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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름은 펼침이 아니다. 그리고 주름은 다 펴지기도 힘들다. 들뢰즈는 펼침이 접힘의 반대가 아니라고 한다. 방향성이라는 차원에서 분명 다른 것이겠지만, 차이가 있다고 해서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를 통해서 바로크를 이야기 한다. 정렬되지 않은 듯 한, 조화. 그런데, 실제로 조화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에서 방점이 찍힌 것은 '다양성'이다. 즉, 차이다. 모나드(형이상학적인 점?)는 왠지 정주한 듯 하지만, 들뢰즈에게 있어서 모나드는 음직인다. 그래서 노마드와 같이 쓸 수 있다. 어떤 도식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특정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정의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위와 아래는 분명 다르고 차이가 있지만, 플라톤식의 수직적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수직적인 관계도 수평적인 관계도 그 위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동등하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름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이해한 것은 연속성, 그리고 미분화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미분화는 연속성이면서도 과정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주름은 접히면서, 펴지면서 여러 모양이 된다. 알 수 없다. 불확정하며, 카오스적이다. '카오스모스'적이기도 하다. 주름이 세분화 되고 그 해석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적이다. 운동이다. 그렇기에 결론이 없다. 그저 지소개서 움직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역자도 독자도 본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역자도 자신의 소리를 할 뿐이고,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과도기적이다. 그런 느낌의 물씬 풍긴다. 조화, 질서. 그러나 실제로 이그러져 있는 주름이 강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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