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재철 시인은 첫 시집 『아메리카 들소』에서 보여준 넓은 시적 지평 때문에 처음부터 주목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교육 운동을 하다 옥살이도 했던 시인은 제도 교육에 희생되는 학생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분단된 조국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교사와 군인으로서의 체험을 진솔하게 시화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시집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탐구 또한 여타의 반미 시들과는 달리 시적 형상도 뛰어나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인의 시적 지평은 세 번째 시집 『생은 아름다울지라도』에 이르러 다른 차원을 얻게 되는데 「집」 연작에서 그렇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인은 시골 어은리로 내려가 살면서 그곳에서 보고 겪은 것을 시로 씁니다. 그것이 바로 「집」 연작인데 생태시라 할만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생태시라 할만한 작품들은 첫 시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체험을 자연스레 시화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담고 있어 깊은 감동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 이번 시집은 세 번째 시집에서 얻은 새로운 지평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공감과 감동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서시라고 할만한 「인디오의 감자」에서부터 그렇습니다.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의 대안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에 쫓겨 / 깊은 산 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 주식’인 감자를 주목한 시는 진정성이 없어 보입니다. 비록 그것이 옳은 주장일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전제적인 문명의 첨병인 텔레비전을 통해 본 것으로 전제주의의 대안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세 번째 시집에서처럼 시골 어은리로 내려가 체험한 듯한 것을 시화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염천에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본 시인은 ‘산 그늘이나 찾아갈까 / 차라리 땡볕에 호미질이나 할까’(「염천에 상엿소리」)라며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있습니다. 아랫마을에서 상여가 나가는데 그들과 동화되어 사람들과 함께 상여를 매거나 적어도 마음으로라도 그들과 일치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인이 쓴 시의 한 제목처럼 처음 시를 쓰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하는 바람이 듭니다. 공주 시장 오이가 비를 맞고 있다 가락시장에도 못 간 구부러지고 볼품없는 흰 오이 예닐곱 개씩 쌓아놓은 무더기가 예닐곱 개 좌판도 없이 아스팔트 맨땅 위에 얇은 비닐 한장 깔고 앉아 비를 맞고 있다 장날도 아닌 공주시장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아주머니는 중국집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있는데 대책없는 오이는 시퍼렇게 살아 다시 밭으로 가자고 한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시간을 한 두어달만 / 뒤로 물렸으면 좋겠네 / 삼월에 딸기 먹고 오월에 참외 먹는 / 이 시간을 두어달만 뒤로 물러 오월 난만한 햇빛 속에서 딸기 먹고 칠월 더위 한창일 때 참외를 먹고 싶네 시간을 한 두어달만 / 뒤로 물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비닐하우스도 걷고 / 비닐하우스 속 그 독한 농약 냄새도 걷고 과일 하나 놓고라도 / 제대로 된 시절을 느껴보고 싶네 제대로 된 햇빛과 바람을 먹어보고 싶네 서로가 하루 먼저 하다보니 / 한달 두달이 당겨지고 그것을 반색하고 먼저 먹어보는 호사가 / 이제는 당연한 듯 먼저 먼저 빨리 빨리 / 거꾸로 가는 시계를 이제는 제대로 제자리에 돌려 /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