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9번째 음반이다. 본국인 일본에서는 이미 그의 전 앨범이 발표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질세라 매년 꾸준히 그의 음반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음악은 우리 삶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 그는 조지 윈스턴이나 앙드레 가뇽 등을 제치고 단연 가장 인기 있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pure piano'에는 제목처럼 투명하고 맑으며 깨끗한, 한 마디로 순수한 피아노 연주 13곡이 담겨져 있다. 쇼팽의 야상곡 오마주로 시작되는 'invitation to sweet dream'은 차분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주제와 변주의 분위기를 상반시켜 제목과 같은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들려준다. 'shape of love'는 전형적인 유키 구라모토 스타일의 곡이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사랑의 과정'을 표현했다. 'when you feel love'는 사랑을 하며 겪게 되는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것 같다. 낮보다는 밤에 더 어울릴 듯하다. 절제된 음의 사용이 인상적인 'gentle longing'은 멜로디를 운용하는 깔끔하고 미세한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encounter like juliet's'는 어둡고 두려운 느낌이 들며, 반복되는 멜로디는 마치 눈물이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듯 아픔이 느껴진다. 다시 밝은 느낌으로 돌아온 'that is love'는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혹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며 들어도 어울릴 것 같은 곡이다. 'in a gentle time'은 이 앨범에서 가장 끌리는 곡이다. 지나간 추억에 잠겨 눈물 흘리는 한 사람을 위한 곡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love goes gracefully'는 동양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연상시킨다. 'sonnet of the setting sun'은 개인적으로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 'sonnet of the wood'와 비슷한 곡이다. 라이너 노트에 이 곡의 모티브가 된 곡을 전에 발표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sonnet of the wood'가 맞는 것 같다. 아르페지오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며, 역시 추천곡이다. 'sentimental moment'는 멜로디의 음 하나 하나에 상당히 고심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코드나 멜로디의 연결 고리 또한 탁월한 곡이다. 'emerald lake'는 어쩌면 이 앨범 중 가장 사랑 받을 만한 곡일지 모르겠다. 조용하지만 특별한 호숫가에서 받은 느낌을 피아노 연주로 풀어나가고 있다. 잔잔함 속에서의 휘몰아치는 듯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 농도가 짙고 깊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nostalgic road'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보다는,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는 곡 같다. 왠지 마음씨 좋은 선배가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하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곡인 'fantastic night'는 신비로운 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철없는 아이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본 특별한 밤의 풍경 같은 느낌이다.
마침 이 앨범을 듣기 전에, 이런 저런 일로 해서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곧바로 기분이 풀리지는 않았다. CD가 끝나고 멈추어 섰을 때, 차분해진 나를 발견했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은 내게 이런 음악이다. 그의 음악이 내 모든 것을 만져주고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나의 삶에 있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지만 그 여운은 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유키 구라모토는 존재 가치가 있는 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