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은 이 영화 제목을 '머저리'라고 의도적으로 오독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하긴 제 몸 하나 관리를 못해 뚱녀가 된 것도 부족해 스토킹에까지 중독된 인간이 '머저리' 아니면 뭐긴 하겠나만.. 당시의 나로서는 이미 dyslexic한 장난으로 두뇌에 쾌감을 보낼 나이는 지났다(과연?)고 생각했기에 그에 동참하지는 않았으나(이런 익살은 어쩌면 셀프 레퍼런스, 혹은 요즘 미국에서 일상용어처럼 쓰는 메타유머임), 그 포스터를 보고 다만 유감스러운 바가 없지는 않았다. '왜 익숙하지도 않은(나는 심지어, 지금도 이 단어가 평균적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외래어로 다가올 만큼 한국어 어휘에 넉넉히 자리잡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同系 파생어인 '미제라블'이 아무리 일상 용어가 되었다 해도) 단어를 아무 여과 과정 없이 포스터에 떡하니 내세웠을까.' 한국에 수입된 영화라면, 그 제목만큼은 적절한 번역어로 바꿔 주는 게 (국어사랑 같은 고상한 동기를 떠나서) 상업적 고려에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 나이치고는 제법 깊은 배려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배려'에 투입된 생각과 논리의 質과 量의 레벨과는 무관하게, 그 배려에 담긴 예측은 그러나 큰 폭으로 빗나갔다. 제목에 쓰인 단어의 생경한 울림과 외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그저 스토리와 배우의 개성(무지막지한 돼지)에 대해 잘 행해진 홍보 그 효과만으로도 사람들을 극장으로 몰고 가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여기에, 이제 뚱뚱하고 사발팔방 군살이 삐져 나온 똥자루 체형에 대해 사람들이 경각을 갖기 시작했던 당시의 트렌드도 크게 한몫 작용하기 시작했으니....(다시 말하지만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지금도 타 선진국에 비해 비만 비율이 현저히 낮고 비만자가 주위로부터 경멸 어린 시선을 받는 건 그 연원으로 잡을 시기가 제법 오래되었다) '관리 안 하면 나도 저렇게 된다.' 단지 뚱뚱해지고 걸어다니기 좀 불편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남에게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혐오감을 주고, 애정사에서 철저한 소외와 상처를 겪은 채, 스토킹과 폭력, 정신이상 지경으로 치닫지 않으면 작은 사랑의 쾌감조차 맛보지 못하는 한심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 현명한 인간은 형식논리를 떠나, 제 생존에 높은 우선 순위로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감 잡고, 이에다 감정적 예측 기제를 덧입혀 손쉽게 해악을 예방하는 방법을 쓴다. 유년기, 혹은 청년기에나마 이런 백신을 맞는 이라면, 성장해서나 늙어서 비만이 되는(비만은 분명 질병이다) 슬픈 운명을 피했을 테고,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탐식의 악순환에 빠지거나, 근거도 논리도 부재한, 터무니없는 정치 논리로 악을 빽빽 써가며, 심지어 같은 진영에 선 청자들에게조차 황당함을 안겨 주는 처참한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신세는 모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차 강조하는 바로, 빈곤하고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인간은, 커서 반드시 타인에게 민폐형, 사회적으로 낙오형,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것이다. 당장 거울을 볼 때마다 얼마나 스스로가 한심하고 혐오스럽겠는가? 두 눈 뜨고 볼 수 있는 건 블로그밖에 없는 서글프고 한심한 똥자루의 신세에서 말이다. 얼마 전에도, 덩치 큰 어떤 여성이 회식자리에서 동석한 남자를 상대로 일종의 성추행을 시도하다, 혀가 잘린 상해를 입어 쌍방이 형사 소송에서 얼굴을 마주대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나마 덩치가 크면 저렇게 강제력을 행사하여 육욕의 일부라도 충족할 여지나 있겠지만, 체형의 가로세로가 똑같은 채 굴러다녀야 하는 처지라면, 예컨대 인터넷에서 누구 하나를 찍어 놓고 그 쓰는 글마다 쫓아다니며 스토킹질을 한다거나, 이 끔찍한, 미저러블한 구애가 좌절(이런 게 무슨 작은 확률로나마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을 겪을 시 호구 하나를 붙잡고 논개(순국 선열의 이름을 더럽히는) 코스프레(내가 너 대신 맞아줄께!)나 하는 것 말고는 욕구를 풀 방법이 없다(아니면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 체내에 축적되듯 또 그 식상한 정치 타령으로 성욕을 대신 풀어야 하는데, 이게 지가 생각해도 죽을 지경이거든). 내가 전에 한 번 말한 적이 있듯,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경우 유년 시절의 동경, 호기심, 열망 등을 성인이 되어 습득한 각종 지식과 문제 의식으로 잘 가다듬어 소설로 형상화한, 이론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한 창작 기제를 가지고 일생 동안 창작에 집중, 성공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그 재구성이랄까 배경 따위는 그림이 쉽게 그려지는 유형인데,... 이 스티븐 킹은, 머리 속에 대체 뭐가 들어있었길래 이런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작품 세계 창조가 가능했는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작품에 집어 넣을 생각부터를 할 수 있었는지, 그 심리학적 배경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가이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흉한 꼬락서니에서 저런 병든 정신이 나온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영화. |
|
남들은 휴가다 여행이다 분주한 주말을 보내고 있을 즈음. 난 케이블에서 해주는 미저리를 보며, 느리디 느리게 가던 시간이 훌쩍 가버림을 느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자꾸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던가? 그 영화 스토리가 생각나서 종종 햇갈린다.
암튼.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여름과 어울리는 영화. |
|
망상장애의 캐릭터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정신병이 생각 외로 보편적 장애이듯, 망상장애 역시 그들 서로간에는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다. 이 중에는 자신의 존재 파멸을 초래하는 자학성 징후 외에도, 멀쩡한 남까지 제 처참한 수준으로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스타일도 있다. 눈 앞에 뻔히 벌어지는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전혀 실질의 근거를 두지 못한 어이없는 황당한 망상이 제 한정된 시선 안에서 마냥 지속되길 바라는 퇴행성 장애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