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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핸드폰을 갖고 싶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줄 사람이 나에게는 없다. 사실 내가 핸드폰을 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내게 전화를 걸어 줄 사람이 없으므로...... . 말하는 김에 이야기하자면 같이 노래방에 갈 사람도,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을 사람도 없다. 교실 안에 앉은 채로 나만이 바깥에 있는 느낌. '나는 외톨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겨울날, 밑도 끝도 없는 상상속에서 울리기 시작한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것은 세상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 있는 소년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본문 중에서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니, 소녀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은 여성처럼 보였다. 아이를 가진 어머니처럼도 보였다. 막 태어난 아기 같기도 했다. 죽을 때를 알게 된 노부인의 표정과도 닮았다. 인생의 모든 시간이었다.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아닐지 모른다. 불가사의하리만큼 안정된 표정이었다. 눈은 감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것일까. 그래도 커다랗게 눈을 뜨고 있을 때의 소녀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눈일 것이다. ―「꽃의 노래」 중에서 누군가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아사토는 저항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이라면, 자기 몸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보다 더 고통스런 얼굴을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사토는 웃옷을 벗었다. 그의 몸은 장렬했다. 무수한 상처와 멍, 그리고 꿰맨 상처와 변색된 피부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응축된 덩어리처럼 보였다. 귀를 기울이니, 그의 온몸에서 무수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상처」 중에서
잠시 신야라는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그는 실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내가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 아닐까. 틀림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대화 상대를 갖고 싶어하던 내가 무의식중에 또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새삼 내가 다른 사람의 존재에 얼마나 굶주려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외톨이는 싫어!?라고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Calling You」 중에서
내가 오츠이치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책한권이었다. 10년전쯤에 읽었는데 그 시절에는 책보단 밖에서 뛰어놀고 연예인이야기를 하고 친구들이랑 놀기 바빴던 나이였다. 그러다 공부를 하려고 동내에있는 도서관에 가서 놀다가 발견했었는데 무슨마음인진 모르겠지만 책과 글자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었다. 책한권을 쥐고 도서관 한쪽 구석에 앉아서 누가 보고 놀릴까 몸을 숙이고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한권을 전부 다 읽었던 모습이 새록새록하게 생각이난다.
그중에서도 calling you 라는 파트가 가장 강하게 와닿고 가슴을 일렁이게 해주던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외에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아도 이파트 하나만큼은 아직도 생각이 날 만큼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그이후로 오츠이치 작품에 하나하나 빠져들게 되었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라는 책중 calling you는 머릿속 핸드폰을 소재로 다룬이야기 이다. 전화를 걸어줄 친구가 없어 휴대폰을 사지 않았던 료는 머릿속으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싶다는 상상하는데 머릿속 핸드폰이 멜로디가 울리고 그가 전화를 받는다. 둘은 점점 친해지게되고 다른 여성과 통화도 하며 상담도 하고 즐거운 날을 보내다 그와 만나기로 한다...
calling you는 섬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소녀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잔잔한거 같으면서도 요동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고 원했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마무리의 반전에 충격을 먹어서 원했던 결말에 징징거리지 않을 수 있었고 정말 대단한 작가님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에서 다시 읽으면 그때와의 느낌과 생각은 바뀔 수 있겠지만 다시한번 꼭 읽고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고 현실에 지쳐서 아무것도 안하고 싶을때 읽으면 딱 좋은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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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한마디> 우리들은 모두 그런 것이다.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한쪽에는 하얀 지평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엔 어둠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 경계선 위를 위험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음극 쪽의 인력(引力)이 손을 뻗는다. 하얀 지평의, 긍정적인 힘이 용기를 북돋아 준다. 어떤 때는 어둠의 힘에서 구원을 찾아내고는 발끝이 흔들려 검은 지평위에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미사키도 그림자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결국 괴로움의 쇳덩어리가 머리를 가득 채워 버리면 그 무게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아이라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도 그녀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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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세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calling you와 상처, 그리고 꽃의 노래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들인데요.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것은 "꽃의 노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calling you와 상처가 더 공감이 되더라구요. 개개인의 경험 혹은 감성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른가봅니다 ^^
우선 calling you는 "친구가 없는 아이"라는 캐릭터에 "머릿속 전화기"라는 소재가 더해져 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글이었습니다.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서 친구가 없는 여학생의 "머릿속 전화기"가 어느날 울리게 되고, 그 여학생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친구와 머릿속 통화를 하게 됩니다. 머릿속 전화이기에 서로 거짓말은 할 수 없고 진실만 말할 수 밖에 없지요.
글을 읽다보니 "머릿속 전화기"가 내심 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때론 너무나 궁금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펼쳐지네요. 우리는 우리의 감정의 일부만을 언어로 표현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표현된 것처럼 보다 진솔하고 깊이 있는 교류를 하기도 좋을 것 같구요.
한편 상처라는 글에서는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옮길 수 있는 소년"이라는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년은 순수한 마음에서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옮기거나 반 정도를 옮겨서 이른바 '반반 나누기'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상처가 반 정도로 줄어들면서 소년에게 반 정도의 상처가 옮겨지는 것이지요.
삶의 고통도 그렇게 반씩 나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가족 중 누군가가 고통스러우면 자연스레 그 짐을 같이 나눠지고, 한 친구가 고통스러워하면 주위의 다른 친구들과 고통을 나누게 되고...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마지막 글인 꽃의 노래는 병실에 입원한 세 남자 중 한 남자가 발견한 꽃이 과거에 자살한 여자와 관련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소설만큼 인상 깊은 부분이 별로 없었던 소설이었고, 그래서 내용 자체도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러나 오츠이치 특유의 위로하는 듯한 분위기는 이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울적하거나 외로운 기분이 드는 날, 소설로써 위로받고 싶은 날에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를 소개해 드렸네요. 장편 소설을 읽고 싶으신 날이라면 같은 작가님의 "어둠속의 기다림"도 강력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 읽고 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 그리고 읽을 때는 너무나 재미있고 흡입력 강한 글들입니다.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괜한 것이 아닌 듯하네요. 오츠이치님은 이미 유명하신 작가님이지만 국내 작가님이 아니시기에 저처럼 모르셨던 분이 있을까봐 이렇게 리뷰로 정성껏 소개해 봤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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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밖에 들리지 않아/오츠이치 총 3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너밖에 들리지 않아. 오츠이치의 작품중에서 서정성이 제일 뛰어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쓸쓸함의 주파수의 첫번째 단편 '미래예보'도 서정적이지만, 이 소설집에 담겨 있는 3개의 단편은 더욱 서정적이다. 특히 첫번째 단편 calling you를 다 읽고나서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렸고, 슬펐고, 아팠고 그와 동시에 짠한 행복감에 취해있었다. 한편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별의 목소리를 보고 난후와 비슷한 느낌을...아니, 그보다 더했다...이 소설을 읽게 되어서 굉장히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오츠이치의 작품중에서 최고였다..(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임..)그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할 수있다..한동안 calling you만 생각했으니까.... 타인과의 관계을 제대로 이어나갈수 없어서 (다른사람과 관계를 맺는것에 매우 서투름) 늘 혼자인채로 외로움을 느끼며 지내는 료우는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기를 원하지만 친구가 단 한명도 없는 소녀는 일부러 휴대폰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머리속으로 가상의 휴대폰을 상상했고, 마침내 가상의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 너머의 그 아이와 친구가되고 드디어 료우가 원하고 원하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소통을 하게된다. 그둘은 언제나 머리속으로 통화를 했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해나가게 된다. 머리속에서의 통화였지만 전화기 너머의 존재, 즉 신야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둘은 만나려 하지만 사고로 만날수 없게된다. 언뜻보면 그저 순정만화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오츠이치의 한 문장 한문장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는 여성보다 더욱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같다. 만약 료우와 신야가 만났더라면 그 둘은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얼굴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외로움을 잘 표현했고, 료우와 신야의 눈물날정도의 따뜻한 교감을 통해 소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 단편은 하얀 벗꽃이 한없이 흩날리는 아름답고, 애절한 봄날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또다른 단편인 '상처'와 '꽃의 노래'도 인간이 가진 상처와 아픔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서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상대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처럼 보듬어 주고, 그것을 서로 나눈다. 상처는 너무 아픈 것이지만 그것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서로를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와 서로의 깊은세계를 영혼으로 나누는 것....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 상처를 치유 받는 것....모든 사람이 꿈꾸는일 일것이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아니..계속해서 읽고 싶다. 이 투명하고 슬픈 느낌....그 아름다움을 항상 기억하고 느낄 것이다... 더욱더 오츠이치라는 인물에게 빠지게 된다. 암흑동화가 10월에 출간될 예정이라니 기대하고 있겠다. 우선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부터 읽고.... P.S 료우의 핸드폰 벨소리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가 calling you다...(물론 상상의 벨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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きみにしか聞こえない~CALLING YOU :: 乙一 왕따였던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제는 오히려 과거에 그랬노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째 스스로를 미화 시키는 것 같아서 겸연쩍다. 그만큼 건드려도 안 아픈 상처가 되었을 마냥 극복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 시절 내내 혼자서 피해 망상에 젖어 있었기에 잊는 것도 빨랐던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도 먹었으니 하나 하나 찬찬히 그 시절을 끄집어 내어 용기있게 바라봐보자, 했더니만 몇가지 꺼내 보지도 못하고 이내 고개를 외면 해버리게 된다. 이제 보니, 극복한 게 아니라 무작정 덮어 두었나 보다. 여전히, 교실 맨끝에 짝없이 혼자 앉아서 누구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점심 시간엔 도서실에 처박혀 있으며 하교종이 울리면 부리나케 교문을 먼저 나가던 초라한 여학생이었던 나를 다시 보는 것은, 자기연민 이라는 진흙탕에 기어이 빠져 버리고 마는 찝찝함과 괴로움이다. 그렇게 암울한 유년기를 보내니 그 다음이라고 좋을 게 없었다. 학교만 벗어나면 좀 나을 줄 알았더니 20대는 더 끔찍했다. 자포자기 하듯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며 타인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다가도 소스라치며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반복했다. 의지할 부모가 없다는 것이,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커다란 컴플렉스가 되고 말았다. 누구한테도 사랑 못받는 외톨이란 생각에 사로 잡히니 사람들한테 쉽게 미움을 산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자해를 했다. 담뱃불로 몸을 지지고 수차례 손목에 칼자욱을 남겼다. 스스로를 단죄하면 용서하고 돌아봐줄거라는 그 철없던 객기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흉터로 남아 무심코 손목 안쪽을 볼때마다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에 주먹을 꽉 잡아 쥐게 되버린다. 매일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못받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생을 마감 하려고 굳은 결심을 다지기 직전, 다행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오래 박혀버린 그 상처와 굳은 자국 때문에 이제는 선천적이라 해도 좋을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도, 그래도 내 자신이 얼마나 사랑 받을만한 가치를 지녔는지, 내 상처를 나눠 가진 영혼의 동반자 덕에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필요 없는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은 억울 하지만, 그래도 그 상처 덕에 다른 상처 받은 존재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다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그 억울함의 댓가이리라. 버릴 수 없는 우울함 때문인지 선뜻 누가 먼저 나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다가오는 일이 없는 건 여전히 쓸쓸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고, 그들에게 손을 먼저 내밀 수 있는 활발함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믿고 싶다. 비록 상처 해결을 하고 무심히 떠나는 사람을 볼 때의 서글픔 이라는 것도 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어쩔 수 없는 내 몫, 내 운명 일테고 어쩌면 그 와중에 운좋게 언젠가는 끝까지 곁에 남아 있어줄 "인연" 을 얻을 수 있게 될지도. 그 희망이 내 눈앞에 있으니, 십수년전의 나에게 연락할 수 있다면 그렇게 얘기 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안보일지 몰라도, 아주 조금만 더 가면 조금씩 보일 거라고. 그러니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해 주라고. 오츠 이치의 책으로는 국내에 처음 출간된 책이고 나도 이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었는데, 읽으면서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과거의 내 얘기, 그때의 내 생각을 그대로 쏙 빼내서 이야기를 만든 것만 같아서, 평범하고 단순한 라이트 노벨인데도 눈물을 펑펑 쏟아가며 읽었더랬다. (심지어 수록된 마지막편조차 유산한 과거가 있어 당시엔 참 견디기 힘든 심정으로 읽었었다) 그런데 작가 후기를 보니, 누가 비슷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서 표절작이란 소리를 들을까봐 노심초사 했다더라. 와하하, 세상에 정말 비슷한 사람이 많구나! , 하는 생각에 한켠으론 여태까지의 외로움이 위로 받는 기분이 되다가도 한켠으론 지금도 어딘가에는 죽도록 외롭고 상처 받은 존재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소개 되는 간격이 넓어서 이번에 다크 오츠, 즉 호러 작가로서의 오츠 이치만 부각 되어지는 감에, 게다가 그 작품에 난색을 표하는 분들도 적잖이 있으셔서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재독하고 감상문을 남겨본다. 작가의 다른 작품 [쓸쓸함의 주파수] 도 퓨어 오츠의 작품으로 매우 좋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순수한,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고 정화 되는 것 같은, 어느덧 흘러 내리는 눈물로 마음 속 케케묵은 상처가 씻겨져 내리는 것 같은 일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리라 장담한다. 외로움에 지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미움 받는 것에 질릴 만큼 질려버린 어딘가의 당신에게, 이 책을 연결선 삼아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게 되었음 좋겠다. 그래서 당신 상처를 나눠 가질 수 있는 [인연] 이 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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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보는 느낌이랄까... 책 디자인은 좀 난감하지만(개인기준) 책이 디자인까지 좋으면 훌륭하지만 역시 내용이 중요하죠.. 쓰네가와 고타로의 '야시'만큼 강하진 않지만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막힘 없이 술술 읽어 갈수 있게 쓰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앉은자리에서 펴자마자 다 읽었네요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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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잃은 '그'와 '그녀'의 대화방식 스스로 가두었던 목소리, 그녀 가두어질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 그
영화는 내성적인 성격의 여고생 '료'가 우연히 장난감 휴대전화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머릿 속에 울린 벨소리. 낯선 감각에 애써 자신의 상상이라 부정해보지만 하나둘씩 서로의 시간 속에서 증거를 찾는 대화를 시작하며, 실존하는 대상과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재활용센터에서 수리공청년 '신야'이다. 신야에게 비밀하나가 있는데, 조금만 주의깊게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이는 하나의 복선으로, 결말에 이르러서는 극적 장치로 활용된다. 그렇게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데, 일본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대로 느릿느릿하게 흘러간다. 서로에게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귀엽다. 실재의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편의점 잡지판매대에서 무작위로 잡지를 골라 페이지를 고르고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당황하는 료. 료는 신야를 만나고 싶지만 자신을 싫어하면 어떨까라는 고민으로 망설이다, 히라다라는 다른 여자와의 통화에서 용기를 얻기도 한다. 여기에서 통화란 역시 머릿 속에서 연결되는 전화를 말한다. 우연히 연결된 이 여성은 료 하고만 연결이 되는데,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로 용기를 주곤 한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의 '대화'
그렇게 료와 신야는 각자 다른 시간 속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들 사이에는 한 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신야가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과 캄캄한 밤하늘 속 달을 바라보는 료의 장면이 교차되어 표현되는데, 이는 각 인물의 성향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신야가 어릴 적 살던 동네로 가 그가 맡긴 카세트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 료.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흥얼거림을 하게 되는데, 이때 신야의 표정은 감격스러움을 맞이한 순수한 기쁨 그 자체이다.
마지막 둘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어쩌면 잔잔한 영화의 그나마의 절정을 드러나는 부분이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말했다시피 그들 사이에는 한 시간의 시차가 존재하며, 신야의 시간이 더 빠르다)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그'와 '그녀' - 하나로 겹쳐지다
료는 처음부터 내성적인 아이였을까. 영화를 보다보면 료는 사실 내성적이긴 해도 그냥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데, 흔히 말하는 친구들의 질투에 낯을 가리는 성격이 더 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성장의 일부분처럼 신야와 이야기하고 히라다와 소통하며,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능동으로 바뀌어가는 것.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을 시도해보는 것. 이에 신야라는 인물은 료에게 작지만,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고장난 물건을 몇 날 며칠이고 고치다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뜻 건네버리는 신야. 주인을 찾았어도 자신을 기억해줄 것이라는 말은 그의 선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은, 한 걸음 나아가기를 망설이는 료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동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살아가는 청년치고는 밝고 친절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케미라고도 볼 수 있을까?)
영화는 오즈 이치의 동명 소설 [너밖에 들리지 않아]에 속한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짧은 소설의 모티브와 장치만 가지고 영상으로 표현하다보니, 지나치게 잔잔해서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 처음의 시작만 잘 견뎌내면 특유의 호흡을 따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참을성을 가지고 감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즈 이치의 소설 중 맨 처음 접한 건 [ZOO]라는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그로테스크하고 적나라한 묘사에 충격을 받아 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런 분위기의 소설도 썼다니 한편으로는 참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작가인 듯 하다. 복잡하고 떠들썩한 세상 속에 외톨이가 되어버린 기분이 느껴지는 날 따뜻한 위로를 필요하다면, 이 영화를 감상해보길 추천해본다. 마지막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노래가 묘한 분위기에 어울려 참 좋다. (+) **'Dreams come true' [한국어/가사] 너에게 밖에 들리지 않아 이 목소리는 지금도 계속 외치고 있어 전해지도록 이어지도록 너의 이름을 몇 번이라도 I'm calling you calling your name 너만이 들었어 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 대에 마치 아직 여기에 네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져 이 목소리로 그때 너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포기하고 있었어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생각해 굉장히 소중한 일을 I'm calling you calling your name 마음은 정말로 떨리고 있어 사랑스러움은 괴로움을 조금 닮아 있어 목소리를 내서 우는 일도 모두 네가 가르쳐 주었어 너에게 밖에 들리지 않아 이 목소리가 앞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바라보고 있어 이어지도록 너와 계속 부르고 있어 지금도 계속 부르고 있어 너를 계속 부르고 있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어 너의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응답하고 있어 너의 목소리에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어 너의 목소리는 누군가가 응답하고 있어 너의 목소리에 누군가가 너를 생각하고 있어 너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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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도 단편소설집을 장편으로 알고 읽기 시작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장편으로 알고 봤다. 하지만 <Calling You>가 끝났을 때 장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 세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판타지다. 겉에 있는 그림을 보면 만화나 라이트노벨 같은 느낌이 든다. 책 안에도 그림이 있다. 이런 책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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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판으로는 나온줄도 몰랐었다. 이 책이 04년에 나왔었다니.. 읽은 것은 원서로 읽어서, 국내판 번역이나 편집등은 잘 모르겠지만. 작가 오츠이치의 아름다운 단편집이다.
오츠이치의 소설을 접한건 이 책이 제일 처음. 그 후로 점점 반해서 출판된 책은 거의 다 사서 읽었다. (원서로, 라이센스는 이 책만 나온듯) 이 책의 표지는 원래 스니커문고로 나온 속지의 하스미상의 일러스트.
솔직히 이 이야기를 접한것은 소설이 먼저가 아니라 드라마시디가 먼저였다. 엄청나게 눈물을 뽑게 만들었던 그 드라마시디. (스니커시디 무빅 발매 이리노 미유, 신타니 료코) 60분이 조금 넘는 이 이야기는 앞이 어떻게 될지 독자(청자;)들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드라마시디를 듣고, 오츠이치씨에게 반해서 소설도 사서 읽어보았는데.. 은근히 별로였다. ..
드라마시디 시나리오는 작가 오츠이치씨가 직접 썼으며, 약간 시츄에이션의 수정이 되었다. 그렇기에 더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귀로 듣는 드라마시디. 눈으로 읽는 소설. 소설판은 전혀 슬프지가 않았다.
너에게 밖에 들리지 않아 외에도 이 소설에는 단편들이 더 들어있다. 제일 괜찮게 읽은것은 상처였다.
오츠이치씨의 다른 소설들도 매력적인 것들이 많으니 이 작가 추천한다. 특히 제일 좋았던것은 -Z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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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사실 책 표지때문에 많이 망설였다. 그림이 예쁘긴 하지만 너무 순정만화스러워 기본적으로 로맨스 소설에 거부감이 있는 나에게 선뜻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츠이치라는 작가에게 반해 버린 이상 그 책은 전부 읽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해보았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래와 과거로 통하는 핸드폰을 가지게 된 여자아이의 이야기 "Calling You"는 체념의 슬픔과 깨달음이 공존하고, 타인의 상처를 옮길 수 있는 친구가 남에게 받아들인 상처를 필요없다 느껴지는 아버지에게 보내려 한다는 내용의 "상처"는 남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하는 작은 소년의 마음과 함께 결코 타인에게 떠 넘길 수 없는 자신의 슬픔이 보였다. 살고자 하지만 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삶을 이을 수 없엇던 슬픔을 알게 된다.
전체적으로 환상과 슬픔속에 들어 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결코 현실일 수 없는 이들 역시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 되어 조금 더 슬퍼질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