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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엄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설인가, 수기인가 소설 속의 화자는 누구인가 무당을 엄마로 둔 아들이다.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그린 소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무당이 아니었던 엄마가 갑자기 신을 받고 무당이 된다. 그럴 때 아들의 입장은 어떨까 그런 과정이 차근차근 펼쳐진다.
신기가 들린 어머니의 이야기, 예컨대 이른 아침 누군가(희진이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내용은 희진에게 오늘 출근하지 말라는 거다. 엄마의 기분이 무언가 걸리는 게 있어 그러니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다음날 뉴스에서 아니나다들까, 그 희진이 이모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니 엄마가 어떤 것을 느끼고, 사전에 조짐을 느끼고 희진이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는 거다. (50- 51쪽)
이 사건을 화자인 아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 사건은 내가 무당으로서 우리 엄마는 ‘과연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51쪽)
무당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무당은 일반인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알 수 없는 비애에 젖은 직업이다. (51쪽)
꺼져, 이제 너랑은 안 놀아. 이 무당 자식아. (83쪽) 잘 지내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화자에게 한 말이다. 무당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다.
사람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닌가 해서 찾아가는 곳이 바로 무당집이라는 것이다. (119쪽)
무당의 세계에서는 ‘만신’이라는 말은 ‘만 명’의 중생들을 먹여살리라는 의미의 단어라 한다. (75쪽) 여지껏 만신 무당이라는 말을 그냥 별 뜻 없이 넘겼는데,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록도 있는데, 과연 사실일까 싶다. 무당은 자신의 부모가 죽어도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
무당이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장례에 참여하게 되면, 자기 부모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무당이 무서워서 부모의 혼백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부모의 혼백은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것이다. (193쪽)
굿에 관한 기록들
여기서 저자는 굿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여기 몇 가지 적어둔다.
한양 12거리 굿 (66- 67쪽)
이 굿은 크게 4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데 부정거리, 불사거리, 산신거리, 대안주거리.
부정거리 : 굿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는 의식. 불사거리 : 가정의 안녕과 건강, 자손들에 대해 빌어주고 공수를 둔다, 산신거리 : 한국의 산신령을 위한 것이다. 대안주거리 : 최영 장군을 위한 거리다.
진작 굿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술잔을 올린다는 의미로, 임금님께 진상하다의 진(進)과 술잔을 의미하는 작(爵)을 써서 진작굿이라 한다. (85쪽)
아들인 저자가 굿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가지고 있어, 굿에 대한 기록이 아주 상세하다. 이 부분은 소설도 읽으면서 지금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무당의 굿에 대하여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런 기록도 있다.
한남역 뒤편으로 강변에 자리 잡은 작은 기도터가 있다. 그곳은 옛 명성황후가 굿을 하던 자리로 유명해진 성황당 터라 한다. (74쪽)
이런 기록도 남을만큼 명성황후의 굿에 대한 집착은 강했나 싶다, 결국 그런 것들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데 일조를 했음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런 곳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그 곳이 명성황후가 굿을 했던 곳이니 그쪽 세계에서는 영험한 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엄연히 저자의 자전적 기록이 많이 들어있다. <프롤로그>에 보면, 이건 실제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니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수기라 할 수 있다. 해서 자전적 소설.
이 수필형 소설을 내 엄마의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형으로 쓴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삶과 같이 엄마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엄마가 무당인 아들의 삶이 엄마의 일생과 엮어지는 가운데, 인생의 의미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하여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무당의 세계도 같이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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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무당 엄마 강신무인 엄마를 둔 아들 김재성이 쓴 수필형 소설<무당 엄마>, 기구한 슬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여인이 바로 우리 엄마다. 외할머니도 신병을 앓았고, 무당이 될 팔자였던 지은이를 대신에 엄마가 무당이 됐다고.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무당을 하련다고, 사실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주인공 재성과 엄마 그리고 외갓집 삼촌과 이모, 그리고 사촌들의 모습은 현재 지금 바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한참 전, 두 세대 전쯤에는 다자녀 세대가 한국 사회의 표준가족 구성이었지 싶다. 3대가 함께 사는 집도 드물지 않았으니, 그래도 핵가족시대였다. 가구는 부부와 자녀 둘 정도 4인 가족. 여기에도 남존여비의 가부장 질서의 그림자가, 무당의 아들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세상 무당의 기원은 샤먼, 곧 제사장이다. 한국의 기원 국조를 단군왕검이라 부르며 후일 조선이 생겨났기에 고조선이라 부르는 단골, 당골, 즉 제사장이 최고의 권력자 왕이었다. 몽골고원도 남북아메리카 선주민 문화 속에서 보이는 샤먼은 부족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병을 고치는 치료사이며 산파다. 무당은 미신이며, 이들의 언행은 혹세무민하는 사기꾼 행각이며, 신을 빙자하여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는 무리라고,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를 지나 지금까지 600년 넘게 이어진 구복과 발복, 퇴마, 이른바 길흉화복을 점치는 신의 사람으로, 서학이란 이름으로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귀신을 섬기는 악마집단으로 기독교, 보수든 진보든 우리 사회 깊숙이 문화로 자리 잡은 현실, 피를 나눈 형제도 ‘무당’이란 이질적인 존재를 ‘천형’을 받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각인된다. 소설 속 주인공 재성은 기독교계통 대안학교의 교사로, 하느님의 성전을 모두가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 국가 대한민국을 꿈꾸는 썰을 잘 푸는 교장, 국회를 찾아가 노래 부르고 전도하며, 하느님을 읊어대면 하는 수 없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의 초상을 본다. 마음이 교회로 향하기도 했던 재성은 종교, 교회라면 싫어졌다 수필형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당 엄마의 생애, 지은이는 한 개인의 기구한 운명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 배경이 되는 사회 문화가 투영돼있다. 조정래 소설<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무당 소화, 오성희가 쓴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서울리뷰오브북스14호, 2024.6.)은 로렐 켄달<무당, 여성, 신령들>과 김성례의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통해서, 전자는 경기 북부에서 후자는 제주도에서 4.3을 통해 여성들의 삶이 중심이 되는 무속 민족지, 켄달은 전통가옥,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는 1970년대의 경기 북부를, 김성례는 1980년 중반 제주를, 굿판은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굿판에서는 이들이 돌아와 증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당의 입을 통해서, 영화<혈의 누>에서처럼, 억울한 죽음을 사람들 앞에서 밝힌다. 나를 죽인 건 누구라고. 무속은 무교가 되고, 일제 강점기 때, 민간신앙을 낮춰 부르던 무속을 무교의 반열로 되돌려 놓는 작업 또한 필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다양한 종교를 믿는 가운데서도 무교의 실천이 그들의 삶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점쟁이 제 죽을 날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재성 엄마는 예지몽을 꾸었다. 집 안에 줄초상의 기운을 본 것이다. 쉰 일곱 나이에 올해만 버티면 장수하겠다는데. 라며, 결국 갱년기 불면증에 먹는 수면제 한 알을 먹고 자는 듯 죽은 듯 그렇게 세상을 떴다. 재성에게는 교회의 하느님도 엄마의 하나님도 절대자의 존재를 믿는다. 문제는 신실하게 신봉하는가이다. 마케팅의 수단이 돼버린 종교의 모습 또한 놓치지 않는다. 모태신앙의 친척들이지만 삶의 모습은 깊은 신앙을 자기 삶의 이정표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나를 희생하고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며 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이 소설은 뭔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 확실한 윤곽이 잡히지 않는 그런 구석이 있다. 무당 엄마의 생애 그리고 나, 어릴 적 무당의 자식이라며 혐오한 내 또래 녀석들, 얘들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다 어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 군중심리의 광기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제 머리로 생각하는 게 없다고, 다들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누군가의 아바타처럼 보일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점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잘나가는 사람은 잘나가서, 뜻대로 일이 안 되는 사람은 그 일이 안 되서 무당을 찾는다. 제멋대로 믿고 의지하며 무당의 말 한마디에 표정이 바뀌지만, 돌아서는 무당을 업신여긴다. 아무튼 지은이 나름의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것들일 거라면 넘어가기에는 현실적이다. 너무나 아픈 현실이고,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남의 자식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다. 학교도, 일자리도 물어서는 안 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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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정성껏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김재성 지음/ 바른북스(펴냄) 한국 사회에서 무당이라는 상징성! 저자의 어머니는 무당이셨다..... 어느 날 엄마가 "무당이 되어야겠다"라고 말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책은 저자 인생을 그대로 담아냈고 어떤 부분에서 마치 소설 같았다. 삶이라는 소설!! 내게 무당이라는 존재는 막연히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절친도 무당이셨다. 그분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셨다. 어릴 때 내가 사고를 당하고 많이 아팠을 때 할머니는 나를 무당 할머니에게 데려갔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고 그때 무당 할머니가 내게 했던 말은 일종의 주술처럼 남아 나를 살렸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무속은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지금도 무속의 힘을 믿는 분들이 있다. IT기업의 어떤 회장은 회사를 이전할 때 큰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 얘기 들었다. 첨단과학 산업의 리더가 굿이라니 좀 의아했다. 부모님의 불화로 내내 전학을 다녔던 저자, 한 번의 전학도 큰 충격인데 단기간에 여러 번 전학이라니 참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었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 저자의 어머니가 마침내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어야 했던 이유에는 모두 자신과 관련이 있었다. 처음 신내림 받을 때 신 엄마를 떠나 한양 12거리를 배우게 된 어머니, 검색해 보니 실제로 큰 굿이었다. 지난봄 영화 《파묘 》에서 김고은 배우가 굿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멋있었다. 무속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이 분야 글을 써보고 싶어서 종종 찾아보는데 때마침 만난 이 책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어떤 분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은 그저 미신을 쫓는 천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어떤 분에게는 그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걱정을 말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첨단과학의 시대 무당이라 참으로 양가적인 감정이지만 무척 흥미로운 직업이다. 무당의 입장에서 아들만은 굿판에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저자의 삶이나 무당 엄마의 삶 읽는 내내 소설 같았다. 때로 우리 삶은 그 어떤 소설보다 더 극적인데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의 어머니 무당의 삶이 참 극적으로 그려진다. 어머니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식을 가르친다고 했던가... 글 쓰는 직업이란 삶의 힘듦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직업, 리뷰를 쓰는 독자도 종종 그런 감정을 느끼는데 저자는 더 그럴 것 같다. 어느 정도 픽션이 추가된 글이지만 저자의 삶이 이제 좀 평안해지시길 기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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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엄마에 대한 정, 사랑을 우리는 모두 익히 알고는 있지만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고 산다. 그 결과 살아 있을때 해야 할 일들을 돌아가신 후에야 후회하고 아쉬워 하는 우매함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무당, 요즘 대한민국을 어지럽힌 이들이 활용했던 무당, 그 무당을 엄마로 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아마도 사회적 냉대를 받고 있는 실정을 생각하면 물어보지 않아도 그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 생전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을 담은 자식의 어미니에 대한 사랑, 그리움 등이 녹아들어 읽는 내내 콧날이 찡한 느낌을 여운처럼 지니게 한 작품을 만났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눈시울이 뜨거워 지도록 그립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 우리의 기원이기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삶을 사랑으로 이끌어준 분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무당 엄마는 결코 평범한 삶이 아니다. 그러한 엄마의 삶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무당 엄마" 는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 자식 대신 신을 받아 무당이 된 엄마의 사랑을 그리움과 아쉬움이 뒤 섞인 감정으로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전해준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철부지라지만 무당이 된 엄마는 저자에게 엄하고 호된 모습으로 무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식이 무당이 될, 신을 받아야 할 운명인데, 그것만은 막고 싶은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대신하지 라는 마음을 충분히 먹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렇게 어머니는 저자 대신 무당이 되었고 점차 무당으로서의 위치를,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특별나거나 크게 바랄것 없는 삶을 꿈꾼 저자,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 환경 속에서 행복을 꿈꾸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걸까? 오늘의 나, 우리의 일상과 삶을 생각해 보며 무당 엄마를 둔 아이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의식 속에 편견의 씨앗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그러한 마음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무당으로의 운명을 받아 들여야 했을 저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고 '욥'으로 거듭나 평범한 범인으로의 삶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책은 저자와 어머니의 삶에 대한 지난한 과거를 회상하며 쓴 수필형 소설이다. 수필과 소설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어 물흐르듯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어 속도감이 좋다. 더구나 무당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욕망이 드리운 더럽고 추악한 모습들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기에 어디나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이 만드는 세상은 다를게 없구나 하는 강한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무당 엄마의 바램은 온전히 자식의 안위뿐이었음을 의식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엄마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저자가 있을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세상 그 누구도 홀로 날 수 없는 법, 자신을 낳고 기른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베푸는 일은 인간의 삶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변함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무당 엄마의 바람대로 '내 아들만큼은 내 인생을 닮지 않게 하리라'는 염원이 이루어 졌을지 기대해 보며 독자들과 무당 엄마, 무당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인식, 이해해 보는 시간을 권유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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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지만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어머니를 추모한다는 뜻을 가진 사모곡이란 말은 이를 한자풀이 해야하는 수고는 있겠지만 엄마를 잃은 심정을 표현하는 가장 압축적인 단어같다. 저자 김대성에게 이 책은 무당엄마를 둔 아들로써의 의미보다는 결국 사모곡을 이해해야 하는 아들이자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심정을 담은 개인적인 글로 보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형식은 소설이라고 밝혔지만 돌아가신 엄마와의 기억을 적은 에세이. 무엇이 실명이고 무엇이 아닌지 모르지만 자신의 엄마가 살아생전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는 유지 또한 남겼다 하니 이를 받들듯 책을 쓰고 싶었다던 아들의 회고도 담겼다. 결국 본인이 잃은 엄마에 대한 절절함과 막막함은 책의 주제가 되어 무당엄마의 삶을 공유하며 읽는 독자 각각에게 전달될 흐름이기도 하고. 왜 이리 안좋은 친척들과 주변인들은 오지랖 넓은 옳곧은 한명의 가족에게만 집중될까? 형제자매 또는 부모를 둘러쌓고 희노애락 중 희는 그 오지랖 넓은 순수한 가족 구성원과 나누지 않은채 고민과 걱정만을 그에게 나누자며 살려 할까? 한 가정 속 고민만이 아닌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모여 이뤄진 가족 속에서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삶의 일부로써도 다가서는 이야기들. 무당엄마라 부르는 저자의 친엄마는, 이 직업 전엔 재래시장에서 김을 구워파는 일을 해서 손맛과 장사수완으로 큰 돈을 벌기도 했지만 결국 이혼과 자신이 무당이 되지 않는다면 아들이 신을 받아야 된다는 말에 그녀 스스로 무당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무당이 되게 도운 신엄마나 무당이란 직업과 얽혀있는 주위의 사람들, 돈때문에 고초를 겪어야 했던 당시 사정들을 고려하면 정말 운명적인 무업이었던가는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할 듯. 잘되던 점집이 어느 순간 안되는 가운데 신엄마란 사람의 시기서린 행동이 있었다는 일화나 제자라 가르치면 그녀의 재능만을 사사받고는 모두 떠나버린 일 등은 엄했던 무당엄마 본인의 성정 때문만이라기 보다는 신을 모시고 앞날을 예견할 수 있다는 이 직업군들 안에서도 사리사욕과 시기가 꽤나 작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신기라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바램과 그로 인해 방출되는 과도한 정신에너지가 낳은 노파심과 걱정의 발휘는 아닐까도 싶고. 그녀 혼자 짊어지고 책임지려한 살아생전 수많은 일들은 고됐지만 그런 노력이 누군가에겐 공수로 누군가에겐 묘책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번 돈들은 계속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집안살림에 크고 작은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며.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주된 소재로 잡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당엄마의 인생을 많이 괴롭히고 양 어깨에 무거웠던 건 돈문제가 아니었을까. 돈으로 인한 곤란은 소수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여자로써 가장 고소득에 속하는 일이라 저자 본인이 스스로 평한 무당으로써 엄마가 선택한 특별한 직업성과 빚으로 인해 겪은 일들은, 한 여자가 자기 인생보다는 무엇을 짊어지더라도 한 가정을 이끌어나기 위해 단순히 엄마가 아닌 가장으로써의 선택한 무게가 분명 느껴졌다. 무당엄마가 처음 자신의 아버지와 어떻게 인연이 되어 자기란 아들을 낳았고, 굿에 전혀 경험이 없던 엄마가 이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독학으로 열심히 했는지, 하나뿐인 아들인 저자가 엄마의 그늘에서 금전적으로는 부담없는 얼마나 편하게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었는지 등은 여러모로 아들과 어머니 그 자체의 인연에서도 독자에게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해줄수 있겠다. 어머니가 수면제를 먹고 잠들다 구토로 넘어 온 약을 뱉어내지 못한 나머지 기도를 막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최후는, 못내 어머니가 모시던 신에게조차 그 원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서사다. 자신을 모시는 57세밖에 안된 여자의 운명 하나 신이면서 제대로 보살펴 줄 순 없었느냐고 말이다. 무당이란 직업이 두드러질 책 같지만 아들로써 어머니와의 추억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홀로됐음이 더 깊게 다가오는 회고라고 책 전체가 보여진다. 독학으로 굿에 필요한 12개의 춤가락을 익혀야 했던 새내기 초짜 무당의 힘겨움은 옆에서 지켜본 아들의 기억 속엔 열정과 능력으로 복원된다. 누구나 죽음으로 서로를 떠나가지만 같이 있을 때 까지는 내일은 항상 있을거 같은게 모든 가족들의 모습... 저자에게도 그랬던 엄마의 부재라 이제는 그 일상이 더욱 그리운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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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병을 심하게 앓다가 결국 무당에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TV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무당엄마>라는 제목을 보며 무당의 자식으로 태어나 겪었을 파란만장한 삶이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무당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느낀 점> 젊은 시절부터 김장사, 보리밥집으로 큰 돈을 벌던 엄마가 단란주점을 열게 된다. 신내림을 받지 않기 위해 버티다 하혈을 하고 수억원의 빚을 지고나서야 무당의 길로 나선다. 그것도 아들에게 그 길이 가지 않고 본인이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리 유명해서 돈을 많이 벌어도 내 가족이 무당을 한다면 선택을 말렸을 직업이다. 최고의 무당이 되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한양굿 마스터리가 되기까지 참으로 힘겨웠다.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 점을 봐보긴 했지만 굿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했었터라 이 부분을 읽으며 오해가 풀렸다. 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당은 잡귀를 내쫓는 사람이라, 무당이 상갓집에 가면 자신의 부모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부모의 혼 역시 갈 곳을 제대로 못 가기 때문에 무당은 상가집에 못간다고 한다. 갓 신내림을 받은 애동제자가 신기가 좋다는 말들을 하는데 이 책을 보니 신이 무당의 몸에 실려서 신의 언어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툭! 툭! 던져주듯이 무당에게 던져주면 그걸 무당이 캐치해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각 신을 받은 애동 제자는 이것이 과연 내 생각인지, 아니면 신이 던져준 그 무엇인지를 구별못해 처음엔 '어버버'한다는 것이다. 이 분야도 엉터리인분들이 있고 자신의 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있다. 이 엄마도 그런 시절을 거쳐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무당엄마였기에 아들도 엄마가 무당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무당엄마 때문에 모진 말을 하고 돌아설 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상처가 되는 것은 가족이나 친척들도 마찬가지이다. 무당인건 싫지만 돈 많은 무당엄마 옆에서 이득을 취하는 인연을 끊기도 쉽지 않은 가족들이다. 엄마의 바람은 오직 아들만큼은 본인의 인생을 닮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엄마는 그 소중한 아들의 삶을 이끌어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아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엄마는 본인이 말하던 57세를 넘기지 못하고 가셨다. 거기에 친척들 간의 만남은 싸움판이고 상처뿐인 관계로 기댈 곳은 없다.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고 욥으로 거듭난 아들.. 열두 신을 모시던 무당엄마의 아들이기에 더 아이러니한 삶이다. 이렇게 글로써 무당엄마의 삶과 자신을 삶을 풀어 놓는 것이 작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상처만 주는 인간관계를 끊어내고 오롯이 마음의 평화와 안정속에서 행복을 느끼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
평범한 행복이란 뭘까요?요즘 매일 묻게 되는 마음 속 질문 중 하나예요. 평범한 행복의 기준은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오지만 공통적으로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만족을 의미합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소소한 순간들에서 오는 행복 말이죠. ㅡ 이 책은 자서전을 쓰고 싶다던 작가님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집필한 책입니다. 무당이 된 엄마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ㅡ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 한 엄마가 있습니다. . 엄마는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갔어요. . 자신만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 닦으며 성장해 나갔죠. . 아들 또한 남들과 다른 가정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 역시 엄마의 용기와 결단력을 본받아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갑니다. ㅡ 1. 엄마의 이야기 ; 무당이 된 엄마의 삶과 그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역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2. 아들의 이야기 ; 무당의 아들로서 겪은 갈등과 성장, 엄마의 죽음 이후의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 3. 삶의 성찰 ; 엄마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점을 바탕으로 평범한 행복을 꿈꾸게 됩니다. ㅡ 우리는 생각보다 환경과 조건에 많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 책을 읽으며 '나라면 과연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어졌어요. .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라는 문장에 한참 눈길이 머뭅니다. . 작가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평범한 행복을 꿈꾸게 되었다고 하는대요. 어머니의 삶을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하죠. ㅡ 저 또한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제는 외삼촌이 돌아가셨어요. 죽음을 목도하며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대요. . 그저 아무일도 없는 평온한 하루와 함께 있음에 소중함, 일상의 감사함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ㅡ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행복보다 자신만의 평범한 행복을 찾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ㅡ ![]() ![]() ![]() ㅡ*김재성 작가님께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