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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첫 번째 소설집입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설집 ‘대성당’에 비해 원숙미는 조금 덜할지 몰라도 초창기 작품들답게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소시민들의 경제적, 가정적인 문제로 인한 불안한 삶과 소통 부재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요, 군더더기라고는 일체 없는 절제된 언어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는 카버 특유의 능력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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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의 명성에 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왔다. 카버를 말하는 사람들은 체호프와 헤밍웨이와 하루끼와 미니멀리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단편들을 단 한 개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수치심이 끼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냉큼 그를 사들여 야금대면서 체호프를 들먹이고 싶지도 않았다. 요즘의 나는 너무 시끄럽다. 침묵마저 소란스럽다.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무언가에게 뒤를 내 준 것처럼 불안하고 의지없이 진행되는 행위에 환멸을 느끼는가 하면 얕은 꿈들에게 잠을 방해 받은 채 몽롱한 시간을 보내다가 울고싶어지는 때도 있다. 이렇게 나를 들썩이는 것들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해!'라고 외치는 순간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필연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좋고 나쁨으로 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의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악연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마이너스 곡선을 그리기에는 충분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건 정말 끔찍한 회색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번역을 한 손성경 교수의 '카버의 작품에 그려진 삶은 우울한 회색이다.'라고 끝머리를 장식한 말을 보고 웃음이 났다. 카버의 인물들은 평범하지만 그들 모두는 일상의 균열을 간직한 자들이다. 하지만 카버는 그들의 균열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한다. 작은 힌트마저 남겨놓지 않는다. 독자는 다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허나 그마저도 인물들의 일상이 아닌 독자 자신의 일상과 빗대어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유추의 결과는 독자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보는 이에 따라 균열의 원인이 달라진다. 카버의 인물들은 모두 흔들린다. 그들은 피로하고 음울하며 비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한 채 막연한 불안 상태에 있다. 前震의 흉계에 대해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떠한 방어기제도 마련하지 못한 채 외로움에 침잠하고 만다. 그들에게 소통 가능한 사랑이란 달동네에서 명품족에 관한 뉴스를 주워 듣는 것만큼이나 먼 세계의 일이다. 그들은 위안도 사랑도 평화도 걸치지 못하고 태어난 그대로의 헐벗은 모습으로 일상에 던져진 고아들이다. 회색 일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