그의 생애에 어떤 전환이 일어나는지도 잘 소개되어서 마치 위인전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림책을 들여다본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네요.
그림을 읽고 보고 느끼는 작업이 참 재미있다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느끼고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린이의 마음의 눈높이를 잘맞춘 이 책이 너무 고마워요. 풍성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그 예술활동 속에서 사람을 배우는 시간! 특히나 김홍도는 서민들의 일상과 모습들을 화폭에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더욱 우리 조상들의 삶살이를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접하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김홍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고맙고 행복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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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종이에 역사를 담아낸 예술가]
종이 하나에 역사를 담아낸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예술이라는 것을 표현할 줄 아는 단계에 이르러야 했으며, 그 다음에는 글자라는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될 수 있었던 역사를 만드는 규칙이 필요했다. 그 다음에는, 종이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이렇게 인간이 종이에 자신의 종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무척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옛날에만 해도 무척 획기적인 것이었다. 김홍도는 이 종이에 인간의 역사를 그림으로 남긴 한 사람이다. 저오 임금 시대 최고의 화가이자 조선을 그린 단원 김홍도. 그의 삶을 살펴본다.
김홍도는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리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갔다. 가난한 삶을 살아 아들 김양기의 학비를 걱정했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김양기도 나중에 화가가 되어, 아버지 김홍도가 그렸던 그림을 모두 모아 책으로 냈다고 한다.
김홍도가 그렸던 그림들 중에서도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바로 맨 처음에 보았던 송하맹호도이다. 소나무 아래 버티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 서로 다른 두 작가가 그린 소나무와 호랑이의 그림을 보면서, 이 조화로운 하나의 작품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의 위엄있으면서도 마치 무언가 만화를 그린 듯한 느낌이 든다.
김홍도의 생애 마지막 작품중의 하나가 되었던 염불서승. 이 작품은, 막 승천하려는 한 스님이 돌아앉아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다. 김홍도도 아마 그와 같이, 편히 극락으로 승천하고 싶었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김홍도가 일생을 살면서 그렸던 그림들을 모두 나열해 놓았다. 확실히 김홍도는 정선이 그렸던 그림과 비교해보니 두 그림 모두 훌륭했으나 김홍도의 그림이 더욱 세밀하고 현실적이었다. 그는 아마 서양의 미술가와 비교하자면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화가정도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 당시의 대부분의 화가는 그림속에 의미적인 것을 부여하기 위하여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그림이 기록화라는 이유도, 역사적 사실 또는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해내기 때문이다.
조선을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열정을 필요로 할까? 김홍도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말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서양의 예술에 푹 빠지는 사람이 엄청날지라도 섬세하고 투박한 정의 느낌을 가진 우리나라의 예술이야말로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을 그린 화가, 김홍도. 김홍도의 일생은 오직 그림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림을 위한, 그림에 의한 삶을 살았다. 그가 남겼던 작품이 전쟁도중에 대부분 타버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의 기록화 하나하나가 역사에 큰 길을 남겼을 텐데, 그 부분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전에는 김홍도가 무척 유명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별로 위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왔는데, 그의 그림들을 보니 정말 한국의 예술혼은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세계에서 활동하는 온갖 예술가들이 있다. 김홍도의 그림이 그런 예술가들에게 위안이 되고, 스승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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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도 비슷한 표정이 없다.양반에서 평민까지 다들 한꺼풀 벗은 편안한 모습들이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사람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씨름>을 보며 느낀 것이다.
김홍도! 너무나 유명하여 어린 우리 아들도 그의 명성을 안다. 조선시대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화서(국가에서 필요로하는 그림을 그리던 기관) 화원이 되어 어진(임금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화사에까지 올랐다.
<송하맹호도> - 털 하나하나가 호랑이와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호랑이는 김홍도가 소나무는 그의 스승 강세황이 그렸다.
<포의 풍류>- 높은 벼슬은 하지 않지만 풍류를 즐기며 산다는 뜻이다. 이것이 아마 그의 원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서원아집도>- 선비들이 서원에 모여 글짓고 그림강상, 음안감상등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그의 예리하고 정확한 묘사력과 뛰어난 구성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김홍도는 서민들이 살아 가는 모습을 많이 다루어 더 친밀한 느낌을 주는 화가이다. <마상청앵도>.<벼 타작>,<길거리 판결>,씨름>,<서당>,<무동>,<자리짜기>,<고누졸이>....구성진 옛 노래가락을 듣는 듯 정겹다.
도화서에 적을 두어 기록으로 남긴 대작들도 역시 많다. 그중 <화성능행도>는 그를 아끼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 모습을 그린 병풍이다. 열다섯작이 제작되었는데 엄청난 대작인데 그 세심한 묘사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김홍도는 풍속화와 함께 신선도로도 유명하다.<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군선도>...
또한,그의 산수화는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더욱 사실적으로 발전시켰다.특히 정조를 위해 아름다운 금강산을 둘러보며 그린 작품들은 과히 인간세상이 아닌듯 싶다.
어릴적부터 너무나 그림이 그리고 싶어,벽에도 땅에도 그림을 그리던 평범한 김홍도의 붓끝으로 남긴 유산에서 우린 그시절의 생생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그어떤 글보다도 감동과 교훈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출세와 부귀영화보다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랐던 그의 심정이 그림 한켠에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중국에서 유래된 소재를 그릴때도 조선의 얼굴,조선의 집,조스의 풍습에 맞게 바꾸어 그린 조선을 사랑한 예술가 김홍도. 그는 진정 조선의 그린 화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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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그린 화가라는 표현만큼 김홍도를 잘 나타낼 문장이 있을까 싶다. 서민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우리네 정서를 그림으로 그려내었기에 그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잘 알 수가 있다. 그저 서민화의 대표적 화가였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친숙하고도 해학적인 그림의 서당이나 씨름 등의 서민화의 그림만을 그렸던 걸로 생각되었던 점이 있다. 그러나 김홍도는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지 못하였지만 십대 후반에 도화서의 화가로 인정받았고 정조 대왕의 어진까지 그려내었다. 금강산의 화려함을 그대로 그림으로 나타내었던 화가이기도 했다는 걸 책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정조 대왕에게 인정받고 그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그림 실력을 더 늘려나갈 수 있었지만 정조 대왕의 죽음과 함께 그의 인생 또한 내리막길로 돌아서 말년에는 아들의 학비를 걱정할 만큼 힘든 살림살이를 하였다 한다. 호랑이의 눈에 살아있는 눈동자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실감나는 송하맹호도를 통해 사실적 표현과 그만큼 호랑이가 흔했을 우리네 강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잘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 서원아집도를 보면 약간은 중국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정교하고 정확한 표현이 그의 천재적인 그림 솜씨를 잘 알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거리의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또한 서민들의 일상을 사랑했던 화가였지 싶다. 살아 숨쉬는 표정들과 우리네 조상들의 당시 모습을 통해 역시나 정이 많고 인생을 참으로 여유있게 살고자 했던 삶의 풍부함이 나타난다. 지금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유유자적하던 삶이 나타나있는 김홍도의 그림을 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가 조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기에 마음의 풍요함을 오래 간직하고만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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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에 담긴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담긴 사상이 그것이라면 김홍도의 그림은 애민, 그 자체가 아닐런지... 김홍도 하면 떠 오르는 것이 조선 서민의 생활이 담긴 풍속화이다. [씨름][서당] 아마도 초등 교과서에서 제일 먼저 만난 그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그는 궁궐 도화서의 화원이 되고 젊은 나이에 어진을 그리는 행운까지 거머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의 모습은 바로 김홍도에 의해 그려진 어진일게다. 그렇지만 정작 얼굴은 이명기라는 화원이 그리고 몸 부분을 김홍도가 그렸는데 6.25 전쟁으로 몸 부분이 불타서 정작 글의 어진이라고 보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많은 풍속화를 기대했는데 그보다 더 생소한 그림이 많았다. 김홍도는 궁궐의 최고 화원으로 기록화를 많이 그렸다. 수원 화성에서 보았던 [화성능행도]의 총책임자가 바로 김홍도였다고 한다. 일부를 그리는 화원이 아니라 총책임자로 지휘했다고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에서 그림을 그렸구나 싶었다. 정조 임금의 수원 화성에서의 일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그 시대상을 알 수 있으니 이 역시 단순 기록화라기 보다는 풍속화의 한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신선도나 호랑이 그림도 눈에 띄지만 금강산 그림도 인상적이다. 옹천이라는 작품은 정선이 그린 옹천과 비교 설명된 부분도 부록에 나온다. 정선이 보이는 경치를 개인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그리기는 반면 김홍도는 사실 그대로 원근을 살려서 그렸다고 한다. 정말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알찬 정보가 아닌가 싶다. 최고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세간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았던 김홍도. 허나 그의 말년이 병으로 시달리는 힘든 삶이었다는건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다. 정조에게 인정을 받은만큼 임금이 돌아간 후 그의 삶은 극도로 빈곤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염불서승]이라는 돌아앉은 늙은 스님의 모습은 말년의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듯 하기에 마음 한 구석이 저리기도 하다. 그 뒷모습의 좁은 어깨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편중되지 않고 김홍도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설명이 어렵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 그림을 흉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나보다는 책을 읽던 딸아이에게 그러하기에 이제는 화선지와 먹을 준비해서 김홍도의 붓놀림을 따라가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